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4:1-17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감당하지 못할 고난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면 교우님들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오늘 본문은 하만의 계략으로 인해 유다인을 진멸하라는 조서가 배포 되어 11개월 후에는 모든 유다인들이 공식적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지게 되어 모르드개도 알게 됩니다.
유다인들의 통곡(1-3절)
(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이와 같은 조서가 내려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은 하만에게 꿇어 절해야 했지만 모르드개는 꿇지도,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만은 모르드개에 대한 증오심이 커져 유다인 전체를 진멸 시키는 조서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이 일을 알고 자기 옷을 찢고 베 옷을 입었습니다. 이 행동은 자신이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모든 유다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통곡입니다. 그는 슬픔을 감추지 않고 성중에 나갔고, 더 나아가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습니다. 모르드개의 통곡은 널리 퍼져 온 유다인에게 전해집니다.
(3)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죽음을 11개월 앞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겠습니까? 애통하며 울며 부르짖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억울함을 왕에게 전하고 싶었으나 굵은 베 옷을 입은 사람은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법이 있기에 각 지방에서 모두가 베 옷을 입고 울며 재 위에 누웠습니다. 유다인들의 행동은 그들이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다인들을 진멸 한다는 조서로 인해 모두가 슬픔에 빠져 베 옷을 입고, 울며 낙심하여 수산성이 어지러운 상황이었지만 이와 대비되는 한 명의 유다인이 등장합니다.
상황을 알게되는 에스더(4-11절)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모든 유다인들이 슬픔에 빠졌지만 왕궁 안에 있던 유다인 왕후 에스더는 평온했습니다. 에스더도 유다인이지만 유다인 진멸에 대한 조서가 내려진 것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온 나라의 유다인들이 애곡하자 에스더는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아 매우 근심하게 됩니다. 이에 정황을 제대로 알고자 내시를 통해 모르드개 보냈으나 모르드개는 베옷을 벗는 것을 거절했고, 에스더는 다시 내시 하닥을 불러 지금의 상황을 알아보도록 모르드개에게 보냅니다.
(5-7)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하닥이 대궐 문 앞 성 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에스더는 내시 하닥 통해 상황을 듣게 되는데, 모르드개는 하만으로 인해 모든 유다인이 죽게 된 것과 그가 유다인들을 죽이기 위해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정확한 액수까지 하닥에게 전달합니다.
그 금액은 에스더 3장 9절에 나오는데, 은 1만 달란트의 뇌물입니다. 1달란트는 약 34kg입니다. 그러니까 10,000달란트는 34만kg, 즉 340톤입니다. 이것은 하만이 왕에게 엄청난 뇌물을 드린지 알 수 있고, 그가 유다인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모르드개는 수산 궁에서 내려진 조서 초본을 하닥을 통해 에스더에게 전달하며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도록 왕 앞에 나가 간절히 구하라고 말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에스더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합니다.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당시 왕에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녀를 막론하고 왕의 부름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제도가 생긴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에스더 2장 19-23절을 보면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아 있다가 왕을 암살하려는 소식을 듣고 전달하여 왕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이러한 암살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왕의 부름이 없이는 왕에게 갈 수 없었고, 다른 한 가지는 이러한 법을 제정함으로 왕권을 더욱 강화하고, 왕을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왕의 부르심 없이는 나갈 수 없다는 것을 하닥을 통해 모르드개에게 전달하자 모르드개는 다시 자신의 의견을 에스더에게 전달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13-17절)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모든 상황이 절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유다인을 진멸하는 조서는 이미 내려졌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에스더임이 확실하지만 이미 왕에게 나가지 못한지도 삼십 일이 지나 왕에게 나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에스더는 이제 두 가지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민족을 버리고 왕후의 삶을 영위할 것인가?, 왕후의 자리를 버리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인들과 고난 받을 것인가?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돌이켜보면 에스더가 어떤 이유로 왕후가 될 수 있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앞서 에스더 1장에서 왕후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역했기에 그녀가 폐위되고, 에스더가 새로 왕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에스더는 자신이 왕의 명령을 거역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는 다소 과격할 수 있으나 올바른 말을 전달합니다.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잠잠하다면 너는 살고, 유다인들이 죽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다인들은 구원을 받겠지만 네 아버지의 집이 멸망하고, 네가 죽게 된다’고 말합니다.
본문 14절에 유다인이 구원을 받을 곳이 다른 데라고 말하는데, 다른 데라는 곳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에스더가 나서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모르드개의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또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유다인들을 구할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우상화 시키지 않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말한다면 에스더는 더욱 높아지겠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은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며 에스더에게 믿음의 도전을 합니다. 모르드개의 말을 들은 에스더는 마침내 마음을 정하게 됩니다.
(15-16)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는 자신을 위해 모든 유다인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요청하였고, 자신은 왕의 명령을 어기며 나아가겠지만 죽으면 죽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에스더의 모습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왕의 명령을 어기게 되면 죽는 다는 것을 알고도 행하고 있습니다. 마치 다니엘이 왕의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창문을 열고 기도한 것과 또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태복음 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고, 나를 위해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는 말씀을 통해 에스더를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을 위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인을 위한 희생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지 않고, 오히려 잃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될 것입니다.
에스더의 결단을 듣게 된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요청대로 유다인들을 모아 함께 금식하고 기도하기에 매진합니다. 이 모습 역시 베드로가 투옥되어 있을 때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했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에스더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묵상해 봅니다.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올라가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면 그녀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고백을 하면서 왕에게 나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또한 왕후로 세워 주신 것도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는 오직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한 것은 순간적인 기지가 아니라 삶에서 쌓아온 신앙의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어떤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매일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기에 사자굴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고, 에스더 역시 매일의 신앙이 쌓였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에스더가 살아가던 시대와 분명 차이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각자 어떤 환경에 있든지 각자의 믿음을 삶에서 나타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과 환경은 다를 수 있으나 변하지 않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믿음을 드러내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누군가는 가정이 될 수 있고, 누군가는 직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에스더에게 하신 것과 같이 동일하게 도전하십니다.
“네가 그 가정에 있는 것이, 혹은 그 직장에 있는 것이, 그 교회에 있는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이 물음에 각자 삶의 신앙을 쌓아 믿음으로 대답하는 모든 교우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억울함에 울부 짖는 유다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에스더를 통하여 죽으면 죽으리라 말하며 믿음의 고백을 하게 하시는 것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 기쁨인 것을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삶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주님 내가 지금 속해 있는 가정과 직장과 공동체 속에 나를 세워주신 이유를 항상 기억하며 매일의 신앙을 쌓아가며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의 고백을 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매일의 삶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지키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모든 유다인들은 조서가 내려지자 옷을 찢고 통곡하였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통곡하고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면 언제인지 생각해 봅시다.
2.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에 대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잠잠히 묵상하며 내가 속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 묵상하고 실천합시다.
3. 내가 속한 가정과 직장, 공동체 속에서 내가 믿음으로 고백하고 감당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4. 나의 삶 속에서도 에스더와 같이 믿음의 행동을 했던 적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적어봅시다.
(작성: 김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