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한자교육 문제가 불거져 나와 순탄하던 국어교육정책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한자는 지식 정보화 시대에 맞지 않는 글이고 한
자교육은 창의력을 떨어뜨리는 암기교육이며 국한문 혼용으로 된 글은 독서 능력을 떨어뜨
릴 뿐 국어사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또 한,중,
일 3국이 한자어휘가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글자도 서로 달라 동양 경제권을 위해 도움
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밝혀지고 있다.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까닭은 이 밖에 또 있다.
첫째, 사교육비의 증가로 인한 국가 경제의 손실이다. 교육개발원 조사에 의하면 1998년 우
리 나라 연간 사교육비의 총 규모는 29조원에 이르며, 교육자원부에서 조사한 결과 초,중,교
육이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며 이미 한자를 잘해야 대학에 갈 것처럼
소문을 내고 한자경시대회에 수만 명을 끌어내어 떼돈을 벌고 있으니 초등학교 한자 교육의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둘째, 한자를 배우면 어휘력 신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 하나 연구결과는 그와 반대다. 박영
의 선생님이 초등학교 4,5,6학년 읽기 교과서에 나온 한자어휘 2,125개의 낱말을 분석한 결
과 한자의 훈과 낱말의 뜻이 일치하는 것은 23%에 불과하며 77%는 낱말의 무관함이 밝혀
졌다.
셋째, 일부에서는 떠오르는 동양의 경제권에 대비하기 위해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하나 동
양 경제권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인본어나 중국어가 한자보다 더 효과적이다. 동양 경제권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자를 가르칠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에 따라 중국어, 일본어,
한문을 선택하도록 하는 현재의 제도가 좋다.
넷째, 통일 때문에도 안 된다. 국어정책은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 모두의 문제이다.
남북통일을 위해 모든 분야에서 이질화를 해소한다고 하면서 한자 교육을 하는 것은 인간의
생활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언어를 이질화시킨다는 뜻과 같다. 북한에서는 현재 신문이
나 교과서에서 한자를 일체 사용하지 않으면서 통일 이후에 남한의 출판물을 못 읽을까봐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통일 될 때까지 언어이질화를 촉진시키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지금에 와서 역사를 되돌리면 그 동안 한자를 배우지 않았던 한글세대들은 모두 문
맹에 빠지게 될 것이다. 국민의 대다수를 문맹으로 몰아 넣을 수는 없다.
여섯째, 어떤 사람들은 한자를 써야 뜻이 통하고 한자를 써야 고급언어라고 하는데 이것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우리는 글자가 아닌 전화로도 의사소통에 지장을 받지 않으며 한글로
쓴 글에서 더 훌륭한 언어를 찾을 수 있다. 한글로 쓰여진 신문의 각종 칼럼이나 사설, 그리
고 문예서적과 학술서적들이 고급언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하자로 써야 고급언어라
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우리 생활에서 (한자가 아닌) 한문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던가
한문으로 된 옛날의 역사, 문학, 철학서적을 공부하기 위해서 한문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된 필요성 때문에 모든 국민이 한문을 배울 필요는 없으며 필요한 만큼
의 전문가를 길러서 연구하게 하고 또 현대어로 옮기면 모든 국민이 쉽게 고전에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문은 장래의 진로를 결정한 중, 고등학교 가운데서 필요로 하는 사
람들이 선택과목으로 배우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한문을 배
우고 싶어도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는 학교가 있는데 한문의 경우 역사성을 감안하여 모든
학교에 개설하게 하여 공부를 하고 싶으면서도 선택을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하면 된다. 아
무튼 학교에서 한자교육을 강제로 실시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