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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2장 9~14절, 마태복음 25장 40절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서,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그것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그것을 잡아 끌어올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 그런 다음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가 손을 내미니, 다른 손과 같이 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표준새번역>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표준새번역>
개인적으로 '안치환'이라는 가수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노래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의 제목을 가진 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라는 곡입니다. 저는 제목 그대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 있어도 사람보다 아름답지는 않다! 그렇게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근래 사람들을 보면 자꾸만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옵니다. "과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어찌보면 세상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존재가 사람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제 자신에게로 향할수록 더욱 뚜렷해집니다. "과연 나는 꽃보다 아름다운가" 아무리 그렇다고 생각하려해도 안됩니다. 분명한건 제가 꽃보다 아름답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 역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저를 향해 뼈를 때리며 던지시는 질문에 흠짓 놀라는 본문이 펼쳐집니다. 잠시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밀밭에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에 대한 논쟁을 일단락하시고는 회당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하필 회당입니다. 굳이 안가셔도 될 것만 같고, 반대자들이 가득했던 그 장소로 들어가십니다. 솔직히 안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 기자가 "그런데 거기에" 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그 자리에 동행했었던 마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그래도 성경에 기술합니다. "회당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다니?" 사실 당시에 회당은 몸이 불편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바로 회당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다니 이상했을 것입니다. 갑자기 미스터트롯에 나왔던 영탁이 불렀던 노래가 떠오릅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마태는 그렇게 의아함의 질문을 남기고는 바로 알아채고는 그가 왜 거기 있었는지 이유도 곧바로 기술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고자 함입니다. 사실상 그 손 오그라든 사람을 예수님을 고발하는데 '미끼'로 사용한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놀랐습니다. 그 곳은 회당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과 용서와 인내의 하나님이심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믿는다고 모여있던 그 자들 중 단 한 사람도 그 몸이 불편했던 한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공동체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몸이 불편한 자를 이용하다니 실로 말도 나오지 않는 장면입니다. 마치 예전에 '할렐루야'라는 영화에서 가짜 목사였던 박중훈이 자신을 믿게 만들게 하기 위해서 친구들을 몸이 아픈 장애인처럼 꾸며서 낫게 해주자 성도들이 열광하던 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을 이용해서 사기를 쳤던 그 장면 말입니다. 사람들을 웃었겠지만 저는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질문이 더 가관입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 이 질문을 보고 타임머신을 타고 그 자리에 가서 그들에게 따지고 싶어졌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안식일에는 병을 고쳐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했습니까? 그리고 당신들이 언제 평소에는 병을 고쳐주려고 노력이나 한 사람들이라서 굳이 안식일을 들먹이는 겁니까? 너무하시네요!" 이미 전제를 세운후 답정너의 태도를 보이는 유대인들을 봅니다. 안식일에는 병을 고쳐서는 안된다고 이미 생각하고는 손오그라든 사람까지 이용하여 예수를 고발하고자 미끼를 던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은 하나의 예화를 들며 이 얼토당토않은 상황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짜 예수님의 큰 마음과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실족지 않게 하시려고 배려하시는 그 모습에서 사랑의 깊이를 새삼 다시 깨닫습니다. 회당,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소유했을법한 양 한마리의 이야기를 합니다. 식민지 시대에 그나마 재산이 있었던 사람들은 집집마다 한 마리 이상의 양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에게 한 마리 양이 전재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가정하시는 것입니다. 이건 대답할 가치도 없을 것 정도로 빠른 답이 나오는 질문입니다. 당연히 그 양의 주인은 구덩이에 뛰어들어 양을 구해냈을 것입니다. 안식일이든, 아니든 그것보다 양이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뼈를 때리는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이 질문을 들으니 성경의 다른 한 페이지가 떠오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돌로 치려다 예수님이 바닥에 쓰신 글씨를 보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던 유대인들의 모습과 표정과 생각이 동일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방금까지 고발하려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까지 사용한 자신들의 모습을 고발하기에 충분한 질문이었습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실로 사람은 양보다 귀합니다. 아니, 사실은 이런 비교자체가 옳지 않습니다. 사람과 양을 얼마나 더 귀한가의 문제로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시절에 살고 있던 삐뚤어진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2020년도 현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보다 양이 귀한 시대가 되어버리진 않았는지...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러니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 예수님은 바로 결론을 내리십니다. 미끼를 던진 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신 후, 그 미끼를 덥석 잡으셨습니다. 일부러 걸려 주셨습니다. 전 이 부분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감명 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손이 마른 사람은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연유로 회당에 오게 되었든지간에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두고 논쟁을 펼치는 것 자체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그런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다는 것을 직접 시연하면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손을 내밀어라". 이건 정말 뜻밖의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뜬금없이,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던 그였을지도 모르는데 대화를 요청하시며 관심을 보이십니다. 아무 관심도 없고, 존중도 받지 못하고 있는 그 사람을 예수님은 존중하시고, 예수님은 차별없이 대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을 걸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따뜻한 사랑과 관심에 그 사람은 손을 내밀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이 내미는 손을 보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손을 내미니, 다른 손과 같이 성하게 되었다." 마태는 담담하지만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김도현씨의 CCM이 떠올랐습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날 안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아멘. 이제 더 이상 손은 오그라들어 있지 않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 손이 오그라들었다가 성해진 사람의 음성이나 결과나, 행동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손이 성해진 것보다 더 중요한 사건을 이 일을 통해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포커스가 아픈 자가 낫는 것에 있지 않고, 회당에 가득찬 사람들을 향한 분명한 메세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포커스가 바로 이 질문입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나님이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한 사람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절실하게 전해졌을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너희가 기르던 양도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구하면서, 사람은 당연한 것 아니냐?" 모든 것을 다해서라도 그를 구원할 것이라는 아버지의 마음, 예수님의 뜻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든 그 사람도 사랑하시지만, 회당에서 질문을 던진 그 한 사람도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찾기를 호소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물질만능주의로 흘러가는 지금 우리도 잘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양보다 더 귀합니다. 사람이 돈보다 더 귀합니다. 사람이 모든 재산보다도 더 귀합니다. 사람이 가장 귀합니다. 왜냐하면 그 한 사람은 하나님의 VIP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VIP를 양과 비교하는 우를 범하겠습니까? 결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의 끝은 너무도 슬프게 마무리 됩니다. 그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더 악한 마음을 품게 되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모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입니다. 그렇게 집요하게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무리 중 누군가는 제자가 되고, 누군가는 원수가 되는 순간입니다. 손 오그라든 사람이 나아서 건강해진 현장에서 오히려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이젠 예수를 없애버리기로 결단하는 그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소름이 끼치면서도, 사실 동시에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혹시 나는 그런 모습이 없을까? 반성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사람보다 더 귀해져 있는 수많은 일들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대기업에서조차 외치는 그 말을 교회에서조차 외쳐야만 겨우 상기하는 단어가 된 것을 볼 때 무엇인가 잘못 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교회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야말로, 사람을 미끼나 도구로 보지 않고,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하나님 안에서 동등하고 평등한 형제자매로 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양을 보는 눈으로 사람을 볼 때가 많아지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정말 사람이 양보다 귀합니까? 혹시 사람을 내가 가진 물질에 비교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혹시 내가 가진 물건들 때문에 그 사람의 가치를 물건보다 아래에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리 고귀한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사람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VIP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한 사람이 하나님이 간절히 찾으시는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예전에 그 한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런 은혜를 입고, 존중을 받고, 대접받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앞에 있는 그도, 손 오그란 사람도, 그 어떤 사람이라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한 존재입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입니다.
혹시라도 오해하진 말아주십시요. 저는 인간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인권이라는 가치를 알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인간을 바라보실 때의 마음을 알려주신 예수님에 대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닮아갈 제자로서 우리도 동일해야 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바리새인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안식일이라는 개념을 지키기 위해 더 중요한 사람을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이 귀합니다. 하지만 사람보다 중요하진 않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나와 다른 사람처럼 '세상'이라는 단어로 구별하여 그 사람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일을 함께 지킬 수 있도록 그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동역자가 되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주일 예배가 아무리 귀해도, 그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더 귀합니다. 주일 예배라는 형식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주체인 사람이 보이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아무리 설교자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설교를 뒷받침해주는 방송팀 등 도우미들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일만큼은 직분으로 마치 계급이 나누어져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역할로 나누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차를 맡은 자로, 설거지를 맡은 자로, 청소를 맡은 자로, 설교를 맡은 자로, 찬양을 맡은 자로, 대표 기도를 맡은 자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서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는 예배가 되어야 사람이 얼마나 양보다 귀한 존재를 깨달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누구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는 안됩니다.받아야 한다면, 받을 거면 모두 함께 받아야 합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모든 영광은 동일하게 모든 사람들이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제게 하신 예수님의 질문을 되새겨봅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네, 주님. 사람이 더 귀합니다. 감히 사람을 양과 비교하지도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그대로 예수님이 한 사람을 대하셨던 그 모범처럼 저 역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을 오늘도 실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나누면서 짧은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아멘.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ucpVrNSz9ns(김도현, 온세상 날 버려도)
https://www.youtube.com/watch?v=kjRQZ-xwSUI(이스라엘 휴튼, you are not forgotten)
https://www.youtube.com/watch?v=ITLTZJYJTgA(안치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