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전에, 나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꽃을 키워본 적이 있다. 약 3년 동안 적당히 키운 것이 아니라,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 작은 꽃가게 규모를 이루었다.
멕시코 채송화, 공작초 등은 화분에 씨를 담아 직접 싹을 틔워 키웠고, 문익점이 심정으로 대전 큰누님한테 얻어온 목화씨를 심어서 싹을 보았다. 도라지와 동백은 고흥에서 실어왔고, 그 중에는 이름을 벌써 잊었지만 뚜껑이 달린 자루에 벌레가 들어가면 잡아먹는 식충초와 손이 닿으면 잎사귀를 오므리는 미모사 등도 있었으며, 한 달을 주기로 물을 줘야만 하는 요상한 선인장도 있었다.
상무지구 화훼단지의 자주 가는 몇 군데 꽃집에서는 1년이 지나자 단골예우를 하기 시작했고, 튜우립 등 알뿌리 몇 종은 인터넷으로 북유럽 어느 나라에 신청을 하기도 했으며, 외지에 출장을 가면 그 곳 화훼단지 방문을 잊지 않았다. 꽃집을 운영하는 전문가를 집에 초빙해서 병해충을 퇴치하는 문제와 꽃베고니아 잎 꺾꽂이 번식 방법에 대해서 조언을 듣기도 했다. 대형 비료는 9부대, 소형 부엽토 10여 봉 이상을 그간 소비하였으며,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철따라 분양을 하였지만 사시장철 우리 집 베란다에는 꽃이 피었다.
3년이 되자 꽃화분을 대하면 지금 이놈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동식물을 키운 사람이 그들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상징적인 표현을 나는 액면대로 믿는다. 화분 개수는 늘어만 가서, 한창 때에는 (확실히 셈하기 어려웠지만) 대략으로도 140여개가 넘어서 일부는 거실에 유치해야 했었다.
멕시코 채송화 싹틔우기는 정말 힘들다. 씨앗이 좁쌀보다 작은 크기인데 그 씨의 폭보다 2배 이상 흙이 덮이면 실패한다. 가는 물줄기가 나오는 물뿌리개를 사용해서 물을 주어도 씨앗이 한 쪽으로 몰려서 애를 먹는다. 싹이 트면 물을 준 후에는 매번 흙바닥에 찰싹 붙어버리는 가는 줄기를 이쑤시개를 이용해서 낱개별로 세워주어야만 하는데, 이것은 꽤나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다.
또한 화분에 모내기를 한 채송화는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는 성장을 멈춘다. 베란다에 걸린 알루미늄 시렁 위에 내놓았다가 소나기라도 올라치면 집에 전화를 해서 안으로 들여놓도록 조처해야 한다. 그리고 멕시코 채송화는 우리 토종하고는 달리 목대가 길어서 자력으로 바로 서지를 못하므로 성장에 맞춰서 받침대를 세우고 줄기를 묶어줘야 한다.
이 수고로움은 드디어 늦여름과 초가을에 꽃이 피면 보상을 받는다. 주위가 아직 여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침에 햇살은 베란다 시렁 위에만 비친다. 맥시코 채송화의 꽃 모양은 우리 토종과 비슷한데, 그 색깔이 대여섯 가지며, 꽃잎도 홑겹, 이중겹, 삼중겹으로 다양하다. 문제는 햇살을 역광으로 받아 투명해진 그 꽃들의 색상인데, 색깔별, 겹별로 달리보이기에 더욱 다양해진 이 꽃송이들이 바람에 한들거리기라도 하면 거의 환상적이며 몽환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 맛에 취해 그 동안의 수고로움을 잊고 다음 해에 다시 뿌리기 위해 씨를 받게 된다.
하지만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이 작업은 내가 보직을 맡고 바빠지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베란다의 한계>를 실감하기도 했다. 꽃을 키우는 데에는 몇 가지가 꼭 필요하다. 관심, 햇빛, 물, 비료, 환기 등인데 남향 베란다에는 여름 한철 해가 들지 않는다는 큰 단점이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포기해야 할 품종은 야생화류와 뜨거운 햇살이 꼭 필요한 도라지, 목화 등 밭작물이다.
지금은 여느 집 베란다처럼 20여개의 화분이 쓸쓸히 놓여 있을 뿐이다. 며칠 전에 前데이터를 담아놓았던 CD 속에서 이 꽃 사진들을 찾았다. 한창 때 정말 멋진 꽃이 핀 장면들을 일일이 담아놓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아래 그림은 그간 몇 차례 디카로 찍어둔 사진 중에서 기중 선명하게 나온 자료들이다. 작년과 최근에 찍어둔 몇 점도 일부 섞여있다.
베란다 밖은 어제 봄가뭄을 해갈하는 단비가 내린 후에 푸른빛이 더해간다. |
첫댓글 야 대단하다 언제 꽃가꾸기까지 하셨어요? 아파트가 아니라 정원이 있는 집 기분이 드네요.가족들이 꽃보며 참 행복 했을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