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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의 교류에 주목 1990/05/31 미래를 향하여 강택민 총서기장 총서기 - 11억 인민의 생활을 지키는 책임이 SGI회장 - 중국과 한국의 교류에 주목 이케다(池田) SGI회장, 아키야(秋谷) 회장은 31일 오후 4시부터 중국공산당(中國共産黨)의 강택민(江澤民) 총서기와 약 1시간에 걸쳐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 남문회견실에서 회견했다. 석상에서 강 총서기는 한국과의 경제·민간교류의 현상을 이야기하고 아울러 "중국의 안정이 아시아와 세계의 안정으로 된다" 고 강조했다. 회견에는 한서(韓敍)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회장, 손평화(孫平和) 중일우호협회 회장, 황세명(黃世明)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부회장, 황의상(荒義尙) 일본대사관 공사, 무대위(武大 ) 외교부아시아국일본처 처장, 진영창(陣永昌) 중일우호협회 부비서장 등이 참석했다. 회견에 앞서 강 총서기는 북경시내 민족문화궁(民族文化宮)을 방문하여, '자연과 평화와의 대화' 사진전을 SGI회장의 안내로 감상했다. 회견에서 SGI회장은 "솔직히 말씀드려 강 총서기의 인품은 세계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라며, 중국에 대한 이해의 증진을 위해서라도 조금 여쭈어 보고 싶다며, 우선 '문인정치가'로 불리는 총서기의 인간형성을 물었다. 강 총서기는 11, 12세 때 부친으로부터 매일, 고문관지(古文觀止) 속에서 한 편의 고문(古文) 등을 암송하도록 교육받았다. '3백의 당시(唐詩)를 외우면 누구나 시를 읊을 수 있게 된다' 라고 하는데 당(唐)·송(宋)의 시를 엄하게 배웠다. 그 중에도 이백(李白), 소동파(蘇東坡)의 시는 부드럽고, 또 두보(杜甫)와 송의 육유(陸遊)의 시에는 애국적정신의 호소를 느낀다. 중국에는 문학을 애호하는 사람이 많아, 다른 직종이 전문인도 또 학교와 가정에서도 흔히 시를 배우고 있다. 나도, 가령 의학자라도 이공계(理工系) 사람이라도 문학을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결코 깊이 공부한 것이 아니라 애호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지금 말한 것처럼 가정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오히려 이공계쪽이 더 좋았다 라고 소개했다. SGI회장 - 지도자에게는 '시심(詩心)'이 필요 시를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피아노와 대나무 피리를 즐긴다고 말하는 강 총서기. SGI회장이 그 점에 대해 언급하자, 총서기는 "과대평가 입니다. 무엇이든 조금씩은 알면서 깊게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중국어로 '삼각묘(三脚猫)'라고 말합니다만 제가 그렇습니다(웃음)"라고 겸손해 했다. 그리고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상해어(上海語: 상해의 방언)도 조금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북경사람은 '대단하군요' 라고 칭찬해 줍니다. 그런데 상해출신의 아내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예요?' 라고 말합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또 SGI회장이 "유럽을 비롯해서 일류의 정치가, 지도자에게는 시심이 있는 사람이 많다. '시(詩)'의 정신이 참된 정치에는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고 말하자, 총서기는 "SGI회장이야말로 시인이며, 조금 전 실제로 (사진전) 본 것처럼 훌륭한 사진가 이시기도 합니다"라고. 또한 SGI회장이 부인과 친해진 계기를 묻자, 부인과는 먼 친척관계라서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부모의 명령이나 중매인의 소개에 의한 결혼이 아니라, 연애결혼이라고 해도 좋다고 말했다. SGI회장: 연애는 언제쯤? 봄이었습니까? 아니면 가을이나 겨울? 총서기: 조금 전 사진전에서 일본의 사계(四季)를 찍으신 코너가 있었습니다만, 연애기간은 사계를 불문하고, 가령 겨울이라도 가슴 속은 뜨거운 것이 아니겠습니까.(웃음) 누구에게나 청춘시대는 있는 것이지요. - 이어서, 부모에 대해서는 "아버지 쪽이 (시 공부 등으로) 엄하셨다. 비교적 장수하셔서 내가 40대 때에 79세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그 후 역시 내가 40대 때에 돌아가셨다" 라고 말했다. 또 즐겨 읽는 것은 문학작품이 많으며, 암송한 당과 송의 시도 지금에 와서는 또 다른 깊이가 있다고 소개. 취침은 밤 12시를 넘기는 일이 많으며 아침에는 대개 7시경에 일어난다고 말했다. 또한 총서기가 어학에도 뛰어난 것에 대해 SGI회장이 언급하자, 그것도 과대평가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좌우명이라고도 해야 할 원칙은 '필요한 것은 스스로 배운다'는 것이며, 어학도 그런 의미에서 몸에 익힌 것이다. 기초가 잘 되어있는 것은 영어와 러시아어인데 영어는 학교에서 5학년 때부터 배웠다. 러시아어는 소련에 가기 위해 배웠다(1955∼1956년, 주소(駐蘇)대사관 참사관). 또 루마니아어는 2년간 중국의 전문가그룹의 장으로서 갔을 때 통역 인원이 부족해 부득이 스스로 외웠다. 프랑스어도 조금은 할 수 있다. 독일어는 학교에서 배웠을 뿐이다 - 등으로 소개했다. SGI회장이 주은래(周恩來) 총리와의 추억을 묻자, 총서기는 "주 총리의 일생, 인품은 중국의 모든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셨습니다. 서거하셨을 때 나는 북경에 있었는데 십리(4km)나 되는 장안(長安)거리에, 추도하는 사람의 행렬이 계속해 이어져 있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라고. SGI회장은 "깊이 가슴에 와 닿는 광경입니다"라고 응하셨다. 또한, 총리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특별히 없었지만, 상해에서 과학기술연구소의 소장을 하고 있을 때, 총리가 기술자들과 회견해 주셨다. 거기에 동석했었는데 그 때까지와는 달리, 소수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 여기에서 SGI회장은 중국과 한국과의 교류에 언급.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또, 그 후 워싱턴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과 회담할 전망이 보도되고 있는데 대해 언급하여, 한반도 정세를 비롯 국제관계에 대하여 "한·소 수뇌회담은 매우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한국과의 교류에 관해 듣고 싶다" 라고 물었다. 총서기는, 현재 한국과의 경제·무역이라는 민간 차원의 왕래를 하고 있다. 1965년 전기(電機)관계의 국제회의가 도쿄에서 행해져 나도 처음으로 방일(訪日)했다. 그 때 손평화(孫平化: 중일우호협회) 회장은 요승지(寥承志:중일우호협회 전 회장) 씨의 사무소의 주석대표를 하고 있었다. 회의에는 한국은 참가했지만 북한(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참가가 허락되지 않았고, 중국으로서는 기술 회의에는 참가했지만 이사회에는 불참했다. 현재는 이런 일이 없다. 한국이 참석하더라도 중국은 참석하고, 한국의 모임에도 중국은 출석한다. (9월의) 아시안게임에도 남북한에서 참가할 예정입니다. 역사적인 원인으로 단일민족이 통일할 수 없는 상황에 있지만 중국으로서는 끝까지 통일을 주장해 간다 라는 생각을 밝혔다. 다음에 SGI회장은 총서기의 방일 등을 통한 일중교류 촉진은, 일중양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큰 역할을 완수할 것임에 틀림없다 라고 하면서 방일의 의향을 물었다. 총서기는 지금까지 2번(1965년과 1984년)의 방일 경험이 있다고 말하면서 "기회가 있으면 방일하고 싶다" 고 답변했다. SGI회장은 즉각 "기회는 만드는 것입니다. 실례의 말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라고 답했다. 또 총서기는 금년 중 외국방문에 대해서도 "지금은 예정이 없다"라고 밝혔다. 오사카(大阪市)시에서 개최중인 '국제(國際) 꽃과 녹(綠)의 박람회'에는 현재 건설부의 대표를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화제는 '청년'으로 옮겨졌다. SGI회장: '5·4운동' (1919. 5. 4 북경대학 학생들이 궐기, 중국혁명의 연원으로 되었다)이래 중국에서는 청년·학생이 개혁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시대를 짊어지고 갈 청년들에게 무언가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 있으면, 그 일단이라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총서기 - '소장불노력(少壯不努力) 노대도상비(老大徒傷悲)' 총서기: 금년 '5·4' 기념일의 전날, 나는 '애국주의와 지식인의 사명'에 대해서 긴 강화(講話: 천천히 풀이하며 이야기함)를 했습니다. '5·4'는 청년의 기념일이 되는 것입니다만, 그것은 전 지식인에게 관계되는 것입니다. 청년은 중국의 미래이고 희망입니다. 모택동(毛澤東) 주석(主席)은 예전부터 "청년은 오전 8, 9시의 태양" 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언젠가 역사의 무대에서 떠나갑니다. 미래는 청년들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에게 "정열에 가득 차고, 항상 자기에게 엄하게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청년에게는 큰 강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열입니다. 새로운 사물에 민감하고 정력적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청년시대는 황금시대입니다. 그러나 약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과 싸워가는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말에 '소장불노력 노대도상비'(젊은 시대에 노력하지 않으면, 성장한 후 반드시 후회하여 괴롭고 슬퍼하게 될 것이다) 라고 있습니다. 청년시대에 확실히 공부해 두지 않고서는 장래 나라를 짊어질 수가 없습니다. 현대의 청년은 안이하게 즐거운 생활을 구한다고 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각고분투(刻苦奮鬪)의 정신이 부족한 것 같이 느껴집니다. 여기에는 중앙의 지도자로서도 책임이 있어서, 일방적으로 젊은이를 꾸짖을 수도 없습니다만. 회장: 총서기에 취임(1989. 6. 24) 하신지 머지 않아 1주년을 맞이하십니다. 이 일년을 회고해 보시고 무언가 감상이 있다면 -. 총서기: 나 개인적인 면에서 말하면 총서기에 취임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역사의 발전이 초래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총서기로서의 큰 임무는 정치의 안정이었습니다. 중국은 11억의 인구를 가지고 있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의 나라들과 교류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자력갱생'을 기초로 서로 협력해 가는 것이 기본정신입니다. 모든 것을 외국에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11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는 '식(食)'의 문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은 농민의 노력으로 해결되어 가는 것입니다만, 그러기 위해서도 사회가 안정되어 가야 합니다. 또 중국이 불안정하면 그것은 아시아,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 최후에 SGI회장이 등소평(鄧小平) 씨의 근황에 대해서 "건강하십니까"라고 묻자 총서기는 "대단히 건강합니다. 지금 등소평 동지는 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리고 "자신(등소평)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라는 등 씨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무언가 있을 때 지도를 구하면 그것을 거부하는 일은 없다고 하는 근황을 이야기하였다. 또 금번 "SGI회장의 방중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으며 '부디 잘 부탁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여기에는 SGI회장 부인, 영식(令息)인 이케다(池田) 다카히로(尊弘) 씨 외에 야마자키(山琦) 부회장이 등이 동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