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辛丑年) 신춘단상(新春斷想)
새해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세월이 하 수상(殊常)한데도 계절은 쉬지 않고 줄달음치네요.
해가 바뀌기 전에 뭔가 채워놓고 맞이하겠다는 간절한 소망도 역병에 짓밟혔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살아온 게 아니고, 견뎌온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 한 살 추가되는 것도 거절하고 싶네요. ㅎ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살아내야 할 인생입니다.
새해벽두 -, 문득 '세한도(歲寒圖)'가 생각났습니다.
세한도
국보 180호인 '세한도(歲寒圖)'는 조선후기 서화가(書畵家) 추사(秋史) '김정희'의 작품입니다.
'윤상도'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모든 지위를 잃고, 1844년 제주도로 유배되었을 때의 그림입니다.
모두들 그를 등졌지만 제자였던 역관 '이상적'만이 변함없는 의리로 두 번씩이나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주자, 날씨가 추워진
뒤 가장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답례로 그렸답니다.
송백(松柏) 같은 선비의 절조(節操)로 유배 중인 자신의 처지를 표현했습니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추위가 닥친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그림속 소나무는 귀양살이로 외롭고 고달픈 추사 본인이요, 잣나무는 역경 속에 살아있는 올곧은 선비정신의 표현일 것입니다.
긴 그림 오른쪽에 '세한도' 제목과 우선 '이상적'에게 준다는 '우선시상(藕船是賞)', 그리고 '완당(阮堂)'과 함께 도인(圖印)을
찍었습니다.
원래 가로 61.2cm, 세로 23cm이었으나 그림 말미에 청나라와 국내문인 20명이 쓴 감상문이 덧붙이면서 15m에 달하는 대작이
되었습니다.
간략한 소재와 구도에 단색조의 수묵과 마른 붓질의 필획만으로 이루어진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화면은, 농축된 내면세계의
문기(文氣)와 서화일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문인화의 최고정수로 평가받습니다.
무가지보
극도의 외로움 속에서 그려낸 수묵화 세한도(歲寒圖) -.
잣나무 3그루와 소나무 1그루, 그리고 집 한 채로 단순하기 그지없어 명화로 보기 어렵지만, 문인화의 핵심인 사의(寫意)를
가장 잘 나타내어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의 귀한 보물로 찬사를 받습니다.
지난해 '손창근'선생은 대를 이어 소장해온 세한도를 아무런 조건 없이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당시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하면서 힘든 겨울에도 우뚝 선 세한도의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우리 모두 이 힘든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한겨울 지나 봄이 오듯'이란 전시회(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한도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던데, 코로나 거리두기 확산으로
글렀네요.
곰보였다던 추사는 33세에 대과급제하여 암행어사로 탐관오리들을 징벌했으나 훗날 반대파의 표적이 되어 12년의 귀양살이를
견뎌야했습니다.
그리고는 더듬더듬 추사가 쓴 제발(題跋)을 읽어봅니다.
설 전후 혹독한 추위를 '세한(歲寒)'이라 하는데,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뜻합니다.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는 늘 푸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귀포 대정읍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집안에 갇힌 채 보냈을 '김정희'의 고립과 단절된 시간을 가늠해보는데요, 세한의
추위를 이겨내려 초라한 토담집과 나무 네그루 사이에 서있는 추사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춥고 외로운 유년시절부터 나목으로 성장하여, 온갖 풍상에서도 명줄을 지탱해온 우리들의 모습도 거기에 빈손으로
서있습니다.
산들레
다시 길 떠날 날만을 고대합니다.
길의 본뜻은 무엇일까요?
한자 길 '도(道)'자는 '착(辵)'과 '수(首)'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랍니다.
'착(辵)'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수(首)'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한다하여 '길[道]'을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결국 길은 통로인 동시에 사유(思惟)이니 자신과 자연, 나아가 세계와 소통하는 것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세상이 좋아지니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오솔길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소란스럽고 얕은 요즘 세상에, 자주 걸어야만 삶이 더 깊고 고요해질 것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오늘은 연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입니다.
역시 추운데요, 그래도 길 떠나고 싶습니다.
어때요? 그 길에 동행하지 않을래요?
참, 새해 만복을 기원합니다.
화욜(1. 5) 아침에 갯바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