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아용부곡(阿容部曲) 지역으로 땅골 또는 당골, 당동(唐洞)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아곡(阿谷), 점촌(店村), 당동(唐洞) 일부가 병합되어 아곡리에 편입되었다. 통일신라 초기 당나라 사람들이 일시 거주했다고 전해오나 실제 마을이 형성되기는 고려 명종조(1170년 ∼1197년)에 풍산 유씨 등이 정착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그 후 전주 이씨, 경주 김씨 등 여러 성씨 들이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 이름이 당동(唐洞)된 유래가 전해오는데, 이 마을 개울 상류에는 새목이래와 북성이래(일명 두고개)와 장삼이등이 있는데 그 당시는 통칭 복성동이라 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새복이재와 복성이재에는 토성 터가 뚜렷하게 남아 있는데 엣날에는 점을 쳐 전쟁을 했다는데 이곳에서 점을 쳤다고하여 복성동이라했으며 그 후 당군(唐軍)이 신라군에 쫒i겨 간후 병령도 철수되고 마을도 없어졌는데 임진난때 황씨 한 분이 들어와 살다떠나고 그 후 유씨 한분이 피난처로 들어와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현재도 그 후손이 살고 있다. 장삼이 입구 말바우에는 대서로 복성동이라고 각자 되어 있다.) 또 삼국시대 나 당연합군이 백제를 멸하고 당군(唐軍)이 머무는 동안 마을 건너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았다 하여 '당골'이라 하다가 후에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당골]을 그대로 옮겨 당동(唐洞)이 되었다고 한다.마을앞에 있는 관람(關攬)이란 곳에는 병영(兵營)과 성(城)을 관장하는 관청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터에서는 지금도 옛 기와의 조각과 사금파리가 출토된다.
마을 북쪽으로 도자기를 굽던 점촌(店村)이 있었는데 동면 자래리 연실(蓮室)로 옮겨 갔다.
1. 지리적 위치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약 6.5km지점에 있다.
2. 리세(면적)
총면적은 161.5 ha로 아영면 면적의 4.5%를 점하며 전답비율은 전이 11.7ha로 농경지의 29.6%, 답은 27.7ha 농경지의 70,4 % 임야 113 ha 총면적의 69.9 %, 기타 9.8ha로 총면적의 6.1%이다.
가구는 24호로 아영면 전체의 2.4%이고 인구는 68명으로 남자 31명, 여자 37명이다.
3. 지형
서리봉에서 흘러내린 골짜기 물을 따라 형성된 마을로 마을주위를 감싼 원만한 산들이 둘러싸여 있고 마을은 깊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500m며 풍수적으로 와우형(臥牛形)이다.
4. 주요노선
88고속도로가 마을앞을 통과
5. 주요산업 및 토산물
미작이 주산업이고 최근에 이르러 고랭지 채소와 고추, 밤, 감도 약간 생산하고 있다.
6. 관광 문화 체육
지리산 휴게소 : 1984년 6월에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개통됨과 동시에 휴게소가 설치되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음.
7. 기타
마을입구에 수백년 묵은 정자나무(느티나무) 52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음. 마을회관 1개, 마을공동창고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