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차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
(2020.09.28/09:00) 본청 225호
▣ 안철수 당대표
오늘은 참담한 심정으로 제 소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제 저는 광주 말바우시장 국밥집을 찾았습니다.
지난 8월 말, 코로나19 환자가 다녀간 것이 알려지는 바람에 엄청난 고통을 겪은 곳입니다.
그런데도 사장님께서는 “나 때문에 시장 상인들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하다”라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내가 아닌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사장님 마음에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은 코로나19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생활의 불편과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이웃을 더 걱정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여당입니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세금을 내고, 법을 지키고, 위정자들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그들이 전지전능한 존재라서가 아닙니다.
우리 국민이 생존의 위기에 처했을 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머리 숙여 사죄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도리는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총살당하고 불태워지는 천인공노할 사건에 대처하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보면서, 그러한 국민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처하는 문재인 정부를 보면서, 어린 학생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던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던 전임 대통령과, 우리 국민이 총탄을 맞고 불태워지는 6시간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이 무엇이 다른지 국민들은 묻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사실관계를 보고받은 이후 대통령의 행보는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국민들께 여권의 호위무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라면 그럼 최순실은 어디 있냐고.
어떻게 문재인 대통령과 전임자를 비교할 수 있냐고,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은 클래스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국민을 대신해 대답하겠습니다.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전임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주도했던 사람으로서 저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께 그 질문을 하고 있는 당신들 모두가 바로 최순실’이라고 말입니다.
대통령을 대통령답지 못하게 만들고,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도록 만든, 통지문 한 장에 감읍하여 북한을 싸고도는 당신들 모두가 최순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국민 총살사건 과정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겠다’라는 대통령 선서 내용을 헌신짝처럼 저버렸습니다.
명백한 직무유기입니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 사람들은 입만 열면 촛불정신을 받들어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3년 반 동안, 전임 정권 사람들 콩밥 먹인 거 외에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이번 사건을 복기해보면, 대통령도, 대한민국 국가안보와 안전시스템도 모두 고장 나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드러났던 국가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모습이 이번에 그대로 재현됐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타고 있던 배의 CCTV는 고장 나 있었습니다.
이분이 언제, 어떻게 바다에 빠졌는지에 대한 기초 증거 자료부터 확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국은 슬리퍼가 남겨져 있고,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며 월북이라고 단정했습니다.
매일 같이 접경 수역을 오가는 배의 장비가 이 모양이었습니다.
고장 난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실종자 가족은 다급히 헬기 수색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해경 수색 헬기는 고장 나 뜰 수 없었습니다.
사고 초기에 실종자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수색이 시작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헬기만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군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우리 국민이 총살당하고 불태워질 때까지 무사 귀환을 위한 그 어떠한 요구나 최소한의 군사적 시위도 없었습니다.
그 어떤 변명도 용납될 수 없는, 고장 난 대한민국 군대의 모습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고장 난 곳은 바로 청와대입니다.
심야에 관계 장관회의를 열 정도로 다급한 상황인데도,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아침 8시 넘어서까지 미뤄졌습니다.
그리고 사실이 보고된 직후에 열린, 다른 행사도 아닌 장군 진급식 행사에서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왜 관계 장관 회의에 대통령은 없었습니까?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주무시고 계셨다면 왜 아무도 깨우지 않았습니까?
대통령 주위에는 국가비상사태 시에 대통령을 깨울 수 있는 참모가 단 한 명도 없습니까?
아니면 대통령께서 남북문제만큼은 상대를 자극할 어떠한 언행도 하지 말라고 사전에 지시했던 겁니까?
이것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합니다.
북한이 무슨 짓을 해도 눈감아주고 싶은 분에게 북의 이런 천인공노할 행동을 보고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는 법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대통령, 이런 청와대, 이런 군대를 두고 있는 우리 국민이 불쌍할 따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 엄중히 요구합니다.
이번 피살사건과 관련해, 사건의 전모를 철저하게 조사해 책임자와 관련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그것은 남북 모두에 해당합니다.
먼저, 정부가 뒤늦게 북한에 공동조사를 요청한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철이며 공동조사과정에서의 제대로 된 협조입니다.
북한에게 공동조사를 당당하게 요구하고 한 점 의혹 없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야 합니다.
북한이 협조하지 않으면 이번 사건을 UN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행동입니다.
대통령은 책임 있게 그리고 강력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사에 불과한 친서 한 장에 감읍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친서 한 장, 통지문 한 장으로 북한의 만행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다음으로, 초동대응을 잘못하고, 우리 국민이 살해되고 불태워질 때까지도 손 놓고 방관한, 군 당국을 비롯한 관계부처 모두를 철저히 조사해서 문책하기 바랍니다.
대통령에게 즉시 알리지 않도록 결정한 자들은 누구인지, 대통령에게 결단을 촉구해야 함에도 심기 보좌하느라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자들은 누구인지, 발본색원해서 응분의 책임을 지워야 합니다.
돌아가신 분의 영전에 그자들을 무릎 꿇려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 뼛속까지 깨닫게 해야 합니다.
또한, 망자를 모독하고 정신 나간 발언으로 국민적 분노를 부채질한 자들에 대한 응분의 조치도 요구합니다.
정신 나간 여권 떨거지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 운운한 망언을 한 정세현 민주평통 부의장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인사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북한 당국에게는 공동조사와 별개로 공식 사과를 요구해야 합니다.
조사결과 후 관련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북한은 전화 통지문 달랑 하나 남기고 책임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최고 존엄이 유감을 표시했는데도 반발하고 있는 남측이 괘씸하다며 ‘영해 침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적반하장식 발표를 했습니다.
그들의 죄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이 사건을 대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분노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확실히 보여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유가족과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합니다.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는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없이는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책무를 외면한 대통령이, 앞으로 수백만, 수천만 국민의 목숨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 모두가 불안해합니다.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앞으로 대통령으로서 그 직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의 목숨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대통령의 직무유기는 이번 한 번으로 족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한 헌법재판관의 의견을 인용하면서 오늘 제 발언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국가 위기의 순간에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국민에게 어둠이 걷힐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국가 위기가 발생하여 그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를 통제, 관리해야 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4월 16일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중략)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이런 평가를 받는 대통령은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가족과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국가원수 및 군통수권자로서 당당하고 강력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