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낙강 시조 시인 안동을 답사하다
<안동 월영교, 선성현 객사, 석빙고, 연미사, 봉정사 >
2024년 4월 13일(토) 11명의 회원들이 안동 월영교 주차장에서 만났다. 낙강의 발전과 회원 상호 간의 친목 도모를 위해서다.
월영교 다리는 시민들에게 공모해서 채택된 이름이다. 나무다리로는 가장 긴 다리이고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과정에서 고성 이씨 이 응태의 무덤에서 이응태의 미이라와 남편을 향한 부인의 애끓는 심정이 담긴 한글 편지와 남편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을 엮어서 만든 한 켤레의 미투리가 발견되었다. 안동시는 원이 엄마 사연을 집어넣어 월영교를 미투리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연인들이 이 다리를 건너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밤에는 조명등과 달그림자가 비취어 너무 아름답고 달을 닮은 문 보트 타는 것도 좋다고 한다. 야행이라는 행사가 해마다 열리는데 차가 밀려 못 들어 올 정도라고 한다. 1975년 안동댐 개통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오셨고 안동댐 건설로 많은 문화재가 사라졌다고 한다. 일제가 임청각의 맥을 끊기 위해 마당으로 철길을 내었는데 지금은 쓸모없는 철길이지만 앞으로는 이쪽을 복원하고 철길은 잘 활용한다고 한다. 정자에서 사진도 찍고 월영교 다리를 건너면서 해설을 들었다. ‘시(詩)가 있는 산책길’ 에 걸려있는 많은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잠시동안 마음의 평화를 느끼며 걸었다.
선성현 객사는 숙종 때 관료나 높은 양반들이 와서 주무시고 가는 곳인데 초하루와 보름에 전패를 모시고 궁궐을 향해 절을 하였다고 한다. 안동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다.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임금님에게 진상할 때 생선 부패를 막기 위해 조선 영조 때 부임한 예안 현감 이 매신이라는 사람이 사비로 지었다고 한다. 국보, 보물 몇 호라는 것을 지금은 쓰지 않고 동네 이름을 따서 국보, 보물을 쓴다고 한다.
해설사의 설명 들을 때는 해설사보다 앞에 가서는 안 된다는 예절도 알게 되었다.
일부 회원들이 몸이 불편해 못 오니까 젊을 때 많이 다니라고 조언도 해 주었다.
원이 엄마 테마길을 걸으면서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 불릴 만큼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다시 새기며 사진 촬영도 했다.
박순화 회장님이 까치구멍집(헛제사밥)에서 점심을 사 주셔서 안동의 특별한 맛을 느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회원이신 석제 정 재충 시인님의 개인 시화전을 관람했다. 구경하는 도중 정말 다방면으로 대단한 재능을 가지신 분이란 걸 깨달았다.
다음엔 지형이 제비 꼬리와 연관이 있다는 연미사에 갔다. 제비원 미륵불(이천동 석불)을 보러 미륵전에 들어서면서 ‘한 번의 화가 만 번의 공덕을 무너뜨린다.’ 와 ‘남의 허물을 찾지 말고 자신이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살펴라.’ 는 말이 눈에 띄었다.
미륵불은 미래에 오실 부처님을 말하는데 제비원 미륵불에서 원이라는 것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여관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도리원, 조치원 등)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 준다고 하여 입시 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미륵불을 만드는데 두 형제가 내기를 했다. 형은 빈둥빈둥 놀다 머리 부분만 만들어서 올려놓았는데 형이 이겨서 동생은 죽었다는 설도 있다. 임진왜란 때 위급하여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와서 전쟁이 끝나고 말을 타고 돌아가는데 말이 이곳에 멈추자 조선의 맥을 끊기 위해 미륵불의 목을 치고 갔다. 다시 목을 붙여서 목이 불그스름하게 보인다고 한다. 여태껏 이렇게 큰 미륵불은 처음 보았다. 여기 미륵불도 갓바위처럼 모자를 쓰고 있다. 관을 쓰고 있으면 자식들도 관을 쓰라는 의미로 기도하러 온다고 한다.
공원 나무 그늘에 앉아 김전 시인님이 낙강의 원고 제출과 시기, 지원금, 출판사, 올해의 낙강 문학상 기타 등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천등산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672년에 능인이 지은 절로 1300년이 넘었다.
고려 태조 왕건, 고려 공민왕, 엘리자베스 여왕 세 분의 왕이 다녀간 절이다.
우리나라 절은 4000여 개가 있는데 2018년 세계문화유산에 7개 절이 등재되었다. 경북에는 두 군데가 있는데 봉정사와 영주 부석사다.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확인되었다.
구경을 마치고 개울가 정자에 가서 자리를 깔고 떡과 오렌지를 나누어 먹으면서 회장님이 내방가사도 읽어주고 회원 간의 화목 도모의 시간을 보냈다. 오늘 하루 역사에 대해 깊이 알고 꽃구경과 마음의 여유를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헤어졌다.
*객사: 고려 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여 외국 사신이나 다른 곳에서 온 벼슬아 치를 묵게 하던 숙소
*전채: 임금님을 상징하는 ‘殿(전)’자를 새겨 각 고을의 객사에 세운 나무패.
<대구광역시 본부> 유정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