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 중,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셋째 놈은 서울 대 교육대학원 교육심리학과에 적을 두고 석사과정을 이수하였다.
낮에는 스승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학생이 되어 교수들의 가르침을 받는 고달픈 나날을 보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에 쫓겨 셋째 놈은 너무나 심신의 피로가 겹쳐 뼈만 앙상하게 남았었다.
나는 공부도 좋지만 건강을 생각하라고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으나 한 번 먹은 마음은 변치 않고 학구연마에 열중하였다.
1973년 8월 20일에 서울대학교 강당에서 석사학위 수여식이 있었다. 나는 아내하고 큰놈과 같이 참석하였다. 대학교 졸업식 때보다 더 엄숙하고 사각 모자와 옷부터가 더 고상하고 품위가 있어보였다.
셋째 놈이 받은 석사 논문 제목은[敎 ]였다.
석사 학위증을 받아들고 나오는 셋째 놈의 모습은 마치 대학 총장같이 보였다.
“아버지 이 옷과 모자를 쓰고 사진 한 번 찍으시지요.”
“싫다, 나는 그 옷을 입을 자격이 없어.”
“그러면 어머니라도 한 번 찍으시지요.”
“그래, 한 번 찍어 보자. 호호호... .”
아들 덕분에 엉터리 석사가 된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나는 한 바탕 웃었다.
“형님도 한 번 찍으시지요.”
“나는 동생의 박사학위 옷을 입고 찍을 테니 더 연구를 계속해.”
“그것은 차후 문제고 오늘 한번 찍으세요.”
큰 놈은 셋째 놈이 자꾸 권하는 바람에 석사 복을 입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가 않았다. 아마 알맹이 없는 석사라 그런가 보다.
셋째 놈 덕분에 엉터리 석사가 둘이나 탄생되었다. 비록 엉터리이지만 그렇게 보기 좋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나도 그 때 한 번 찍어 둘 것을 ..... .’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그 날 저녁,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최고 학부를 졸업한 셋째 놈은 두더지 같은 나의 손과 발을 만지며 나의 만수무강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