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락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평산 신씨 |
신덕모 |
1700년말 |
신안군 하의면 |
신남길 |
신남진 |
입향유래 |
평산신씨 신덕모씨가 신안군 하의면에서 살다가 생활의 터전을 마련키 위해 배회했던 때 정착한 곳이 이곳 도락리
마을로 최초의 입향자로 전해지고 있다. |
마을명 |
옛날, 쌀의 유출이 다른 마을 보다 심하여 "되내기"라 했지만 지금은 "도락리(道樂里)"라고
한다.
|
2. 만년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김해 김씨 |
김갑추 |
1660년경 |
해남 황산면 |
김남옥 |
김환식 |
입향유래 |
김해 김씨 김갑추씨가 해남 황산에 살다가 형제들이 각각 흩어져서 현재 만년리에 이르러보니 산수가 좋고 지형이
아늑할 뿐아니라 자연적으로 자생한 밤나무가 많아 생활의 근거지로 정착한 것이 최초의 입향자로 전해오고 있다.
|
마을명 |
옛부터 이 마을에는 밤나무와 돌이 많아서 "밤석골"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 만년리라 부르면 영구불멸 한다하여 마을
이름을 개칭했다.
|
3. 소 신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안동권씨 |
권지순 |
1826년경 |
신안군 비금면 |
권종산 |
권종우 |
입향유래 |
안동 권씨 권지순이 비금에서 살다가 도초에 건너와 돌아다니다 "이곡(二谷)"에서 생활하면서 이 지역에 움막을
치고 살게된 것이 최초의 입향자로 전해지며 지금의 소신(小信)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
마을명 |
이곳에 사는 사람은 3∼4년간은 가세가 흥해지나 그후부터는 자연히 폐가 되었기에 믿을 수 없는 곳이라 하여
"소신(小信)" 이라고 불러졌다. |
4. 조진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장흥 고씨 |
고사길 |
1836년경 |
전남 해남 |
고수복 |
고수복 |
입향유래 |
장흥 고씨 고사길이 해남에서 살다가 이곳 조진으로 건너와 살면서 이곳을 안주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
마을명 |
마을에 새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라 하여 조진리라 하였고, 대벌(大伐)리라 함은 옛날 큰 화전 염전터가 있어 큰
벗 대벌리라 하였는데 지금은 조진리(鳥津里)로 부르고 있음.
|
5. 난말리 입향시조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창원 황씨 |
황희서 |
1710년경 |
중국 중원 |
황용길 |
황용길 |
입향유래 |
창원 황씨 황희서가 중국중원에 (황읍) 살다 동양을 답사코져 아들 3형제를 거느리고 경남 창원에 도착 기거하면서
중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각처를 배회하다 마침내 도초에 와 머물렀다., |
마을명 |
고란리 끝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란초란과 끝말자를 따서 란말(蘭末)이라 칭하였다.
|
6. 이곡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남평 문씨 |
문희순 |
1720년경 |
전남 함평 |
문정모 |
김유일 |
입향유래 |
남평 문씨 문희순이 1720년 전남 남평에서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와 생활하게 된 것이 입향 유래이며 그후에 점차
많은 호수가 늘어 지금의 이곡리(二谷里)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전함. |
마을명 |
이 마을은 고란쪽과 만년리쪽에서 내리는 산계곡이 두 개가 있다하여 이곡리(二谷里)라 불리고
있음. |
7.고란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장흥 고씨 |
고창유 |
1573년 |
광주상대곡적동 |
고송석 |
고민성 |
입향유래 |
장흥 고씨가 1593년 임진왜란시 백형대촌공의 소막지명을 읊받고 일심 전가족을 해중 도서로 피난케하고
출정했다. 일도조(入都祖)는 이때 정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죽촌공의 록항에 피어해중(避於海中)하라는 기록이 있음.
|
마을명 |
란초 꽃이 많이 자생하여 고란리(古蘭里)로 불렀다. 한 때는 도초의 중심지로 면사무소가 있었다.
|
8. 신교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광산 노씨 |
노차강 |
1720년경 |
전남 광산 비금 |
노정웅 |
|
입향유래 |
1720년경 노차강씨가 전남 광산군에서 출생하여 인근 비금면을 거쳐 이곳 신교마을에
안착했다. |
마을명 |
이 마을이 옛날 초생지(草生地)에서 삐비가 많이 있는 들이라고 하여 삐비신자와 들교자를 써서
신교리(莘郊里)라고 했다. ★섭사리, 신교(莘郊)라고도 했다.
|
9. 죽련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김해김씨 |
김래학 |
1650년경 |
전남해남 |
김천익 |
김천익 |
입향유래 |
김해 김씨 김래학이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본을 알수 없는 엄씨가 살았다고 하나 차츰 없어졌으며,
김해 김씨인 김래학이 임진왜란말 해남에서 살다가 이 마을에 이주해 온 것이 입향자로 전해오고 있다.
|
마을명 |
자연적으로 대나무가 많았다하여 마을 이름을 죽년이라고
했다. |
10. 궁항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경주최씨 |
최우명 |
1726년경 |
전남장산 |
최기환 |
최명석 |
입향유래 |
경주 최씨 최우명이 전남 장산에서 약 260년 전에 본면에 입도하여 산이 아늑하고 생활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이 마을을 안식처로 했다. |
마을명 |
마을 뒷산이 활같이 생겨 활의 목에 마을이 자리 잡았기에 "활목"이라 부르다가 후에 활궁자와 목항자를
따서 궁항이라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
11. 나박포 입향시조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김해김씨 |
김영국 |
1836년경 |
전남신안흑산 |
김의일 |
김의일 |
입향유래 |
김해 김씨 김영국이 흑산에서 150년전에 본도에 입주하여 조그마한 동구리섬인
현재 면사무소 옆에 안주했다. 당시는 바다 가운데 섬이었지만 얼마 안가서 본면의 중심지가 되었다. |
마을명 |
불섬 앞 바다에서 이곳까지 큰 개울이 있어 나박포(羅泊浦)라고
했다.
|
12. 시목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경주최씨 |
최운기 |
1725년경 |
해남군화산면 |
최예원 |
최정기 |
입향유래 |
경주 최씨 최운기가 1725년경 해남군 화산면에서 거주하다 형제가 남쪽으로 생활근거지를 찾아
여행하던중 맏형은 도초에 동생은 비금면에 각각 생활을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
마을명 |
옛날에 감나무가 많아 자생하였다하여 시목(枾木)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은 천연적인 자원의 혜택으로
"시목리 해수욕장"이 국립해상공원으로 개발되고 있는 곳이다. |
13. 수항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청주한씨 |
한충 |
1721년경 |
전남영광 |
한철균 |
한이봉 |
입향유래 |
청주 한씨 한충언이 영광에서 통훈대부사 감찰부 감찰시로 있다가 조정으로부터 조휼(朝譎)죄로 유배되어
본면 수항리(대롱 끝)에 정착 현재 11代에 이르고 있다.
|
마을명 |
부락 앞까지 바다물이 래왕할 때 수항리 마을을 구비구비 돌아나가는 "물목"이라하여
수항리(水項里)라고 했다.
|
14. 오류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김해김씨 |
김윤금 |
1740년경 |
건남영암군 |
김종식 |
김기봉 |
입향유래 |
1740년경 입향조 김윤금이 영암군에서 거주했으나 형제간이 많았기 때문에 생활의 터를 찾아 배회하던
중 정착한 곳이 현재 마을로 그 당시 버드나무가 많이 있고 토질이 비옥하여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의 형제들은 본면 죽도, 용동 마을등에 살고
있다.
|
마을명 |
이 마을은 버드나무가 자연적으로 많이 자생하였고 비옥한 땅이 있는 곳으로 오류리(五柳里)라고
했다.
|
15. 엄목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완산이씨 |
이유현 |
1786년경 |
전남영광 |
이남수 |
이동안 |
입향유래 |
완산 이씨 이유현씨가 1786년경 전남 영광에서 이곳으로 최초 입도했다 |
마을명 |
옛날 이 마을에 엄나무가 많았다하여 엄나무 엄자를 붙여 엄목리(奄木里)라
했다. |
16. 정두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김해김씨 |
김순종 |
1880년경 |
지남리 |
김문근 |
김문근 |
입향유래 |
김해 김씨 김순종씨가 본면 지남터에서 살다가 이 마을로 입향. |
마을명 |
뒷산 생긴 모양이 곤배 모양을 하고 있어 정두(丁頭)라 했다.(외남 하리 마을에 속해
있음.)
|
17. 신촌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장흥고씨 |
고정언 |
1910년경 |
외상마을 |
고금성 |
강승직 |
입향유래 |
장흥 고씨 고정언은 본면 외상마을에서 본가로부터 분가하여 지금의 신촌마을에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
마을명 |
1953년경 문도윤 면장당시 피난민들의 새로운 정착지로 결정, 지금의 신촌리(新村里)로 칭하게
되었다. 지금은 정착민 뿐만 아니라 본도의 여러 마을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
18. 외남상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장흥고씨 |
고시락 |
1626년경 |
|
고종순 |
고판담 |
입향유래 |
장흥 고씨 고시락이 본면 죽년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최초의 입향자라고 전해지고
있다. |
마을명 |
이웃 지남 마을의 밖에 있다하여 밖지남 등으로 불리워지다가 후일 외남리(外南里)로 칭했다. 박경안
면장 당시 외남상리(外南上里)로함.
|
19. 외남하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김해김씨 |
김정우 |
1592년경 |
전북남원 |
김동주 |
김정기 |
입향유래 |
김해 김씨, 김치우, 수로왕의 56대 손으로 전북 남원에서 살다가 맏형 김정삼씨가 청화
애국지충의 벼슬을 버리자 형의 권유로 도초에 입향, 부인 전주 이씨와 혼인하였다.
|
마을명 |
이웃 지남 마을의 밖에 있다하여 와남이라 칭하였으나 박경안 면장 당시 편의상 외하리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20. 지동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경주김씨 |
김서양 |
1686년경 |
해남우이도 |
김인술 |
정정용 |
입향유래 |
경주 김씨 김서양이 1686년경 해남에서 우이도를 경유 이곳 지남에 정착, 삶을 시작한 것이 최초의
입향자임.
|
마을명 |
지남의 동편에 위치하였다하여 편의상 지동이라
칭하였다 |
21. 죽 도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달성배씨 |
배진석 |
1700년경 |
전남광주 |
배광채 |
배천식 |
입향유래 |
달성 배씨 배진석이 전남 광주에서 살다가 조선시대 때 이곳 도초에서는 제일 처음으로 입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옛날 도서를 개척하면서 뭍에서 이곳을 비롯 우이도, 흑산도를 거쳐 중국까지 왕래를 했다는 설도 있으나 도초의 입도조(入島祖)는
달성 배씨로 논의하는게 통례이다.
|
마을명 |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죽도"라고 하였으며 일명 대섬목 이라고도
한다. |
22. 외남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밀양박씨 |
박선창 |
1584년경 |
경북군위군 |
박정기 |
박부철 |
입향유래 |
밀양 박씨 박선창이 경북 군위군에서 해남 등을 거쳐 도초면 수향리에 정착, 그 후손들이 지남리에
입향하여 살았다.
|
마을명 |
옛날에는 외남리가 밖지남이였고 현재 지남리가 안지남이였다고 했으나 마을 모양이 남쪽을 향하였다하여
지남리라 칭하였다고 한다. 지남리에는 3개의 마을 즉, 지동, 지북, 지남이 있는데 편의상 박병채 면장 당시 분리하였다고
전한다.
|
23. 지남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한양조씨 |
조지수 |
1710년경 |
신안비금면 |
조병택 |
조병택 |
입향유래 |
한양 조씨 조지수가 인근면 비금에서 살다가 이곳 지동리를 찾은것이 마을을 형성하게 된 동기며, 그때
3형제가 살았다고 함.
|
마을명 |
지남리의 뒤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편의상 지북이라고
했다.
|
24. 발매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밀양박씨 |
박시수 |
1698년경 |
전남장성 |
박대홍 |
황금동 |
입향유래 |
밀양박씨 박시수가 장성군에서 거주하다 가세 빈곤으로 3형제가 남쪽을 향해 이주하던 도중 장형은
함평군에, 종형은 목포에 안착하고, 박시수씨가 발매리에 도착 낭주최씨의 딸과 혼인하여 정착했다. 그때부터 마을에는 매화나무가 자생하여
왔다.
|
마을명 |
마을의 생긴 모양이 마치 매화꽃 같아서 발매리라고 부르고
있음. |
25. 춘 경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함양박씨 |
성명미상 |
1710년경 |
신안군흑산면 |
|
박태수 |
입향유래 |
함양 박씨 성명 미상이 흑산도에서 살다가 부친이 5형제를 동반하여 그중 3형제는 육지고 가고,
2형제가 춘경리에 거주하면서 안착한 것이 최초의 입향자로 전하고 있음. |
마을명 |
옛날에는 이 마을에 초장(草場)이여서 전답을 만들기 위해 소쟁기로 갈고, 봄이면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짓는다하리 춘경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춘경리라 부르고 있음. |
26. 화도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경주최씨 |
최장환 |
1910년경 |
본면수항리 |
최일남 |
채화영 |
입향유래 |
경주 최씨 최장환이 본면 수항리에서 거주하다 이곳 화도로 이주 최초의 입향자로 전해오고
있음. |
마을명 |
옛날에는 한 개의 섬으로 독립하였으나,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인근 열목이라는 곳과 연도하였다.
이곳은 불꽃같이 큰 부자가 생겼다가 사그라져 망하였다 하여 불섬이라고 부르다가 일제 때 "火島"라고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
27. 월포리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한양조씨 |
조치수 |
1644년경 |
신안비금 |
조길 |
조기복 |
입향유래 |
한양조씨 조치수가 인근면 비금에서 살다가 도초에 입향하여 월포마을에 첫 번째로 정착 현재의 마을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전함. |
마을명 |
옛날에는 마을 앞으로 큰 개울이 있어 부락 형태가 반달 같다하여 달월자를 썼고 개포자를 따서
월포리(月浦里)라 하여 현재에 이름. |
28. 저 항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통천최씨 |
최강국 |
1690년경 |
전남해안 |
최대영 |
박화진 |
입향유래 |
통천 최씨 최강국이 1690년경 전남 해남에서 거주 우이도에서 최초로 최씨가 입향하였다고 전함.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450년전 우이도의 최초 입도조(入島祖)는 파평 윤씨로 체도 입도를 약 50년 앞선 곳으로 역사는
전한다.
|
마을명 |
마을 형상이 마치 돼지 머리모양을 하였다고 저항(猪項)이라고 명명하였다고
전함.
|
29. 동서우이도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동복오씨 |
오경철 |
1710년경 |
전남무안 |
오봉인 |
오봉인 |
입향유래 |
동복 오씨 오경칠씨가 1710년경 남단섬을 찾아 내려온 것이 지금의 동 우이도라고
전함.
|
마을명 |
이 마을은 체도에서 떨어진섬으로써 동쪽과 서쪽에 섬이 마주보고 있다하여 동서우이도라
명명하였다. |
30. 수다리 입향시조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함양박씨 |
박세문 |
1720년경 |
함양 |
박윤남 |
박윤남 |
입향유래 |
맨처음 입향자는 허씨 다음 배씨 순으로 살았는데 지금은 그들 자손은 없고, 그후 함양 박씨 박세문이
입향하여 그 당시 마을 어귀에 팽나무 4그루를 심었는데 1977년도 홍수에 넘어졌고 지금은 2그루가 살아있어 마을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음.
|
마을명 |
이 마을은 물이 귀한 마을이어서 건들이라 하였다가 마을명을 수다리로 개명하면 물이 많아진다 하여
수다리(水多里)로 부르고 있음.
|
31. 명당리 입향시조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함양박씨 |
박명언 |
1710년경 |
|
|
|
입향유래 |
함양 박씨 박명언이 최초로 입향하였으나 현재는 이주하여 자손도 없고 그 후 박정훈, 박정민 형제가
살았지만 역시 현존하지 않고 아들인 박진록씨가 목포에 거주하고 있음. |
마을명 |
옛날 시문을 즐기는 문자(文子)가 유람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아들은 안절부절하며 어쩔줄
몰라하던 중에 묘를 놓을 자리만큼이나 눈이 녹아 있어 그곳에 부친을 매장하였다. 묘는 명당자리였고 일인들도 탐냈던 곳으로 그 후
명당리(明當里)라고 했다.
|
32. 한발리 입향시조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장흥고씨 |
고상렬 |
1680년경 |
전남장흥 |
고금동 |
금봉산 |
입향유래 |
옛날에 제주도에서 고량부씨가 살았는데 그중 고씨들이 조각배를 타고 육지에 상륙 장흥에서 살던중 자손이
고상열이 그의 처와 두 아들을 데리고 입도하여 그들 가운데서 고상열과 한 아들은 가거도로 향하고 모자는 한발에 안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함. |
마을명 |
마을의 형상이 매화꽃 같이 생겨서 매화꽃은 한가할 때 핀다하여 한발리(閑發里)라 명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33. 용동리 입향시조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김해김씨 |
김윤모 |
1750년경 |
신안군하의면 |
김재영 |
김마동 |
입향유래 |
김해 김씨 김윤모가 신안군 하의면 상태에서 살다가 도초면 수다리에 안착하게 되었는데 그의 자손인
김건택이 용동리에 입향 터전을 닦아 최초의 입향자이다. |
마을명 |
뒷산 모양이 용 형상을 연상케하여 용동리라 불리우고
있음. |
34. 라포리 입향시조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해남윤씨 |
윤광천 |
1700년경 |
해남 |
윤동식 |
윤월천 |
입향유래 |
정확한 입향로는 알 수 없고 이 마을이 형성된 것은 약 300년 전으로 마을에 가장 고가인 윤동식씨
일자 일것이라는 구전이 있을 뿐이다. 해남윤씨 윤광천 5대조가 해남에서 이곳으로 입향한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
마을명 |
옛날, 배널리라 함은 아침해가 뜨면 무명베를 많이 널었다 하여 배널리라 하였는데 한자로 따서
라포(羅浦)라 하였다고 전함. |
35. 우이도리 입향시조
입향시조 |
성 씨 |
입 향 조 |
년 대 |
전 기주지 |
종 손 |
제 보 자 |
남평문씨 |
문일장 |
1725년경 |
해남화산봉저리 |
문채옥 |
문채옥 |
입향유래 |
우이도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은합도 유래가 있으나 ,방씨, 정씨, 윤씨 등의 순으로 입도하였다.
그러나 ,방, 정씨 등은 복철 또는 멸족하고 파평윤씨가 현재 잔재하고 있으며, 대초리 초대 입도자 윤씨가 진지로 설정하였다. 이조시대에는 진리로
천읍하였다. 몇몇 선생들이 쉬어가거나 잠시 정착한 것을 제외하면 450년전 경에 파평 윤씨가 처음으로 입도한 것으로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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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
우이도의 체도에는 1구, 2구가 있는데 섬 전체가 소의 귀를 닮았다 하여 우이도라고 전하는데 그 후
진리 마을이라고 칭하는 것이 조선시대 때 부터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