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과 임진강 도보(네 번째-2)
(전곡선사유적지∼적성면자장리, 2022년 10월 29일∼30일)
瓦也 정유순
오후부터 걷기는 본격적인 임진강 답사로 강변 동이대교 부근에서 시작한다. 임진강(臨津江)은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황해북도 판문군과 경기도 파주시 사이에서 한강으로 유입되어 서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옛날에는 더덜나루(다달나루)라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임진강이 되었다. 즉<임(臨)>은 <더덜>이라는 뜻으로 <다닫다>라는 뜻이며, <진(津)은 <나루>라는 뜻이다. 그밖에 <이진매> 즉 <더덜매(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이라고도 하였다.
<동이대교>
임진강의 길이는 254㎞이고 유역 면적은 8,118㎢로서 북한에서 9번째로 넓은 유역 면적을 갖고 있으며, 한강의 제1지류다. 전체 유역 면적 중 남한 지역이 약 3,008㎢(37%), 북한지역이 5,110㎢(63%)를 차지하고 있다. 강원도 북부를 흐르면서 고미탄천(古味呑川)과 평안천(平安川)이 합류하고, 경기도 연천에서 한탄강(漢灘江)과 합류한다. 고랑포를 지나 문산 일대의 저평지를 흐르는 문산천과 합치고 하구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든다.
<임진강 주상절리>
임진강은 대부분의 중상류 구간이 추가령구조곡을 지난다. 추가령구조곡은 서울과 원산 사이 약 160㎞ 정도의 직선 모양의 골짜기로 구조 운동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약한 지반이 갈라진 틈으로 많은 양의 용암이 솟아 흐르는 열하분출(裂罅噴出)에 의해 형성된다. 현무암 협곡은 한탄강과 만나는 도감포 북쪽이 두드러져 임진적벽으로 불린다. 중상류 지역 상당 부분이 군사분계선 북측인 북한의 산지에 있고, 중하류는 비무장지대생태권을 형성한다.
<임진적벽>
민족의 분단으로 더 이상 북으로 가지 못하고 발걸음은 당포성으로 향한다. 당포성(唐浦城)은 임진강과 당개나루터로 흘러드는 하천이 형성한 삼각형 모양의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고구려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강에 접해 있는 두 면은 절벽이기 때문에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았으며, 평지로 연결되어 적이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나머지 동벽에만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내부를 성으로 사용하였다.
<당포성배치도>
<당포성전망대>
특히 당포성 동벽(東壁)의 규모는 높이 6m, 폭 31m, 길이 50m다. 겉으로 보기에는 돌을 쌓아 만든 성벽으로 보이지만 석성을 쌓기 전에 먼저 점토를 다져 쌓은 후 그 외면에 석성을 쌓아올린 토심석축(土深石築)의 구조다. 성벽 앞에는 폭 6m, 깊이 3m의 구덩이(溝)를 만들었고, 외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된 수직의 기둥홈(柱洞)이 관찰된다. 이는 중국 집안의 환도산성, 평양의 대성산성 등 고구려의 산성 등에서 확인된다고 한다.
<당포성 동벽>
<당포성과 임진강>
당포성 전망대에는 삼족오 깃발이 펄럭인다. 태양이 하늘을 건너기 때문에 하늘을 나는 새 가운데 까마귀와 관련된 설화가 국가를 상징한다고 믿었는데, 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인들이 자신들은 가장 위대한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원형의 태양 속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다. 국가의 상징인 삼족오는 지배인들의 전쟁도구장식, 깃발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포성의 삼족오기>
<삼족오 문양>
서둘러 당포성을 돌아 나오는데 입구 공원에 조성된 밭에는 목화가 재배되고 있었다. 아욱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인 목화(木花)는 솜의 원료로 면화(綿花) 또는 초면(草綿)이라고도 한다. 솜은 탄력이 있고, 복원성(復元性)이 좋으며 광택이 있고 찰기가 많아서 솜을 펼 때 잘 끊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
<목화꽃>
주산지는 미국이 첫째이고, 중국·러시아·인도·멕시코·이집트 등이다. 1957년 경부터는 목화 외에 폴리에스터·아크릴·염화비닐·폴리프로필렌 등의 합성 솜이 생산되어 많이 공급되고 있다. 용도로는 실·직물·이불솜·옷솜 외에 위생·의료용의 탈지면으로 사용되며, 공업용으로는 광물질인 암면(岩綿)·석면(石綿)·유리섬유의 솜 등이 쓰인다.
<목화열매(솜)>
당포성을 나와 평화누리길 11코스를 따라 숭의전으로 이동한다. 숭의전은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임진강변 절벽 위에 있다. 숭의전은 조선 개국 후 1397년(태조6년)에 태조의 명으로 묘(廟)를 세우고 1399년(정종원년)에는 고려 태조 외 7왕을 제사지내도록 하였으나, 문종 때 중건하여 숭의전(崇義殿)이란 전호(殿號)를 내리고, 고려왕조 8왕 중 태조, 현종, 문종, 원종 4위만 봄·가을로 향축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숭의전 천수문(삼문)>
<숭의전 가는 길에서>
문종 1년(1451년)에는 이름을 바꾸어 공주에서 살던 고려 현종의 후손이 이웃사람들과 시비로 왕(王) 씨 성(姓)을 숨기고 산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했는데, 오히려 왕순례(王循禮)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3품관직과 토지와 노비를 지급하여 숭의전에서 대대로 제향을 받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신숭겸, 정몽주 등 고려 충신 16위를 배향하였다. 그리고 숭의전이 있는 마전현(麻田縣)이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숭의전>
<고려왕조 위패>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이를 계승하였으며, 건물은 정전(正殿)과 후신청(後臣廳), 전사청(典祀廳), 수복사(守僕司) 등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던 것을 1973년 왕 씨 후손들이 정전을 복구했고, 국비 및 지방보조로 1975∼76년에는 부속건물인 이안청(移安廳), 배신청(陪臣廳), 삼문(三門)을 원래의 위치에 복원했다고 한다. 복원하기 전까지는 터만 남아 있어 숭의전지(崇義殿址)라고 불렀다.
<배신청>
<배신청 16위패>
숭의전 초기에는 개성에 있던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동상을 옮겨와 제사를 모셨으나 세종 때에 주자가례에 따른 제사법이 바뀌어 동상과 초상화 대신 위패로 바뀌어 개성의 현릉(왕건의 릉) 곁에 매장하였다가 지금은 평양의 중앙역사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숭의전 앞으로 흐르는 임진강변의 잠두봉 벼랑에 <잠두절애(蠶頭絶崖)*>라는 시가 있는데, 이 시는 1789년(정조13년) 마전군수였던 한문홍(韓文洪)이 숭의전 수리를 마치고 옛 왕조의 영화와 쇠락 속에 담긴 무상함을 담아 새겨둔 글이다.
<잠두절애 시>
미산면(嵋山面) 아미리(峨嵋里)에 있는 숭의전을 나와 평화누리길 10코스를 따라 임진강변 아미산 능선길로 접어든다. 지금 밟고 가는 푹신한 낙엽 밑에는 시대미상의 보루인 연천아미리보루(漣川峨嵋里堡壘)가 있을 법한데 보이지 않는다. 자연석으로 정상부를 원형으로 쌓았는데, 가운데 부분에 함몰(陷沒)된 부분이 있으며 붕괴 현상의 지속으로 석재(石材)들이 주변에 무너져 있다고 한다.
<미산면 아미리의 가을>
아미리를 지나면 연천군 백학면(百鶴面) 구미리다. 백학면(百鶴面)은 연천군의 서남쪽에 있으며, 21개 법정리 중 11개리는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약15㎞의 휴전선과 임진강을 접하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면 전체 가구의 4분의 1 정도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출입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임진강 주상절리(구미리)>
구미리(九尾里)는 본래 적성현 북면 지역으로 임진강(臨津江)에 깊고 큰 구미소가 있어 <구미연리(龜尾淵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연천군 백학면에 편입되면서 구미연리를 현재의 구미리로 개칭하였다. 임진강 유역의 충적지가 발달되어 논농사가 활발하며 백학면에서 생산되는 쌀이 특산물로 유명하다. 이곳도 인삼으로 명성을 날렸던 개성이 가까워서 그런지 인삼을 재배하는 삼포(蔘圃)가 많이 보인다.
<임삼밭(삼포)>
멀리 감악산이 보이고 학곡리(鶴谷里)로 접어들자 서산의 해는 옆으로 길게 눕는다. 임진강은 푸른 빛을 띠며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에는 캠핑장이 한가롭게 보인다. 어느 목장의 당나귀는 낯선 나그네의 침입에 처음에는 놀라다가 바로 진정을 찾는다. 주상절리가 있어서 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의 이곳 방언인 ‘더덜매’로 부르다가 임진강으로 이름이 바뀐 강변에는 우리의 삶과 애환을 바위에 담아 한 쌈 한 쌈 수(繡)놓는다.
<임진강과 감악산>
<당나귀>
별첨*
*잠두절애(蠶頭絶崖)시(詩) 이수(二首)
숭의전을 지은 지가 4백년이 되었는데
(麗組祠宮四百秋, 여조사궁사백추)
누구로 하여금 목석으로 새로 수리하게 하는고
(誰敎木石更新修, 수교목석갱신수)
강산이 어찌 흥망의 한을 알리요
(江山豈識興亡恨, 강산기식흥망한)
의구한 잠두봉은 푸른 강물 위에 떠있구나
(依舊蠶頭出碧流, 의구잠두출벽류)
지난 세월 만월추에 마음 슬퍼하거늘
(往歲傷心滿月秋, 왕세상심만월추)
지금은 이 고을 군수가 되어 묘궁을 수리 하였네
(如今爲郡廟宮修, 여금위군묘궁수)
조선은 생석을 갖추어 고려왕들을 제사토록 하였으니
(聖朝更乞麗生石, 성조경걸려생석)
아마도 숭의전은 징파강(※)과 더불어 길이이어지리라
(留與澄波萬古流, 유여징파만고류)
마전군수(麻田郡守) 한문홍(韓文洪)
※ 징파강(임진강의 별호)
<잠두절애 시>
https://blog.naver.com/waya555/222918225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