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의 머릿속은 미란을 대면한 이후 더 복잡해졌다. 평소 하던 대로 하라고 했지만,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과연 모두가 안전하게 양계장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둬야 했다. 잠잠하던 발로가 양계장 주인을 따돌리겠다는 묘안을 제시했다. 노랑이 위험하다며 발로를 만류했지만, 그의 충정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드디어 탈주의 밤, 다정양계장의 은영과 은영을 돕기 위해 합류한 친구들을 본 미란은 조용히 그러나 신속하게 각자가 맡은 구역으로 다가갔다. 배터리 케이지 문을 열었다. 미란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 닭들의 파닥이는 소리에 순간 귀가 멍했다. 미란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파란에게 밖으로 나가자며 유인했다. 그 사이 노랑은 분주하게 계사 밖으로 닭들을 내보냈다. 은영과 은영의 친구들은 미란이 지시한 대로 계사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갑자기 난데없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순간 미란은 대기해놓은 차 안으로 파란을 밀어 넣었다. 양계장주 치환의 고성과 욕설이 계사 밖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조수석으로 파란을 옮긴 미란의 온 몸이 긴장한 탓에 땀범벅이었다. 카니발에 시동을 걸고 핸들을 급하게 돌리는데, 백미러로 노랑의 목덜미를 움켜쥔 치환과 뒤따르는 발로가 보였다.
“제발 기운 차려, 파란아. 나는 어떡하라고.”
집에 온 이후로 눈에 띄게 파란이 쇠약해졌다. 혼자 빠져나온 죄책감과 노랑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이 컸다.
“나 가망 없어, 언니.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유전자변형 옥수수사료로 몸이 다 망가졌거든.”
어떻게 되찾은 동생인데,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조용히 임종을 지킬지, 닭으로 변한 파란의 모습을 사람들 앞에 공개할지에 대한 미란의 고심이 커졌다. 조용히 인간 닭 사건을 덮으면 희생당한 피해자들과 파란이 억울하고, 파란의 모습을 세상에 공개하면 사람들의 혐오와 의심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공장식 축산업과 에이플러스 백신연구소의 부조리보다 인간 닭이 맞는지 아닌지로 화제가 바뀔 수도 있었다.
“파란아, 언닌 네 선택을 존중할 거야. 어떻게 할래?”
“언니, 난 인간으로 태어나 닭의 몸으로 죽어. 인간들의 욕심과 폭력성에 몸서리쳐져. 카메라 앞에 설게. 닭으로서 할 말이 있어, 인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