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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걷고 | 부상1리- ▲서봉- 칼다봉-대혜담-대혜폭포-금오저수지-구미역 1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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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걷고 | 부상1리- ▲서봉- 칼다봉-대혜담-대혜폭포-금오저수지-구미역 2 - Daum 카페
2분 후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하트를 닮아가는
"대성저수지" 가 보이는데
저기도 둘레길은 있다.
능선 아래
"이오오봉" 능선
당겨본
"대성저수지"
1분 후
"자연환경연수원 2.3km" →
2분 후
우측의 전망바위
■ ~ ~
■ ~ ~ ~
■ ~ ~ ~ ~
■ ~ ~ ~ ~ ~
2분 후
암릉에서 좌측 전망
앞에 능선은
"돌탑봉"
뒤쪽 능선은
"제석봉, 국사봉, 효자봉"
"대성저수지"
"자연환경연수원" 방향 능선
한 번 더 당겨본
"대성저수지"
5분 후
"자연환경연수원 2.0km" 갈림길
여기서 궁금증이 발동하여
"자연환경연수원" 방향을 버리고
"폭포" 방향 으로 꺽어
산허리를 따라가는데.
등로는 완만하고 내림길이다.
"폭포 (거리 표시는 없다)" →
6분 후
암벽 옆을 지나가고
4분 후
흐릿한 사거리 갈림길
"직진으로 (뚜렸)" →
1분 후
너덜을 지나서 내려간다.
5분 후
"대혜담" 에 왔다.
그 동안 궁금했던 곳인데
오늘 그 궁금증을 해소하게 되었다.
햇살 아래
반영이 깔끔하다.
♠ 뒤돌아 보고
아래 보이는
"금오저수지"
당겨본
"금오저수지, 대관람차" 뒤로
"구미역" 일대
건너오면 있는
"大惠潭(대혜담)"
■ ■ ■
2분 (오름) 후
"성안" 에서 오는 등로에 합류
좌측으로 간다.
"대혜폭포" →
잠시후
금오산 도립공원 안내도
1분 후
"현위치 2 구조목"
잠시후
로프를 건너간다.
1분 후
미끄러운 로프 암반릉
우측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잠시후
"현위치 1 구조목"
우측으로 꺽고 →
잠시후
"할딱고개" 올라가는
데크 계단이 보이고
내려서면
5월 15일이 지났으니
등산로 폐쇄 현수막이 사라졌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이정표
4분 후
"대혜폭포(大惠瀑佈)와 욕담(浴潭)"
해발 400m 지점에 위치한 수직 27m 높이의 이 폭포는
대혜폭포 또는 대혜비폭(大惠飛瀑) 이라하며
떨어지는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 하여
명금폭포(鳴金瀑佈)라는 별명도 있다.
금오산 정상부근의 분지에서 발원하여
긴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폭포수는
이 고장 관개(灌漑)의 유일한 수자원이 되니
큰 은혜의 골이라 하여 대혜골이라 했고
주변의 경관은 경북8경
또는 소금강(小金剛) 이라고도 한다.
또한 물이 떨어지는 일대의 움푹 패인 연못이 있어
욕담(浴潭) 이라 하니
선녀들이 폭포의 물보라가 이는날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주변 경관과 옥같이 맑은 물에 탐하여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자연보호운동 여기서 시작되다.
1977년 9월 5일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곳 대혜폭포에 도착하자
깨어진 병 조각과 휴지가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자 우리 청소 작업부터 하지" 라고 말하면서
바위틈에 박힌 유리병 조각을 일일이 주웠다.
이것이 자연보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도선굴" 로 가는 방향인데
오늘 "도선굴" 은 패스!!
폭포 수량이
엊그제 보다 조금 못하다.
지난 주 동영상으로 대체!!
◆ ◆ ◆
아래 목교를 지나
계단을 내려간다.
1분 후
"도선굴 0.2km" 갈림길
계속 내려간다.
진행 방향은 표식이 없다.
아래 쉼터 지나고
♠ 우측에는 깔끔한 화장실
2분 후
♠ 좌측에 있는
"케이블카 상부승강장"
계속 내려간다.
이정표
잠시후
"靈興井(영흥정)"
이 물은 지하 168m의 암반층에서 솟아나는
맑고 신선한 지하수입니다.
금오산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 여러분들께
식수로 공급하고 있으니
깨끗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금오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장
우측에 있는
파고라 쉼터
4분 후
"대혜문" 을 지나고
금오산성(金烏山城)
경상북도 기념물 제 67-1호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산 33외 6필
이 성은 금오산(金烏山, 976m)의 정상부와 계곡에
이중으로 축조한 산성이다.
규모는 외성이 길이 약 3,700m, 내성이 약 2,700m이며,
성벽의 높이는 지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북문 근방은 약 3m, 험준한 절벽 위는 1m 정도이며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말기 왜구(倭寇)의 침입 때
주변지역의 백성들이 이 성에 들어와 지켰다.
그 후 조선 태종(太宗) 10년 (1410)에
나라에서 나라에서 크게 고쳐 쌓았으며
왜란(倭亂)ㆍ호란(胡亂) 직후와
고종(高宗) 5년(1868)에 계속해서 고쳐 쌓았다.
성내에는 고종 때 대원군의 지시로 세운
금오산성 중수 송공비(金烏山城 重修訟功碑)'가 있는데
이것은 산성과 건물을 중수한 후 세운 기념비로
백성의 생업 종사 및 태평성대를 구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3분 후
데크 길을 내려간다.
2분 후
"금오동학(金烏洞壑)"
조선조 중종때
선산 대망동(大網洞)에서 태어난 명필가
덕산인(德山人)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가 쓴 것으로
금오산은 깊고 그윽한 절경임을 뜻하는 글귀로
사람을 위압할 큰 글씨로 초서(草書)로서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고산 황기로 선생은
중국에서도 왕희지(王羲之) 다음 일인자라 하고
초성(草聖)이라 일렀으니
가히 짐작 할 수 있겠다.
그는 또 신사임당(申師任堂)의 넷째 아들
옥산(玉山) 이우(李禹)의 장인으로써
만년에는 보천탄(寶泉灘) 위에 매학정을 지어
시서금(詩書琴)으로 세월을 보냈다.
각 글자의 크기는 가로, 세로 약 1M가 된다.
♠ 내려온 방향
4분 후
"케이블카 하부승강장" 옥상
조형물
1분 후
"금오산성사적비"
이정표
♠ 뒤돌아 본
"케이블카하부 승강장"
2분 후
"탐방 안내소"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6분 후
오른쪽에 있는
눈이 편안해지는
"잔디광장"
"금오산"
왼쪽에 있는 "채미정"
"망국의 한과 안타까움" 이 서려있는
야은 길재의 회고가
懷古歌
오백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冶隱 吉 再 (1353~1419)
"구미 채미정 (龜尾 採薇亭)"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이 건물은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 선생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英祖 44년(1768)에 건립한 정자이다.
야은 선생은 고려시대인 1386년에
진사시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 1)에 올랐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벼슬을 마다하고
선산善山에 머무르며
고려왕조에 대한 도리를 지켰다.
'채미'라는 이름은
야은 선생이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중국의 충신 백이伯夷, 숙제叔齊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지은 것이다.
채미정은 흥기문興起門을 지나
우측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이다.
뒤편에는 야은 선생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기린
숙종의 어필오언구 2)가 있는
경모각敬慕閣과 유허비각 3)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1) 문하주서(門下注書) : 고려시대에, 문하부에 속하여 문서 또는 기록을 맡아보던 종칠품 벼슬.
2) 어필오언구(御筆五言句) : 임금이 쓴 시
3) 유허비각(遺墟碑閣) : 야은 선생을 기리는 비
오른쪽에 보이는 식당가
"금오산 안내"
금오산(金烏山)은 해발976의 평지돌출형으로
산세가 가파르고 기암절벽과 수림이 잘 어울린 산으로
보물 409호인 마애여래입상을 비롯한 대혜폭포, 도선굴 등
자연경관이 빼어나
예로부터 영남팔경으로 꼽혀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그들이 남긴 암각이 다수 남아 있고
고려 말 충신 야은 길재선생을 기리는
채미정이 산 입구에 자리하여 빛을 더하고 있으며
금오산성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산성으로
외침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역사현장이다.
고려시대는 남숭산(南崇山)이라 불렀으며
조선시대부터 금오산으로 불리어 오고 있다.
산의 동쪽에서 바라보면
사람이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것 같이 보여서
와불산(臥佛山) 또는
거인산(巨人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금오산은 1970년 6월
국내 최초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금오산은 태양의 정기 받은 밝음의 산이요,
충절이 스며든 호곡의 산이며,
"조선인재 반재 영남 영남인재 반재 선산(善山)(현 구미시)" 이란 말 대로
수 많은 인재가 이 산아래 배출되었으며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 또한
금오산 기슭에서 태어나게 한 인재의 곳이다.
오늘 날 전국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모여들어
"젊은 도시 구미" 를 이룩하여
우리나라 내륙최대의 디지털 첨단산업 도시를 이룬
젊은이들의 힘의 원천이 되기도한
한국제일의 명산이다.
2분 후
"금오랜드 대관람차"
愛國志士朴喜光先生之像
(애국지사 박희광선생지상)
항일 독립투사 박희광(朴喜光) 선생은
1901. 2 . 15 구미 봉곡동에서
밀양박씨 경주부윤(慶州府尹) 박수홍(朴守弘)의
11세손이며 박윤하(朴胤夏)공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8세에 대한통의부에 입대하여
특공대원으로활약하면서
민족반역자 정갑주와 그의 처자를 총살하고,
이등박문의 수양녀인 요화 배정자 와
매국단체인 일진회의 이용구, 최정규의
암살을 시도했다.
일본 군경과 일제 기관에 대하여
수차례 기습작전을 감행하던 등
항일독립전쟁사에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1924. 7. 23 일본인 요정 금정관에 침입
거금의 군자금을 빼내어 나오다 피체되어
중국 뤼순(旅順) 형무소에서
20년간 모진 옥고를 치렀다.
1968. 3. 1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국민장을 서훈 받았다.
1970. 1. 22 70세를 일기로 작고,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으며,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
1973. 3. 1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 내리신
친필 휘호와 하사금을 바탕으로
모두가 힘을 모아
선생의 애국 혼을 후세에 길이 높이고자
이 곳에 동상을 세웠다.
1984년 12월 28일
박희광선생기념사업회
"금오산 올레길 안내도"
"금오정, 오리배유선장"
데크길을 따라
우측 수변으로 걸어간다.
1분 후
♠ 뒤돌아 보고
3분 후
건너편에 보이는
"오리배유선장, 배꼽마당"
"금오저수지 둑방" 을 조망하고
5분 후
"금오저수지 둑방"
아래 보이는
"금오천, 여리숲"
당신은 구미의 별
"현월봉, 칼다봉" ~
"올레길전망대" 가 있는 봉우리
"구미역" 방향
금오산도립공원
<역사적배경>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 금오산(禁烏山)은
신라때부터 변경수호의 간성이 되었다가
임진왜란 때에는 금오산성이 활용되었고,
그 후 여기에 군졸 300을 두고 인접 시ㆍ군을 관장하였다.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고래로 시인 묵객의 안주지였으며
고려말 충신 길재(吉再)선생이
그 충절을 지킨 사적을 비롯하여 사명당(泗冥堂) 등의 일화가 있다.
<보물>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 대각국사비(大覺國師碑), 갈항사(葛項寺),
석조석가여래좌상(石造釋迦如來坐像)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사적지>
금오산성(金烏山城), 채미정(採薇亭), 도선굴(道詵窟), 약사암(藥師庵) 경관은
행인을 의연한 자세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관광물>
대혜폭포(大惠瀑布), 금오정, 케이블카, 해운사(海雲寺),
정상의 범종, 금오지, 대성지, 전망대 등은
훌륭한 관광자원과 안식처로서 찾아온 사람들이 떠날 줄을 모른다.
<시설물>
금오산은 1970. 6. 1 전국 최초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채미정의 석교, 백운교, 금오산올레길, 폭포 주변의 휴계시설, 야영장,
금오랜드, 유선장, 주차장, 관광호텔 등의 많은 시설을 개발하였다.
<환경연수원>
금오지를 따라 우측 아홉산 계곡에
1983. 5월 구미시 자연학습원으로 설립하여
2009. 9월 (재)경상북도환경연수원으로 개원하였다.
금오산의 대자연 속에서
도민에게 자연에 대한 이해와 자연 애호정신을 함양케 하며
저탄소 녹색성장시대를 준비하는 환경교육의 요람이다.
▶ 지도를 참고하여
"구미역" 으로 간다.
15분 후
"구미역 후면광장"
"구미 평화의 소녀상"
구미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역사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며,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의 실현을 위해
미래 세대에 올바르고 정의로운
역사교육의 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구미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2018년 3월 1일에 건립하였습니다.
옆으로 조금 옮겨보면
"여리숲 안내"
구미 한류문화관광 1번지 "여리숲"
가수 황치열 국내외팬들의 기부로 조성된
힐링공간이자
관광도시 구미로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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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수 황치열 국내외 팬덤의
기증으로 조성이 시작된 여리숲은
현재 금오산 올레길 입구와
가수의 모교인
한국폴리텍대학 구미캠퍼스 교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고향에 대한 애정을 표현함으로써
국내외 팬들의 구미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졌으며
여리숲은 팬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 6시에 "부산" 으로 가는
"무궁화호" 를 타려고
걸음을 빨리하여 왔는데
그 시간에는 선로 정비관계로
열차가 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열차 시간을 이리저리 맞추어 보니
그냥 기다리지 않고
"대경선" 을 타고 "경산" 까지 가서
"ITX(새마을)" 를 타고
"부산" 으로 귀가하는 것이
차비도 절약되고
괜찮을 것 같아 그렇게 하였다.
"경산" 에서 대경선을 내릴 때
뒷주머니의 지갑이 빠진 것도 모르고
그냥 내릴 뻔한 아찔한 사건도 있었다.
오늘은 좌우지간에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