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고개 - 시루봉 - 천자봉
장복산(593), 덕주봉(604), 안민고개, 웅산(610), 시루봉(666), 바람재(정자쉼터), 천자봉(506), 대발령(150)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진해 중심지를 애워싸고 있는 산맥이다.
내가 마산에서 창원으로 이사 왔을 때(1989년) 창원 양곡동(장복산에서 창원 쪽의 골짜기)에 터를 잡고 살았기에 장복산으로는 안민고개로는 기억도 못하지만 십 여회 이상을 산행한 곳이다.
장복산[長福山]은 높이 582m로, 이 산 이름은 삼한시대에 장복(長福)이라는 장군이 말타기와 무예를 익힌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진해와 창원의 경계이며, 진해의 상징이기도 한 산이다.
장복산에는 벚꽃이 유명하다. 신작로 위쪽에 위치한 구불구불한 구 도로를 따라 서 있는 가로수에 심겨진 벚꽃은 이제 노송이 되어 양쪽에서 도로를 덮는다. 벚꽃이 만개한 후, 4월 중순쯤, 꽃잎이 떨어질 즘에, 달리는 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잔잔한 벚꽃 잎이 이리저리 날리는 모습은 가슴 아픈 추억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차마 발걸음을 옮길 수 없게 하는 광경이다. 내 어머님이 떠나신 날(음력 3월 4일)도 그랬다. 장사를 치루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지면 흐트러질 것 만치 야들야들한 연분홍 빛 벚꽃이 그렇게 끊임없이 차창 밖으로 휘날렸었다. 오래도록...
오늘 산생 출발은 안민고개다. 출발시각 14시30분, 안민고개에서는 웅산으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트래킹코스다. 우측으로 진해만을 굽어보고, 좌측으로는 창원의 공장지대와 멀리로 아파트 지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안민고개에서 웅산 삼거리까지 4Km거리인데 이 길은 빨리 걸으면 1시간에 주파가 가능하다. 하지만 산행이란 것이 시간을 재는 마라톤은 아니지 않는가! 가다가 김해 봉황초 강선생님이 가지고 오신 쑥떡과 창원대산고 이선생님이 가지고 오신 오렌지를 먹으며 쉬엄쉬엄 이동을 한다. 아직도 산정에는 벚꽃이 지지 않은 나무들이 제법있다. 늦둥이가 그렇게 귀여운 것처럼, 다른 나무는 꽃잎을 다 떨군 5월초에 만나는 벚꽃이 내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산등성이를 걸으며 진해만을 굽어보는 풍경은 과히 일품이다.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탁 트인 광경을 볼 수 있는 곳도 그리 많지 않다. 조그만 섬들. 저 멀리 대통령별장이 있었다는 저도[豬島]가 보인다. 그 섬과 가덕도(加德島)를 가로질러 엄청난 구조물이 들어서 있다.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이다. 거의 완성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진해만 쪽으로 누에처럼 생겼다는 잠도[蠶島], 진해해군기지 가까이에 있는 부도[釜島]와 화도[花島], 합포만 쪽으로 실리섬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천자봉까지 가면 STX조선 뒤로 가까이로는 천자봉에 가려 있는 음지도[陰地島], 음지도에 벗하여 있다는 우도[友島], 우도 뒤로 있는 소쿠리섬과 웅도[熊島], 발 갈퀴모양으로 생겼다는 초리도[草理島]가 눈에 들어 올 것이다. 참으로 진해만과, 합포만에 섬이 많다. 바다에 소똥같이 얹혀있는 섬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물은 사람에게 아늑함을 준다. 물을 응시하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물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 진해만도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쉬엄 쉬엄 가는 길이 어느듯 웅산 삼거리이다. 웅산삼거리 도착 16시, 삼거리 아래에는 막걸리도 팔고, 커피도 팔고 하는 노점이 있었는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주인양반이 전을 펼치지 않은 모양이다. 삼거리에서 북쪽으는로 불모산이고, 남쪽으로는 시루봉이다. 이 삼거리를 중심으로 북서쪽 창원 성산을 거쳐 합포만으로 흘러드는 남천이 생겨나고, 동남쪽으로는 웅동쪽 진해만으로 흘러드는 구천의 발원지이다. 부산을 바라보는 동남쪽으로는 구천동계곡과 그 아래에는 여러해 전 사월초파일 때 내가 밥을 얻어먹었던 성흥사(聖興寺)가 있다.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일행과 함께 시루봉을 향한다. 시루란 떡을 찔 때나 콩나물을 기를 때 사용하는 질그릇을 말하는데, 그 봉우리 모양이 떡을 찌는 시루와 닮았거나, 시루떡 같은 모양으로 층층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를 시루봉이라 한단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시루봉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많이 있다. 충북 괴산에 백두대간 희양산과 이만봉 사이에 시루봉(914.5m)이 있고, 경북상주와 문경사이 청화산 옆에 시루봉(876.2m)이 있고, 경북 청도 매전읍에도 시루봉(677m)이 있다. 하지만 진해 웅산의 시루봉 만한 시계를 가진 곳은 없으리라. 우리 산악회 신사무국장님은 시루봉을 언제나 유두봉(乳頭峰)이라 한다. 젖꼭지를 닮았단다. 보면 볼수록 그런 것도 같다. 중간에 흔들다리도 건너고, 안전바를 잡고 오르내리는 암벽(?) 맛도 쬐끔 보고 하여 시루봉 도착 시각 17시.
시루봉에서 천자봉으로 향하는데 서쪽으로 해는 힘이 없는지 서쪽 하늘에 떠 있긴 해도 그저 게슴츠레한 모습이다. 서쪽으로 진해내만을 바라보며 발길을 옮기는데, 처음오신 봉림초 강선생님이 힘이 드신 모양이다. 시루봉까지는 날쌔게 오셨는데, 걸음이 늬엿늬엿하다. 야산(야간산행)으로 두어 시간 날쌔게 다니신 경험은 있는데, 세, 네 시간씩 걷기는 처음이시란다. 우리 산악회가 요즘 활성화 되지 않아 고민이라고 하니, 선생님 말씀이 오프라인에서 자주 모임을 가져,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단다. 사실 우리 산악회는 그간 산행을 하면서 별 말이 없다. 2006년부터 산악회가 운영되었으나, 우리 회원들끼리 노래방에도 한번 간 적이 없다. 오늘은 우리 창원교사산악회(산사랑) 총회일이다. 월정회원이 19명인 우리 산악회는 5월과 11월에 두 번 총회를 한다. 5월에는 전년도 회계 결산을 하고, 2년마다 회장을 다시 뽑는다. 올해 사실 회장을 뽑아야 하는 해인데, 지난 해 11월에 회칙을 재대로 보지도 않고서, 다시 회장을 하겠다고 했기에 고생이 따르는 일이라 다른 분을 회장으로 모시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정회원인 김미영선생님, 안삼태선생님, 윤병석선생님, 김명진사모님을 제외하고, 총회에는 다 참석하시기로 하셨다. 산행에는 안병철, 신오철, 조영삼, 이장균, 조익래, 강경자, 전영희, 김태형, 오재석, 김종승, 강미옥(봉림초)선생님이 참석하셨고, 산행대장 박희지는 안민초에서 안민고개까지, 대발령에서 안민초까지 차량운행을 맡았으며, 마산 어시장에 가서 도다리를 회쳐오기로 했다. 또 오영춘, 강선옥, 정희선, 강병철은 저녁에 합류하기로 했다. 오늘은 산악회 회원님들과 활성화를 위한 고민을 좀 더 나누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듯 천자봉이다. 도착 18시. 천자봉 봉우리에는 묘가 하나 있다.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함경도에 살던 성이 이씨인 사람이 조상의 묘지를 구하기 위해 명당자리를 찾아 전국을 돌다가 진해 천자봉 봉우리에서 큰 구멍이 두 개 뚫린 좋은 묘 자리를 발견하였다. 두 개의 구멍 중 첫째 구멍에 묘를 쓰면 자손 중에서 임금이 나고, 둘째 구멍에 묘를 쓰면 천자가 나올 명당이었다. 이씨는 하인인 주씨에게 자기 조상의 유골을 둘째 구멍에 놓도록 일렀다. 그러나 하인은 주인 모르게 자기 부친의 유골을 둘째 구멍에 묻고 주인이 준 유골은 첫째 구멍에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첫째 구멍의 후손 중에 조선 태조인 이성계가 태어나고, 둘째 구멍의 후손 중에 명태조인 주원장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주원장(1328~1398)은 이성계와 거의 동시대 인물로 중국 명나라를 세우고 명태조가 된 인물이다. 확인할 수 없는 바이나, 천자봉 봉우리에 있는 이 묘도 후손들의 그런 바람을 엿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진해 내만 뒤로 구산 수정, 옥계 쪽에 지는 해가 걸렸다. 운무 때문에 좀은 우중충한 모습을 하고서 자꾸만 자꾸만 떨어지는 속도는 빨라지는 듯하다. 하늘에 해는 맑지 못하나, 합포만 쪽으로 바다는 금빛으로 반짝인다. 눈이 아프지 않을 만치 적당히 반짝인다. 아무런 생각없이 산정을 지나는 바람을 느끼며, 그렇게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STX 조선소 쪽을 보니, 전 보다는 배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일전에 아내하고, 산행을 했을 때는 STX 앞바다가 정말 가슴 아릴만치 누렇게 변해있어, 조선소가 바다를 다 죽이는 구나라고 되뇌었는데, 오늘은 그렇게 오염된 표가 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내 눈에 그렇게 보이니 마음은 한결 가볍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산행대장이 언제나 고생이다. 오늘도 자신은 산행을 하지도 못하고, 여러 회원님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 봉고차로 실어 나르고, 마산 어시장에 가서, 회를 쳐오기도 하고, 정말 보배로운 사람이다. 산행대장님에게 대발령으로 회원님들 모시러 오라고 전화를 했다. 대발령 도착 18시 40분. 대발령에서 창원으로 가는 길에 서쪽으로 바라본 석양은 회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월동 들께와 칼국수(산행대장님 식당)에서 먹은 도다리회는 꼬들꼬들, 까실까실, 정말 맛있었다. 그날 밤. 강병철, 안병철 팀과, 박희지, 신오철 팀의 당구대회는 박희지 팀의 승리로 끝났다. 와신상담(臥薪嘗膽).
2010년 5월 3일 회장 안병철.
첫댓글 산행대장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첨봤지만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무쪼록 하시는 가게가 번창하기를 바랍니다.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