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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지괴의 덕항산에서 동굴에 매력에 빠지다
1. 일자 : 2012. 5. 22 (화)
2. 장소 : 덕항산(1073m)
3. 행로 및 시간
[매표소(12:18) -> 대금굴 갈림(12:25, 정상 2.3km) -> (중식 -12:51) -> 굴피집(13:01) -> 전망대(13:37) -> 동산고뎅이(13:59) -> 장암목/926계단(14:34) -> 쉼터(15:00, 정상 0.4km) -> 정상(15:09, 환선봉 1.8km) -> 환선봉/지극산(15:55, 1085m, 환선굴 3.3km) -> (헬기장) -> 자암재(16:31) -> (약수터) -> 제 2 전망대(16:44) -> 제 1 전망대(16:52) -> 천연동굴(17:01) -> 환선굴 갈림(17:20) -> 환선굴(17:25) -> (환선굴 관람 -17:57) -> 매표소(18:25)]
4. 동행 : 직장 동료
< 덕항산 산행을 준비하여 >
회사 '직원 소통행사'의 일환으로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연구원 3명과 소통과 협력 활성화라는 목표 하에 자율 테마여행을 가는 것이다. 같은 회사에 근무는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젊은 친구들과 일자, 장소 정하고 함께 차를 타고, 먹고 자고, 이야기 하며 이틀을 보내는 일이 처음엔 '일'로 다가왔다. 사전 간담회 일자와 장소를 정해 메일로 통보해 놓고는 여행장소를 고민한다. 물론 모여서 정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내 의견도 있어야겠기에 이리 저리 생각을 굴려본다.
일단 지난 4월말 속초 여행 때 장사항 등대에서 바라본 항구의 근사한 야경이 떠올라, 이왕이면 바닷가가 좋겠다. 바다 하나로는 밋밋하니 또 다른 테마를 물색한다. 문뜩 동굴에 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과 함께, 삼척이라면 바다와 동굴과 산을 모두 즐길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자료를 뒤진다. 유명한 환선굴을 끼고 있는 덕항산은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에 빛나는 풍광 좋은 산이다. 환선굴은 해발 500미터 고도로 장암목으로 올라 덕항산과 환선봉을 지나 하산 길에 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다. 숙소는 삼척 바닷가 부근 호텔이나 콘도를 구할 수 있을 것이고, 첫 날 등산으로 함께 고생하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저녁에는 바닷가 회집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소통의 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몫이다. 나머지는 일행들에게 일임해야겠다.
덕항산은 산보다도 ‘환선굴’로 더 유명한 곳이다. 비록 ‘굴’에 가려 있지만 산세 또한 수려한 곳인데, 동남으로 펼쳐지는 병풍암, 거대한 암벽, 칼로 벤 듯한 암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우뚝 솟은 촛대봉 등이 특이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덕항산은 능선으로 지극산 (환선봉이란 말이 더 일반적이다.)과 나란히 하고 있다. 들머리에서 올려다 보면 왼쪽이 덕항산, 오른쪽이 환선봉이며, 환선봉 밑 쪽에 환선굴이 위치하고 있다. 환선굴은 석회동굴로 5억3천만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웅대한 종유석의 아름다움이 압권이다. 규모는 총 연장 6.5km, 높이 30m, 폭 100m로 동양최대를 자랑한다. |
덕항산이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선정된 이유는 ‘전형적인 경동지괴(傾動地塊) 지형으로 기암절벽과 초원이 어우러져 있으며 석회동굴이 많이 소재하고, 대이동굴 군립공원 구역내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되었다 한다. 출발 전 삼척에 대해 조금 더 알고자 택리지를 살핀다. ‘산수의 경치가 훌륭한 곳은 강원도 영동을 첫째로 꼽는 것이 마땅하다. 영동에는 9개 고을이 있는데 이 지방 사람들은 노는 것을 좋아하여, 노인들이 기악과 술, 고기를 싣고 호수와 산 사이에서 흥겹게 놀며, 이를 큰 일로 여긴다. 그들의 자제도 노는 것이 버릇이 되어 문학에 힘쓰는 자가 적다. (중략) 삼척 죽서루는 관동팔경에 속한다.’한마디로 영동지방은 산수가 훌륭하여 풍류를 즐기기에 좋다는 것이다.
< 희망사항 >
이번 여행의 테마는 ‘(자연과) 호흡하다’ 정했다. 마음가짐을‘일’이 아닌 ‘소통을 위한 놀이’로 전환한다. 회사 비용으로 신세대 젊은이들과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는 아니지 않는가? 소통이라는 것의 본질은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일 것이다. 부자연스러워 불편하거나 상호가 아닌 일방적이라면 통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번 여행에 내가 가장 연장자이니 솔선수범하여 자연스러움을 유도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로 여러 선택을 해야겠다고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직원들과의 소통의 여행이라는 취지에 벗어나지 않고 산을 즐길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산행 코스를 삼등분해 보면 골말에서 덕항산까지 오름 길1시간 30분, 덕항산에서 환선봉까지 능선 길 1시간, 환선봉에서 환성굴까지 하산 길 1시간 20분, 휴식을 포함하면 4시간 30분이면 충분하겠다. 산세로 보아 풍경은 환선봉에서 환선굴 하산 길에서 굽어보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동굴을 끼고 있는 산세가 주는 감동에 마음이 설렌다. 여행장소, 테마 그리고 등산 등 내가 제안한 것들을 후배들이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각자의 역할에 나누어 숙소를 예약하고, 레일바이크 탑승을 조사하는 호흡이 잘 맞는다. 출발 전 예감이 좋다. 가벼운 설렘이 온다. 길을 나서는 이는 그 여정을 즐겨야 한다 했다. 산수 좋고 풍류를 즐기는 고장에서 마음껏 즐겨 보아야겠다!
(여기 까지는 출발 전 준비과정을 기록한 것이고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삼척 가는 길에 >
회사 통근 버스를 타고 연구소로 향한다. 양복바지에 바람막이 점퍼, 왠지 어색하다. 게다가 검은색 큰 배낭이라?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도대체 뭐야’ 하는 느낌이다. 7시 50분 일행 모두가 도착하여 바로 삼척으로 출발한다. 서먹한 분위기를 깨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분위기가 쉽게 오르지 않는다. 모두들 남겨 두고 온 ‘일’ 걱정이 많다. 1박 2일 동안은 잊자고 한다. 동수원을 지날 때까지 길이 막힌다. 누구는 출근하는 시간에 누구는 동해로 여행을 간다. 상대적인 행복감이 느껴진다. 길이 훤하게 뚫린다. 날씨 참 좋다. 원주를 지나며 강원도 특유의 너울지는 산들의 파노라마가 길게 이어진다. 강릉을 지나 동해 톨게이트를 나와 삼척 외곽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달려 덕항산 입구에 도착했다. 12시 15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서둘러야겠다. 4시간 넘게 차를 타고 왔으나 피곤함 보다는 가야 할 길에 대한 기대로 활기가 넘친다. 옷을 갈아 입고 행장을 갖춘다. 일순간 다시 어색한 침묵이 찾아 든다. 일단 점심부터 먹어야겠다. < 매표소에서 덕항산 >
박쥐를 형상화한 도립공원 매표소가 인상적이다. 동굴이 많은 고장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이미지가 세련되어 보였다. 길가 음식점에서 비빔밥과 묵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대개의 유원지 음식점이 그렇듯 그리 맛난 음식은 아니었다. 12시 50분 행장을 다시 챙겨 본격 산행에 나선다. 이 연구원의 커다란 카메라가 시선을 끈다. 전문 사진가의 포스가 느껴진다. < 매표소 인근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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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덩치 좋은 후배들을 앞세우며 걷는 기분이 무척 좋다. 1시 무렵 물레방아가 있는 굴피집을 지난다. 그 좌측 작은 다리를 건너자 장암목으로 향하는 산행 들머리가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다.
길은 초입부터 된비알이다. 길에 대한 조사가 정밀하지 못한 상황에서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니 당황스럽다. 앞을 보니 한참을 계속될 길이다. 그래도 아직은 힘이 있다. ‘등산은 초반 30분이 가장 힘든 법입니다. 걷다 보면 다리가 길에 적응하게 되고 그러면 힘이 덜 들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미리 선수를 친다. 길가에 평소에 보기 쉽지 않은 노란 야생화가 보인다. 그 모습이 괭이밥과 닮았으나 확신은 없다. 숲 곳곳에 키 큰 전나무가 솟아 있다. 그 곧은 기상이 씩씩하다.
< 괭이밥, 벌깨덩굴, 둥굴레 >
바위 길에 밧줄이 메여 있다.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다. 앞서 가던 이 연구원이 뒤처진다. 나머지 두 명도 가쁜 숨을 내 쉰다. 내가 멘 뒤에 걷다가 다시 앞장 선다. 모두 평소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라 걱정을 안 했는데 몹시 힘겨워한다. 당초 100kg이 넘는 거구 김 연구원을 걱정했는데 그런대로 잘 걷고 있으나, 이 연구원이 점심으로 먹은 묵밥에 체한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난감하다. 이제 겨우 30분 걸었는데 퍼져 버리니 어쩌나, 갈 길은 멀고 돌아가면 여행의 취지가 퇴색돼 버리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으며 속도를 죽여 걷기를 계속한다.
1시 37분 작은 바위 전망대에 올라 선다. 하늘이 열리고 멀리 환선봉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 보이고 그 밑으로 아스라이 환선굴로 향하는 모노레일이 눈에 들어온다. 된비알 끝에 오아시스 같은 풍경이다. 길가에 털썩 앉아 물을 마신다. 시원한 물 맛이 꿀 맛이다. 갈 길은 먼데 속도는 10분 걷고 3분 쉬는 것이 반복된다. 가뜩이나 늦은 출발에 하산 시간이 걱정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대략난감이란 말은 이럴 때 쓰나 보다. 내 생각만 하고 준비가 안된 이들을 데리고 무리하여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든다. 그래도 포기하자는 말은 아무도 안 한다. 평소보다 느린 행보에 난 전혀 힘든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천천히 고도를 높인다. 걷다 쉬다 하다 보니 어느덧 장암목에 도착했다. 시간은 2시 3분. 고도는 800미터가 넘었다. 한시름 놓은 것 같아 안도감이 든다.
< 전망 바위에서 >
장암목이 고개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지능선 중간에 있는 본격 오르막이 시작되기 전 잠시 숨을 골라 갈 수 있는 작은 평지였다. 이제 덕항산까지는 1km가 남았다. 표지판에 ‘926계단’이라는 글귀의 의미를 추측한다. 고도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설마 계단의 ‘개 수??’ 사실이라면 대책이 안 선다. 여기까지 힘겹게 왔는데 더 힘겨운 길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늘 그렇듯 산에서의 걱정은 사실이 된다. 철 계단이 계속 나온다. 가끔은 평지 계단도 나타나지만 대세는 가파른 고도 상승 계단이다. 다행인 것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평지 길과 번갈아 가며 나온다는 것이다. 계단 수가 900개 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500개는 넘는다. 언제부턴가 우측 능선에 풍력발전을 위한 커다란 풍차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국적 풍광에 눈이 호강한다. 힘겨운 발걸음에 끝에 닿을 상그리라 마냥 우리를 유혹한다. 색다른 풍경에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 덕항산 가는 길에 능선 풍경 >
어인 일인지 커다란 나무들이 쓰러져 길을 막은 지역을 힘겹게 넘자 거짓말처럼 쉼터 이정표가 나타났다. 직진하면 ‘예수원’ 좌측은 덕항산 우측은 환선봉을 안내하고 있다. 고도는 이미 1050미터 수준이다. 안도감이 돈다. 고지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모두 쉼 없이 정상으로 향한다. 역시 젊음은 좋다. 다 죽어 가던 사람들이 벌써 다 회복되어 있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쉼터에서 정상까지의 길은 평지 수준의 능선 길이다. 거리 400미터를 8분만에 도착했다. 드디어 덕항산 정상이다. 1071미터, 백두대산 덕항산. 작은 성취감에 모두 감동한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돌아가며 사진을 찍는다. 내가 이 힘든 길을 걸어 이곳까지 후배들을 데려 온 것은 바로 이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하자는 것이다. 모두의 얼굴에서 기쁨이 감돈다. (김연구원에게서 똑딱이 카메라 타이머를 이용하여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 새 사람에게서 새로운 것을 전수 받았다.)
< 덕항산 정상에서 >
< 덕항산에서 자암재 >
덕항산 정상에서 주위를 둘러 보며 한참을 서성이다 길을 나선다. 이제 백두대간 길이다. 올라오며 눈을 즐겁게 해 주던 풍력발전소가 있던 장소는 아마도 ‘큰재’일 것이고, 그 너머로 황장산이 있을 것이다. 다시 쉼터로 내려서 내처 걷는 길, 동쪽으로 ‘낭떠리지’라는 경고 표식이 자주 보인다. 그 아래는 그야말로 절벽이다. 그러고 보니 출발 전 여러 자료에서 덕항산은 대표적인‘경동지괴’지형이라 한 글 귀가 생각났다. 경동지괴는‘한쪽은 급사면, 다른 한쪽은 완만한 사면을 나타내는 땅의 형상’을 말하는데,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바로 그 전형이다. 약간의 굽이는 있어도 걷기에 그만인 능선 길이다. 덕분에 정상을 오르며 소모한 시간을 일거에 만회한다.
길가에 ‘벌깨덩굴’이라는 보라색 야생화가 지천이다. 흔치 않은 꽃인데 이곳에서는 만발해 있다. 새로움의 발견은 늘 기분을 맑게 해 준다. 덕항산 출발 40분만에 오늘의 두 번째 봉우리 환선봉에 도착했다. 고도로 만은 덕항산 보다 오히려 조금 더 높다.
< 큰재 주변의 풍력발전소 >
< 환선봉에서 >
환선봉 부근 전망바위에 서니 큰재의 풍력발전소의 모습이 지척이다. 붉은 흙이 넓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인근에는 고랭지 채소 재배지가 있는 듯하다. 모여서 사진 한 장을 찍고 길을 나선다. 대세 평지 능선이지만 작은 오르내리막은 있게 마련, 작은 언덕만 나와도 힘겨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못 들은 체 하고 앞서 길을 걷는다. 지금은 모를 체 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자암재를 향하는 길에 못 보던 야생화가 보인다. 은방울꽃을 기대했는데 돌아와 확인해 보니 둥굴레 꽃이었다. 헬기장을 지나 내리막을 내려서자 자암재 간판이 보인다. 시간은 4시 30분. 늦었지만 점점 끝이 다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 환선굴을 향해 가자. 모두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다.
< 자암재에서 환선굴 >
한 30분이면 환선굴에 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는데, 길 사정이 가팔라 그러는지 마음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오를 때 장암목재만은 못해도 험한 길이다. 잔 돌이 많아 미끄럽다. 컴컴한 비탈을 걸어 제 2전망대를 목표로 하산하는데 컴컴한 숲 길이 이어져 도저히 주위에 전망대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온통 돌 밭이다. 시간은 포기하고 걷는데 우측으로 쇠파이프가 보인다. 혹시나 하여 난간에 돌아 서니 거짓말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음영에 주름진 작은 산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다. 그 규모가 시야를 압도한다. 덕항산은 작은 산이 아님을 확인한다. 제 2전망대에서 7-8분 거리에 제 1전망대가 나왔다. 들머리에서 본 촛대바위가 지척이다. 우람한 모습은 오늘 본 풍경 중 최고였다. 다시 긴 오르막 철계단이 나타났다. 생뚱맞다. 이 길은 도대체 어디로 향한단 말인가? 걱정이 앞선다. 오르막 길 끝에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천연동굴이라는 지명이 붙어 있다. 이 굴을 통과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을 듯하다. 앞서 정찰에 나서 굴을 오르는데 길은 굴을 통과하며 나 있었다. 힘겨워하는 후배들을 불러 올린다. 자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힘 냅시다.
< 제 2전망대에서의 전경 >
천연동굴 옆 전망대에 섰다. 해거름에 산이 검게 물들고 있다. 주변은 굴이 없었다면 길을 만들기가 난감했을 것 같은 험난한 지형이다. 전망대에서 환선굴을 향한 길도 길고 험했다. 지친 일행을 떼어 두고 앞서 나간다. 5시 20분 환선굴 갈림에 섰다. 시간 상으로 지금 가면 입장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뛰듯이 걸어 굴 입구에 도착하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단체입장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매표소에 문의하니 늦었지만 학생들과 보조를 맞추어 나온다면 입장시켜 주겠단다. 전화로 갈림길에 대기하고 있던 일행을 급히 불러 올린다.
< 환선굴에서 >
환선굴에 입장했다. 서늘하고 습한 공기 그리고 은은한 조명이 환선굴의 첫 인상이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형형색색의 석회 용암들이 만들어 내는 장관이 눈에 들어 온다. 용머리 모양의 돌기둥, 물방울의 기포가 굳은 것 같은 용암, 동굴을 따라 흐르는 작은 폭포의 물줄기, 깊이를 알 수 없게 이어지는 어두운 길, 물이 떨어지는 다양한 높이의 천장, 미로를 따라 특이한 형상의 지형을 빗대어 만든 작은 테마공원, 환선굴이 만들어 내는 자연과 인공의 대략이다. 비록 시간 제약으로 짧게 관람을 마쳤지만 만약 환선굴 관람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은 무 척 단조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서둘러 굴 관람을 마치고, 모노레일을 이용하여 하산했다. 걸으나 타고 내려가나 시간은 비슷하지만 지친 다리에 짧으나마 휴식을 주고 싶었다. 다시 찾은 굴피집 앞 포장도로, 오를 때 보다는 다리는 무거워졌으나 마음은 가벼워졌다. 힘겨운 일을 마친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다. 이제 남은 것은 차를 타고 주문진으로 이동하는 것뿐이다.
< 에필로그 >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니 순수 산행시간은 5시간 남짓이었다. 덕항산 정상까지의 오름 길 2시간 30분, 정상에서 자암재까지의 백두대간 능선 길 1시간 20분, 환선굴을 거쳐 하산 길 1시간 10분으로 대변된다. 산 길의 난이도가 가기 전 예상보다 강했고, 그 때문에 후배들이 많이 힘겨워 했다. 환선굴 하산 길에는 혹, 소통여행을 왔는데 극기훈련만 받았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그러나 차에 오르며 모두의 얼굴에서 어려움을 극복한 자들에게서만 확인할 수 있는 가벼운 흥분감이 느껴졌다. 고통의 순간은 지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동해 바다의 밤을 즐기는 것뿐이다.
8시경에 주문진 항구 부근 회집에 도착했다. 소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자연산 참돔과 도다리를 메인 메뉴로 여러 가지 새로운 음식을 앞에 두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술이 한 숨 배 돌자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술 김을 인생과 직장의 선배로서 여러 이야기 했다. 요약하자면 ‘스스로의 전문 특기를 갈고 닦아 변화되는 환경에서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라는 것’ 이었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개방형 인간으로 변모시키고, 현재 본인들의 전문 업무를 연관되는 업무와 잘 조화될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향상하고, 아울러 타 분야의 업무와의 융합을 통해 혁신의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라는 것이다. 특히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로 외국어 습득과 업무 역량을 전문화 하라는 부탁을 했다.
호텔 체크인 관계로 10시 20분경 술자리를 파하고, 숙소에 짐을 풀고 부근에 목욕탕으로 향했다. 11시에 사우나를 찾는 새로운 경험, 탕 전체를 우리 넷이 점유한다.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 왔다. 모든 것을 내려 놓은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낀다.
숙소로 이동하여 맥주 한 잔을 더 했다. 주요 대화 주제는 결혼을 앞 둔 그들의 고민이었다. 혼수문제, 집 장만 문제, 예비신부의 직업 등 현실적인 주제들이 쏟아져 나온다. 젊지만 그들도 여러 가지 고민에 쌓인 생활인 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 결혼 무렵과 신혼생활을 빗대어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해 놓고 보니 너무 교과서적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으나,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젊은 친구들에게서 어쩌면 그들이라면 모범적으로 결혼이라는 난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 둘째 날 >
아침 7시까지 늦잠을 잤다. 아래층에 멤티를 온 젊은 친구들의 소란으로 인해 밤 새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시 눈을 붙여 컨디션이 엉망이다. 후배들은 아직 꿈나라다. 모처럼 출근 걱정 없이 자는 그들을 굳이 깨우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동해에서 불어 오는 바람을 쐬며 아침을 맞는다. 기분이 상쾌하다. 부족한 수면을 맑은 공기가 보충해 주는 느낌이다.
10시에 일어나 주문진 포구 부근에서 늦은 아침으로 곰치국을 먹었다.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별 양념 없이 곰치 만으로 맛을 냈을 것이다. 가격대비 만족도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동해에 왔으면 현지 특산재료로 요리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모두 동의했다.
< 주문진항 유람선에서 >
11시 30분 유람선을 탔다. 주문진에서 출발하여 경포, 순포 일대를 순항하는 코스다. 배가 출발하자 러시아와 중국 기예단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낮은 수준의 공연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밖에 나와 바다에서 육지를 본다. 물결의 흐름에 따라 풍경들이 달라진다. 비록 지난 울릉도, 서귀포, 해운대에서 본 풍경만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강릉과 주문진 일대의 해변이 멋지다.
흐르는 물결처럼 시간은 흐른다. 지금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이 젊은이들이 내 나이가 되면, 나는, 그들은, 우리 회사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각자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흐르는 물처럼 주위와 어울리며 소통을 해야 함을 분명한 진리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1박 2일의 마치며, 힘든 일정을 기쁘게 함께 해 준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이런 소중한 기회를 준 회사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