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글: 채인선
출판사: 재미마주
옛날에 아주 아주 손이 큰 할머니가 있었어요. 무엇이든지 하기만 하면 엄청 많이 엄청 크게 하는 할머니였지요. 해마다 설날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만두를 빚어요. 벌써 부엌 문턱에는 어린 동물들이 조르르 몰려왔네요.
“할머니, 이번 설날에도 만두 많이 만드실 거죠?”
“물론이지. 그래야 다 같이 나눠 먹잖니!”
앞치마만 두르면 할머니는 싱글벙글해요.
“뭐니뭐니 해도 김치가 많이 들어가야 맛이 나지!”
할머니는 김치를 있는 대로 다 꺼냈어요.
“김치가 많이 들어가니 숙주나물도 넉넉하게 들어가야지!”
할머니는 숙주나물을 있는 대로 다 삶았지요.
“숙주나물이 많이 들어가니, 두부도 그만큼 들어가야지!”
할머니는 두부를 있는 대로 다 내놓았어요.
“다른 것이 다 많이 들어가니 고기도 양껏 들어가야지! 암, 그렇고말고!”
마지막으로, 냉장고에서 고기도 다 꺼내 놓았지요.
“그런데 이 만두소를 다 어디다 넣고 버무리지?”
궁리궁리하던 할머니는 헛간 지붕으로 쓰는 함지박을 끌어 와, 거기다 만두소를 몽땅 쏟아넣었어요. 그리고는 삽을 들고 함지박 속으로 들어가, 만두소에 파묻혀 엎치락뒤치락, 씩씩하게 만두소를 버무렸지요.
“이제 다 됐군.”
함지박을 나온 할머니가 환하게 웃었어요. 골고루 잘 섞인 만두소가 둥근 언덕처럼 보이네요.
“만두소가 저만하니 만두피도 많이 만들어야겠지?”
할머니의 큰 손이 다시 일을 시작해요. 어깨가 들썩들썩, 노래가 절로 나오네요.
만두 만두 설날 만두.
아주 아주 맛난 만두.
숲 속 동물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아.
한 소쿠리씩 싸 주고도 남아.
일 년 내내 사시사철.
냉장고에 꽉꽉 담아.
배고플 때 손님 올 때.
심심할 때 눈비 올 때.
한 개 한 개 꺼내 먹는.
손 큰 할머니 설날 만두.
어느새 밤이 되었어요. 밀가루 반죽은 방문턱을 넘어, 툇마루를 지나, 마당을 지나, 울타리 밖으로 한없이 밀려나갔지요. 저 너머 소나무 숲에 이른 걸 보고서야 할머니는 허리를 폈어요.
“아이고, 이제 나도 좀 쉬어볼까? 하함! 피곤하네.”
다음날 아침, 할머니는 땡땡 종을 쳤어요.
“어서 가서 엄마 아빠 오시라고 해라. 만두 빚자고.”
종 소리를 듣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몰려왔지요.
“으악! 세상에, 저게 다 만두소야? 저걸 다 언제 만들어? 한 달도 넘게 걸리겠네.”
“밀가루 반죽은 또 왜 저렇게 많아? 어이구, 저걸 다 언제 빚는담?”
만두소와 반죽을 본 동물들이 입을 쩍 벌렸어요. 하지만 어린 동물들은 얼른 만두를 빚고 싶어 난리가 났지요.
“이게 뭐가 많아? 나 혼자서 해도 하루 아침에 다 끝내겠구만. 자, 어서 일들 하자고!”
만두 빚는 일은 재미있어요. 여우는 여우 만두를, 다람쥐는 다람쥐 만두를, 곰은 곰 만두를, 너구리는 너구리 만두를, 뱀은 뱀 만두를. 저마다 자기 만두가 예쁘다며 부지런히 만들어요. 동그랗게 만두피를 만들고, 그 안에 만두소를 넣어 모양을 다듬고. 다 만든 것을 머리에 이며 모두 신이 났지요. 할머니는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망원경을 눈에 대고, 가끔 이렇게 외쳤어요.
“너구리야, 만두소 조금씩 넣어라! 다 터지고 있잖아! 거기 다람쥐, 졸지 마! 그러다 만두소에 코 박겠다!”
동물들은 만두를 빚고, 빚고, 또 빚었어요. 그런데 만두소도, 만두피도, 줄어들 생각을 안 했지요. 결국 숲속 동물들 모두 지쳐버리고 말았지 뭐-예요. 그때 할머니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얘들아, 이제 남은 만두소를 전부 모아, 큰 만두 하나를 만들자!”
“와우! 그럼 세상에서 제일 큰 만두가 될 거야!”
“그럼, 세상에서 제일 맛난 만두이기도 하지.”
동물들은 기운이 펄쩍 났어요. 우선, 밀가루 반죽을 보자기처럼 넓게 펼치고, 그 위에 만두소를 부었지요. 그리고는 만두피를 양쪽에서 잡고 으쌰, 달려갔어요.
만두 만두 큰 만두.
아주 아주 큰 만두.
앞산만큼 큰 만두.
뒷산만큼 큰 만두.
세상에서 제일 큰 만두.
만두를 만들자.
손 큰 할머니 설날 만두.
만두를 만들자.
“그런데 이 큰 만두 입은 어떻게 붙이지?”
궁리궁리하던 할머니는 방에서 커다란 돗바늘을 가지고 왔어요. 그리고는 그걸로 만두 입을 꿰매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이 큰 만두를 어디다 삶지? 아, 올커니! 커다란 가마솥이 있었지!”
할머니는 시커멓고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붓고, 만두를 삶았어요. 야호, 드디어 만두가 익었어요. 만두를 꺼내자 프르르, 김과 함께 맛있는 냄새가 퍼지네요. 배고픈 동물들은 와, 커다란 만두로 달려들었지요.
만두다, 만두.
만두를 먹자.
세상에서 제일 큰 만두.
만두를 먹자.
손 큰 할머니 설날 만두.
만두를 먹자.
설날 아침, 할머니와 동물들은 커다란 만두를 먹으며,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