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1991년 여름이었다. 여름이 한창인 8월인지라 덥기도 했고 습한 열기에 찝찝하기도 했다. 제주도 특유의 습한 밤 공기는 낯선 이국 땅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학교 4학년 여름에 처음으로 제주라는 섬을 다녀왔는데 그 당시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뭍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나무들이 있었고 해안을 따라 다니는 제주의 바다는 물이 깨끗하고 그 모래도 하얗게 빛을 내는 것이 참 신기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역시 맛의 차이다. 음식의 차이였다.
서귀포에서 둘째 날을 보내던 저녁에 택시 기사님이 소개를 해준 여러 음식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진주식당의 뚝배기였다. "여기 윗 길로 조금 걸어 나가면 진주식당이 있는데 그곳이 제법 맛이 좋습니다" 엄격히 구분하자면 "오북자기 된장 뚝배기"이라는 것인데 육지의 그것이 된장을 풀고 콩으로 만든 두부와 함께 이런 저런 야채를 넣고 끓여 내는 된장찌게인데 반해 이것은 같은 된장이지만 오분자기 조개와 여러 해산물을 넣고 끓여 내는 제주지방 특유의 된장 뚝배기국이다.
지금 나의 아내가 되어있는 사람과 친구와 함께 서귀포 진주식당을 찾아가 오분자기 된짱 뚝배기로 저녁식사를 함께 했었다. 이름도 낯선 음식이라 내심 입맛을 맞추기가 좀 어려운게 아닐까 했으나 국물맛이 얼큰하면서 시원한 것이 숟가락을 뚝배기 그릇에서 뗄 수 없게 만들고 말았다. 모두들 그 맛에 바로 반해 버렸던 것이다.
[진주식당 오분자기 뚝배기와 반찬]
옥돔 구이가 좋다하여 먹고 다녔지만 사실 옥돔 구이라는 것은 젓가락을 갖다 대고서 노력한 것에 비해 배부른 맛이 없거니와 특별나게 맛이 좋다는 것과는 거리가 좀 멀어서 대단히 실망해 있었다. 더구나 제주의 첫 여행에서 낯선 지방의 여름 날씨에 조금 지쳐 있는 상태로 서귀포에 도착한 저녁에는 몹시 허기져 있기도 했었는데 이 진주식당 뚝배기를 먹고나서 완전히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같이 딸려 나오는 시커멓게 썩은 듯한 젓갈이 몇 가지 있었는데 처음에 젓가락질을 하기가 좀 그랬으나 더운 여름 날에 원기를 회복시키고 입맛을 돋궈주는데는 안성맞춤이었다. 진주식당에서 차려져 나오는 젖갈이라고 하는 것이 갈치 속젖, 자리돔 젓과 노랑 참조기젓이라고 하는데 짭쪼름한 맛으로 여름 더위에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는데 일조를 하였던 기억이 있다.
[제주 여행]
그때 91년도의 여름에 처음으로 서귀포 진주식당을 들러 먹었던 맛을 잊지못해 그 후로도 십 수년 제주 여행을 하면서 꼭 한번은 다시 들러 한그릇을 먹고 오게 되는 나와 우리 가족들 입맛에 딱 맞는 그런 곳이 되어 버렸다. 오분자기 뚝배기 가격이 당시 6,000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두배가 넘는 13,000원 그리고 20,000원으로 변해버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분자기 패류를 쉽게 잡을 수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재료 값이 껑충 뛴 것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흔하게 볼 수 없는 제주지방의 토속음식을 먹고 오는 값으로 그다지 아깝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제주 20년 여행을 통하여 입맛이 들여진 탓에 나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부담해야 하는 맛의 전설과 같은 비용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서귀포 파출소 옆으로 있었던 허름했던 건물도 세월이 흐르면서 새롭게 단장을 하여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옛날 건물의 정취를 더 이상 찾아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제주지방 토속 음식 맛에 이끌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오분자기 된장 뚝배기 : 번철에 기름을 둘러서 오분자기를 살짝 볶아 뚝배기에 담고 쌀뜨물을 부어 된장과 고추장을 잘 풀어 한소끔 끓여 표고버섯, 풋고추,다홍고추를 넣어 끓이면서 두부와 마늘을 넣고 잠깐 끓인 후 참기름과 후춧가루로 맛을 낸 찌개이다. (참고: 제주 음식) |
출처: Life is always beautiful ! 원문보기 글쓴이: 뷰티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