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8장까지는 종교적인 의심이나 문화적인 문제를
다루었지만 9장부터는 다른 차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중에 9장은 사도권에 대한 논쟁입니다.
신앙생활에 지대한 영양을 미치는 것이 바로 사도의 권위입니다.
예컨대 목사의 설교냐 전도사의 설교냐 그 차이를 두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사도권에 대해 바울을 힐문했습니다.
우리는 고전9장을 통해 사도권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일어난 한 영성운동 중에 특정인이 다른 이에게
사도권을 수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므로 여러 가지 말들이 많습니다.
사도권은 1) 하나님이 주신 사도권이 있고 2) 조직이 주는
사도권(교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도들을 발전시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참고로 그 당시 사도는
1) 예수님의 생전에 부름을 받아야 했습니다
2) 예수님이 직접 부르셔야 했습니다.
3)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을 해야 했습니다.
4) 그리고 오순절 성령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면으로 볼 때에 교회 안에서 바울에 대한 사도권의 시비가
능히 일어 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도 이 조건에 맞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나는 사도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1절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사도는 자유자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사도는 주의 부르심을 받아
먼저 주의 제자가 되고 난 다음에 보내심을 받은 사도가 됩니다.
제자는 바로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자입니다(요8:31-32) 제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거하므로 진리를 알게 되어 그 진리가 자유를 주십니다.
그런데 성경이 곧 진리라고 이야기 해버리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자신은 아직 진리를 터득하지 못했다는 다른 말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리스도 곧 아들이 자유하게 하십니다. 성숙한 자유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면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역자입니다. 그러나 미숙한 자유자는
자신을 위한 자기중심적인 자유자가 되고 맙니다.
고전9장18절과 19절 사이가 분기점입니다.
18절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그리고 24절이 9장의 결론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18절까지는 주로 사도권에 대한 변론이었습니다. 그 한계와 영역에 대한
내용을 바울이 진술합니다. 그리고 19절 부터는 성숙한 자유자 곧 그리스도의
종이 된 자유자에 대한 내용의 말씀입니다.
사도는 자유자인데 한 일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1절)
그것이 바로 2절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존재하는 그 자체가 바울 자신이
사도라는 증거가 됩니다. 이와 같이 사도는 사역과 관계가 있고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아비처럼 낳아야 합니다. 그의 입의 말이 열매이며 그 말로 씨를 맺고 열매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곡식은 양식이 될 수도 있고 씨앗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최고의 품종이 씨앗이 됩니다. 따라서 사도는 곡식의 종자와 같습니다.
그가 전하는 생명의 말씀이 좋은 씨앗이 되어 좋은 열매가 맺도록 해야 합니다.
의문에 쓰인 구약의 율법의 교회는 죽이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점점 쇠퇴해집니다.
사망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교회는 심비에
새겨진 말씀 곧 영과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점점 발전해 갑니다.
지금도 온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교회와 사역자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행1:8)
우리가 주의 죽으심으로 구속함을 받아 그 피 안에서 한 생명이 되어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자유자가 아니면 어찌 죄인을 위해 변론을 하겠습니까?
부흥이라고 말을 하는데 성경적인 부흥은 죽었다가 다시 산 자가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는 권능에 의해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거듭남과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실과 성령과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주의 이김이 나의 이김이 되는 달음질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람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사도다 그 증거는 첫째 자유자이라는 것과 그 다음에는
자유자이기 때문에 죄와 사망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죄와 사망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와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알게 하는 계시의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매가 있다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고린도교회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내가 확실하게 사도라고 담대하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고전9:2)
신18:22절에 만일 선지자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이 없고 성취함이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가 아니라 지어낸 말을
꽃다발처럼 아름답게 편집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는데 주력하는 설교일 뿐입니다.
만일 서울 가는 길을 모르는 사람을 따라 서울 간다고 길을 나서면
둘 다 어긋난 길로 가고 말 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의와 거룩과 영광을 얻은 자로서 성령 안에서
진리로 자유를 얻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담대히 나아가는
자유자가 아니면 조직이나 제도(교단)가 세운 사역자일 뿐 하나님의 사도는 아닐 겁니다.
그래서 목회자 또는 선교사들에게 성경을 강해를 시작하기 전에 이 중에 성령과
진리로 참 예배(요4:24)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실 분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직 한 분도 나요 하고 나와서 설명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죄인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의롭게 되어 진리 안에 자유를 얻어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되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지 그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수가 있겠지요?
사도바울은 삼층천을 보았고 그 삼층천을 본 자신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누구든지 나아갈 수 있는 교회의 비밀이 담긴 에베소서를 기록한 사도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바울 서신의 지성소라고도 일컫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진리 안에서 자유가 사역자에게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증거하는 말씀을 듣고 성경적인 증험과 성취가 나타나는 겁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주님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