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서울 예술의 전당의 전시실 . 그곳에 전시된 100여점의 서예작품들은 정체돼 있던 국내 서단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예의 고전자료에 대한 탐구로 서예의 모든 장르가 구현된 작품들은 서예의 흐름, 현대서예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회로 남았다.
13년전 서울 개인전을 통해 국내 서단을 놀라게 한 중진 서예가 국정(菊丁) 박원제 선생이 13년만에 30년 서예인생을 담은 대규모 개인전을 진주에서 마련한다.
10일부터 16일까지 경남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한글, 한문, 문인화 등 서예범주에 드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 80여점을 선보인다. 10m대작의 병풍과 한문 40여점, 문인화 20여점, 한글 10여점, 혼서 10여점 등 폭 넓은 영역을 섭렵했다.
“제 30년 서예인생의 자존심입니다. 양만 넘쳐나는 전시회가 아니라 질적으로 경남서예 발전에 도움되는 전시회를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하나의 방법에 머물지 않고 여러가지 서체를 종합해 변화를 모색, 작품으로 대중과 간격을 좁히는 소통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서예의 시대성을 중점을 두고 전통서예를 현시대에 필요한 조형예술로 담아내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형상’, ‘그림’, ‘뜻’이 혼용된 전시회죠. 서체간의 조화를 주요 포인트로 하면서 서예술의 현대성을 고려했지만 고전은 서법을 철저히 지켜 가장 고전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박원제 선생은 1997년 서울전시 이후 5년에 한번씩 전시회를 열 것을 약속했지만 새로운 것을 보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작품의 고뇌로 몸무게가 52kg까지 빠졌을 정도로 창작활동은 자신의 몸을 녹여내는 작업이었다고 힘든 과정을 설명한다.
1980년대 대학시절 우연히 휘호하는 은초 정명수 선생의 모습에 반해 본격적으로 서예에 입문, 화정 정인화 선생 문하에서 10여년을 공부했다. 이후 90년대 들면서 초민 박용설 선생의 문하에서 예술성을 높이는 공부를 했으며 운정 조영실 선생으로 부터 문인화를, 농산 정충락 선생에게 전각을 배웠다. 진주 대아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지난 10여년간 한국서예협회 경남지회장을 맡아 지역서단을 이끌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마음을 담은 맛을 살리고 싶었다”는 박원제 선생.
이를 위해 문장내용은 물론, 문장내용에 따른 글꼴을 조화시키기 위해 고심한 노력이 엿보인다. 또 장법상 꽉 채워 답답함을 주기보다 약간씩 여백을 만들려고 노력했으며 작품에 철학을 담아 음양의 관계를 태극의 주된 색인 빨강, 파랑으로 표현했다. 특히 문인화의 경우 그림을 그리고 화제를 쓰는데 반해, 가슴에 내용을 담고 그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택했다. 문장의 내용이 비움이나 초탈함이 많이 화면 구성도 욕심내 여러가지 표현하기 보다는 최대한 여백의 미를 살리고 단순함을 추구했다.
“고정관념을 털어내고 ‘비움과 자연스러움’을 표현해 보려고 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 주제어를 부각시키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협서로 처리해 시각성을 높이고자하는 의미도 담았죠.”
이외에도 내용에 맞춰 종이 질감과 색도 달리할 정도로 공을 들였고, 병품작품의 경우 감상자들을 위해 한글 석문을 부가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13년전 개인전에서 다듬어 지지 않았던 부분을 이번전시에서 보완해 완벽함을 추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풀어내는 작업이었죠. 서예는 정신을 담는 예술이기 때문에 문자의 외형적 형태보다 내면을 담는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의 효과를 살려내고 동양철학과의 상관성을 찾아보는 것, 좀 더 비워내 무위자연을 실현해 보는 것 등 문사철(文史哲)을 깊이있게 공부해서 작품 속에 발현시키고 싶습니다.”
박원제 선생은 전통서예의 특징과 장점으로 새롭게 형상화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전국 서단에 각인시킨다는 각오로 이번 전시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설명=박원제 작품‘養喜神’
첫댓글 선생님의 에너지넘침에 박수를 보냄니다 언제나 열심히 하는모습 보여주시고 건강도 살펴가면서 작업하시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