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잡 설 편 : 雜 說 編
앞에서 여러 편을 진술했지만 충분하지 못한 고로, 다시 여러 가지를 모아 잡설 편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과 부족한 점들을 함께 모아 언급하면서 본문을 마치려고 한다.
대저 바둑에서는 변이 귀만 못하고, 귀는 어복(魚腹)만 못하다. 앞장에서도 말했듯이 “고수는 어복(魚腹)을, 하수는 변을, 중수는 귀를 차지한다.” 때문에 다시 표명하는데, 대저 세의 강약은 결국 승패와 연결되어 있기에 깊이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막는 것(約)이 눌러 막는 것(搽)보다 경하고, 눌러 막는 것이 눌러버리는 것(辟)보다 경하다.
날(捺)은 상대의 바둑이 횡행하려고 할 때 눌러 막는 것을 말한다. 약은 그저 막을 뿐이다. 때문에 날은 세고 약은 경하다.
자관(自關)에서 돌진하여 나오는 것을 높은 곳에서 눌러 내려오기에 그 힘이 크므로 배는 날(捺보, 눌러 막는 것)보다 세다고 한다. 세 문자의 뜻은 비록 같지만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다.
끼우는 것(夾)에도 허와 실이 있다. 거짓으로 끼우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어서이고, 실제로 끼우는 것은 본의를 떠나지 않은 것이다. 타에도 실지와 거짓이 있다. 타는 끊는다는 뜻이고 정위(情僞)는 허와 실을 말한다.
바둑에는 거짓으로 때리는 것(虛打)과 실지로 때리는 것이 있는데, 예를 들면, 상대의 돌이 한쪽 끝이 연결되어 있을 때, 그 왼쪽 끝에 나의 돌이 있으면 그 때는 오른쪽 끝을 실지로 때리고, 만일 왼쪽 끝에 나의 공착(빈자리)이 있을 때는 먼저 오른쪽 끝에서 냉하(冷下)하여 두는데 이것을 허타(虛打)라고 한다. ‘삼생세(三生勢)’의 평 42의 허타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젖힘(綽)을 만나면 바로 막는다. 하지만 바로 막지 않을 때도 더러 있다. 조임을 당했을 때 대개는 잇는다. 하지만 더러는 잇지 않을 때도 있다. 대안(大眼)은 소안(小眼)을 이긴다.
한 칸 뜀(關)이 마주 섰으면 먼저 들여다보라.
유중보(劉仲甫)는 말하기를 “피차간에 관이 서로 마주 섰으면 먼저 들여다보아야 하고, 들여다보면 힘이 펼쳐져 뒤에는 살아남게 된다.”고 했다. 앞길에 막힌 것이 있으면 축으로 몰지 말라. 유중보는 이렇게 말했다. “무릇 축으로 몰고 가려면, 먼저 앞길에 적의 돌이 가로막는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행계획을 확인하기 전에는 움직이는 것이 불가하다.
계획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움직이면 기밀을 누설하게 된다.
<역경>은 이르기를 “기밀이 누설되면 해(害)가 따른다.” 고 했다. 귀의 곡사(曲四)는 끝내 죽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반은 바둑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32개의 이름 중의 하나인 ‘유반’을 말한다.
각반곡사는 네 점이 귀에 곡반(曲瀊)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비록 패(劫로) 인하여 살 수 있지만 나중에 패감을 없앤 후 잡으러 갈 수가 있기에 죽는다. (오늘날의 귀곡사의 해석과 별 차이가 없다) 곧은 사궁(四宮), 넓은 육궁(六宮)은 모두 사는 바둑이다. 꽃처럼 모인 곳에 점을 찍으면 사는 길이 없다. (화육, 즉 매화육궁에 치중 한 것을 말함) 직공사로 혹은 곹 바로 넉 점을 에워싸는 것을 직사(直四)라고 한다.
네모 칸 사이 흑백양첨(黑白兩尖)이 서로 교차된 것을 축(紐, 연결하다)이라고 한다. 십자가 서로 연결되면 반드시 상대에게 제지를 받게 됨으로 먼저 연결해서는 안 된다. 만일 자기 돌끼리 서로 가까이 있고 또한 상대방의 세력을 파하려고 할 때에는 비록 짧은 연결이지만 해도 된다. 세자가 중심에 있으면 귀로 달려가 싸우지 말라.
심(心은) 어복(魚腹)중의 일로를 말한다. 세(勢)자가 중심에 있으면 대저 요기(饒棋)이다.
각도는 대각도, 소각도, 평각 등과 같은 세이다. 세자가 중심(어복중)에 있을 때 귀를 두면 상대방의 세력이 강해진다.
바둑은 너무 자주 두지 말아야 한다. 자주 두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정밀하지 못하다. 바둑은 드물게 두지 말아야 한다.
드물게 두면 잊어버리게 되고 잊어버리면 잃는 것이 많다. 이 말의 뜻은 바둑은 종일토록 두어도 안되고, 오랫동안 두지 않아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겨도 자랑하지 않고 패하여도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군자의 도이다. 청렴하고 겸양한 풍도(風度)를 보이는 자는 군자요 분해하고 거친 안색을 나타내는 자는 소인이다. 군자는 수치를 알기에 겸양의 풍도가 있고 소인은 교만하고 탐욕스럽기에 분하여 노한 안색을 나타낸다. 고수는 교만함이 없고 하수는 겁이 없다.
고수가 거만하면 곧 교만하게 되고, 교만하면 반드시 망한다. 하수는 겁이 많은데, 겁이 많으면 나약하고, 나약하면 반드시 곤궁에 빠지게 된다. 기분이 화평하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앞으로 승리할 것을 기뻐함이요, 마음이 동요하고 안색이 변하는 것은 앞으로 패할 것을 미리 근심함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심중의 생각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는 말이다. 얼굴 뜨거운 것은 무르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고, 부끄러운 것은 알을 훔치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다. 기묘하고 기묘한 것은 늦춰 공격하는 수(鬚)를 쓰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고, 어리석은 것은 패를 반복해서 때리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다. 송은 널찍이 두어 바짝 접근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복겁(復劫)은 반복하여 패를 때리는 것을 말한다. 송(鬚)은 비록 널찍하게 두지만 그 뜻이 심오하기에 기묘하다고 하고, 패가 많이 반복되는 것은 의미가 적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가리켜 어리석다 한다.
무릇 세 번을 기어 나왔으면 다르게 두어야 한다. 유중보는 이렇게 말했다. “자고로 국수는 세 번 기어 나왔으면 날 일자나 한 칸으로 두지 네 번 기는 일은 아주 드물다.” 만일 상대편의 돌을 누르기 위하여 변을 따라 나아가는 것은 비록 많더라도 허락할 수 있다.
네모로 넉 점이 모이면 굴복하게 된다. 네모로 넉 점이 모이면 안 된다. 유중보는 말하기를 “자고로 국수는 네모로 넉 점을 두는 것이 아주 드물었다.” 넉 점으로 네모칸을 둘러싸는 것은 ‘방취사(方聚四)’ 라고 한다. 이기고 집이 많으면 영국(嬴局) 이라 하고, 져서 집이 모자라면 ‘수주(輸薵)’ 라고 한다. 주(薵)는 <한서>에서 “신이 주청하오니, 앞에 있는 젓가락을 들고 왕을 위해 계략을 세우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는 주(薵)와 같다.
옛사람들은 바둑을 둘 때, 이기든지 지든지 반드시 대국을 기록하여 등급을 나누었다.
한 번씩 이긴 것을 무승부(溢)라고 한다. 즉 양쪽에서 각기 한 번씩 이기게 된 것은 그 기량이 같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일(溢)’ 이라 한다. 일(溢)은 충만하여 넘쳐흐른다는 뜻이다. 옛날 주석에는 일을 ‘꽉 찼으면서도 넘쳐나지 않는 것’ 이라고 했으며 또한 “흑백양기(黑白兩棋)가 바둑판에 꽉 차지 않고 로(路;집)가 많은 사람이 이긴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틀린 것이다. 집이 같은 것을 빅이라고 한다. <설문>에는 “같은 것을 말한다.” 고 했다.
양쪽의 로수(路數 ; 집수)가 같은 것을 면이라 하며 속어로는 ‘정국(停局)’ 이라고 한다. 승부의 셈은 세 번을 지날 수 없다. 옛사람들은 3을 예(禮의) 숫자로 정하여 절을 할 때 반드시 세 번하고, 양보할 때에도 세 번을 했다. 또한 바둑을 둘 때도 3국(局을) 두는 것을 예로 삼았다. 잡은 알은 그 수효의 제한이 없다. 도(淘)는 추려내는 것을 말한다.
종국에는 돌의 숫자를 세어 그 많고 적음을 가려낸다. 또한 승부를 가려내는 것도 도자(淘子)라고 한다. 한 집을 진 것이나 350집을 진 것이나 통틀어 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수효의 제한이 없다,” 고 말한다.
패에는 금정(金井)과 녹노(轆轤)가 있다. 삼패를 금정이라 하고, 양패를 녹노라고 한다. 삼패는 우물의 형태와 같고, 양겁(兩劫)의 일기일복은 우물의 두레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과 같다하여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또한 쉬지 않는 형세가 있고, 교체(交遞)하는 의미가 있으니 바둑 두는 자로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쉬지 않는 형세란 금정겁(金井劫)을 가리키고, 교체(交遞)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녹노(轆轤 패를 가리킨다, 대저 바둑은 적수가 있으며 반선이 있고 양선이 있으며, 또 도화 모양으로 놓은 것, 북두칠성 모양으로 일곱 점 놓는 경우도 있다. 적수(敵手)란 쌍방의 강약이 서로 엇비슷한 것을 말한다.
반선(半先)이란 강자가 약자에게 삼국(三局) 중에서 두 국을 선하게 하는 것이다. 선양은 양국 중에서 석 점을 봐주는 것이다. 도화오(桃花五)는 양국 중에서 다섯 점을 봐주는 것이다. 북두칠은 양국 중에서 일곱 점을 봐주는 것을 말한다. 도화오(桃花五)는 꽃모양의 다섯 점을 취한다는 뜻이고 북두칠(北斗七)이란 북두칠성의 첫 번째에서 네 번째 별과 자루 부분에 해당되는 세 별을 취해낸다는 뜻이다.
대저 바둑이란 유무의 상생이 있다. 이(利)는 유가 무를 낳고, 무에서 유를 낳으며 신통력이 있어 묘의 지경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이런 극치에 도달한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원근의 상성이 있다. 만일 먼 곳을 도모하면서 먼저 가까운 데서부터 착수하여 이루어내고, 만약 가까운 곳을 도모하려면 먼저 먼 곳부터 착수하여 이루어 낸다.
강약이 엇갈리어 나타나고 이(利)와 해(害)가 엇갈리어 기울어지기에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강해지면 상대편이 약해지고, 상대편에서 이익이 되는 것은 나에게 해가 되는데, 이것은 세의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하므로 편안하여도 태평하지 않으며 안전하여도 교만하지 않을 것이니, 편안하다고 하여 태평하면 위태로워지고 안전하다고 하여 교만하면 망한다.
<역경 ;易經>에 이르기를 “군자는 편안할 때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으며, 안전할 때도 망함을 잊지 않는다.” 고 하였다. 안(安)은 위(危)의 반대이고, 존(存)은 망(亡)의 반대이다. 위태로움은 위태로운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늘 안전하다고 여기는데서 발생하고, 망하는 것은 멸망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늘 편안하다고 여기는데서 발생한다. 태(泰)는 제멋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교(驕)는 우쭐대고 자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군자는 제멋대로 구는 것과 우쭐대고 자랑하는 마음을 품는 것을 경계하고 조심하기에 늘 안전하고 편안하지만 소인은 그렇지 못하다.
<송문감 ; 宋文鑒>에서 이르기를 “품성은 고상하더라도 의지가 나태하면 안 된다. 나태하면 곧 비천해진다. 세력이 강하다하여 마음이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교만해지면 곧 지나치게 된다. 행마가 여유 있다 해도 기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기밀이 누설되면 곧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국세(局勢)가 성할 때, 패북(敗北)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패배를 잊는 순간 곧 위태로워진다. 때문에 방책은 미연에 세우고, 사건에 임하기 전에 그 형세를 파악해야 하며 죽음에 직면하기 전에 화를 돌이켜야 한다. 이 이치를 깨달은 자야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바둑을 잘 두어 천하에 이름을 떨친 사람은 옛날의 대조(待詔 ;명, 청시대의 관리 명으로 한림원에 속하여 문서를 관장하였음) 유종(劉宗)어르신과 오늘날의 유중보, 양중은 및 왕완, 손신, 곽범, 이백상 등으로, 이들은 저마다 본 13편을 암송할 수 있었으며, 그 뜻을 깊이 체득하고 변화 수까지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바둑은 마치 쟁반 속에서 구르는 환(丸 ; 작고, 둥근 알)과 같이 그 횡사곡직(橫斜曲直)이 그때그때에 따라 다르기에 다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환(丸)이 반(盤)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고 했다. 기경(棋經)에서는 반(盤)이라 했고 바둑 두는 사람들은 구슬(丸)이라고 한다.
무슨 일에나 전혀 머리를 쓰지 않고 사군자(옛날 상류사회 사람. 현재는 주로 비꼬는 의미로 쓰임)는 본서를 한번 읽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