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 예안 이씨 시조 이도(李棹)의 묘소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 599-1에 있으며, 묘소는 순한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띠는 명당이다 일제 강점기 철도 부설 등으로 인해 묘지정면 우측의 개 바위가 파헤쳐질 위기에 처해지자 후손들이 진정서를 내어 철도 경로가 변경되었다는데 #개바위 의 어미개와 새끼 개 바위가 호랑이의 먹이 역활을 하고 있어 마을엔 일체의 해가 없게되는지라 개바위는 지금도 철길옆 원래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 가문에서 고려시대 정승(첨의정승- 문하시중)1명, 종2품이상 고관17명 배출은 물론, 조선시대에는 상신(정승 -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5명, 청백리9명, 문과장원10번(9명), 무과장원4명, 대제학1명, 판서25명 이상, 대사헌6명 이상, 삼도수군통제사13명 등 당상관(정3품이상 고관)95명 이상을 배출했고, 문과급제자(전의이씨 178명, 예안이씨 12명)는 도합 190명, 무과급제자44명, 생원진사급제자는 600명이나 배출해냈으며 현대 사회에 들어서도 국회의원, 국회의장 과 광역자치단체장, 장관까지 배출될 만큼, 뼈대 있는 가문이다.
<간산기>
차령의 산맥을 타고 광덕산을 주봉으로 국수봉을 현무로 좌선룡 우선수로 결혈 되었다 입수는 정미로 임관용이며 수구는 건파로 통맥과 수법으로 합법이다.후룡은 좌우굴곡 [귀태조절(병오,경유)부고장(정미),손태맥절(곤신)]등으로 부귀 자손이 오래도록 번창함을 증험하고 있다 안산은 일자 문성으로 이루어져 더욱 아름답다
첫댓글 멋진 간산기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