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다음카페 <함안조가 감찰공파 하림유사>입니다. 이 글을 주변 분들에게 널리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관정 조성래 합장
조선시대에는 거의 모든 집에 “신주단지”를 모시고 있었다. “신주단지(神主壇地)”라는 말은 ‘신주를 모신 제단의 자리’라는 뜻이다. 신주단지는 가정의 마루나 방의 높은 곳에 선반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쌀 등의 곡식을 담은 단지를 올려두고, 그 위에 한지로 고깔모자처럼 생긴 덮개를 만들어 씌운 것이다. 외부에서 먹을 게 들어오면 그것을 신주의 제단에 올린 뒤에 내려 먹었다. 매년 10월에 단지 안의 곡물과 고깔덮개를 새 것으로 교체했다. 이 신주단지는 부루단지(扶婁壇地)의 전통이다. 부루는 단군의 장남으로서 제2세 단군이다. 그는 BC 2,240년부터 58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온 백성이 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나라를 부강(富强)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만백성이 다 목 놓아 통곡했다. 뒤에 백성들이 각 가정의 높은 곳에 부루 단군의 제단(祭壇)을 설치하고, 그곳에 항아리에 곡식을 담아 올려놓고, 앞으로도 먹고사는 게 문제가 없도록 계속 재산을 불려달라고 부루 단군에게 빌었다. 이것이 부루단지이고, 신주단지의 기원이다. 신주단지는 4,300년 이상 지속돼오다가 일제강점기에 많이 없어졌고, 나머지는 1950년 6.25전쟁 때 많은 집이 불타 없어지고, 새로 집을 지으면서 없어졌다. 우리민족은 돌아가신 뒤에도 후손들을 돌봐주는 조상신을 믿고, 모셨다. 우리는 환인 하늘님과 환웅 천왕님과 단군 산신과 그 밖의 많은 조상신을 믿었다. 20c에 들어와서 각 집마다 4,300년 이상 모셔오던 신주단지가 없어졌다. 우리 민족은 매년 제천의례(祭天儀禮)를 통해 하늘나라의 황제인 환인 하늘님께 제사를 모셨고, 하늘이 다 보고 있다고 여겼으며, 천벌을 받을까봐 두려워했다. 우리 민족 상고사를 기록한 <환단고기> 속의 <단군세기>에 부루 단군과 부루단지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 글을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