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본문은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보게 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일은 창세 이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이사야 35장 5절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메시아가 세상에 오셔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그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예수님이 정말 그리스도인가를 묻도록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맹인이 본 것을 증거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보게 하신 것은 오늘날 우리가 영적으로 맹인이었는데 진리를 보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세상으로 보는 눈과 세상의 소리를 듣는 귀가 아니라 진리를 보는 눈과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의미합니다.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지만 진리를 보지 못한다면 소경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진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귀머거리입니다. 반면에 비록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하였지만 진리를 볼 수 있다면 복이 있고 비록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면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맹인으로 하여금 한 순간에 다 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볼 때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 같이 보였다가 다시 안수하였을 때 모든 것을 밝히 보았습니다. 이는 우리의 영의 눈이 하루아침에 완전하게 밝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11절12절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하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본문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이 일이 배새다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배새다는 이방지역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눈을 뜨게 하신 사실을 통해 장차 이방인인 우리가 진리의 눈을 뜨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고, 또한 이방인들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22절에 "배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기를 구하거늘"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께서 메시아되심을 믿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심을 믿고 맹인을 데리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마치 중풍병에 걸렸던 사람을 네 사람이 침상에 누워 지붕을 뚫고 그를 달아 내렸던 것처럼 그들도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여 주게 하실 줄 믿고 그를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영적인 눈이 뜨는것에 목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후에 집으로 보내시고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맹인을 예수님께로 데려와 그를 보게 하였듯이 오늘날 영적으로 소경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데리고 나아올 때 영이 눈이 밝아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의 눈이 뜬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지금도 영적으로 소경된 사람들을 주님께서 인도하셔서 영의 눈이 떠지는 은혜가 있어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