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호주 케언스에서 열린 국제척추외과학회.
세계 각국의 척추외과 의사들이 참가해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집약한 논문을 발표하는 자리다. 모두 800여 편의 쟁쟁한 논문들이 발표됐다.
그 가운데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이춘성 교수가 내놓은 논문이 당당 2위를 차지했다. 요부변성(腰部變性) 후만증(後彎症)이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척추질환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해 원인과 증상, 치료법을 밝혀낸 논문이었다.
척추외과는 수술칼로 승부하는 외과 분야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하고 난이도가 높은 분야다. 디스크(정식 의학 명칭은 추간판탈출증)와 척추관협착증 등 척추가 나빠 요통을 앓는 사람이 날로 증가해 척추질환이야말로 최근 가장 각광받는 의료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인구의 80%가 평생 한 번은 요통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으며 7∼10%는 만성 요통으로 고생한다. 감기 다음으로 흔한 결근 요인이 바로 요통이라는 통계자료도 있을 정도다. 미국의 경우 요통 치료비만으로 해마다 500억∼1,0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척추는 수술칼의 접근이 가장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목뼈에서 꼬리뼈까지 25개의 원판형 척추가 에스(S)자 형태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척추 사이 공간을 통해 뇌에서 나온 척수(脊髓)가 지나가며, 척수는 척추 마디마다 가느다란 신경가지를 만들어내며 팔과 다리 등 전신으로 갈라져 나간다. 척추에는 수십 가지 인대와 근육이 그물처럼 부착되어 있다.
세계 최초로 ‘요부변성 후만증’ 발견
척추와 척추 사이에는 디스크라는 쿠션 역할을 맡는 연골이 있어 뼈끼리 직접 마찰하는 것을 방지하며 척추가 전후좌우는 물론 회전까지 가능하도록 돕는다. 한 마디로 척추야말로 인체에서 가장 정교하고 강력한 관절이다.
단단한 뼈 안에는 두부처럼 연약한 신경이 지나간다. 척추수술을 위해서는 과감하고 정교하게 뼈를 부수거나 갈아내고 들어가야 하지만 일단 신경이 노출되면 섬세한 손길로 꼼꼼하게 시술해야 한다.
수술칼이 조금만 삐끗 해도 하지마비 등 끔찍한 후유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수술 규모가 클 경우 척추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척추 마디 위와 아래로 금속 나사를 박아 판때기로 고정시키기도 한다. 실제 수술장에서는 망치·끌·정 등 목수들이 쓰는 연장이 동원된다.
서너 시간 이상 망치를 들고 뼈를 깎고 다듬어야 하는만큼 근력이 좋지 않고서는 척추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춘성 교수는 호리호리한 체격을 지녔지만 수술장에서는 타고난 강골을 보여준다. 허리가 전후좌우로 90도 이상 뱀처럼 휜 척추측만증을 10여 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정상인의 곧은 척추로 만들어낸다.
이교수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신의 업적은 앞에서 언급한 요부변성 후만증의 발굴이다. 말 그대로 이 병은 이교수에 의해 처음 국제학회에서 선보였다.
“1995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 한 일본인 의사가 15년 동안 허리가 앞으로 구부정하게 굽은 8명의 환자를 보고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대개 할머니에서 흔히 보는 꼬부랑 허리는 등의 위쪽이 앞으로 굽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등의 아래쪽이 유달리 앞으로 구부러진 특이한 형태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원인이나 치료는 물론 정확한 병명조차 없었.습니다.”
발병 시기도 다르다. 꼬부랑 허리로 인한 이른바 노인성 후만증은 60대 후반 이후 골다공증 등 노화로 인해 발생한다. 그러나 요부변성 후만증은 40대의 이른 연령에서부터 나타난다.
이교수는 일본인 의사의 논문에서 이 병이 결코 희귀병이 아니며 원인이나 증상 등이 기존 척추질환과 달라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본격적으로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아니나다를까 한국과 일본 등 동양의 중년 여성 중 앞으로 구부려 앉은 채 밭일이나 집안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상당히 흔한 질환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의자생활을 하는 서양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병이어서 그동안 국제학회에 보고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 일을 하면 허리를 뒤로 펴주는 이른바 신전근육이 위축되고 약화되는 반면 허리를 앞으로 굽혀주는 복근은 강화되어 허리가 앞으로 구부러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교수는 1996년 요부변성 후만증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지금까지 500여 명의 국내 환자들을 찾아내 수술로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그가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보행분석을 통해 골반까지 나사를 박아 수술 성공률을 높인 기법은 2001년 8월 저명한 학술잡지‘저널오브본앤조인트서저리’(Journal of bone & Joint Surgery)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독자 여러분도 확실하게 알아두면 좋다. 중년 이후 여성으로 요통이 있으면서 등의 윗부분이 아닌 아래쪽부터 앞으로 구부정해진다면,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쪼그려 앉아 밭일이나 집안일을 해온 환자라면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 등 흔히 알고 있는 척추질환이 아니라 요부변성 후만증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의사들조차 이들을 디스크 등으로 오진해 엉뚱한 치료를 해왔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1980년 서울대 의대 졸업후 서울대병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86년부터 전임의로서 당시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석세일 교수 아래서 척추수술에 입문했다.
현재 서울대 의대 교수를 은퇴한 뒤 서울백병원에서 진료중인 석교수는 국내 척추외과를 개척한 대가. 정형외과는 전통적으로 서울대병원 안에서도 전공의 과정이 고되기로 악명 높은 과목이다.
요통은 문명병이다
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병원 정형외과의 양대 산맥이었던 석세일 교수와 이덕용 교수 아래서 척추수술과 소아기형교정수술이 화려하게 꽃피웠다는 것이 이교수의 회고다. 그의 1년 위 친형인 춘기 씨도 척추외과를 전공해 현재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금은 중견교수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수술 솜씨를 보여주는 이춘성 교수는 허리가 나쁜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까. 먼저 왜 요통이 이처럼 늘고 있는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는 인간에게 요통은 불가피한 존재임을 역설했다. 굴곡, 회전 등 가장 과격하고 힘든 동작을 도맡고 있는 척추 속에 하필 뇌에서 비롯된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물주는 척추에 인체 내에서 가장 강력한 근육은 물론 충격 흡수를 위해 척추와 척추 사이에 디스크라는 물렁뼈까지 부여했다. 문제는 갈수록 안락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습관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누구나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앉은 자세는 선 자세보다 척추에 두 배나 많은 부담을 준다. 푹신한 의자에 드러눕다시피 앉아 TV를 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쿠션이 좋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을수록 요통이 잘 생긴다.
자동차와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다. 걷지 못하면 척추를 지탱하는 근육이 약해지고 운동부족으로 늘어난 체중은 척추에 무거운 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몸이 편할수록 척추는 고생하는 법이다. 편한 자세일수록 팔과 다리가 감당해야 할 하중이 척추에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이다. 불편하지만 척추에는 다소 딱딱한 바닥과 의자가 좋다. 앉을 때도 등보다 허리가 등받이에 닿는다는 기분으로 척추를 곧추세우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자세가 척추 건강의 필요조건이라면 운동은 충분조건이다. 주로 걷기와 수영을 권장한다. 여기에 틈틈이 허리를 움직여주는 맨손체조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오래 앉아 있어서 생긴 요통이나 디스크에 의한 요통이라면 허리를 뒤로 젖혀 주는 동작이 좋다. 특히 명절 때 친지들끼리 모여 장시간 고스톱이라도 친다면 가능한 한 맨바닥보다 의자에 앉은 채 테이블에서 하는 것이 좋으며 반드시 30분에 한 번은 일어나 허리를 뒤로 젖혀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백화점 직원처럼 오래 서 있어서 생긴 요통이나 노인에게 흔한 척추강협착증에 의한 요통이라면 앞으로 굽혀 주는 동작을 반복해 보자.
요통 환자 100명 중 1명만 수술 필요
허리가 아프면 무조건 디스크를 떠올리는 것도 잘못이다. 디스크 진단만 붙으면 무조건 수술 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척추수술 장면. 망치,끌,정 등 목수들이 쓰는 도구를 사용하는 척추수술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허리가 아픈 사람 중 의학적으로 디스크가 원인인 사람은 10명 중 1명 꼴입니다. 또 디스크 환자 10명 중 9명은 수술이 필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요통 환자 100명 중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1명 정도라는 것이지요.”
그는 디스크를 비롯한 요통 환자들이 지나치게 수술이나 요즘 유행하는 내시경 치료, 레이저 치료, 키모파파인 치료, 고주파 열치료 등에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디스크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촉구했다. 환자들이 가장 겁을 먹는 것도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결과 자신의 디스크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을 바라볼 때라는 것.
그러나 이교수는 “허리가 아프지 않은 사람도 척추 MRI를 찍으면 40대의 경우 40%, 50대의 경우 50%, 70대에는 거의 100% 디스크 판정을 받게 된다”며 “디스크는 연령이 증가하면서 오는 노화 과정의 하나로 누구나 조금씩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많이 튀어나올수록 척추 사이 신경 가닥을 눌러 다리로 뻗치는 통증 등 디스크 증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척추 MRI 사진에서 디스크가 많이 튀어나온 사람인데도 증상이 거의 없거나 증상이 약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디스크가 조금 튀어나왔는데도 매우 심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태어나면서부터 체질적으로 결정되는 척추관의 크기와 모양이다. 척추관이란 25개의 척추를 상하로 궤뚫는 터널 모양의 통로다. 척추관을 통해 대뇌에서 나온 굵은 신경다발인 척수가 통과한다.
문제는 선천적으로 척추관이 넓고 전체적으로 둥근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척추관이 좁고 신경가지가 갈라져 나오는 모서리 부위가 오목한 모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척추 한두 마디에서 디스크가 약간 튀어나온다 하더라도 여유공간이 충분해 신경이 눌리는 정도가 약하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디스크가 조금만 튀어나와도 신경이 쉽게 눌려 통증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유행하는 비수술적 요법의 한계를 보여주는 설명도 된다.
“내시경이나 레이저 등 수술칼을 이용하지 않는 이른바 비수술적 디스크 치료는 속성상 튀어나온 디스크의 경우 간편하게 제거할 수 있지만 척추관 자체는 교정할 수 없습니다. 척추관이 선천적으로 좁은 경우라면 절반의 치료밖에 되지 않지요.”
결국 입원도 해야 하고 수술 흉터가 남지만 디스크의 가장 확실한 치료는 역시 전통적인 수술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수술은 튀어나온 디스크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좁아진 척추관이나 신경다발이 나오는 구멍을 넓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척추관의 모양과 크기 외에 디스크에서 고려해야할 또 하나의 변수는 주변 근육의 강화다. 이교수는 “척추는 척추의 뒤쪽에 위치한 신전근육과 앞쪽에 위치한 복근에 의해 지탱되는 구조물”이라며 “근육이 허약하면 사소한 충격에도 디스크가 잘 튀어나오는 것은 물론 튀어나온 정도가 같더라도 통증을 훨씬 심하게 느끼게 된다”고 강조했다.
“MRI 검사 받을 경우 CT 검사는 필요 없어”
이춘성 교수
근육이 강해야 척추가 튼튼해지고 디스크도 잘 안 생긴다는 것이다. 척추 근육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척추 근육 강화 체조를 따로 배우거나 수영 혹은 빨리 걷기, 등산 등을 하면 된다. 요통 환자 10명 중 9명은 매일 1시간씩 걷는 것만으로도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디스크와 관련해 그가 특히 강조하는 몇 가지 충고를 더 들어 보자.
우선 그는 척추 MRI 검사를 강조했다. MRI란 강력한 자장이 형성된 원통형 통 속에 누워 척추의 단면영상을 정밀하게 컴퓨터로 그려내는 검사다.
“척추 MRI 검사는 디스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수술 등 치료법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검사입니다. CT 검사를 받는 사람도 있는데 MRI 검사를 받을 경우 CT 검사는 따로 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CT는 MRI보다 정확성에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준종합병원에서 CT 검사를 받은 후 대학병원에서 MRI를 추가로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일종의 의료낭비라는 것. 이 경우 아예 처음부터 MRI 검사를 받는 것이 고생도 덜 하고 경제적이다.
수술을 앞두고 회의를 주재하는 이춘성 교수.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디스크 진단을 받더라도 치료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전체 디스크 환자의 75%는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한두 달 안에 저절로 좋아집니다.
일종의 자연치유지요. 신경이 심하게 눌려 하지가 마비되거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경우, 통증이 매우 심해 한두 달도 참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일단 기다려 보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는 ‘중심화 현상’이라는 용어를 강조했다.
“디스크 증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다리가 저린 증상이며, 둘째가 허리가 아픈 요통입니다. 디스크가 서서히 낫게 되면 허리가 아픈 요통 증상만 남고 다리가 저린 증상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을 중심화 현상이라고 합니다.”
즉, 통증이 주변부인 다리에서 중심쪽인 허리로 뭉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중심화 현상이 나타나면 자신의 디스크가 치유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
다리까지 당기고 아픈 디스크 초기에는 누워 쉬거나 쉬엄쉬엄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정도의 안정을 취하는 소극적 전략이 좋다. 그러나 통증이 완전히 허리쪽으로만 몰리게 되는 중심화 현상이 완료되면 이때부터 허리 근육을 튼튼하게 하는 체조나 운동을 실시하는 적극적 전략으로 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두 달 쉬었는데도 중심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물론 좋아지지 않는다면 치료가 필요하다. 가장 확실한 치료는 수술이다. 수술 여부는 ▷환자의 증상 ▷척추관의 넓이 ▷튀어나온 디스크의 크기등 3가지 기준으로 결정한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수술 후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이춘성 교수.
이교수는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환자의 주관적 증상이 가장 중요하며 그 다음이 척추관의 넓이, 가장 나중에 고려할 것이 튀어나온 디스크의 크기입니다.
그러니까 디스크가 심하게 튀어나와 보여도 척추관이 넓고 환자가 별로 아프지 않다면 수술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디스크가 조금만 튀어나왔는데도 한두 달 기다려도 계속 심하게 아프다면 수술하는 것이 좋겠지요”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특히 내시경과 레이저를 이용해 디스크를 제거하는 방법, 키모파파인으로 녹여내는 방법, 디스크를 자른 뒤 진공으로 빨아내는 수핵흡입술, 고주파 열로 태워 응고시키는 방법 등 다양한 비수술적 방법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 견해를 보였다.
비수술적 요법에 대해서는 의사들 간에도 이견
흉터가 생기지 않고 입원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수술에 비해 치료 효과가 불확실하고 제한된 환자에서만 효과가 나타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방송 등 미디어에서 이러한 비수술적 치료의 효능을 지나치게 과대포장한다는 비판도 가했다. 학문적 검증이 불충분하며 일부 병원에서 상업적으로 선전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
그러나 비수술적 요법을 위주로 디스크를 치료하는 의사들은 이러한 이교수의 견해에 대해 “가능하면 환자의 신체에 부담을 덜 주는 쪽으로 발전해 가는 현대의학의 흐름에 대해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도 잘못”이라며 반박한다. 내시경 등 비수술적 요법은 이미 주류 의학의 하나로 자리잡았으며 노무현 대통령도 이러한 비수술적 치료를 받고 디스크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디스크의 비수술적 요법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서로 달라 환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의사는 내시경을, 저 의사는 수술을 하자고 하니 말이다.
이 부분에서는 방황하는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전문가 그룹에서 솔선해 객관적 검증을 거친 뒤 공식적인 치료 지침 등 이른바 프로토콜을 내놓아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반적으로는 비교적 30, 40대의 젊은 환자로 디스크가 오래 되지 않은 급성이고 허리보다 다리 쪽으로 많이 당기고 아픈 경우라면 비수술적 요법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척추가 전후 또는 좌우로 휘는 척추 측만증에 대해 알아 보자. 여기서도 이교수는 거침없이 척추측만증과 관련된 편견과 잘못된 상식을 쏟아냈다.
“언론의 겁주기가 문제입니다. 해마다 청소년 대상으로 학교검진을 실시하면 20%의 청소년이 등이 휘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의학적으로 정확하게 진단된 척추측만증은 2% 남짓에 불과합니다. 20%는 과장된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등이 휘어져 보여도 X선 촬영에서는 정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는 척추측만증의 원인이 결코 무거운 가방이나 작은 책상, 자세불량 등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모두 요통의 원인은 될지언정 등을 병적으로 휘게 만드는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세가 나쁘면 척추가 휜다”는 잘못 된 상식
“척추측만증은 85%가 원인을 모르는 이른바 특발성(特發性) 측만증입니다. 유전되는 것도 아닙니다. 책걸상을 바꾸는 것은 결코 올바른 처방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척추측만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20도 미만으로 휜 가벼운 척추측만증은 정기적 병원 방문 등 관찰만으로 충분하다. 20도에서 40도 사이의 측만증은 보조기 착용을, 40도 이상의 심한 측만증은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아주 심한 각도로 휜 측만증이라든지 5∼8세 이전에 일찍 생긴 측만증이라면 폐나 심장 기능 등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척추측만증은 단지 미용상의 문제일 뿐 건강에는 별로 해롭지 않다는 것이다.
보조기에 대해서도 그는 회의적 입장이다.
“국제 학계도 일찍 발견해 보조기를 채우면 효과가 있다는 그룹과 효과가 불확실한 반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으므로 보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그룹으로 양분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여러 가지 논문을 분석해 보면 보조기를 착용하면 당장은 휘어진 각도가 다소 줄어들지만 몇 년 후 보조기를 풀면 다시 보조기 착용 이전의 각도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조기의 경우 잠잘 때를 포함해 하루 22시간 동안 목에서 허리까지 몸을 옥죄는 보조기를 착용해야 하는데 이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에게 매우 큰 고통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척추측만증에 대해서는 아주 심한 경우에 실시하는 수술을 제외하고는 의사들이 별로 해줄 것이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럴 바에는 보조기 또는 기타 검증되지 않은 엉뚱한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차라리 등이 약간 휜 것 자체를 수용하며 밝게 사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리라.
끝으로 허리 건강을 위한 충고 한 마디를 곁들여 보자.
디스크를 포함해 허리를 삐끗하게 되는 가장 흔한 경우가 척추에 굴곡과 동시에 회전이 걸릴 때다. 그러니까 전후좌우 중 어느 한쪽으로 허리가 휜 상태에서 회전이 걸리는 경우다.
예를 들어 허리를 굽혀 물건을 들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불러 고개를 돌려 쳐다볼 때다. 이렇게 되면 척추 사이 디스크에 갑자기 많은 하중이 가해지면서 디스크가 튀어나오거나 척추 주위 근육이 찢어지거나 인대가 늘어나는 요추염좌가 발생한다.
척추는 가능하면 곧추세우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물건을 들 때는 허리를 굽혀 드는 것보다 허리는 편 채 무릎을 굽혔다 펴면서 드는 자세가 좋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요통 환자가 저지르는 오류는 아프니까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요통은 덜 움직여 생긴 문명병이며 아프리카 토인에게는 요통이 없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그가 그의 형인 서울대병원 이춘기 교수와 공동으로 내놓은 책 ‘상식을 뛰어넘는 허리병, 허리 디스크 이야기’에는 ‘아프리카에는 디스크 환자가 없다’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춘성 교수 약력
1980 서울대 의학 학사
1983 서울대 대학원 의학 석사
1988~89 서울대병원 척추 전임의
1991 서울대 대학원 의학 박사
1991~2002 아산재단 서울중앙병원 정형외과 의사
1992~93 Clinical Fellow in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척추기형, 소아정형외과)
1995 울산대 의과대 의학과 정형외과학교실 부교수
2000 울산대 의과대 의학과 정형외과학교실 교수(現)
2001 아산재단 서울중앙병원 기획관리실장(現)
2002 아산재단 서울중앙병원 정형외과 의사(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