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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나의 작품들 행복한 만화가게
2012/07/10 23:49
http://blog.naver.com/ipari67/40163097248
황미나를 말할 때 쉽게 떠오르는 수식어는 ‘순정만화계의 대모’라는 말이다. 그만큼 엄희자, 민애니로 대표되는 1세대 한국 여성만화작가들의 활동이 단절되었던 ‘80년대 한국 소녀만화계에, 그녀는 독학으로 데뷔해 새로운 2세대 소녀만화계의 개척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중심으로 김혜린, 이명신, 이정애, 서정희, 오경아와 같은 작가들이 운집되었고, 또 다른 변방에서 김진, 신일숙, 강경옥과 같은 이들이 ‘80년대 등장해 화려한 소녀만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황미나는 친숙한 소재와 여성스러운 그림체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소녀만화계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부상했다. ‘90년대 이후엔 소녀만화의 틀을 벗어나 무협, 성인, 소년만화 등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초기의 ‘기린 목’ 소녀들과 중기의 ‘코끼리 허벅지’, 말기의 ‘송충이 눈썹’ 등 다소 거슬리는 그림 스타일을 거치며 레드문 말기에 이르러 비로소 안정된 그림체가 완성된다.
구구한 평가를 떠나 여성작가로써 수십 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30년을 넘도록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도전해온 투철한 작가정신만큼은 무엇보다 높이 살만한 자세로 보여진다. 근래 시력악화로 디지털 도구를 이용한 작업에 의존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1993년 도서출판 산호 ‘이오니아의 푸른 별’>
8-9세기 제2차 유럽 민족 이동기, 가상의 국가 이오니아를 배경으로 한 역사 로맨스물.
왕위 찬탈을 노리는 역신 데니아크 대공에 맞서 싸우는 왕권 수호 비밀결사대원 간의 대립과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황미나의 공식 데뷔작이다. 이중 삼중으로 꼬인 출생의 비밀이 난무하는 초기 ‘기린 목’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특별한 연출이 있다기보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그려나간 뻔한 스토리의 감흥없는 작품이지만 작가 황미나를 존재하게 한 데뷔작이란 점에 의의를 둔다.
<1997년 타임 ‘유랑의 별’>
황미나의 초기 작품으로 후작가의 아들이었으나 집시로 자란 마리오가 영주의 딸과 신분의 차이를 넘어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지만, 무고한 죄를 뒤집어 쓴 채 화형 당한 뒤 전설의 별이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2002년 도서출판 청마 ‘베일속의 페르디낭’>
무고하게 죽은 백작의 딸 페르디낭이 해적들 사이에서 자라 복수를 위해 파리로 돌아오지만, 용서와 화해를 통한 구원을 청산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
지금 보기엔 유치하기 그지없는 시놉시스와 서툰 뎃생으로 채워진 황미나의 초기작. 어디선가 본듯한 유사한 설정과 그림들이 정신없이 출몰하는 까닭에 혼란스럽지만 추억이란 이름으로 보게되는 작품.
<1999년 도서출판 대원 ‘아뉴스 데이’>
로마의 다키아 정벌을 배경으로 다키아를 정벌한 로마의 최고 장군과 다키아의 공주, 다키아의 왕자와 로마의 공주간에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랑을 소재로 한 황미나의 초기작.
인체의 비례가 어색하고 유치한 대사와 단선적인 플롯이 거슬리지만, 작품의 전반을 관통하는 눈물겨운 비극의 정서는 초기 황미나 만화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정서라 할 수 있다.
<1997년 서울문화사 ‘굿바이, 미스터 블랙’>
인도 세포이 반란 주동혐의로 종신유형을 선고 받고 호주로 유배된 영국 귀족 다니엘은 그곳에서 절도혐의로 유배된 소녀 스와니에게 ‘라이언’으로 불리며 짧은 사랑을 한다. 하지만 복수를 위해 호주를 탈출한 뒤,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이 되어 신분을 감춘 채 영국으로 돌아간다. 곧이어 자신을 모함했던 친구 켐벨과 맨체스터 백작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지만 여동생의 유언과 어머니의 고백을 통해 실추되었던 백작가의 명예만을 복구시킨 뒤 기소를 중지한다. 호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을 사랑했던 원수 맨체스터 백작의 딸 스와니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미스터 블랙’으로 불렸던 검은 장발의 라이언에 대한 동경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팬들이 많다.
<1998년 타이밍 ‘라이크 앤드 러브(애수의 교향시)’>
병약한 언니와 동시에 한 남자를 좋아하던 소녀가 언니가 죽고, 첫사랑을 보내며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목이 긴 기린족 소녀들이 등장하고, 한국 고교생들과는 거리가 한참 먼 패션을 소화하는 금발의 남주가 DJ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80년대 스타일의 소녀만화.
<1997년 서울문화사 ‘불새의 늪’ / 1984년 송천문화사 '불새의 늪' 초판>
16세기 프랑스의 신, 구교간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그 중심에 섰던 기스가의 쌍둥이 남매를 통해 인간의 권력욕과 그로 인해 파생된 숱한 애환을 다룬 대하 역사만화.
레니비에를 비롯한 일곱 명의 귀족 위그노들과 왕권을 다투는 앙리 3세, 그리고 법왕의 사생아로 태어나 인생의 신고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야 했던 쥬델의 삶이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 다채롭게 펼쳐진다.
‘불새의 늪’은 참 모호한 제목이다. 단지 어감 때문에 차용된 느낌이 크긴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나락을 보면서도 늪을 향해 걸어가는 주인공들의 행보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신념을 향해 전부를 걸었던 인간들 모두가 불새였는지도 모를테고...
<1988년 도서출판 송천 ‘메이저에서 마이너까지’>
여성 록커 혜림과 비운의 천재 음악가 유진을 통해 한국적인 록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이 작품은 혜림보다 유진에 대한 얘기가 더 깊이 있게 부각된다. 작품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혜림이지만 그녀의 모든 음악적 사상이나 배경은 곧 유진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고,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한국적 록 음악의 정체성 역시 유진과 그의 아버지 강일수가 추구하며 발견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본래 음악에 관심이 깊었던 황미나 자매의 공동작품으로 지금보기엔 진부한 소재이지만, 나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진지하게 대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1998년 서울문화사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이 작품은 ‘80년대 초, 소녀만화계에선 다룰 수 없는 소재라 여겨졌던 소외된 현실의 문제를 정면으로 들고나와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전까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신파의 로맨스를 다루던 그녀가 동일 작가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변화의 진폭은 엄청나게 컸다. 그림상의 변화도 변화지만 현실을 바라보고 고민하는 작가의 성찰이 눈에 띄게 진화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많은 부분들이 검열에 의해 삭제되고 수정된 탓에 처음 발표 당시와는 많은 부분들이 바뀐 채 단행본 출판되었다.
고아원에서 만난 남매의 불행한 삶과 죽음을 통해 작가는 질기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담아내려 했으며, ‘현실의 삶이 어떠하든 태양이 뜨는 한 나는 살겠다’는 신애의 의지를 통해 한국판 스카렛 오하라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후일 ‘상실시대’와 ‘윤희’를 통해 또 다른 진섭과 신애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1998년 서울문화사 ‘다섯 개의 검은 봉인’>
황미나표 그림의 절정기에 그려진 이 작품은 대작은 아니지만 완성도있는 시놉시스와 뎃생으로 흡인력이 있다. 성서의 많은 요소들을 차용한 이 작품엔 예수의 죽음과 부활, 믿음과 사랑과 희생을 강조한 대단원의 마무리 등 여러모로 기독교적 뉘앙스를 풍긴다.
줄거리는 기계신을 섬기는 갈칸국에 의해 베오와 안제타국이 병합되면서 인간의 마음엔 증오와 악이 자라기 시작하고, 천대받던 반음반양의 존재인 신화속 구원자에 의해 인간의 선의지가 악을 물리치고 땅 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내용이다. 지상의 악을 구원하기 위한 다섯 개의 봉인은 ‘순결, 믿음, 사랑, 진실, 희생’이라는 덕목들이다.
줄거리만 훑어본다면 대단히 도식적이고 상투적인 내용이지만 이 뻔한 줄거리 위에 날개를 달고 옷을 입히는 황미나의 솜씨는 녹록치 않다. 북구의 신화 속 날개족과 기계신을 섬기는 미래의 어느 전사들의 대비와 합일은 자연스럽게 융화되며, 급조된 듯한 뻔한 결말이긴 하지만 결말의 도출과정이 그닥 촌스럽지 않게 마무리 된다.
<1998년 대원출판사 ‘보헤미안 랩소디(방랑의 광시곡)’>
집시와 백작의 사이에 태어나 배 다른 형들로부터 멸시와 구박을 받던 한 소년이 모친의 죽음을 계기로 아메리카 독립전쟁에 참여했다 탈영한 뒤,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찾게 되는 이야기.
감정 과잉이던 초기 작품들에 비해 주인공들의 대사나 내레이션도 성숙해졌고, 무엇보다 진부하지 않은 선에서 상투적인 이야기들이 잘 마무리된 작품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선과 정성 들여 그린 완성도 있는 그림들도 돋보인다.
<1994년 팀매니아 ‘녹색의 기사’>
정통 소녀만화와 소년만화가 조화된 황미나의 성공적인 환타지물.
요정과 난장이와 악마가 살던 시절 작은 영토를 지배하던 왕 크로노스가 큰 영토를 지배하던 사촌형을 암살하여 왕국을 빼앗고, 실종된 어린왕자 지그프리드는 악마 메피스토바르트에게 빼앗긴 자신의 운명을 되찾기 위해 녹색의 기사단과 여행을 떠난다. 지그프리드는 여행을 통해 달의 여신의 도움으로 악마를 무찌른 뒤 자신의 운명을 되찾지만, 왕이 될 운명을 포기한 채 녹색기사단과 함께 불의를 응징하는 의적으로 살아가는 운명을 선택한다.
<1995년 세주문화 ‘엘 세뇨르’>
가상제국 로사스의 귀족 가브리엘이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낸 뒤 해적으로 변신해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의적활동을 하다 신념을 지키며 죽어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기본 줄거리는 김혜린의 ‘북해의 별’과 유사하나 가브리엘이 갑작스럽게 자유와 평등 사상에 심취해 의적이 되는 과정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나 여타의 황미나 작품들에 비해 이야기 구조나 연출에 있어 짜임새가 있고, 그림 역시 가장 안정된 시기의 작품이라 할만하다. 당시 유행한 서사만화의 흐름에 편승한 작품이긴 하나 황미나에게 이념과 역사의 심층을 다루는 서사구조는 다소 버거워보인다.
<1998년 대원출판사 ‘상실시대’>
국내 최초의 순정만화 동호지였던 ‘나인’에 수록된 단편들과 다른 매체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을 단행본으로 엮어낸 단편집.
구두닦이 고아소년이 늘 마주치는 시장 과일행상 아주머니와 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사과 한 개’, 노년에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의 짧은 데이트가 손주의 질투로 허망하게 끝나버리는 ‘황혼의 공원’ 등 짧지만 가슴 뭉클한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1999년 대원출판사 ‘너의 이름은 Mr. 발렌타인’>
죽음을 향해가는 한 소년의 삶을 지켜보며 가슴 아픈 사랑을 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사춘기 소녀의 감성이 극진하게 녹아있는 이 작품엔 ‘80, ‘90년대의 향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식으로 친 식자로 편집하는 편집실 풍경이나 라디오의 심야음악프로그램에 보내는 엽서사연 따위들이 그 시절을 지나온 이들에겐 진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지금보면 감정의 과잉이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 작품의 전반에 흐르는 죽음의 비감은 이형기의 ‘낙화’와 어울려 대단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1995년 팀매니아 ‘취접냉월’>
원수의 집안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지만 복수를 위해 마음을 감춘 채 불행한 결말을 맞는 순정 무협물로 서양 로맨스물을 그리던 황미나가 동양화풍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내용전개는 양호한 편이나 다소 성급한 마무리가 아쉬움을 준다. 대신, 여주인공 가연의 담백한 죽음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마무리는 소녀만화 특유의 진부함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
사이보그 인간 준호와 그가 지키고자 한 맹인소녀 윤정아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단편 ‘메탈하트’가 수록되어 있다.
<1994년 서울문화사 ‘파라다이스’>
핵무기 폐기 후 대륙간 초능력 무기 개발을 경쟁하는 근 미래, 초 에스퍼 쥴리어스는 인간병기로 사용되다 버려지기를 거부하고 에스퍼가 지배하는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반란을 일으킨다. 대부분의 에스퍼들이 쥴리어스 휘하에 들어가 지구정복에 가담하지만, 준호를 비롯한 다섯 명의 에스퍼 훈련원생은 인간과 에스퍼가 공존하는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쥴리어스에 반기를 든다.
서로가 꿈꾸는 파라다이스를 만들기 위한 에스퍼들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이들의 싸움속에서 인간들은 에스퍼 처치를 위한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동료가 죽고 가까스로 쥴리어스를 해치운 준호 일행은 또다시 인간들이 쏜 레이저 건을 맞고 죽어간다. 더 이상 자신이 꿈꾸는 파라다이스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준호는 사랑하는 미리내와 함께 먼 미래의 우주 속으로 떠나간다.
작가는 이후, 먼 미래의 어느 시대에 지구에서 온 이들이 만든 시그너스라는 가상의 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평화의 이야기 ‘레드문’을 통해 이 작품의 뒷 이야기를 이어간다.
레드문의 서막에 해당하는 이 이야기는 레드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작가의 작품경향이나 전체의 내용으로 보아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소녀만화와 소년만화가 섞인 과도기적 작품으로 간간이 섞여있는 개그컷들이 작위적인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1995년 서울문화사 ‘수퍼트리오’>
부자들의 재물과 재산이 ‘고구마’로 불리는 도둑에 의해 계속 강탈당하자 세계부자연합회는 고구마를 잡기위한 특별 수사팀 결성을 촉구한다. 이에 한국인 첩보원 출신 김준원과 컴퓨터 만능 숀 코넬리, 여무술가 링링 세 사람으로 구성된 수퍼트리오가 구성된다. 특별히 잘난 구석은 없지만 나름 특기를 가진 세 사람의 트리오는 고구마로 불리는 아르센 뒤폰 백작과 숙명의 대결을 펼친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벌어지고 해결되며 수퍼트리오와 고구마와의 대결은 작품 전체를 시종 밝고 즐거운 분위기로 이끌어 간다.
작가가 내성적인 성향의 자신과 전혀 반대되는 성향을 적극 투사한 작품이라 밝혔듯이, 기존의 황미나 작품과는 변별력을 지닌 작품으로 소년지 투고와 함께 시작된 새로운 변화의 싯점에 발표된 작품이다.
<1996년 세주문화 ‘윤희’>
부잣집 여자를 만나 떠나간 첫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 윤희가 그녀의 모든 과거를 알고도 사랑해주는 친구 재영과 연인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그린 여성 성인만화. 서로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달래주며 연인으로 발전해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가 상투적인 가운데 감동을 준다.
<1998년 서울문화사 ‘웍더글 덕더글’>
시끌벅적한 고씨네 집 여섯 남매의 좌충우돌이야기.
황미나는 이 시끌벅적하고 독특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간간히 양념처럼 그려넣었던 소녀만화 속 개그컷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언뜻 유카리 이치조의 ‘유한클럽’ 속 주인공들이 생각나는 캐릭터들이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즐거운 작품이다.
<2001년 서울문화사 ‘이씨네 집 이야기’>
아흔이 넘은 어머니와 삼남 사녀를 가족으로 거느리는 퇴역군인 이씨네 가족에게 벌어지는 일상다반사.
이 가족의 구성이나 성격은 전작 ‘웍더글 덕더글’과 대단히 유사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웍더글의 가족 역시 ‘참 아름 다운 우리 나라 하늘’ 일곱 남매와 부모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의 아버지인 고철씨 역시 퇴역군인은 아니지만 군대식 점호와 조깅을 통해 일사분란한 가족통제를 즐겨한다. 또 이들의 막내딸 하늘이가 무예에 능통한 여학생으로 그려지듯 이씨네 차녀 세미 역시 태권도, 검도, 쿵푸 등 무술합계 오단의 유단자로 그려진다.
다만, ‘웍더글’에 비해 이 작품은 좀더 진지한 자세로 생활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 속에 감춰진 속 모습들을 작가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씨네 고모 손자 데이빗은 작가의 전작 ‘아르테미스의 활’에 등장했던 그 데이빗이다. 청소년기에 당한 성적학대로 인해 비뚤어진 성장기를 보내야 했던 데이빗이 다시 한번 등장해 종합 무술인 세미와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얘기를 펼쳐보인 채 떠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웍더글’과 ‘아르테미스의 활’을 이작품의 번외편처럼 구성시켜 버렸다.
<1997년 서울문화사 ‘알게 뭐야’>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환타지를 그리고자 한 황미나의 알 수 없는 이야기. 마무리 역시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종결 지으며 ‘알게 뭐야’로 일관하고 있는 문제작. 그냥 이리저리 공처럼 튀는 끝동이와 주변부 인물들의 설정을 따라가며 큰 줄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즐기면 되는 작품.
<1998년 타이밍 ‘크로스 파일’>
무협 옴니버스란 이름으로 무술과 권법을 소재로 한 단편 모음집. 전혀 다른 주제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소재로 묶여 한 작품집으로 출간된 독특한 작품집.
태극권법, 무영여객, 스턴트맨 스턴트걸, 맹걸이 소림사로 가다 등 보기 힘든 황미나 초기 무협만화들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집이기도 한다.
<2000년 서울문화사 ‘아르테미스의 활’>
생명연장과 장기이식의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은 ‘월광천녀’나 ‘비밀’을 통해 장기이식의 문제를 다뤘던 시미즈 레이코의 작품들과 괘를 같이 하고 있지만 다소 급조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초반 수빈과 데이빗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될 듯 하던 이야기가 마지막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준영의 심장을 이식 받은 루퍼트와 수빈의 관계로 급회전하며 반전 아닌 반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비밀 해결사이자 암살 집단인 레인보우의 타켓을 의미하는 ‘아르테미스의 활’은 제목으로 크게 매치되지 않는 느낌이다.
<2000년 도서출판 대원 ‘천국의 계단’>
인간적인 정에 굶주린 야수와 같은 유전자조작소년 에이프릴과 고아소녀 찬휘의 T시를 향한 여정과 굴곡을 다룬 작품.
유전자조작에 의해 태어났으나 자신이 태어나도록 난자를 제공해준 존재 ‘엄마’를 그리워하는 괴물소년과 4대천사에 의해 관리되는 도시의 천사가 되어 떠난 연인 키리에를 그리워하는 고아소녀 찬휘의 랑데부는 운명처럼 이루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기에 천국이라 여겼던 도시에서 엄마와 연인을 잃은 두 사람에게 도시는 더 이상 천국일 수 없으며, 성모와 천사에 의해 통제되는 무덤 같은 공간일 뿐이다. 두 사람은 꿈이 사라진 도시를 미련없이 떠나지만 서로에겐 그들이 찾고 싶어했던 무언가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만들어져 있다. 천국은 그들 가슴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000년 학산문화사 ‘BST(Blood Sweat Tear)’>
황미나가 그리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가상의 삼국 패권 환타지. 다양한 장르를 통해 실험적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적 역량을 키워온 작가가 새롭게 시도한 환타지 장르의 작품으로 중립지대를 차지하기 위한 삼국의 패권다툼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자유의 나라를 꿈꾸는 계백이 주술사 시바에게 무너지며 중립지역을 빼앗기게 되지만 주몽과 화사랑 공주 등이 힘을 합쳐 결국엔 시바를 무찌르며 중립지역을 탈환함은 물론 발해와 탐라 삼국을 통일하게 될 것이란 점을 예측할 수 있다.
십년 째 연재중단 상태라 완결을 기대하기란 어렵겠지만 1부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환타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2001년 세주문화 ‘저스트 프렌드’>
<2007년 중앙books ‘저스트 프렌드’ 애장판>
일본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일본인 청년 유키를 통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민우가 자신의 사랑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은 작품.
작품 속에서 간간이 동성애자의 모습을 담아왔던 황미나는 이 작품을 통해 진지한 자세로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야오이나 소녀만화 속에서 소녀 독자의 취향에 따라 왜곡된 모습으로 그려지던 동성애자들의 모습에 비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비교적 현실적인 모습을 갖추고 등장한다. 민우와 혜주의 관계는 여전히 신파에 가까운 결말을 보여주지만 작가가 민우와 유키를 통해 다루고자 한 동성애자의 삶은 대체로 공감 할만한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유키를 향한 민우의 감정변이 과정이 다소 불충분하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오는 동성애 소재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 단연 발군의 작품이다. 그만큼 황미나 작품세계의 품이 넓어진 방증이라 생각된다.
<2004년 애니북스 ‘레드문’ 애장판>
가상의 별 시그너스의 왕자 필라르가 반란으로 왕위를 찬탈 당한 뒤, 지구로 피신해 와 몸은 죽고 영혼은 지구인 소년 윤태영의 몸을 빌어 별을 황폐화 시킨 주범 아길라스를 처단하고 평화를 되찾는 과정을 다룬 SF대작.
작가가 투병 과정 속에 ‘유작’을 남기는 심정으로 그렸다는 이 작품은 뎃생과 연출에서 몇 십년 간 축적된 노하우가 집약된 대표작이라 할만 한 작품이다. 윤태영과 박진희, 필라르와 사다드, 사다드와 데스티노, 필라르와 아즐라, 아즐라와 엑사토, 아즐라와 아길라스 등 친구와 주종관계로 얽힌 주인공들의 감정 역시 우정과 사랑이 얽히고 설켜 작품을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넘쳐 흐르는 남주들의 눈물바람은 투병중인 작가의 심경의 발로인지 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21세기형 SF라고 하기엔 메카닉이나 패션이 진부하고 새롭지 못한 점도 아쉬운 점이라 할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