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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21:1~3 내가 눈을 들리라 2023. 7. 2
현대 영국인들이 뽑은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역사적 인물 중에 항상 TOP 10 안에는 들어가는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제가 두 주 전 설교에도 이 분에 대해 잠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크롬웰은 독실한 청교도 신앙에 근거하여 영국을 통치하였고, 다스렸던 정치가 올리버 크롬웰의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어린 크롬웰이 가족들과 함께 할아버지 집을 방문하게 되었고, 크롬웰을 돌보는 유모가 아이를 요람에 눕혀 잠들게 하였습니다. 당시 크롬웰의 할아버지는 뜰에서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만 이 원숭이가 사고를 친 것입니다. 요람에 아이를 눕혀 놓고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원숭이가 자고 있는 어린 크롬웰을 안고 높은 지붕 위로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유모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지릅니다. 유모가 지르는 비명소리에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새파랗게 질려 있는 유모가 가리키는 쪽으로 지붕을 쳐다 봅니다. 높은 지붕 꼭대기에는 원숭이가 아기를 안고 있었고, 만에 하나 떨어뜨린다면 아이는 즉사할 정도로의 높은 높이였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잠에서 깬 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원숭이가 크롬웰을 떨어뜨리면 아이는 바로 죽을 것이고, 달리 아이를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원숭이를 자극하면 원숭이는 아이를 아래로 던져 버리거나, 또는 아이를 안고 다른 높은 탑 꼭대기로 도망쳐 버릴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발만 동동 구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는 그 때에 할아버지는 마당 구석에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에게 아이의 무사함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기적처럼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아이를 안고 있던 원숭이가 아이를 안고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땅에 눕혀 놓고 지붕 위로 쏜살같이 다시 올라가 버립니다. 엄마와 아빠는 물론 가족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 봅니다.
그날 저녁에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자리를 할 때에 할아버지가 보여 준 행동에 대한 것이 밝혀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원숭이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의 위태로움만을 바라 볼 때, 할아버지는 눈을 들어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에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크롬웰은 확고부동한 청교도 정신에 따라 영국의 정치와 사회를 개혁하면서 영국 역사상 뛰어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어려움의 위기에 처할 때 여전히 나를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내가 겪는 고난에다가 나의 초점을 맞추고 시선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눈이 고난을 바라보면 나에게서 한숨과 눈물만 나오지만, 내 눈이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면 나에게서는 감사와 찬양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결과와 결말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원하는 믿음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의 결과만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문제점이 발생하고 어려움이 생길 때에도 이 문제를 풀어 나가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코앞에 닥쳐진 문제를 절망하며 살아가는 비관론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문제가 닥쳐도 인생을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낙관론자가 있습니다.
어떤 부분을 가지고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를 구분하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물이 담겨져 있는 유리 컵 하나가 있습니다. 목이 너무 말라서 그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다가 벌써 반이나 마셔 버렸습니다. 이제 컵에는 물이 반이 남았습니다.
이때에 남아 있는 물을 보면서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사고방식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보는 사람은 컵을 들고 반이 남아 있는 물을 쳐다 보면서 “내가 벌써 마셨는데도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구나”라는 긍정적인 말을 합니다.
반대로 인생을 비관적으로 사는 사람은 컵을 들고서는 반이 남아 있는 물을 쳐다 보면서 “이제 반 밖에 남지 않았구나”라고 말합니다. 똑같이 반이 남아 있는 물 컵을 들고 어떤 사람은 반이나 남아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던지는 반면, 어떤 사람은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정망적인 말을 합니다.
그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두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컵에 남아 있는 물을 보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남아 있는 물에서 희망을 봅니다. 반대로 절망적인 사람은 남아 있는 물에서 절망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내 손에 남아 있는 물 컵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모습을 바라보면 여러분들에게는 희망이 차장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희망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여러분의 인생은 복된 나날들이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21편의 말씀이 바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 보면서 희망을 가지는 내용입니다. 과거에 아픔과 슬픔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이들이 성전을 향해 나아가면서 기록한 내용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저는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눈이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내 손이 하나님의 손을 부여잡고 내 발이 하나님이 이끄시는 믿음의 단계로 발을 내디디기를 소망합니다.
1절,“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편기자는 고백하기를‘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라고 말합니다. ‘내 눈을 든다’는 말은 “내가 위를 쳐다 본다”는 말입니다. 단순하게 눈만 치켜들고 쳐다 보는 신체적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영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땅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산을 향해 내 눈을 든다고 고백합니다. 내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내가 바라는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는 희망의 행동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고, 앞날에 대한 불투명하고 불안한 미래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고 키워야 하는 문제와 성숙되지 아니하고 흔들리는 내 믿음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문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눈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눈을 들어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고백을 하나님에게 드려야 할까요?
1. 나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2절,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2절 말씀은 1절 말씀과 같이 붙여서 살펴 봐야 합니다. 1절 하반절에 시편기자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 합니다. 나에게는 위로의 말이 필요하고, 나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나를 감싸 안아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대상이 필요 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에 대해 기자는 바로 2절에서 대답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할렐루야. 너무나 간단명료한 대답입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명쾌한 해답입니다. 나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말은 ‘자신을 향한 도움이 여호와께로 부터 온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NIV, “My help comes from the LORD”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에게 도움과 원조를 보내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도우시는 주체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의 도움이 온다는 사실을 흔들리지 말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의 손길이 내 주변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그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도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를 돕는 사람의 손길을 바라보게 되면, 나는 그 사람의 은덕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잊어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도움을 받는 모든 도움과 은혜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이라 믿는 성도는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도움을 얻기 위해 도움의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시인은 도움의 근원에 대한 해답을 ‘바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거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도움을 얻을 때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진정한 도움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기억하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도움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전세계적인 호텔 체인을 가지고 있는 ‘홀리데이 인(Holiday Inn) 호텔’이라는 미국의 거대 그룹이 있습니다. 홀레디이 인 호텔은 대한민국의 여러 지역에도 그 체인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매우 큰 호텔체인입니다.
이 홀리데이 인을 창업한 사람이 케몬스 윌슨(Kemmons Wilson 1913-2003)라는 사람입니다.
한창 일해야 하는 40세 때에 일하던 목재소에서 경기 불황 때문에 한순간 해고를 당합니다. 먹고 살아가는 것이 걱정이 된 나머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의 해고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건전한 사람들이 자고 가는 건실한 여관을 만들어라.” 그는 음성을 듣고 돈을 긁어 모아서 멤피스 시골에 조그마한 여관을 만들어 성실하게 손님들을 맞이하기 시작합니다.
무료 주차, 에어컨, 수영장의 부대시설을 제공하며 사용자의 주 계층이 비즈니스 여행객이었던 호텔업에서 여가 중심인 가족 여행객의 수요에 주목하며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발견합니다. 그렇게 시골촌구석에서 시작된 숙박업이 지금 전 세계 최고 체인을 가지게 됩니다.
윌슨은 고백합니다. “만일 그때 해고통지서가 날라 오지 않았다면, 나는 목공소에서 늙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의 도움은 언제 어디서나, 세월이 억만겁을 흘러가고 산천이 수도 없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나의 도움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주어진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의 도움의 전부라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고난 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2. 나를 붙들어 지켜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3절,“여호와께서 나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도다.”
상반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나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한다’고 말합니다.‘실족(失足)’이 무슨 말이에요?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행동”을 말합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의이든 타의이든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낭패를 본 적이 한 두 번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목격한 일입니다. 제가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는데, 계단 위에서 종이 박스 상자를 가득 가슴에 안고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분을 보았습니다. 종이박스를 가득 들고 있어서 눈앞에 있는 종이상자 때문에 그 남자 분은 계단을 온전히 다 보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계단 한 칸 한 칸을 매우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 분이 계단을 다 내려오기까지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계단에서 그 분이 앞으로 자빠져 버렸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저도 놀라고 그 분도 매우 놀랐습니다. 무릎에 생채기가 난 그 분이 계면쩍게 일어 나면서 하는 말이 “계단이 다 끝난 줄 알고 방심했는데 계단 하나가 더 남아 있어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분은 계단 맨 아랫단에서 발을 헛디뎌 실족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만에 하나 계단 상층부분에서 발을 헛디뎌 계단 아래까지 굴러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매우 큰 부상을 입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란 내가 실족하고 싶어서 실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고의로 발을 헛디뎌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발을 헛디디는 사람은 ‘보험금 타려 내려는 목적에 고의 사고를 유발하는 사람’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실족하거나 발을 헛디디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안 되는 사고입니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도 내가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발을 헛디뎌 실족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 실족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과 만나고 사람을 사귀는 일에 있어서도 실족해서 큰 상처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3절을 다시 보면서 하나님의 이끄시는 은총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도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면 나의 실족은 근원적으로 차단됩니다. 내 어깨에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어서 내 힘으로 간신히 버티고 서 있습니다. 누가 조금만 툭 건드리면 나는 여지없이 꼬꾸라져 버리는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짐을 대신 져주시기에 나는 실족하거나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강한 바람이 나에게 불어도, 강력한 지진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실족하지 않고 든든히 살아갈 수 있도록 눈을 들어 붙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1970년 4월 11일 아폴로 13호가 달을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아폴로 13호에 탄 우주비행사는 제임스 러벨(James Lovell), 잭 스위거트(Jack Swigert), 그리고 프레드 헤이즈(Fred Haise)입니다. 그런데 아폴로 13호가 달을 향해 가는 비행 3일째 산소탱크 폭발이라는 초유가 발생합니다. 더 이상 달을 향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지구로 귀환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정상궤도를 벗어나 지구로 귀환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됩니다. 우주선 안에서 조종해도 안 되고,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조종해도 안 됩니다. 우주선이 말을 듣지 않는 겁니다. 우주선은 궤도를 벗어나 우주의 미아로 떨어질 위기에 놓입니다. 세 사람의 우주비행사도 우주공간에서 미아가 되어 죽을 상황에 처합니다.
이때 미국 대통령 닉슨은 전 국민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것을 선포합니다. 이에 백악관을위시한 상·하의원이 있는 국회의사당, 미국 전역에 있는 각급 관공서와 학교가 반기를 내리고 기도합니다. 이에 기적이 나타나서 아폴로 13호는 무사히 태평양에 착륙하게 됩니다.
당시에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이러합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이시고 인생을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어 바라보면서 행복한 7월의 모든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