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근처 녹야원애 다녀왔다, 나중애 함께 갈 납골당을 찿아 보러...
사실 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는대 아내가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죽어서도 같이 지내는 것도 좋겠다 싶어 그러마고 했다.
깨끝한 분위기는 좋은데 건물만 덩그러니 주변 시설이 좀 아쉽다.
생각보다 비용이 제법 드러갈 모양이다.
죽는것도 쉽지 않네...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죽을 준비를 하면 오래 산대. 어머니도 수의 해놓구 오래 사셨잖아.
내가 입을 수의는 한복으로 해놓을게. 일반옷은 탈때 문제라나?
석민이 결혼 날자가 결정돼었다.내년 1월 22일 토요일(코로나19 때문에 그나마 자리가 없단다)
근자에 진행이 눈에 띄게 빠르다. 민주 결혼때처럼.
스트래스가 생기면 진행이 빠른가?????
공연히 조급해진다. 그때까지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지금만 같으면 괜찮은데 그때는 이 병도 깊어지갰지?
상견례라도 내가 조금이라도 나을때 하면 좋으련만
바깥 사둔이 이빨 하는 거 때문에 미루자고 하니 어쩔수 없지.
결혼식에 내가 힘들어도 있는게 나을까? 없는게 나을까.
4월에 아산병원에서 임상 실험이 진행되지만 큰 기대는 안한다.
말 그대로 임상실험일뿐....
짒사람은 이것에 기대를 좀 거는 모양이나 기껏해야 진행을 좀 늦추는 정도겠지
지금 특별히 아쉬울 것은 없다.
민주 혼례도 잘 치렀고, 가족사진도 찍었고, 휴가도 함께 보내며 좋은 추억을 쌓았고,
민주 직장도 그만하면 됐고, 석민이도 직장에세 진급도 하고 자리를 잡은거 같고
소이처럼 착한 배필을 만나 혼례를 하려한다.
이만하면 됬지. 더 뭘바래?
그래도 아쉬운게 있다면 아이들에게 한 푼도 남겨주지 못해 속 상하다.
아내가 살아갈 방도를 못해준건 더 미안하고 속상하다.
나머지는 주님께 맞겨야지. 내 인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