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해 선생님,
보내주신 "정미소 카페"를 세세히
잘 읽었습니다.
우송 돼 오는 책들을 거의 다 읽지 못합니다만, 선생님의 이번
책은 뚜껑을 열자마자 후끈
뜨거워지며 끌린 눈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다정다감, 세심하고 여리다가는
웅혼한 기백의 용장이 창을 휘두르며 말 박차를 가하는 필치에
아하, 걸작, 그야말로 걸작의 연속이었습니다.
연세 연만하심에서 비롯되는 필력이려니, 시조는 이래야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과연, 공영해 선생님은 우리 시조단의 맨 앞장이시다고 딱 규정하게 되었습니다.
편편이 다 절창이라 이번 시조집은 "공영해 표"시조집으로 인구에
널리 회자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몇편을 골라
그 의미와 감동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어제 내린 봄비에
화본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봄꽃 몇을 불러와서
봄의 흥건한 정취를 풀어놓으시니, 아, 봄은 진정 숨탄것들의
어쩌지 못하는 춘정, 짝짓기에
들겠으니, 들어도 대놓고 들겠으니, 그저그냥 발가벗고 싶어집니다.
#오늘은 해당화 꽃밭
꽃입술에 머리 박고
코를 골며 자고 싶다.
이런 절창이라니, 이 문장이야 말로 광화문 교보문고 벽면의 대자보로 내걸려야할 명문입니다.
#빈 집
양지댁 살다 떠난 시골의 빈 집들이 자꾸만 늘어나겠거니, 아침마다 부엌문을 여는 꿩소리는 한층
더 바빠지겠습니다. 공허를 잡초들이 채워내는 아픈 현실을 꽃다이 그려내시는 마법의 필치!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아직 봄이 아니다.
광대나물로 대치된 서러운 처지의 사람들, 봄은 봄이라도 봄 같지 않은 서러운 삶의 사람들,
마을에서 쫓겨나 광대가 된 사람들.
쥐불놀이의 주인공이 되어 대보름
달빛 아래 흥에 겨운 삶이 되기를,
위정자여! 아는가? 봄이 와도 아직 봄이 아닌 사람들이 무수인데,
뿔나팔을 불어대며 제 덕이나
칭송하다니, 아아.
#덕구
애기똥풀이라, 애기 울음들이
자꾸 사라져가는 때에 덕구인들
오죽하면 애기똥풀을 찾아
킁킁댈까. 삼포세대 오포세대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연애마저
안 할 수야.
#파문
안경 쓴 왕잠자리!
이 기막힌 묘사력에 파문도
잠잠해질 수밖에.
파문이 혼란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일어나야할 파문을 나몰라라
외면하여 악의 독버섯을 키워내기도 하는 참 얄궂은 사람살이.
그것은 그것뿐인.
#굽다리 제기
가야의 토기였습니까.
불꽃투문 굽다리 제기.
그 불꽃 부장 천 년 맥이 뛰는 숙면의 끝
저무는 산 울음까지 기억하며 깨어나서
기도로 지켜 온 제국 아침 해를 피우느니
아, 숨이 턱 막히는 이 절창,
창은 창이로되 연기 없이 타오르는 향 머금은 불꽃같은!
#정미소 카페
휘발성 구름 도넛 퐁퐁퐁 쏴 올리는
새롭게 리모델링한 동구 밖 정미소 카페
실제로 보는 듯 그려지는 정미소의 풍경 서사에, 아, 등굽은 아버지는 오늘도 커피잔을 들고 서 계시는 군요, 정미한 빛나는 입쌀 축복처럼 내리시며.
아아 고향이여, 유년이여, 그리고
하늘 가신 아버지여!
#호박전 한 판에
주남저수지를 복판에 두고 그 둘레 가을 풍경이 소뎅이 위 한판
호박전으로 익었는데, 아뿔싸,
트랙터란 놈이 다 베먹어.
그러니 옹위한 주변 산이 붉으락
푸르락 제 옷이나 황칠할 밖에.
가을 걷이 들판을 이토록 크고 넓고 깊은 해학적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음의 글이 달리 또 있겠으랴.
#꽃 한때
밭 만 평 때 아닌 사정 피가 듣는 꽃 한때,
적화는 꼭 해야하지만 사정이란 명분을 내세워, 미운 상대를 잡아 채는 정치모리배들, 꽃 한때에 피가 듣는 일은 과연 영원 존속일 뿐일까.
#형슈님던
이 작품이야 말로 정겨운 갱상도 사투리글로서는 으뜸일 터.
형수가 데름의 엄마격으로
크던 집들이 더러 있었던 옛 시골인데, 열시남매 형제 중 시째딸인
형수가 시집와서 가세를 일으켰으니, 그 숱한 질곡의 생애는 소설을
쓴다면 서른 권을 넘겠다. 얼마나 위대한 삶이던가.
늙어서야 바로소 그 모두가 복이겠거니, 사투리로 빚어내는
데름의 헌사가 참으로 찰지게
가슴을 칩니다.
#괴정리 띠기 생각
어머니는 바느질에 능하시고
그에 복주머니를 지으셔서
축하 선물로 동네에 돌리셨으니,
그 아들 심부름도 어깨 으쓱하였으리.
그래서 그 복 받은 아들은 오늘날
이리 글 잘쓰는 시인으로서 괴정리띠기를 영생토록 하거니.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여!
#석남사
고로쇠나무가 주는 고로쇠물,
아, 우리 엄마들이 젖으로
뽑아낸 그 열두 말 피라 하시네.
상처도 영광의 상처로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희생들은
동식물이 다를까보냐.
그래서 글 제목도
석남사여라.
#알아서 해라
알아서 해라는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도 있지만, 방기하는 의미도 있다.
구해주고 이끌어주어야 하지만
너가 너무 미우니, 죽거나 말거나
나는 상관 않는다는 '아따라 꼬시다'의 경우 세상은 다툼을 넘어
전쟁도 일어난다.
싸움을 붙여놓고 오징어 땅콩에
커피를 마시며 시시덕대는 본능적 잔인성이 스포츠에서 드러나니,
잉어와 쇠물닭이 싸우거나 말거나
튀밥이 또 뿌려진다.
#투계
이 작품 또한 알아서 해라의 연장선이다.
싸워야 사는 숙명에 서광이
비춰지길.
#점층법
이명일까.아마도.
오냐오냐하면 손자가 할배
수염 뽑는다지 않는가.
주제 넘게 까불며 안하무인
거만 오만떠는 군상들도
함부로 그래 그래 할 일이
아닌 것. 좋은 일의 점층법들이
왜 드물게만 일어나는지, 참
공영해 선생님,
이번 시조집은 편편 감탄을
자아내는 그야말로 절창집입니다.
하도 감동하여 느낀 바를 그냥
묻어둘 수 없어 이리 글로 써 봅니다.
아마도 이번 시조집으로 하여
무슨 큰 희소식이 일어날 것임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좋은 책 발간을 축하드리며 책 읽게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신 가운데 만사여의
하시길 빕니다.
ㅡ26. 5. 7.
서석조 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