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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회차-수정봉-고남산 구간-자유인24기, | 일시:2020년 6월 28(일요) 기록: 한문희총대장, 자유인24기 백두대간종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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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24>- 제2회 고남산(古南山)이야기,  자유인 백두대간 24기-제2회차 고남산구간 종주기록, ☞일시: 2020년 6월 28일(일요), 기록: 한문희총대장 外 46명 ☞대간숲길: 노치마을-노송당산제-구룡폭Y-덕운봉745m-수정봉804.7m-입망치545-700산성봉-전망대-주지사입구-여원재470m-방아치-김해김씨지묘-가동으로(박정연)하산-권포리 ☞도상거리: 14km, 실제: 16km(GPS기록), 6:30분소요, -07:20분, 서울 양재역 최종출발, -10:30분, 노치마을(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 -10:40분, 노치 노송당산제단 기념사진, -10:53분, 자유인24기 무사종주를 기원하며 출진하다. -11:03분, 묘지 구룡폭포Y자길, -11:12분, 덕운봉 745m, -11:20분, 고인돌 지역, -11:37~11:50분, 수정봉 水晶峰804.7m (운봉읍 주촌리) -12:10분, 입망치 笠望峙545m 운봉읍 행정리, -12:30~13:15분, 700m 산성봉, 전원 점심, -13:48분, 임도 주지사(住智寺)입)구, -13:50분, 빨간지붕 주막(酒店) 함양댁, -13:55~14:15분, 여원치(女院峙470m) 운봉읍 준향리, -15:19분, 방아치, -15:22분, 金海金氏 之墓 후방100미터 봉우리, -15:25분, 대원, 박정연탈진으로 가동으로 탈출, -16:15분, 권포리 가동 도로변 하산, -16:55분, 권포리 마을회관, 종료, -17:05분, 본대 선두 하산완료, -17:35분, 본대 후미그룹 하산완료, -18:00시경, 권포리 임리로 14명 하산(더 진행함) -18:30분, 전북 운봉읍 권포마을회관~서울로 출발, 상황종료, - -장마기간이기에 우중산행이 될까 노심초사 했는데 다행히 빗님이 멈추어 기분 좋은 산행에 임한다. 1회차 종료는 노치마을 느티나무 마을수호신 당산나무에서 막을 내리었고 오늘 시작은 마을 뒤편에 있는 250년 수령의 소나무 4본 당산제전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시작으로 진행한다. 이곳 노치마을에는 제1 느티나무(촌노:言 500壽) 제2 거송(巨松:300壽)4본, 마을 林氏(村老)께서 예전에 말씀하셔서 기록을 한다. 날씨가 무더워 쉬 지침 현상이 오는 습도가 많은 날씨다. 수정봉에 오르는데 땀샘구멍이 열리어 가관이다. 진주에서 일반 둘레길 탐사팀이 수정봉을 다녀와 구룡폭포로 하산하는 일반탐사팀과 교차를 한다. 수정봉은 804m 전략적 요충지 산성봉으로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분쟁지 였단다. 내려서면 입망치(笠望峙 545m)이곳 20여분 힘들게 올려치면 700m 산성봉이다. 산성봉에서 전 대원 점심을 하고 걸음을 재촉해 간다. 여원치(女院峙470m) 24번 국도가 지나는 당마루다. 여원재의 전설이 있다. (※도표참고) 백두대간 두 번째 만나는 장동마을 마을길을 따라 숲으로 들고 다시금 마을의 뒷길을 따라 방아치 안부를 지나 오늘의 맏형 고남산에 이르고 시원한 조망을 굽어보고 송신탑이 있는 고남산H장 임도와 통안재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권포리 마을회관 도상거리 14km의 백두대간이 막을 내린다. [살펴보기] ①여원치지나 장동마을 뒤길 산길을 따르면 우측으로 감아 돌아야 하는 부근에서 이탈 약20여분 선두팀 알바 덕분에 선두그룹 체인지, ②고남산 500미터지점 임도 통안재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권포리로 진행하는걸. 놓쳐 그대로 산길로 1.1km 진행 묘지지역 우측으로 임리로 하산, 통안재 역시 마(魔)있는 곳, 덕분에 14명 체력이 더 좋아짐, 리더들 숙고(塾考)하시길, ③방아치 조금 더 진행하면 묘지봉 가기 전 현판 있는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선다. 물론 길은 옛길이다. 그곳에서 정밀 방위각을 설정하고 나침반을 의존해 산길과 마을길 농로길을 따라 예정했던 가동마을에 힘들어 탈진상태의 여성(박정연)대원과 안전하게 내려선다. -2구간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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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24기>- 제2구간 태조봉이라했던 고남산(古南山804m)이야기-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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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치마을회관,>
노치(蘆峙)마을: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蘆峙)마을의 지명은 노경(蘆頃, 갈갱이)마을의 갈대노(蘆)자와 송치(松峙, 솔치)마을의 치(峙)자를 각각 취하여 노치라는 마을이름이 붙었는데, 이곳은 지리산둘레길 1구간,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유일한 마을, 느티나무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 500년 수령의 당산 소나무, 마을 뒤편에는 삼국시대의 산성 수정봉, 노치샘 등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어 명소로 각광받는 마을이다. 마을이 보이기 전에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마을 뒤편에 자라는 수령이 500년이나 되는 네그루의 당산 소나무이다. 소나무 아래에서 지내는 당산제는 ‘제사’라기보다는 ‘전통 마을축제’로 표현하는 것이 더 알맞다. 마을회관앞에서 시작되는 풍물놀이가 노치샘에 이르러서는 흥을 한껏 북돋게 한다. 한 해 농사의 풍년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당산제는 300여년 동안 이어져 왔으며, 2011년는 3월 4일에 지냈다. 소나무 당산을 할아버지 당산이라 하고 마을안에 위치한 느티나무 당산을 할머니 당산이라 한다. 한편,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유일한 마을로 지리산둘레길과 만나는 곳이며, 마을에는 노치샘이 있어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의 목을 축인다. 마을 뒤 당산 소나무에서 나 있는 등산로를 한참 걸어 올라가면 주천면, 운봉읍, 이백면에 걸쳐 있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산줄기에는 수정봉(水晶峰, 804.7m)이 나타나고 9부 능선을 둘러싸고 쌓은 산성은 삼국시대에 국경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성은 두 개의 산봉우리를 감싼 표주박 모양이다. 출처: 지리산 문화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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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치샘(여원재 6.7km), 백두대간 길손들에게 약수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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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치마을 수호신으로 마을 사람들이 당산제를 모시고 있다. 거송 4본 수령250년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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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치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마을 중앙 도로가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東으로 낙동강이오, 西편으로 섬진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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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백두 능선에서 3.3km에 지리산 구룡구곡, 폭포가 자리한다.
구룡구곡(九龍九曲) 또는 구룡계곡(溪谷), 서부지리산 맏형이라 부르는 만복대1433m(萬福臺)는 성삼재-정령치1172m(鄭嶺峙)만복대에 이르고 백두대간 고리봉을 지나-수정봉804m-고남산-덕유산으로 이어진다. 정령치-만복대-수정봉에서 발원해 남원시 주천면 원천으로 유입되어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구룡계곡이다. 이곳 만복대와 정령치의 여름철 운해는 환상적이다. 구곡(九曲)은 마치 하나의 통(統) 바위로 연결되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며 지류들이 모여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폭포와 담과 소를 이루는 천혜의 비경(秘境)을 자랑하고 그중에서 아홉 개의 절경을 선별하였으니 구룡구곡이라 부르니 살펴보자, 제1 송력동(松歷洞)瀑暴, 제2 옥용추(玉龍湫), 제3 학서암(鶴棲岩), 제4 서암(瑞岩), 제5 유선대(遊仙臺), 제6 지주대(砥柱臺), 제7비폭동(飛瀑洞), 제8 경천벽(敬天壁), 제9 교룡담(交龍潭)폭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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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덕운봉(德雲峰745m) 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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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고인석바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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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망치 545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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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봉 700m, 점심을 하고 휴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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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치 470m 입니다. 24번 국도이며 남원-운봉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여원치(女院峙470m): 백두대간 육십령에서 남으로 백운산-봉화산경유 고남산에 이르고 고남산과 수정봉 중간에 안부가 여원치이다. 남원에서 운봉으로 가는 24번 국도를 따라가면 여원치가 나오고 여원치 정상을 조금 지나면 왼쪽 언덕 밑 암벽에는 마애여래상이 새겨져 있다. 이 여래상을 여(女)산신령이라고 하는데, 고려 말 왜구가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자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삼도 순찰사로 임명하여 남원지역의 왜구를 정벌하도록 급파하였다. 태조는 인월역에 주둔하고 있던 왜구잔당들을 무찌르기 위하여 남원을 거쳐 운봉을 향하여 진군하던 도중, 아흔아홉 구비의 여원치 험준한 고개를 넘고 있었다. 태조가 지휘하는 부대가 고개 정상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를 가리더니 비몽사몽간에 노파가 나타나 왜구와 싸울 시기와 장소·전략을 일러 준 후 홀연히 사라졌다. 이 노파는 당시 여원치의 한 주막의 주모였다고 전해진다. 남원을 향하던 왜구가 주막에 주둔하는 동안 여인의 젖가슴을 만지며 희롱하였다. 수모를 당한 여인은 비분강개하여 부엌칼로 자신의 젖가슴을 도려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인의 원혼이 노파로 변신하여 자신의 원수를 갚고자 이성계 앞에 나타나 왜구를 격파할 전략을 일러 준 것이었다. 황산대첩이 승리로 끝난 후 원통하게 죽은 여인의 혼을 달래기 위해 노파를 만났던 여원치 석벽에다 오른쪽 젖가슴이 잘린 여상(女像)을 새겼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마애여래상이 그대로 남아있다. 여원치의 석양은 남원10경중의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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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의 유적지인 방아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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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남산입니다. 사진은 대원들 것입니다.
고남산(古南山846m) :백두대간의 전라북도구간은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시작되어 대덕산, 삼봉산, 덕유산 향적봉, 육십령, 깃대봉을 지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을 나눈다. 이 산줄기는 다시 봉화산, 백운산을 지나 백두대간 위에 고남산을 남기고 지리산 방향으로 뻗는다. 남원시 운봉읍과 산동면에 위치한 고남산의 물줄기는 동쪽으로 만수천을 통하여 엄천강, 남강, 낙동강으로 흐르고, 남쪽으로는 요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빠져 나간다. 88고속도로를 타고 남원에서 운봉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오른 쪽에 커다란 중계탑이 서 있는 암벽으로 된 산이 고남산(846m)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고남산을 태조봉이라 하는데, 그 연유는 다음과 같다. [살펴보기] 고려말 우왕 6년(1380년)에 인월면 인월리에 진을 치고 왜구 2천 여 명을 이끄는 왜장 아지발도에 맞서기 위하여 한양에서 출발하여 남원에 도착한 이성계가 운봉 쪽을 바라보니 고남산이 유난히 뾰족하여 이곳에 올라 성을 쌓고 산신제를 올려 승리를 기원하였다. 이성계는 이곳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고 왜장 아지발도를 무찔렀다. 왜장 아지발도는 일본에서 출발할 때 그의 애첩이 황산의 산신이 노하였다 하여 출정을 만류하였으나 애첩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그 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뒤 태조봉으로 불렀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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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포리(權布)마을: 백두대간 고남산 아래에 있는 마을 정도전이 권포리라 하였다. 본래 운봉의 서면(西面) 지역으로 굄피기 또는 권포리(權布)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가동(加洞), 연동(蓮洞), 임리(林里)의 각 일부가 병합하여 권포리에 편입되었다. 과거 서면(西面)소재지였으며 그 청사터가 618-1번지에 남아 있다. 성씨는 미상이지만 고려말 약 10여호의 마을이 현재 마을의 서편 200m지점 고남산 아래 (고려말 우왕 6년, 1380) 동면에 근거지를 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이성계 장군이 이곳 고남산에서 전승 기도를 올릴 때 주둔한 병마의 식수로 쓰던 샘 주변)에 형성되었다. 그 후 고남산에 큰 산사태가 일어나 매몰되고 1500년경 현 위치에 권씨들이 터잡아 마을을 형성해 살아오고 있다. 고남산은 이성계장군이 왕업을 이룬 것과 연관이 있다하여 일명 태조봉, 제왕봉이라 하였으며 제왕봉이라 하면 모든 산의 제왕이 되므로 이러한 지형을 살리기 위해서는 마을이름이 권력을 편다는 의미를 상징해야 된다며 정도전이 이 마을이름을 권포(捲布)로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권씨들이 널리 퍼졌다는 의미로 권포(捲布)가 되었다고 하는데 본래 이름은 굄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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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권포리 마을회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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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들 하셨습니다. > 백두대간 24기종주대 한 걸음~ 나아가는 백두대간 먼~ 그길을 황소걸음으로 걸어가리라 우리들의 아낌과 사랑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누이 형제되어 날머리에 앉으리라 > 솔개/이태원 자유인산악회/한문희총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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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4기 대원 여러분,
빗나간 길 복귀하여 다시 시작하는 것도
백두대간 하나의 문화입니다(알바)
하여~
진행하는 여러분들도 지도를 꼼꼼히 살피어
혹여 다른길로 가지는 않는지 가끔은 살펴보아 주세요,
그리하다보면 지도보는게 생활화 되어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종주기에 도표로 올린 내용들
하나하나 세세히 보시면 내가 걷는길이
어떠한 길인지 대충은 파악이 되것입니다.
7~8월 폭서에 대비해
이번구간 예행 연습으로 생각해 주세요
수고들 하셨습니다.
마음에 와 닿으면 잘보고 갑니다 `라고, 멘트하나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총대장님 역사속 이야기 설명 으로 인하여 백두대간 길이 더 값지고 의미있는 산행으로 가억합니다^^
세세한 기록 감사드립니다 ~~
다음구간은 어떠한 역사가 있을까?
우리모두 공부하고 대간길에 나서면
한층 넓고 편안한 길이 될겁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선배님들은 길도 만들어 가며 대간길을 가셨다지요.
모두가 이야기 감이고, 추억일 듯 싶습니다.
맞아요
장도(長刀)와 전지가위, 여벌옷은 필수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