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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죽산안씨(신) 종친회 원문보기 글쓴이: 안재중
화순군청 마을의 유래 자료를 보니, 우리 송화공 자손 중에 죽산17세 안처룡(安處龍, 1732~1779) 어른께서 보성군 겸백면에서 1750년 화순군 춘양면 변천리로 입향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전남 화순군 춘양면 변천리(邊天里) 유래
개천동마을(開天洞,개천굴) 「변천리」
●지명유래
변천리(邊天里)의 지명은 변동(邊洞)마을의 변(邊)자와 개천동(開天洞)마을의 천(天)자를 합하여 변천리라 하였다. 변천리는 변동마을, 개천동마을 등 2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개천동은 천태산에 있는 개천사의 이름을 따 사하촌(寺下村)으로서 개천동이라 하였다. 보통 개천굴이라 부르며 마을을 세분하면 큰동네, 새터로 구분된다. 원래 마을이 작았으나 6·25후 동막, 사동사람들이 소개되어 나온후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서 살게되면서 마을이 크게 되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남일면(南一面), 1864년 대동지지에는 능주목 개천면(開天面), 1895년 5월 1일 전국행정구역개편에 의거 나주부(羅州府) 능주군(綾州郡) 단양면(丹陽面), 1896년 8월 4일 지방행정구역개편에 의해 전라남도(全羅南道) 능주군 단양면,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능주군 단양면 개천동(開天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3년 능주군의 폐지로 화순군(和順郡) 단양면,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변경에 의해 화순군 춘양면(春陽面) 변천리(邊天里)(개천동, 변동)로 편입되었다. 4개반으로 이루어졌다.
●주산물(쌀, 보리), 특산물(담배), 주소득원(쌀, 보리)
●성씨 : 청도金(10), 김해金(7), 죽산安(6), 진주姜(4), 창녕曺(4), 순천朴(2), 능성具(2), 공주李(2), 경주李(20), 고령辛(1), 제주梁(1), 전주李(1), 진주邢(1), 진원朴(1).
●마을형성 개천동은 동쪽으로 산이 있으며 서, 남, 북쪽은 평야지로 형성되어 있다. 마을은 서향 또는 북향을 하고 있다.
1455년경 청도김씨 金次山( ? ∼ ? )이 세조찬탈을 반대하다가 김포에서 하양으로 남하후 운봉을 거쳐 입향하였다. 1710년경 순천박씨 朴挺書( ? ∼ ? )가 모친 청주김씨( ? ∼ ? ) 와 함께 장흥 안양면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750년경 죽산안씨 安處龍(1732∼1779)이 보성 겸어면(현재 겸백면)에서 입향하였다. 1805년경 창녕조씨 曺暉淳(1785∼1847)이 화순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45년경 진주강씨 姜載齡(1826∼ ? )이 장흥 유치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30년경 경주이씨 李相禧(1906∼1972)가 양곡리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동쪽으로는 청풍면, 서쪽으로는 월평리 월산마을, 남쪽으로는 변동마을, 가동리 가동마을, 북쪽으로는 월평리 옥평마을이 있다.
●유물 ·유적 金正鉉功績碑(개천사입구), 金泰奉功績碑(1965년 건립, 이장을 17년간 수행하는 동안 헌신적으로 마을을 위해 봉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건립), 수유재(垂裕齋, 1730년경 건립, 정면4간, 측면1.5간, 흩처마 팔작지붕), 변천교, 天宇亭(1993년 건립, 유산각).
●민속놀이 ·전설 ·민담 ⊙ 디딜방아 액막이 : 갓굴 앞들에다 디딜방아를 이웃마을에서 몰래 가져다 거꾸로 세워놓고 고쟁이를 씌워 놓으면 개지머리(염병, 장질부사, 장티푸스)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 널뛰기: 정월 대보름에 부녀자나 처녀들 중심으로 즐긴다. ⊙ 씨름 : 정월 대보름에 남자들을 중심으로 즐긴다. ⊙ 줄다리기 : 정월 대보름에 남여가 편을 갈라서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 강강수월래 : 정월 대보름에 40∼50인의 부녀자와 처녀가 한데 어울려 강강수월래를 즐기며 놀았으나 지금은 행하지 않는다.
⊙ 당산제 : 이전부터 지내지 않았다. ⊙ 농악 : 정월 대보름이면 시암굿, 마당볼비를 하였다. ⊙ 기우제 : 가뭄이 극심하면 천태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 당산점 : 당산나무 잎이 한물에 피면 모내기를 한번에 하고 나뉘어 피면 모내기를 여러번 해야 한다고 하였다. ⊙ 줄다리기 : 정월 대보름이면 남여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 불싸움 : 정월 대보름이면 민등, 옥평마을로 불싸움을 하였다. ⊙ 숲쟁이 : 마을 입구에 있는 숲으로 개천동 마을의 개의 형국이라 하며 산간리 마을앞산이 범산으로 개와 범은 상극이므로 마을 에 범산이 보이면 해가 있다고 하여 액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가꾼 숲이다.
⊙ 개천굴 마을은 지금의 위치에서 3∼400m아래에 위치하여 형성되어 있었으나 풍수지리설에 의해 마을에 화산이 비추어 불이 자주난다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숲쟁이도 화재예방을 위해 화산을 가리고 있다고 전한다.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싼정골(산전골) :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 산, 등 : 뒷봉, 물뿌리산, 변옆봉, 변동뒷산. ⊙ 들 : 집앞들, 내안들, 뒷들, 비야배미, 판촌배미, 탕건배미, 너마짓들, 지우들, 말배미, 소시랑배미, 깟밭들. ⊙ 골짝 : 싼정골(싼정고랑), 개정지, 갓골, 절골, 가운데골, 가랫골, 바탕골, 사그실골, 꼬두재골, 용골, 감남골, 멧골, 숯골, 바릿골, 절고랑, 북당골, 먹박골, 성적골, 석골.
⊙ 바위 : 서방바위, 각시바위, 아들바위. ⊙ 터 : 독삼굿터, 물레방아터, 주막터, 절터. ⊙ 고개 : 어릿물재(∼청풍 어리), 버드재(∼청풍 세청리), 금성재(∼청풍 백운리), 원통골재(∼도암 문바위), 둠벙재(∼도암 등광리).
⊙ 샘 : 삼굿거리시암, 두데미시암. ⊙ 보 : 응달보, 비바우보, 뒷들보, 내안들보, 숲쟁이보, 민등보, 깟밭들보, 산밑에보. ⊙ 길 : 두데미고삿, 가운데고삿, 웃고삿, 숲쟁이, 변도리, 방아실거리, 다릿거리.
⊙ 농악 : 정월 대보름이면 시암굿, 마당볼비를 하였다.
죽산17세 安處龍(안처룡, 1732~1779)
죽산16세 안창조(安昌祚, 1697~1734) 어른의 계자가 됨
生父(생부) 安昌國(안창국) - 주촌공(酒村公) 안창국(安昌國, 1697~1766)의 4남
初諱(초휘) 處華(처화)
字(자) 季瞻(계첨)
生(생) 英祖 壬子(1732)
卒(졸) 正祖 己亥(1779)
配(배) 靈光金氏 夢輝女
墓(묘) 兼白 棹洞 壬坐 上下墳
죽산13세 송화공(松禾公) 안전(安峑, 1614~1686) 선조의 큰 아드님이신 낙빈당(樂貧堂) 안두상(安斗相, 1636~1723) 선조의 후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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