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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9코스 3부는
마산자유무역관리원 앞에서 ㅡ 자유무역지역교 ㅡ 허당로 ㅡ 김주열열사 흉상(마산용마고 담장) ㅡ 3.15의거 기념비 ㅡ 육호광장오거리 ㅡ
북성로사거리 ㅡ 임항선 그린웨이 철길 ㅡ 3.15의거 기념탑 ㅡ 몽고정 ㅡ마산지검사거리까지 걷는 4.2km
마산항 제3부두에 정박한 대형크레인
방금 지나온 마산자유무역지역 제1공구를 지나왔습니다.
마산항과 인접한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과 봉암동 일대 953,576㎡에 조성되어 있다.
제1공구, 제2공구, 제3공구로 구성되며, 2018년 7월 기준 전기/전자 분야 25개 업체, 정밀기기 분야 46개 업체,
금속 분야 5개 업체, 섬유봉제 분야 2개 업체, 기계/비금속 분야 13개 업체, 기타 분야 19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2000년 9월 9일 발족한 마산자유무역지역의 관리·운영 및 수출산업 지원 사무를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기관의 관리원 입니다
마산시에 소재한 자유자유무역지역, 외국인 투자 유치와 수출 진흥을 위해 1970년대에 수출자유지역으로
조성되어, 2000년대에 자유무역지구로 확대되어 왔다. 2018년 기준
수출업을 중심으로 하는 전기·전자, 정밀기기, 금속, 섬유봉제, 기계·비금속 업체 110여 곳이 입주해 있다.
뒤돌아 보고~
뒤돌아 보고~
수출자유지역교(輸出自由地域橋)
수출자유지역교(輸出自由地域橋)에서 바라본 마산만과 마창대교~
저멀리 마창대교
마창대교
수출자유지역교(輸出自由地域橋)를 다 건너서 북쪽으로 바라본 자유지역2교(自由地域2橋)
현재는 수출정문사거리에서 육호광장오거리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출자유지역교(輸出自由地域橋)를 건너자마자 수출정문사거리가 된다
수출정문사거리 이곳부터 마산용마고 앞을 지나 6호광장오거리까지 1.0km를 걷는 남파랑길은 허당로라 한다.
허당로란, 1885년 4월 3일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199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건국훈장 애국장(4급)을 추서 받은 독립지사였던
명도석선생의 호인 허당(虛堂)을 따서 지은 도로이름으로, 2004년 12월 육호광장교차로화와 함께 개통하였다
합포초등학교 교문 입니다
마산용마고등학교(구, 마산상업고등학교) 교정 담장엔 김주열열사의 흉상
'영원한 민주햇불 김주열'
청사에 길이 빛날 마산 3.15의거, 그 민주제단에 한 송이 순결한 꽃으로 바쳐진 김주열열사는 1944년 전북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했던 열사는 남원 금지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허고 마산상업고등학교(현, 용마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으나 1960년 3월 15일 밤,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는 마산 시민들의 시위에 동참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그로부터 27일이 지난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 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주검으로
홀연이 떠올랐다. 자유당 독재정권의 만행을 똑똑히 본 시민들의 분노가 화산처럼 터저 "독재타도" 를
외치는 함성이 거리 거리를 가득 매웠다.
이 날 3.15일에 이은 4.11일 마산시민의 봉기의 불길은 전국으로 번저 마침내 4.19혁명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고 열사는 온 국민의 가슴에 민주의 횃불로 부활했다.
그러나 이듬해 5.16군사 쿠테타가 일어나 민주주의의 싹은 무참히 짖밟혔다. 오랜 세월 계속된 불행한 역사는
또 다시 의로운 이들의 숱한 목숨을 앗아갔지만 민주를 열망하는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군사독재는
기여이 무릎 끓고 말았다. 독재와 불의에 맞서 싸운 마산의 자랑스러운민주시민정신과 김주열열사를
비롯한 3.15, 4.11, 4.19민주 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오늘의 우리가 할 일을 늘 잊지 않으리라~
2008년 4월 11일
김주열열사 흉상이 있는 담장 위치의 모습
마산용마고등학교 교정 앞 김주열열사 흉상이 있는 담장 위치도
마산상업고등학교(현 마산용마고등학교) 교문
수출정문사거리부터 시작된 <허당로>는 6호광장오거리 여기까지 입니다
마산시의 번화가인 육호광장오거리에 <육호광장 조형물>이 있습니다
말(馬) 조각이 새겨진 문(門) 자 형상의 이 조형물은 5∼8m 높이의 기둥을
문(門) 자의 형상으로 배치하여 세계를 향한 관문을 의미한다 하며
말(馬말 마) 형상은 3·15의거로 마산시민들의 도약을 표현하는 자유와 민주를 향한 기상으로
적토마(赤兔馬) 란 의미로 마산인의 열정과 미래의 지향적인 희망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적토마(赤兔馬=중국 삼국 시대, 관우(關羽)가 탔다는 좋은 말의 이름)
6호광장오거리의 모습 입니다
<나무숲 예지당 골침대> 앞 지하보도로 남파랑길을 진행 합니다
지하보도로 진행 합니다
6호광장오거리 지하보도에서 교보생명빌딩 건물앞으로 진행 합니다
교보생명빌딩 건물 앞 입니다
교보생명빌딩 앞
육호광장오거리부터 천하장사로 따라 임항선 그린웨이 옛 철길까지 진행 합니다
6호광장오거리를 뒤돌아 보고,
지금부턴 북성로사거리를 지나 임항선 그린웨이 철길까지 <천하장사로> 따라 걷습니다
북성로사거리에 이르기 20m전 좌측으로 <3.15의거 기념비>가 살짝 모습을 보여주네요
3.15의거 기념비명
3.15의거 기념비 안내문
한학자 신동식 옹이 3.15의거 당시 상황에 대한 기록을 기념비명에 적은 한시이다
3.15의거 기념비와 은상 의 샘
은상이 샘은 이곳 상남동에서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낸 민족 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이 즐겨 마셨던 샘으로
이은상 선생을 기리고 시민의 얼과 정서를 해맑게 하기 위하여 인근 도로의 확장 공사로
이은상의 생가가 없어지자 1999년 6월 샘을 복원하여 교방천 옆에 옮겼다.
<가고파>
이은상(李殷相)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어울려 옛날 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다름질하고
물들면 뱃장에 누어 별헤다 잠들었지
세상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보고 저기나 알아 보나
내 몫엣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되 안기자 되안겨.
처자(處子)들 어미되고 동자(童子)들 아비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
일하여 시름없고 단잠들어 죄없은 몸에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者)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동무 노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을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나 깨끗이도 깨끗이.
작가의 실제 고향인 경남 마산 앞 바다를 생각하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통한 애틋한 그리움, 향수를 나타낸 노래이다.
파랗고 잔잔한 바닷물과 날고 있는 물새들,
그리고 같이 뛰어 놀던 어릴 적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1연 : 고향 바다에 대한 그리움
▶2연 : 고향 동무들에 대한 그리움
▶3연 : 고향에 가서 살고 싶은 마음
▶4연 : 동심으로 돌아가서 지내고 싶은 마음
▶5연 :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6연 : 고향을 떠난 허무감과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
▶7연 : 고향에 살고 있는 벗들에 대한 부러움
▶8연 : 타향살이로 지내온 자신에 대한 회한
▶9연 : 고향에 가서 옛 동무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
▶10연 : 평화로운 고향 나라로 돌아가 깨끗하게 살고 싶은 마음
이은상(鷺山 李殷相, 1903~1982)은 시시때때 이은상 기념사업을 두고 논쟁이 벌어져왔는데, 최근에 다시
"민족시인"이고 애국지사이기에 추앙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마산의 자랑인 '3·15의거'를 폄훼하고 독재정권에 빌붙은 인물이기에 기념사업을 절대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은상은 누구인가.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지내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근무했으며,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다.
그는 동국대 교수, 충무공이순신장군기념사업회장, 안중근의사숭모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1976년 성곡학술문
화재단 이사장을 거쳐 총력안보국민협의회 의장 등을 지냈고, 1981년 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전두환 정부는 그가 작고했을 때 문화훈장 1등급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고, 국가가 지원하는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러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했다.
그러나 그는 '친독재 행적'이 뚜렷하다.
마산 출신인 그는 마산의 자랑인 3.15의거와 4.11마산사건(1960년, 김주열열사 시신인양 날짜)을 폄훼했다.
그는 당시 <조선일보> 등의 인터뷰를 통해 3·15의거에 대해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발언을 하여 (문학관, 가고파 시비, 은상이샘)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5개 단체로 구성된 3·15정신계승시민단체연대회의는 이은상의 친독재 행적 안내판문은 다음과 같다.
* 이승만 자유당 영구집권 음모 동조
* 독재자와 그 후계자 정부통령 당선 위해, 전국을 유세하며 부정선거 힘 보탰네
* 3·15와 4·11 마산사건은 도대체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 지성잃은 데모요 비정신적 사태로다 함
* 고향 걱정 한다면서 은근슬쩍 겁주기를, 무모한 흥분으로 과오를 범치마라, 과오와 과오 연쇄는 필경은 이적행위
* 4월학생혁명탑문 5·16 위해 써줬을 뿐, 쿠데타 협력 유신지지 학살자에 아첨 떨며, 독재권력 품속으로 가고파라 가고파~
(시인의 친독재가)
이은상이 3.15의거 대하여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내 불상사>라고 <조선일보> 등의 인터뷰에서 발언을 하여
3.15의거 열린사회희망연대 단체에서 3.15의거 기념비 곁에 있는 은상이샘을 즉각 철거하라 농성을 하고 있다
마산 육호광장오거리 옆에는 '은상이 샘'이 있다.
이 샘은 지금의 자리에서 20m 떨어진 곳에 있다가 도시개발로 1999년 6월 옮겨 놓았던 것이다
옛 마산시가 세운 표지석에는 "민족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을 기리고
시민의 얼과 정서를 해맑게 하기 위하여 생명의 젖줄 은상이샘을 이 자리에 옮겨 복원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북성로사거리
북성로사거리
북성로사거리를 뒤돌아 보고~
지금부턴 마산항 제1부두선 또는 마산임항선 옛 철길(임항선 그린웨이)을 따라 걷다가 3.15의거 기념탑을
지나 마산지검사거리까지 1.8km를 진행 합니다
이젠 임항선 그린웨이 시작점부터 가고파꼬부랑갈 가는곳 방향으로 진행 합니다
마산임항선 4.6km 폐 철길 구간을 2015년 임항선 그린웨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임항선 그린웨이의 안내문
임항선 그린웨이를 걷기 시작하는 곳에 세워진 이정표
봉암교에서 4.8km를 걸어온 위치 입니다
이정표 기둥에 거리표시가~
임항선 옛 철길을 걷고 있습니다
임항선 그린웨이 안내판이 있는 곳이며, 이곳에서 <가고파파꼬부랑길 벽화마을>을 갈 수 있는 위치 입니다
임항선 그린웨이 안내문
철도 역무원이 시민님의 안전을 위해 책임지고 있는 건널목 입니다
임항선 그린웨이는 마산에 위치한 '임항선' 폐 철길을 활용하여 2015년에 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마산항 제1부두선 또는 마산 임항선(臨港線)은 마산역에서
북마산역, 신마산역, 마산항역을 잇는 총연장 8.6km의 노선으로 1905년에 개통하여 2011년 2월 폐지되었다.
화물 전용 노선으로 전환되기 전에는 인근 농촌에서 마산으로 통학하는 학생 및 북마산역, 구마산역, 어시장
등으로 물건을 팔고 사러 나오는 상인 등 수많은 사람들의 주요 교통수단이자 소통의 장이었다.
철길을 오고 가며 추억과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이후 창원시는 도시재생 선도지역 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구 마산세관에서 석전사거리 개나리 아파트까지의
4.6km 폐 철길 구간을 <임항선 그린웨이>라는 공원으로 재탄생 시켰다.
길이 잘 정비가 되어 있어 걷기 좋고 곳곳에 시화와 벽화 그리고 철도 역무원 조형물도 있다.
임항선 그린웨이에서 바라본 3.15의거 기념탑
학생과 시민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동상
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의 깃발을 올리던 그날 1960년 3월 15일!
더러는 독재의 총알에 꽃 이슬이 되고~
더러는 불굴의 몸이 되었으나~
우리들은 다하여 싸웠고 또한 싸워서 이겼다.
보라 우리 모두 손잡고 외치던 의거의 거리에 우뚝 솟은 마산의 얼을.
이 고장 3월의 빛발친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여기 영글었도다.
1962년 7월 10일 기념사업 촉진회
1960년 3월 15일 부정 선거는 어떻게 자행되었나?
3·15 부정 선거 지시 비밀 지령(요약)
1. 4할 사전 투표 : 투표 당일의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의 허위로 기재한 유령 유권자 표,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한 기권표 등을 그 지역 유권자의 4할 정도씩 만들어, 투표 시작 전에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하여 투표함에 미리 넣도록 할 것.
2. 3인조 또는 9인조 공개 투표 : 자유당 후보에게 미리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 또는
9인의 팀을 편성시켜서,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 용지를
자유당 측 선거 운동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
3. 완장 부대의 활용 : 자유당 측 유권자에게'자유당'이라는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소 부근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어 자유당에 투표하게 할 것.
4. 야당 참관인 축출 : 민주당 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투표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동아일보, 1960. 3. 4)
3인조, 5인조 투표, 사전투표 등 선거를 앞두고 자행된 부정선거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3월 15일 10시 30분 민주당 마산시당에서는 선거 포기를 선언하고, 이번 정부통령 선거는 부정선거로
무효임을 가두 방송을 통해 시민에게 알렸다.
오후 2시 30분부터 민주당 마산시당 간부 30여 명으로 시작한 시위는 시민들이 합세하여 600여 명으로
늘어났으며, 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6시 30분 무렵에는 시위 군중이 수천명으로 증가했다.
시위 진압에 나섰던 경찰들은 8시가 넘어도 시위가 멈추지 않고, 때마침 정전으로 시가지가 어둠에 잠기자
시위대에게 최루탄에 이어 실탄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12명이 사망하고 2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수백 명이 체포되었다.
4월 11일 11시, 3월 15일 시위때 행방불명되었던 김주열 군의 시신이 눈에 최투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다.
이에 격분한 학생 및 시민들은 오후 5시에 재궐기하여 자유당정권을 규탄했다.
7시에는 3만여 명이 도립마산병원앞에 모여 마산시청, 마산경찰서, 창원군청으로 몰려가 시위를
계속했고, 8시 30분에는 마산경찰서장 차량을 불태우기도 했다.
4월 12일에는 마산고등학교, 마산상업고등학교, 마산공업고등학교, 마산창신고등학교, 마산여자고등학교,
마산성지여자고등학교, 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 마산간호고등학교(지금의 마산대) 3천여 명의 학생들이
시민1만여 명과 함께 시위를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해인대학(지금의 경남대학교) 학생 2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3.15의거 학생참가 기념비
3.15의거 학생참가 기념비 안내문
3.15의거 학생참가 기념비 안내문
몽고정 안내문
몽고정(우물)
마산항 제1부두선 또는 마산임항선이 1905년 개통하여 2011년 2월 폐선되었다가
2015년부터는 걷기 좋은 공원 산책길로 조성된 임항선 그린웨이라 한다
3.15의거 기념탑과 몽고종 바로앞에 있는 마산가도교
뒤돌아 보니 좌측으론 창원지방검찰청마산지점이 있군요
사람 여럿 있는 저곳이 오늘 걸을 수 있는 남파랑길 임항선 그린웨이 끝 지점이며, 좌측엔 마산지검사거리 입니다
오늘은 4월 10일 토요일 내일은 4월 11일
제61주년 4.11민주항쟁기념 및 김주열열사 추모식
남파랑길 9코스 1, 2, 3부는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