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라는 것이 특별하다 보니 자료 구하기가 쉽지가 않네요...
종친회에 전화를 해 보시는 것이 빠를 듯 합니다 항렬만으로도 몇대손인지 알수는 있을 겁니다.
이런 자료는 인터넷에 올라올 만큼 그리 흔한 자료는 아니지요..집안의 내력이니...쩝`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참조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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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김씨(羅州金氏)의 시조는 경순왕의 손자 나주군(羅州君) 운발(雲發)이다. 고려시대의 대제학대경(臺卿), 조선시대의 무신 정준(廷儁)·경석(景錫)·적(適)·충수(忠守) 등을 배출하였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1만 4387가구에 4만 642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신라김씨의 분관(分貫) 및 개성(改姓)
미추가 서기262년 신라 13대 미추왕(味鄒王)에 올라서 신라의 김씨 왕조가 시작되었는데, 신라는 총 56명의 왕 중에 김씨가 38명이다.
이 신라김씨는 조선시대까지 총 600여개의 본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1985년 경제 기획원의 인구조사에서는 약 270여개 본관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신라 29대 무열왕(武烈王)의 5세손인 김주원(金周元)을 시조(始祖)로 하는 강릉김씨,
원성왕의 후예인 한충계 선산김씨는 대광 유렴의 아들이다 라는 내용이 추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의도적으로 원성왕의 후예가 생략인지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것인지 없네요.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의 셋째아들인 김흥광(金興光)을 시조(始祖)로 하는 광산김씨, 신무왕(神武王)의 후손인 김영이(金令胎)를 시조(始祖)로 하는 영산(永山, 영동)김씨,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 김선궁(金宣弓)을 시조(始祖)로 하는 선산(일선)김씨, 문성왕(文聖王)의 5세손 김락(金樂)을 시조(始祖)로 하는 당악(唐岳)김씨 등을 제외한 대부분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후손들이다.
윗줄의 마지막에 ~ 제외한 대부분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후손들이다. 이 부분은 왜곡의 여지가 충분히 있음을 아셔야합니다. 아니면 모든 성관(경순왕후예가 아닌 대보공의 후예)을 기록한 후 에 경순왕을 언급하여야 옳다고 봅니다.
경순왕(敬順王: 김알지의 28세손)은 후 백제 견훤이 경애왕을 죽게 한 뒤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나, 935년에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손국하고, 왕건의 딸 낙랑공주 와 혼인하여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사심관(事審官)으로 여생을 보냈다. 경순왕은 아홉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첫아들 김 일(鎰)과 김 굉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아들은 낙랑공주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명종공도 죽방부인 태생임.
그 중 김해군(신라삼성연원보) 마의태자(麻衣太子)로 잘 알려진 김 일은 망국의 한을 품고 개골산(皆骨山: 금강산?설악산?)으로 입산(入山)하였다.
김 일(鎰)은 부안김씨, (부안김씨는 태자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하여 재판에서 패소 당함)부안은 은열공의 후손으로 판명이 났다 합니다. 태자의 후손은 고려조에서 삼국사기를 집필한 김 부식입니다. 지금은 이들의 후손이 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태자에게는 선웅과 순웅공(삼성연원보에)이 있는데 고려대장군 순웅공은 은열의 후예로 전해오다가 삼성연원보에 의하여 태자의 후손으로 확인이 되고 선웅과 순웅은 태자는 개골산으로가고 경순왕은 개성으로 향할 때 데리고 가서 큰 할아버지인 억렴의 슬하에서 자랏다고 합니다. 따라서 계림군 균은 순웅의 후손입니다.
둘째 김 굉의 아들 김 운발(金 雲發)은 나주김씨, 김굉은 煌이라고도 하며 운발의 아우로 우발이 있으며 이는 경주김씨의 한파를 이룹니다.
셋째 영분공 김 명종(金 鳴鐘)은 경주김씨의 영분공파, 여기서도 많은 분파가 생겨남.
넷째 대안군 김 은열(金 殷說)은 경주김씨 은열공파, 여기서도 많은 분파가 생겨남.
다섯째 의성군 김 석(金 錫)은 의성김씨, 여기는 개성김씨등 약4개 파가 생겨남.
여섯째 강릉군 김 건, 여러 문헌상 강릉군으로 강릉김씨의 시조이나(무열왕5세손 김 주원계와는 다른 파 임)홍주김씨등으로 분관이 되고 일부는 주원계 강릉김으로 통합이 된 듯하다.
일곱째 김선(金鐥)은 언양김씨, 분파는 의령, 담양, 예천, 청주김씨 등이 전한다.
여덟째 삼척군 김 추(金 錘)의 아들(김위옹)은 삼척김씨, 錘의 11세손 仁軌을 시조로 춘양과 경산김씨가 있으며 13세손 偉를 시조로 진주, 18세손 起文을 시조로 진위, 14세손 忠敏을 시조로 옹진, 려생을 시조로 하는 영월김씨, 8세손 四知를 시조로 남원과 길안김씨가 전한다.
아홉째 김덕지(金德摯)는 울산김씨 등이 되었다.
이들은 교묘히 경순왕의 자녀들의 군호를 빼고 기록함으로서 여기에는 없으나 한충계 선산김씨가 경순왕의 후예로 위장하려 하엿다. 마찬가지로 희천(온양)도 마찬가지로 도저히 연대 상 맞지 않는 인물을 삼척군 金 錘공의 3자로 둔갑을 시켜놓앗다.
이 중에서도 넷째 아들 김 은열(金 殷說)의 후손이 가장 번창했고, 둘 째 아들 김숙승(金叔承)은 안동김씨로, 5세손 김 봉기(鳳麒)의 넷째아들은 김녕김씨로 분관했다.
김방경의 넷째아들은 대구김씨로, 송희부인 월성 석씨의 생으로 (영)의 후손 과는 다른 대구김씨임. 7 세손은 도강김씨로, 13세손은 밀양김씨로, 5세손은 서흥김씨로, 그 후손 중 안악김씨, 안산김씨가 나왔고, 14세손은 야성(영덕)김씨로 분관하였다. 김녕에서 분관하여 양근김씨, 9세손에서 양주김씨, 후손에서 연주김씨, 4세손에서 영광김씨, 후손에서 영산(靈山)김씨, 15세손에서 월성김씨, 8세손에서 전주김씨, 첫째아들 김정구의 11세손에서 청풍김씨 등으로 분관하였다.
기타 첫 아들 金 鎰(鎰) 후손은 통천김씨, 여덟째 아들 金 錘의 아들 김우(金佑)는 희천(온양포함)김씨, 여섯째 아들 김 건의 후손은 영월김씨, 홍주김씨 등으로 분관하였다. 이 부분은 잘 못 된 기록입니다. 홍주는 맞음. 佑는 상계미상, 영월김씨는 삼척군 金 錘공의 후손임. |
첫댓글 상기의 내용 중 "일"자 할아버지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설명을 하였습니다. 잘 익혀 후손에게 자신감 있게 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억렴께서 키웠다.하고 큰할아버지라고 하셨는데 정확하게 하면 외조입니다. 태자의 부인이 "영란"입니다. 이분은 억렴의 따님입니다.신라시대에는 왕족간의 결혼의식 때문에 근친관의 결혼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