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조망
오늘날 인간의 삶을 간략히 조망해 보자. 태어나서부터 언제부터인가 이성에 눈을 뜨게 되며, 주위의 자연을 보고, 인간을 보고, 자신을 보게 된다. 그후 체험에 의해서 발전되어지는 인식은 급기야 인간 본연의 물음인 인생의 존재(생명)론, 가치(진리)론, 그리고 목적(길)론과 같은 원초적인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현대인의 대부분은 이러한 문제들이 1) 너무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것을 발견하거나, 2) 모든 사람들이 회피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3) 그러한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 없이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실제의 본질을 알 수 있는 지성의 눈을 스스로 닫아버리고, 상대적이고 물질적인 문화가 우리의 삶(행동과 신조형성)에 영향을 끼치도록 방치하며, 동질적인 삶 속에서 '열심과 성실'에 위안을 삼으며, '남보다 빠르게, 좋게, 많이'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한평생을 바쁘게 살아가게 된다(winning is the only thing, Vince Lombardi). 한편, 각자의 인생 여정에서 다양한 요인들로 인하여 큰 충격을 접할 때는 본연의 지성이 다시 열리고, 자신의 심연을 다시 돌아보며 인생여정의 방향을 새롭게 수정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환언하여 언급하자면, 우리는 처음 지성에 눈뜰 때에 이미 존재하는 문화나 교육, 그리고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자신의 신념체계(세계관), 그 틀만을 가지고 자기의 삶 전영역을 이해하고 적응하고자 노력했을 뿐, 그 틀 자체의 유무, 정확성, 효율성, 목적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삶은 '본질'에 대한 정답없이 '어떻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틀을 가지고 있으며, 그 틀의 정확성, 효율성, 목적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또한, 어떤 틀에 기반을 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로 이러한 틀에 관한 조망을 넓은 의미에서의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세계관의 의미는 역사적으로 볼 때 독일어 'We1tanschauung(세계관)' 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발전되어져 왔다. 특히, 세계관의 독특한 의미는 성경을 통하여 세계를 포괄적으로 조망하려고 했던 기독교에서 구체적으로 발전되어져 왔으며, 20C에 들어오면서 많은 개신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보다 심화되어지고, 삶의 전 영역에서 성경에 순종할 수 있는 준거틀로 활용되어지고 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1) 사유와 삶의 전 영역을 통일시키기 위해서, 2) 선한 생활을 정의하고 인생의 희망과 목적을 바로 찾기 위하여, 3) 올바른 사고를 하기 위해서, 4)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창조론적(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용이지만, 이에 앞서 세계관의 의미와 속성, 그리고 다른 포괄적인 체계들과의 관계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세계관이란?
세계관의 발생과 개념사에 대한 깊은 이해는 본고의 의도를 벗어나기 때문에 제외코자 하나, 세계관의 의미를 가장 손쉽게 이해한다면, 한마디로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삶에 대한 어떤 목적을 추구하면서 사는 피조물로서, 관점 대신에 본능에 따라 사는 동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명체이다. 이 경우 인간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러한 선택은 그들이 삶을 보는 방식에 따라서 달라진다. 세계관(worldview)이란 한 사람이 사물들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 신념들의 포괄적인 틀로서, 사물의 존재양식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들로 볼 수 있다. 다른 의미로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존재론, 가치론, 목적론에 대해 우리가 견지하고 있는(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건, 일관성이 있든 없든 간에) 일련의 전제들(참이거나 부분적으로 참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거짓일 수 있는 가정들)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어릴 때부터의 경험들이 이성의 합리화 작용에 의해서 무의식적, 무의도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구조화되어진다. 세계관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서 언급한 일련의 전제들이 전이론적(pre-theoretical)이라는 데 있다. 이것의 의미는 우리가 어떤 전제들을 갖게 된 것이 먼저 그것들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제들을 생각할 때 그것들이 이미 거기에 있으면서 우리의 모든 사고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단 어떤 전제들에 주의를 돌리면 그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원한다면 의식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저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다음에 가서야 그것들이 무엇인지 발견한다.
세계관을 이루는 전제들은 무엇일까? 삶을 포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전제들은 논지에 따라 다양하게 기술될 수 있지만, 다음의 기본적인 질문들로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세계관에 따라 다른 대답을 가질 것이며, 기독교적 세계관과 진화론적 세계관의 예를 들어 비교 기술해 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전제들(예시) |
기독교적 세계관 |
진화론적 세계관 |
참된 최고의 실제 |
하나님, 말씀 |
없음, 물질원인 |
인간은 누구? |
피조물 |
진화의 도상중 생명체 |
인생의 목적? |
하나님의 영광 |
행복(물질적 욕구충족) |
사후의 세계는? |
하나님 나라 |
없음 혹은 모른다 |
윤리의 근거는? |
하나님의 속성, 사랑 존재주의, 이타주의 |
인간적인 공존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 소유주의 |
역사의 의미는? |
구속사적 개방역사 |
인본주의적 개방역사 |
자연을 보는 관점은? |
질서, 조화, 균형 목적성을 가진 상호공존 |
인본주의적 정복주의, 소유주의 |
삶의 방법은? |
절대주의, 성경 |
상대적 삶의 가치, 극단적인 금욕주의, 극단적인 쾌락주의 |
가치판단체계 |
창조,타락,구속, 구조와 방향 |
진화론, 이원론 |
(3) 세계관과 철학, 신학
세계관은 삶의 전영역(세계)을 포괄적으로 조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세계관의 의미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신학이나 철학과의 관계성에 의문이 제기되나, 그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시공간적 차원에서 존재한다.
첫째로, 일반적으로 세계관, 철학, 신학은 범위가 포괄적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비슷하지만, 신학이나 철학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전문적인 탐구영역이다. 그러나 세계관은 상당히 다른 문제로서, 삶에 대한 어떤 조망을 갖기 위해서 어떤 학위나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성경적 지혜나 건전한 교리가 신학훈련만으로 높아지고 풍부해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둘째로, 철학이나 신학은 학문으로서 과학적이며 이론적인데 반하여 세계관은 그렇지않다. 세계관은 우리 모두가 매일 일상생활에서 당면하는 경험의 문제요,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는 직관적인 이성에 관한 문제이다. 즉, 세계관은 철학보다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실재와 더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관은 성질상 과학적이기 보다는 비과학적이고 오히려 전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과학적 태도는 항상 경험의 직관적인 앎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신학과 과학은 세계관을 과학적으로 다듬은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때 다양한 신학과 과학의 사조는 세계관에 기인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구조와 방향이라는 두가지 개념을 사용함으로, 세계관, 신학, 철학간의 관계성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은 사물들의 구조(통일성과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포괄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인 반면. 신학은 사물들의 방향(피조물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거역, 죄와 은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포괄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계관은 구조와 방향 모두에 동등한 관심과 영향력을 가진다.
(4) 세계관과 문화
한편, 삶의 다양한 분야를 총괄하여 문화라고 규정할 때, 세계관과 문화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문화인류학자들은 대개 문화를 크게 세계관(worldview), 가치체계(value system), 행동양식(behavior pattern)의 세 영역으로 나눈다. 이중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장 심층부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세계관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활동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포함하는 신념체계에 기초를 둔 문화 사회적 행동과 실체의 근본 출발점은 바로 세계관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의 신념을 형성하는 것은 단순한 일상적인 체험이나 의지판단의 정도가 아니라 종교적 신앙이 되므로 종교는 세계관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세계관은 종교적이라고 볼 수 있다.
(5) 세계관의 속성
세계관은 단순히 삶에 대한 시각(vision of life)만이 아니라, 삶을 위한 시각(vision for life)도 제공한다. 즉, 우리의 세계관은 우리의 가치기준을 결정하며, 동시에 우리 주위의 세계를 해석하는 일련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세계관은 우리 삶의 인도자 역할을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순수하게 자의적인 견해를 취하거나 전적으로 무원칙적인 결정을 할 수 없는 책임을 지닌 피조물이기 때문에 무엇인가에 의해 인도를 받아야 한다. 이 무엇이 바로 모든 인간이 지닌 믿음이며, 믿음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가 의식적으로 지닌 철학이나 신학에 앞서 세계관이 제공하는 구조에 대한 이해와 방향제시의 기능없이는 살 수 없다. 또한, 우리는 개인, 단체, 혹은 민족의 동질적인 세계관에 의해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가장 가치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을 구분한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가 가진 세계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낙태, 사형, 체벌, 동성연애, 인종차별, 인공수정, 혼외정사 등)에 직면할 때 특히나 어떤 함의가 자신들의 신념들과 상치될 때는 그들의 세계관이 쉽게 드러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어떤 세계관을 견지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행동과 신념이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세계관을 수정하거나, 행동을 신념에 맞추게 된다. 만약 오랫동안 적절한 세계관이 성립되지 않으면 인간은 자아상실에 이르게 될 것이다.
(6) 세계관의 형성과 변화
세계관 형성은 시공간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경험의 파편들을 합리적으로 체계화해서 폐쇄적인 구조로 만들려고 하는 인간의 이성에 그 기본을 두고 있다. 다른 의미로 세계관이란 인간의 이성이 경험을 합리화시키면서 형성한 하나의 폐쇄적인 사고의 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틀이 구체화되고 조직적이 되어 구조적으로 균형이 잡히고, 그 사회에서 용인될 때 철학이나 혹은 과학계에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정착되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러한 철학이나 패러다임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바로 폐쇄성에 있다. 한 철학이나 패러다임이 다른 것으로 변해지기 까지는 바로 그 폐쇄성에 의해서 그것이 유지된다. 세계관이란 실재(reality)에 대한 바른 파악이다. 그렇다면, 어떤 세계관이 가장 올바른 것일까? 성경적으로 볼 때,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바른 관계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은 이성만을 진리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지식정도에 관계없이 자신의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절대적인 진리라고 확신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모든 인간이 오감을 통하여 지각하는 실재가 거짓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나 사건이 함축하고 있는 영적 의미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자신이 감각하고 경험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성경적 세계관의 변화는 오직 순종으로만 얻어질 수 있는 은혜인 것이지, 노력해서 획득하는 산물은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보다 나은 효율적인 세계관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타자를 이해시킬 수는 있지만 그의 몸에 배어 있는 세계관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자주 경험한다. 왜냐하면 세계관은 경험과 이성 모두를 포함한 보다 근원적인 뿌리에서 발생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가치체계 정도에만 영향을 미치는 인간지혜에서 나온 설득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역으로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7) 세계관과 그리스도인
앞서 세계관의 본질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그 속성들을 살펴 보았으며, 다시 한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세계관은 전이론적(pre-theoretical), 전과학적(pre-scientific), 전철학적이다.
2) 세계관은 전실재(前實在)에 대한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조망(universa1 and comprehensive view)이다.
3) 세계관은 하나의 직관적, 신념적 구성물이다.
4) 세계관은 모든 실재계를 보고 해석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선험적(a priori)이며 주관적인 틀이다.
5) 세계관은 우리가 실재를 보고 이해하는 인식론적 원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생활에 영향을 주고 그것을 이끄는 실제적 원리가 된다.
6) 세계관은 개인적이지만. 체계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지닌다면 공동체가 공유하게 된다.
7) 세계관은 종교적(religious)이다.
8) 세계관은 문화를 형성한다.
오늘날 우리의 삶과 문화에 가장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세계관은 무엇일까? 많은 주의나 체계, 그리고 여타 다양한 세계관을 언급할 수 있지만 가장 포괄적인 근원은 진화론적 세계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세계관이 지향하는 삶의 의미는 현재 우리 지성이 가지는 단적인 태도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는 말을 우리는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말을 성경적 세계관(하나님중심주의적)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다. 믿음과 확신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진화론적 세계관에 있어서는 우리가 먼저 알았기 때문에 믿는 것이지만, 성경적 세계관에서는 믿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우리의 삶 전영역(구조)에서 하나님의 도구(방향)로 사용될 수 있을까? (롬 12:2, 고후 3:9-10). 창조론적(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기독교 지성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독교적 지성은 기독교적 사고의 선행조건이며, 또한 기독교적 사고는 기독교적 행동의 선행조건이기 때문이다 (Harry Blamires). 기독교적 지성이란 성경적 세계관 안에서 세속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자료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 능력은 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제임스 사이어(정옥배 역).1994. 지성의 제자도,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
.알버트 월터스 (양성만 역). 1992. 창조, 타락, 구속,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
.전광식. 1988. 학문의 숲길을 걷는 기쁨. CUP
.안점식. 1998. 세계관을 분멸하라. 죠이션교회출판부
.리챠드 미들튼, 브라이언 왈쉬 (황영철 역).1987.그리스인도의 비전.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IVP)
.아더 홈즈(이승구 역). 1991. 기독교 세계관. 도서출판엠마오
.헤리블레마이어 (황열철 역). 1993.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도서추판 두란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