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일요일
독일 베를린Berlin에 도착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역사가 된 아우토반Autoban을 타다.
드레스덴 에탑 호텔 숙소에서 오전 10시 반쯤 출발하여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탔다. 한참을 달리다 아들에게 지금 시속 얼마를 달리느냐 물었다. 130km라 한다. 그런데 빠르게 달리는 느낌이 없다. 그저 조용히 편안히 달려가고 있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가 바로 그 유명한 독일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n이란다. 자동차의 떨림도 속도감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조용히 달리고 있다. 무제한 고속도로라 대형사고의 위험이 높다 하여 2차선을 타고 조심운전을 하고 간다. 130km이상 밟지 않고 추월선이 아닌 2차선으로 달렸다.
이제는 옛날이 된 박정희 대통령께서 아우토반을 보시고 시범으로 경인선 도로를 건설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428km의 경부선 고속도로를 건설하였다. 당시 야당 국회의원과 국민들의 심한 반대에도 장기적인 큰 안목으로 어려운 여건에서 건설한 고속도로는 이제 전국으로 이어져 산업화의 동맥으로 퍼졌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시너지가 된 아우토반을 달리니 마음이 찡 하였다.
4대강 살리기와 세종시 문제로 야당과 여당 그리고 계파 간의 뜨거운 논쟁을 보며, 고속도로 건설할 당시의 정치권을 생각한다. 어떤 것이 진정한 국가의 장래를 위한 것인지.......
그 시절 박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발전이 있었을까?
고속도로 건설과 지금의 세종시와 4대강 살리기가 같은 맥락인지도 알 수 없는 나는 아무쪼록 정치인들이 자기 단체의 이익보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과 미래를 먼저 생각해주면 좋겠다.
말로써 아니고 행동으로 실천하면 하는 바램이다.
여행하는 동안 독일로 들어가는 길은 거의 고속도로다. 고속도로는 역시 독일이다.
자동차로 여행하는 사람은 고속도로가 안전하다 느껴졌다. 국도와 지방도로를 달리다 고속도로와 연결 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아우토반이 끝나는 지점
쉬어갈 휴게소도 갖춰져 있고 주유소가 바로 있으니 기름 걱정으로 마음조릴 필요도 없으며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도 적정선으로 맞출 수 있어 한시름 놓을 수 있다.
독일의 고속도로는 도로비가 전혀 없다. 그러나 아우토반 도로 모두가 무제한 도로는 아니다. 교통 법규가 엄격하여 도로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일반 차량으로 위장한 경찰차가 속도 신호 위반 추월선을 집중 단속한다. 위반하다 걸리면 엄청난 벌금이 부과 된다.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위도 법으로 금하고 있다.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 1000유로의 벌금을 문다. 집게손가락과 검지로 (우리의 OK사인) 원을 만드는 것도 중대한 모욕이다.
경찰관에게 잘못하면 1500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식당에서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 모두가 계산을 치러야 하기에 물이나 식빵 같은 걸 함부로 먹어선 안 된다.
유럽 즉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며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격한 법규가 적용된다. 우리가 명심할 일이다.
베를린에 도착하니 3시 반경이다.
딸이 영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한 민박집이다. 70년대 간호사로 왔다 독일인과 결혼한 60대 후반의 주인아주머니는 우리가 싸온 주먹밥을 내놓으며 물을 좀 달라 하였더니 한국식 곰탕과 김치 밥 밑반찬을 차려 주었다. 훈훈한 인정에 감동받고 여독이 달아났다.
민박집 주인의 정보로 자동차를 두고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동서독 장벽이 있던 곳.
미군쪽 체크포인트 찰리
동독과 서독의 분단 지점에 있던 옛 미군의 검문소 자리에 내렸다.
우리가 책과 뉴스에서 보던 베를린 장벽은 사라지고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얼마 되지 않는 벽 앞에 동베를린 군복을 입은 안내원이 사진을 찍어주며 돈을 받고 있다. 이념의 아픔이 관광자원이 되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우리나라에 어느 날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38선 양쪽의 DMZ 지역은 오염되지 않은 천연의 자원, 생태지역으로 남아 세계의 학자들이 몰려오고 수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나라가 되리라는 상상에 잠시 빠져들었다.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라 한다. 지금 동베를린에는 완전히 현대식 최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었다.
장벽이 무너진 베를린은 현재 독일의 수도다. 서베를린은 역사적 유적과 장벽이 무너지기 이전의 건축물이 그대로 있어 동베를린이 훨씬 현대적인 도시, 우리나라의 강남 같은 살기 좋은 모든 편리한 현대 시설을 갖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베를린은 장차 옛날과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거대한 도시로 발전할 것 같았다.
브란덴브르크 Brandenburger 문
브란덴브르크문의 정면 모습
도리아식 기둥으로 나열된 문 위에 올리브 가지를 든 여신을 태운 고대 로마의 마차가 장식 되어 있다.
독일 분단이후 접근이 금지된 구역이었으나 통일이 된 이후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관광객들과 공연객들 여기저기 모여든 사람들로 왁자그르르한 광장이다.
국회의사당 Reichstag
제국회의사당이라 불린다. 1871년 독일이 제국형태로 하나의 국가가 됨을 기념하여 지은 의사당이다. 공산주의자들이 불을 질렀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어 그대로 방치되었다. 1957년부터 개,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1972년까지 하였다.
르네상스식 건물에 유리로 된 현대식 돔을 세운다 결정하였을 때 시민들이 격렬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통일 독일의 새로운 상징물이 되어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독일의 건축물은 유럽 다른 국가들의 건물보다 웅장하고 거대하다.
국회의사당 위의 유리돔 모습
의사당 입구 높은 계단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어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국회의사당이라는 것만 알고 의사당에 무엇을 보려고 저 많은 인파가 몰렸을까.
무언가 볼게 있겠지 하고 기다렸다.
국회의사당 출입이라 외국 출입국 관리소처럼 철저하게 신분 조사를 하였다. 사실 무엇을 보러 가는지 모르고 엘리베이트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트가 얼마나 큰지 한번에 백명 넘게 태울 수 있어 차례를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내리니 의사당 옥상이 온통 유리로 된 거대한 돔이다. 태양열과 햇빛을 조명으로 사용하려고 투명돔을 설치하였다. 돔 안에 거울기둥들이 여러 각도로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여기서 반사된 햇빛이 본회의장 구석구석까지 비추기 위함이다.
돔 입구에 전쟁으로 파손된 국회의사당의 모습에서 현재 돔이 건설되기까지의 과정을 사진으로 자세하게 전시해 놓았다.
모든 설치물이 과학적으로 설계되었음이 놀랍다. 돔의 위까지 원을 그리며 올라가니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다. 원모양의 좌석에 누워서 파란 하늘 흰 구름과 마주하여 한동안 나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려오면서 베를린 시가지를 동서남북 돌아가며 두루 내려다 볼 수 있었고 시내 주요 건물 위치의 설명서가 있어 좋은 관광 안내서가 되었다.
프라하처럼 시내 100번 버스가 라인 강변을 따라 유명 유적지 대부분을 통과한다.
일 일권을 사서 타고 내리면서 옛날엔 가톨릭 성당 이었지만 지금은 개신 교회가 된 베를린 성당과 빨간색 건물인 시청사를 구경하였다.
포츠머 Potsdamer광장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을 통일이 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국제도시로 발전시켜 지금은 최고급 쇼핑몰, 식당가, 복합 영화관, 호화 아파트, 사무실 등이 들어서면서 베를린 최고의 번화가가 된 곳이다. 이곳 식당가에서 저녁을 먹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곳곳에 드넓은 광장과 숲이 많아 수도 도심이면서 쾌적하고 시원시원하여 지나쳐온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발전 가능성이 커 보였다.
도시 여기저기에 공사가 한창이었고 발전하는 독일을 느끼게 한다.
건물의 크기 사원, 궁전, 현대 건축물 모두가 대단한 스케일로 독일이 미래에 제일 잘 사는 나라, 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