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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강좌 25강
이번주 디카시 강좌는 '우주를 불러오는 대화의 시', 이기영 디카시집 『전화 해, 기다릴게』 를 해설한 김종회 교수님의 평설로 대체합니다.
【디카시 강좌】
김종회 교수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1. 디카시 창작과 문예운동의 산 증인
이기영은 2013년 《열린시학》으로 문단에 나온, 꼭 10년의 창작과 활동 경력을 채운 문인이다. 그가 2016년에 낸 시집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경남문화예술진흥기금 수혜, 2017년 세종우수도서 선정, 2018년 제14회 김달진창원문학상 수상 등의 영예를 안았다. 그런가 하면 2020년에 낸 시집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선정, 2022년 제3회 이병주국제문학상 경남문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생애 처음과 두 번째의 시집이 모두 전통 있고 명망 있는 문학상의 수상작이 되었으니, 그는 분명 볼품 있는 시인이자 그 시의 문학성을 객관적으로 인정 받은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 이기영 시인이 이번에는 2020년 첫 디카시집 『인생』을 펴낸 이래 두 번째로 『전화 해, 기다릴게』를 상재(上梓)한다. 디카시인으로서의 출간 경력은 간략하지만 그 배면에 숨어 있는 그의 노력과 수고, 디카시를 향한 충일(充溢)한 열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는 현재 한국디카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디카시연구소 사무국장, 경남정보대 평생교육원 디카시 강의교수 등의 직함을 갖고 있으며 그 외에도 《백세시대신문》, 《미디어시인신문》, 《경남신문》 등의 언론에 필진으로서 글을 쓰고 있다. 참으로 절실한 사실은 디카시 창작을 진작하고 그 문예운동을 확산하는 길 어디에나 이기영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공로를 익히 알고 있기에, 이번 시집이 더욱 빛나 보이는 형국이다.
2. 대화를 이끌어내는 사진과 시의 힘
이 디카시집의 제1부에 수록된 시들은, 시인이 모든 사물 또는 풍경과 대화가 가능한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는 측면을 보여준다. 그는 삼라만상의 존재와 운행에서, 언제 어디서나 시를 찾아낼 수 있는 밝은 눈의 소유자다. 온 우주를 자신의 시 세계로 불러올 수 있는 대화체의 기법을 부드럽고 능란하게 구사한다. 그리고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지점은, 가장 그 내면을 알기 어려운 사람-독자와의 소통일 시 분명하다. 그러기에 「픽션」에서는 전봇대·전기줄과 낙엽들의 조합에 ‘소란스런 짝사랑’을 매설하고, 「봄날 2」에서는 화려한 벚꽃의 만개에 결부하여 ‘하염없는 한량들’을 유추한다. 「너, 다 들켰어」, 「옥구슬이 서 말이라도」 같은 시들도 그렇다. 이 탐색과 교감과 소통의 방정식은 매우 편안한 대화체의 어법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사된다.
용두사미(龍頭蛇尾)
아직은 땅이에요 기어다니죠
발톱이 생길 때까지
날개가 달릴 때까지
폭풍우 치는 밤이 올 때까지는
바닷가 모래사장이거나 아니면 강가 퇴적지로 보이는 이 물가에, 물의 흔적이 길게 꼬리를 남겼다. 어느 모로 보나 용이나 뱀의 꼬리 형상이다. ‘용두사미’란 제목이 붙은 이유다. 우리 삶의 실상을 돌아보면, 얼마나 용두사미 격의 일이 많은가. 그러한 보편적 공감대 위에서 이 순간 포착의 사진 한 장은, 그 풍경에서부터 뭔가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시인은 아직 땅이라고, 기어 다닌다고 썼다. 그리고 발톱이 생기고 날개가 달리고 폭풍우 치는 밤이 오면,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듯이 새로운 세상의 전개가 예비 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러할 때 범상한 물길의 형용은, 문득 신화나 전설 속의 개천(蓋天)을 소환하고 일상적인 시각을 우주론적 공간으로 개방한다.
청춘
모든 날들이 매 순간
저토록 눈부시게 빛났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청춘의 날을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나 영상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욕심내지 않았다. 중·고등학생 쯤으로 여겨지는 소녀들의 뒷모습. 멀리 전방 지점에 국궁(國弓)의 과녁이 서 있고 이들은 저마다의 재잘거림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일찍이 호머는 청춘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너를 보고 있으면 델로스섬에서 아크로폴리스 신전 곁에 하늘을 향하여 땅으로부터 치솟은 종려나무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다음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에 너무 아깝다.” 이 맑고 청청한 청춘의 시절이 얼마나 귀한지 그들 자신은 잘 모른다는 뜻이다. 시인 또한 그렇게 말한다. ‘그때는 몰랐다’고.
3.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시의 눈
“시인이란 무릇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 볼 수 있고 개인의 인격에 대한 인습적 개념을 형성하는 모든 제약과 통제를 무너뜨림으로써 영원한 신의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서의 예언자, 곧 ‘견자(見者, Voyant)’가 되어야 한다.” 19세기 후반을 화려하게 장식한 프랑스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내세운 ‘견자의 시학’이다. 우리가 랭보처럼 기발한 상상력의 운용이나 일상에 대한 혁파를 수행하기는 힘들지만,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실재하는 시적 개념을 찾아내는 견자일 수 있다. 이 시집의 제2부에서 이기영은, 그렇게 순정한 시의 눈으로 디카시의 여러 모형을 탐색한다. 「주문」, 「끝이라는 시작점」, 「소금꽃」, 「이만하면」 등 매우 ‘신박’한 사진을 앞세운 디카시들이 바로 그와 같은 시의 행렬에 해당한다.
전화해, 기다릴게
언제 밥 한 번 먹자
인사치레로 건넨 말인 것쯤 아는데
아는데, 밥이라는 말이 너무 따스해서
함께 먹고 싶은 밥 고르고 골라
주머니에 꼬옥 넣고 다녀
이 시집의 표제작인 「전화 해, 기다릴게」는 봄날의 꽃밭처럼 백화난만한 식당의 메뉴판을 눈앞에 두었다. 몇 사람의 손님이 그 메뉴를 응시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다단하고 다양다기한 삶의 현장을 반영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매일같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진다. 시인은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대화의 레토릭을 서두에 가져다 두었다. ‘인사치레’인 줄 알지만 ‘밥’이라는 말이 너무 따스하다. 그래서 함께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주머니에 ‘꼬옥’ 넣고 다닌다는 것이 아닌가. 크고 화려한 자리를 욕심내지 않고, 작고 소박한 만남에 방점을 둔 마음 약한 소시민!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꽃눈이 막 눈 뜨려는 나뭇가지에
밤새 눈이 내려
파르르 파르르 눈꽃이 피었다
마르크 샤갈의 그림 중에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란 이름을 가진 작품은 없다. 우리에게 이 제목이 익숙한 것은 김춘수의 시와 박상우의 소설 때문이다. 김춘수의 시에서,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보고’ 서 있는 계절이다. 이기영이 그린 샤갈의 마을, 시의 문맥으로 보면 아마도 유사한 시기일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꽃눈이 열리려는 나뭇가지에 밤새 내린 눈, ‘파르르 파르르’ 핀 눈꽃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 눈꽃에서 시인은 무엇을 보았을까. 이는 짐작할 수 있어도 발설하기는 어렵다. 그것이야말로 시인이 곱게 숨겨둔 비의(秘義)이기에. 그러나 이 시리고 맑은 시 한 편은 그 짐작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4. 따뜻한 이해 또는 용서의 형이상학
공자가 아끼던 제자 자공이 물었다.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의 대답이다. “그것은 용서다!(其庶乎).” 우리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자.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대상이 누구일까. 여기에 정답이 있을 수 없겠지만, 어쩌면 그 대답은 ‘나 자신’이기 쉽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자책과 아쉬움의 감정을 안고 산다. 그런데 시에, 문학에 이 모난 정신을 추스르는 치유의 능력이 있음을 아는가. 이기영의 시 「JAZZ」에, 「장주지몽(莊周之夢)」에, 「구룡포」에, 「맨발의 탁본」에 그와 같은 힘이 숨어 있다. 이 시들은 먼저 현실의 상황과 그것을 반영한 사진을 적시(摘示)하고, 그 내면에 숨은 의미망을 발굴함으로써 사태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인다. 안과 밖을 모두 알고 나면 우리의 심사가 더 이상 각박해질 수가 없다.
물의 정원
폭염 속을 걸어온 여름이
더운 몸을 담그고
몸을 식히는 한낮
적막과 고요가 서로의 몸을 부비며
찬란한 눈빛을 빛내고 있다
‘물의 정원’이란 명호가 달린 이 시의 사진이 어디서 촬영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뭇잎에 연초록 입김이 배어 있는 것을 보면 봄날의 한때인 것 같은데, 시인은 ‘폭염 속을 걸어온 여름이 더운 몸을 담그고 몸을 식히는 한낮’이라 한다. 적막과 고요, 찬란한 눈빛 등의 어휘들이 제 몫을 다하는 것은 나무의 그림자를 담고 있는 연못이 함께 펼쳐져 있는 까닭에서다. 이 데칼코마니를 이룬 대칭과 반사의 구도가 작동하고 있기에, 사진과 시는 입체적이 되고 깊이를 자랑하며 종내 형이상학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호심(湖心)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은 나무만이 아니다. 우리도 거기에서 숨은 우리의 모습을 찾고, 이해하고 또 용서한다.
편견
꽃들은 모두 하늘거리는 꽃잎을 가졌다?
꽃에게도 저마다의 개인적 취향이라는 게 있다
왜 이 시에 ‘편견’이란 좀 튀는 제목을 붙였을까. 수리취꽃이다. 양지 혹은 반그늘의 물 빠짐이 좋고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자라고 거친 표면과 가시를 가진 잎이 있으며 그래서 꽃이라 부르기에 난감할 때가 있다. 시인은 이 모두를 익히 알고 있기에, 오히려 이 꽃의 얼굴을 렌즈에 담았다. 연이어 꽃에게도 저마다의 ‘개인적 취향’이 있다고 강변한다. 꽃잎이 모두 하늘거린다는 생각이 편견이라는 것이다. 자! 여기에 이르면, 이 시인이 상정하는 편견의 의미가 굳이 이 꽃만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님을 쉽게 그리고 확연히 알게 된다. 바로 우리가 감당하며 사는 관계성의 법칙을 말하는 터이다. 짧지만 강력하고 또 분명한 메시지다. 우리가 이 시를 교훈 삼아 하나의 편견이라도 지울 수 있다면, 우리는 훌륭한 독자다.
5. 아프고 슬프고 사라지는 것을 애도
인간의 생애가 유한한 것이 아니었다면, 인류사에 명멸한 그 많은 예술 작품이 존재했을까.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있는 그 무엇도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속절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이와 같은 한시적 순간을 오래 또는 영원히 붙들어두는 것이 예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기영의 이 시집 제4부에서 「세월 앞에 장사 없다」를 보면, 물살에 침식하는 큰 나무의 밑동을 볼 수 있다. 비단이 나무뿐이겠는가. 「하루 또 하루」, 「바람의 공수표」, 「폼페이 최후의 날」 같은 시들이 아프고 슬프고 마침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를 표상한다. 참 좋은 시들이다.
공작쇼
사람들은 감탄의 연발이지만
백 년 동안 키운 꼬리가 너무 무거워
나는 한 번 펼칠 때마다 현기증이 나
노목의 굽은 가지가, 그 가지에서 창궐한 잎이 마치 공작새 날개 펼친 모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작쇼’라 명명(命名)이 왔다. 유심히 바라보면 매우 잘 포착한 광경이다. 사람들이 감탄을 연발하지만 ‘나’는 한 번 펼칠 때마다 현기증이 난다. ‘벽 년 동안 키운 꼬리’가 무거워서다. 이때의 시적 화자 ‘나’는 누구일까를 해명한다면, 이 시에 시인이 담고자 한 속뜻을 만나게 된다. 그 ‘나’는 이 나무요 나무가 형상화하고 있는 공작새요 궁극에 있어서는 모든 문리(文理)를 꿰뚫고 있는 시인 자신이다. 곤고한 삶의 역정은 누구에게나 매한가지이겠으나, 외형의 현란이 결코 내면의 결곡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깨달음은 아무나 얻는 것이 아니다.
공치는 날
비가 와서 기다리는 일도 따분하고
비새는 지붕이나 고쳐야겠는데
이곳을 고치면 저곳이 샌다
서러운 건 나인데 왜,
글썽이는 건 너일까
넓게 펼쳐진 거미줄, 거미의 집이다. 천망(天網)은 아니더라도 소이불루(疎而不漏)할 것 같은데, ‘공치는 날’이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에 그렇게 공치는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시인은 ‘서러운 건 나인데 왜, 글썽이는 건 너일까’라고 반문한다. 당연하다. 이 곡진한 정황의 감정이입에 의하면 ‘나’와 ‘너’가 각각이 아닌 연유에서다. 이기영의 시들은 이렇게 여러 유형의 감정, 여러 절목의 각성, 여러 방식의 대화 기법을 활용하면서 시야의 넓이와 생각의 깊이를 가진 디카시가 어떤 것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그의 디카시에 대한 변함없는 열의와 빼어난 창작으로 인하여, 우리의 디카시가 여러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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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맛있는 디카시 한편]에 서병관 님의 <생일아침>을 소개한다. 소박한 삶의 미학이 묻어나는 '생활문학 '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디카시
생일 아침
네 아들 축하 속에
아내가 차려준 밥상
웃음 끝 핑돈 눈물
오늘 출근길은
가장 어깨가 가볍다
-지산 서병관
서병관 님의 '생일 아침'은 잔잔한 감동이 전해진다. 또한 디지털 영상, 디지털 글쓰기, 디지털 제목 3종 세트가 물 흐르듯 연결되고 있다. 네 아들과 함께 생일 밥상을 맞이하는 뜻 깊은 아침을 진술하고 있다. 네 아들의 축하는 그 어떤 누구의 축하보다도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요즘, 70대가 20대 보다 더 많은 분포 비율을 지닌 시대라고 할 정도로, 저출산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 상황 가운데, 네 아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일상을 디카시로 창작하고 있는 서병관 님의 하루하루는 참으로 그 의미가 새롭다. 특히 가족의 중요성을 뜻 깊게 부각하고 있는 '생일 아침'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족 디카시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디카시인이라 할 수 있다.
'아내가 차려준 밥상 / 웃음 끝 핑돈 눈물'이란 시적 언술 속에 감동의 물결이 메아리친다. 가장인 남편으로서 아내의 노고에 대해 무척 고맙고, 미안한 마음 또한 진솔하게 전해진다.
"디카시는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주파수이다. 스마트폰이 켜져있을 때 디카시 신호 즉, 디카, 디카, 디카 소리가 들리면 디카시를 심장에 품고 사는 존재다.“
“디카시는 디지털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멀티종합언어다. 2004년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로 디카시를 발명했고 대한민국이 디카시의 종주국이다.”
디카시는 K-컬쳐 한류 열풍을 이끄는 디지털문학의 주류다. 디카시를 아끼고 사랑하면 할수록 디카시 세계화는 앞당겨진다.
- 정유지(부산디카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