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유럽 각국의 와인 관리 당국은 신대륙 와인들이 사용해 오고 있는 오크칩 혹은 이와 유사한 기법의 사용을 승인했고 이는 향후 몇 년에 걸쳐 소비자들이 마시는 와인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에는 전통적인 유럽의 와인메이커들이나 소비자들은 사용해 오던 오크 배럴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오크를 사용하는데 대해 적극 반대해왔으나 놀랍게도 2005년말 이태리가 주도하여 유럽 연합의 규정을 변경하여 소위 "oak alternatives"라고 하는 오크통 대체 사용 방안를 승인하도록 했다.
이는 오크나무 조각들(영국에서는 오크 칩, 프랑스에서는 copeaux라고 부름) 그리고 오크통 판이라고 불리우는 오크 판재를 포함하며 발효 시작하는 시점에 와인 저장고에 투입이 되고 발효중인 와인에 둥둥 떠있는 형태로 사용되어진다.
오크칩의 경우에는 마치 커다란 티백과 같은 봉지에 싸여져서 사용되기도 한다.
오크가 와인에 미치는 영향
오크는 와인에 두가지 영향을 미친다, 아니 정확하게 두 가지 중요한 역활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중요한 역활은 와인을 안정시키고 질감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며 와인에 포함되어 있는 페놀릭(특히 타닌 성분)을 자극하여 입 안에서의 느낌을 부드럽게 해주는 역활이다.
또한 오크는 와인 맛의 복잡함을 만드는 과정에서 와인 그 자체 뿐 아니라 오크가 가지는 성분도 와인에 녹아들게 만드는데 어떤 경우에는 너무 오크 테이스트가 강하게 느껴질 정도로까지 만들어 준다. 이는 화이트 와인 뿐 만 아니라 레드 와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며 오크통에서 숙성된 와인들이 그렇지 않은 와인들보다 더 둥글고 풍성한 맛으로 만들어준다.
오크는 여러 나무들 중에서 가장 와인과 천연적으로 잘 어울리는 걸로 알려져 있고 특히 맛과 향이 잘 어우러지는 편이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와인을 만들고 보관하는데 오크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크통을 만들고 사용하고 유지하는 것은 돈이 많이 들고 공간도 차지하며 노동 집약적인 일이다.
새로운 오크통을 사용하게 되면 한 병당 몇 달러 정도 비용이 더 추가가 되며 거기에다 아주 신경써서 유지관리를 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오크통 내의 와인은 지속적으로 증발하는 양을 보충하기 위해 더 채워져야 하며 배럴에서 다른 배럴로 옮기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와인이 담겼던 오크통을 비운채로 방치하면 곰팡이와 박테리아로 못쓰게 되는 경우도 쉽게 생기는 일이다.
배럴보다 싼 비용
오크통을 대체하는 방법(실제는 오크의 대체가 아닌 오크통의 대체)의 도입과 관해 가장 놀라운 점은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이 오크통 사용에 너무 익숙해져서 새로운 대안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 대안은 분명히 오크통보다 훨씬 싸고 숙련된 와인메이커들은 어느정도 기간동안 오크와 와인의 접촉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이 새로운 대안이 훨씬 더 편한 접근방법이란 걸 알게 되었다.
가득찬 오크통들을 비우거나 옮겨 담는 것보다 와인 위에 떠 있는 오크 나무판을 건져내는 것이 훨씬 더 쉽고 빠르고 비용이 덜 드는 방법이다.
이제까지 오크칩들은 대부분의 싸구려 와인들에서만 사용되어져 왔고 상당수가 품질이 크게 떨어지는 편이었다.
내가 처음 오크칩을 사용한 와인을 알게 된 건 90년대 초반 싼 불가리아산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이었는데 이상하게 처음에는 생동감있는 과일로 가득찬 듯 하다가 이내 변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과일이 갑자기 거칠고 달콤한 오크의 특징에 덥혀 버리는 그런 식이었다.
어려웠던 시기를 보낸 90년대 초반 동유럽 국가들은 전통 방식보다는 싼 제조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관점에서 비슷한 와인들, 특히 오크 뉘앙스가 강한 와인들을 살펴보니 서유럽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싼 가격의 와인들이 그러했다.
유럽 내, 그 중에서도 유럽 연합 국가 내에서 오크칩의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어 왔었다. 제대로 된 전통적인 방법으로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고 와인을 만든다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금지령은 해제가 되었고 국제 와인 기구에서는 과학자들이 허용해주는 세부 조건들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내에서는 오크칩이나 오크 나무 판재의 사용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어 이르면 2006빈티지부터는 새로운 방법을 이용한 와인들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서로 다른 특성들
현재 토론되고 있는 내용은 정확하게 어떤 종류의 오크를 사용할 수 있고 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오크통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대안에도 품질이나 특성에 있어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다. 와인메이커들은 어느 지역의 나무를 쓸 것인가, 어느 정도 세기로 불에 거슬릴 것인가 등을 선택할 수 있고 심지어 2차 발효를 돕기 위한 락틱산이 첨가된 오크칩도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렇게 새로운 방법으로 만들어진 와인에 대해 레이블에 어떻게 표시할 것이냐라는 문제이다. 현재는 비유럽 국가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만든 와인에 대해 백레이블에 정확하게 표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벡레이블에 오크의 영향에 대한 얘기는 하면서 정작 오크칩을 사용했다라고 적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더 많은 과학자들이 이러한 비유럽 방식의 와인기법들을 연구한 결과 분명히 장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소수 의견이긴 하지만 새롭게 떠오르는 와인 제조 기술 중의 하나인 오크칩과 미세 산소 기법의 결합한 사용이 어쩌면 전통적인 오크통 숙성만큼이나 효과적인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하는 주장이다.
당분간 대다수의 와인메이커들은 공공연하게 나서서 오크칩 사용법을 찬성하고 실제 도입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물며 고급 와인 생산자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나는 향후 이 부분들도 많은 토론을 거쳐 공론화 되리라고 생각해 본다.
오크통 제조업체
이제까지 프랑스, 미국, 동유럽 권의 오크로 수작업을 통해 오크통을 생산하고 있는 지구상의 널리 알려진 오크통 제조업체들 또한 자신들만의 오크 칩 및 대안을 연구 개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다. 이는 분명히 이들 업체들이 오크칩과 오크 판재의 잠재적 상업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신호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진정으로 걱정되는 부분은 이러한 와인 제조기법의 글로벌화가 어쩜 만들어지는 와인들의 글로벌화, 다시 말해 비슷비슷한 와인들의 생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이다. 최소한 저렴한 가격대의 와인들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제까지 가장 싸고 기본적인 유럽의 테이블 와인과 캘리포니아, 호주 그리고 남아공의 저렴한 와인들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 비유럽 3개국의 와인들간의 차이점들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쩜 종국에는 포도가 어느 나라에서 재배되어졌건 간에 와인의 맛은 다 똑같아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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