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일- 마태복음 6:16-18
잠언 10:11-16/ 찬송 458장
기쁨으로 금식하라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유대교의 경건 생활에서 금식(16-18)은 구제(2-4), 기도(5-15)와 함께 3대 의무입니다. 기도를 심화시키기 위하여 금식하기도 했습니다.
금식은 죄에 대한 회개와 탄식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겸비의 표현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금식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라 또는 말라’가 아니라, 금식하는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경건의 의무를 인정하신 예수님은 다만 공통적으로 사람에게 보이려는 위선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하도록 바른 태도를 일깨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4, 6, 18) 행하는 그 사람의 진심을 알아주십니다. 따라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3),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6),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17)는 것입니다.
금식은 고단한 자기 희생입니다. “단식은 살아서 죽음을 체험하는 것”(도로테 죌레)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금식을 고행의 방편이나 금욕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자기 경건성을 과시하려는 금식은 참된 금식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슬픈 기색을 하거나 얼굴을 흉하게 합니다. 한 마디로 배우처럼 분장하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16) 행합니다.
만약 종교적인 과시 욕구가 금식의 동기라면, 사람들에게 칭찬 듣기를 바라는 것이 이유라면, 그들은 더 이상 하늘의 상을 바랄 것이 없습니다.
금식은 회개와 탄식 그리고 겸비하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표식이므로 금식하는 그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적인 연극에 불과할 것입니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17).
금식은 어떤 수단적 행위가 아니라, 거룩한 사랑을 발견하고 성장하도록 돕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금식은 ‘슬픈 기색과 흉한 얼굴’의 고통스런 의식이 아닌,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은’ 기쁨의 의식이 되어야 합니다(독일어 ‘fasten’은 금식하다, ‘festen’은 축제를 벌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금식의 본래 정신에 대해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금식을 한다면서 오히려 위선을 피우는 사람들을 이렇게 비판합니다.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사 58:5).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곧 열납(悅納)될 금식은 이러합니다(사 58:6-7).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일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일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는 일
모든 멍에를 꺾는 일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는 일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는 일
헐벗은 자를 입히는 일
골육을 피해 스스로 숨지 않는 일
바로 진정한 금식은 굶는 행위를 넘어서, 가난한 이웃에게 양식을 나누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종살이의 멍에를 벗겨주는 일에까지 이릅니다.
하나님은 내가 행하는 금식과 평소 참된 경건을 살펴보실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18).
샬롬샬롬
☀ 다시 봄
1) 금식은 그저 사람에게 거룩하게 보여 칭찬 듣는 일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안중(眼中)에도 없는 그런 외식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경고입니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사 58:4). 금식은 보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결심하는 경건 실천입니다.
☀ 새겨 봄
1)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이 금식하는 것과 달리, 주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변호하셨습니다(막2:18-19). 다만 금식할 그 날이 오리라고 하십니다. 부활절 이후의 초대 교회 성도들은 금식을 했습니다(행 13:2). 참된 금식은 아름다운 경건의 모양과 함께 진실한 실천입니다.
첫댓글 주님 언제든지 사람에게 보이려는 위선을 버리고 하나님께 보이기 위해 애쓰는 자 되게 하옵소서
" 금식은 보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결심하는 경건 실천 " " “단식은 살아서 죽음을 체험하는 것”(도로테 죌레)
주님 , 아버지, 어머니, 언니들.. 제가 경험한 죽음들입니다. 그 과정은 제가 흔들리는 과정이었고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금식을 통해 나의 죽음을 다시 경험하게 하게 하십니다. 두려움 없는 삶을 약속하십니다.
남에게 보여주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바라며 꾸밈없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늘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주변을 의식하며 외식하는 신앙 생활을 경계하게 하소서.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앞에 바른 태도와 진실한 마음으로 경건 생활에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일을 기쁘게 하되 세상의 상을 구하지 않게 하시고 위선과 교만으로 행하지 않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