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의 초절기교 에튀드(Transcendental Études)에 붙인 우리 현정님의 시는 읽고 또 읽어도 생동감과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마도 시 전체에 펼쳐진 절묘한 모순형용(矛盾形容)과 함께 시어의 의미와 시구의 대비를 좀처럼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를테면 "확신에 흔들흔들", "설렘이 우리를 단단히 잡아주니", "희망이 기웃거린다", "시간의 모서리에 그를 묶었지만", "선택은 단 하나뿐/절대적임", "바람이 없는 온전함에/바램을 불어넣고", "충만으로 가득 찬 만족감을/아픔으로 적신다", "꽉 막혀 나오지 않는 괴명을/바람으로 날려버리고", "갈망에 파괴를 더한다", "내 코끝에 향기로만 남았지만/그 맛에 취해 희열의 라장조로/다시 거듭난다", "수줍음으로 빨개져 버린 꽃송이들/무엇이 그리 쑥스러운지/무엇이 그리 망설이는지/안절부절 안절부절/그 현란함의 손을 잡고/번뜩 사라진다", "안갯속에 뚜렷이 나타나는/예감의 회상", "한 점 안에서 기웃기웃", "예감은 회상이고/배움은 기억일까", "물방울 안에 바다가 들어있듯/모든 것은 '.' 하나에 들어있음을", "숨을 망각한 채 돌진하는 그대여", "잊고 있던 숨결이 숨죽여 숨 쉬니", "파르르 떨리는 심장이 속삭인다", "초인은 연약함에서 비롯되었음을", "너와 함께 하기 위해/놓아준다"와 같은 부분입니다.
가령 "확신"이라는 말에는 "흔들흔들"이 어울리지 않고, "설렘"은 마음이 들떠서 두근거리는 것이니 역시 "단단히 잡아"준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으며, "희망"은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기에 "기웃거린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인데 그것에 "묶었다"고 표현하는 것이나, "선택"을 이야기하며 "절대적임"을 선언하고, 이미 "온전"한 것인데 "바램"을 불어넣으며, "만족"으로 가득한데 "아픔"으로 적신다고 하는, 이러한 어울리지 않는 모순형용 내지는, 어쩌면 불협화음과 같은 표현이 가득하여 이것이 시를 읽을 때마다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생동감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저는 문득 현정님과 함께 100일 동안 카카오프로젝트를 할 때 올렸던, 장욱진 화백의 <강가의 아틀리에에서> 서문에 대한 감상(이 글은 언제 따로 공유하겠습니다)이 떠올랐고, 그때 저는 "우리 임현정 피아니스트님은 무엇을 하시더라도 음악을 하고 계신 것 같다"고 적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정말 그때 적었던 그 생각처럼, 현정님의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 피아니스트님은 시로도 음악을 연주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문장으로도 그림을 그리셨던 장욱진 화백께서 자신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것은 단지 "자신의 그림과 대화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 현정님은 시를 통해 자신의 음악과 대화하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접하는 우리 현정님의 리스트 초절기교 에튀드는 연주 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졌습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면서 깊게 울려 퍼지는 선율은 제게 항상 '현실(인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인간의 음악이니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현실과 인생이 담겨 있지 않을 리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음악이 극과 극으로 교차할수록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우주로 향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인지 희열인지, 혹은 둘 다인지 알기 어려운 혼돈 속에서 끊임없이 상처를 입고 몸부림치다가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고 치유하고 재생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움트는 것도 느낍니다. 그러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듯한 찬란한 빛에 환희가 밀려오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너무도 낯설고 두려워 쉬이 다가서지 못하고 주저하며 여전히 어둠 속에 몸을 숨기려는 감정도 느낍니다.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어떤 기억만이라도 간직한다면, 자신은 그대로 영원히 어둠 속에 머물러도 괜찮다 여기면서 말입니다. 인간의 감정이나 의지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서 '나'와 마주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나조차도 모를 그런 나 자신을 말입니다.
그러나 음악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려는 듯합니다. 처음부터 다른 것도 아니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빛과 어둠을 분별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렇게 음악에 마음을 맡긴 채 얽매인 모든 것에 대해 거룩한 이별을 고하며, 대자유의 경계를 향해 성큼 큰 걸음을 내딛는 상상을 해보지만, 깨달음의 순간ㅡ대자유의 경지에서도 어쩐지 순수한 고독만은 남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끝내 열반에 들지 못하도록 보살의 발걸음을 붙잡는, 시리도록 숭고한 어떤 연민 같은 것이 말입니다.
너무도 주관적인 감상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리스트의 초절기교 에튀드만으로 무한한 감정과 상상 속에 몸을 던져 시공간을 초월하여 유영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특별히 이번 연주회에서는 보통 피아니스트의 타건을 보려는 사람들이 몹시 탐내는 영역의 자리에 앉게 되어 현정님께서 타건하시는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었는데, 현정님께서 타건하시는 모습이야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저는 특별히 현정님의 손가락이 처음 건반에 이르기 직전과 마지막으로 건반을 떠난 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숨이 멎었다가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또 한 번 홀딱 반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현정님께 반하고 또 반하고, 다시 반하는 일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여기면서도, 저도 모르게 엄홀히 불쑥 반하니 현정님께 평생 반하는 불치병이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원치 않는 크고 작은 병을 갖게 되는데, 그렇다면 저는 '기꺼이 원하는 병' 하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조심스러운 가운데 현정님께서 잠시 로비로 나와주셨고, 기다리던 팬 여러분과 함께 간단히 사진 촬영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행복하였습니다. 다만 팬데믹이 있기 전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현정님께서 수많은 팬 여러분과 함께 즐겁게 어울리시던 모습이 떠올라 간소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팬 여러분과 사진을 다 찍으신 후에 저는 현정님께 떼쓰듯 새로운 음반을 내주시라고 졸랐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고, 원한다고 마음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닌 줄도 알지만 새 음반을 열망하는 팬 여러분이 매우 많다는 확고한 믿음과 그 사실을 전해드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절대 저 한 사람의 욕심만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느닷없는 청에 현정님께서 당황하신 듯 보여 죄송했지만, 속칭 '아몰랑~'의 심정으로 일단 전해드렸으니 이제 조용히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물론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습니다.)
짧은 만남 끝에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를 하였는데, 대기실로 돌아가시면서도 몇 번이고 뒤돌아보시면서 인사해주시는 현정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계속 뒤돌아보시다가 마지막 모퉁이에서도 한 번 더 뒤돌아보시며 인사해주실 때 심쿵하며 또 반하였습니다. 그토록 가슴 울리는 음악을 선사해주시고 이처럼 다정함을 전해주시는 피아니스트님의 팬이어서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합니다. 순회 연주회와 더불어 오케스트라 창단 및 지휘 데뷔까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너무나 많은 선물을 해주신 현정님께 정말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바쁘게 지내셨던 만큼 편안하고 즐거운 휴식도 하시기를 바라고, 금방 또 뵙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날 제가 인천에서 다른 일정이 있어 주호님, 윤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마음에 걸립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가 꼭 맛있는 것을 사드리겠습니다~!!!
#피아니스트임현정 #임현정피아니스트 #HJ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