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십일조 기원>
십일조에 대한 성서 기록은 창세기 14장에 나온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부족들의 전쟁에 휘말려 포로로 잡혀간 것을 알게 된다. 아브라함은 즉시 자기 종들을 무장시켜 조카를 구해왔다. 그러자 인근 족장들이 환대했다. 그중 한 사람이 ‘멜키체덱’이다. 그는 임금이며 사제였는데 빵과 포도주를 가져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창세 14,21). 이것이 성경에서 십일조와 연관된 첫 기록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사악의 아들 야곱은 형 에사우를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다. 형 에사우가 독한 앙심을 품자 어머니 레베카는 야곱을 ‘하란’의 친정으로 피신보냈다(창세 27,43). 도망쳐 가던 도중 야곱은 베텔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자 야곱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바치겠습니다.”(창세 28,21-22). 십일조와 연관된 두 번째 기록이다.
사무엘 예언자는 판관 시대를 마감하고 왕조 시대를 개창한 예언자다. 그는 다른 민족들처럼 자기들에게도 임금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왕정 제도의 여러 폐해를 열거하는데, 그 가운데에 십일조도 들어있다(1사무 8,15.17).
창세기 14장과 28장의 십일조가 성조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서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서의 다른 많은 구절처럼 이것들 역시 이야기가 쓰여지는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에 사무엘서가 예고하는 것처럼 임금에게 십일조를 낸 것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시대를 바탕으로 하여 십일조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짐작하기도 한다. 곧 이스라엘인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팔레스티나 땅에 살던 가나안인들은 십일조를 자기들이 섬기는 신에게 바치고, 다른 곳에서는 임금에게 바치기도 하였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백성도 왕실 성소의 유지비로 임금에게 내다가, 나중에는 성소의 관리자에게 직접 바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십일조 규정>
이러한 십일조는 모세 오경의 신명기, 레위기, 민수기에서 상세히 규정된다. 가장 먼저 저술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신명기에는 두 가지 십일조가 나온다. 먼저 해마다 밭에서 나는 모든 소출 곧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의 십분의 일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간다(신명 12,6-19; 14,22-27). 그곳에서, 곧 하느님 앞에서 기뻐하며 온 가족과 함께 그것을 먹는다. 성전에서 너무 멀리 살고 있어 농작물을 직접 가져가기 어려우면 돈으로 바꾸어 가서 그곳 성전에서 음식을 장만할 수도 있다. 음식을 장만하여 잔치를 벌이고 먹을 때의 성안에 사는 레위 지파 사람들도 청해야 한다. 이들은 다른 열한 지파와 달리 땅을 따로 받지 못하고 백성이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민수 18,20). 그런데 세 번째 해에는 십일조를 자기가 사는 곳에서 바친다(신명 14,28-29; 26,12-15). 이것은 제도적 무산층인 레위인, 그리고 사회적 무산층인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나누기 위한 것이다. 신명기의 본문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것은 여러 이러한 십일조는 일차적으로 밭과 과일나무에서 나는 농산물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레위기 27,32-33의 규정에서는 가축의 십일조도 포함된다(2역대 31,6도 참조).시대, 여러 곳에서 유래하는 관습이나 규정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이른바 ‘사제계 법전’에 따르면, 십일조가 해마다 레위인들에게만 돌아간다(레위 27,30-33; 민수 18,20-32). 레위인들은 또 그들대로 자기들이 받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떼어 사제들에게 준다. 이렇게 이 법전은 신명기와 달리 사제들과 레위인에게만 집중된다.
기원전 587년 유다왕국은 바빌론에 멸망되고 70여년 유배살이를 하였다. 그 시대 유다인들의 생활을 서술하는 느헤미야서에 따르면, 지도자들은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십일조를 거둔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들인 물건들은 성전 창고에 저장하고서는 필요에 따라 사용한다(느헤 10,32-39). 그런데 여기에서 레위기와 민수기의 사제계 법전과 다른 점이 또 드러난다. 곧 레위인들이 먼저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받고 거기에서 다시 십일조를 사제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레위인과 사제의 구분 없이 성전에서 봉직하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일조를 바친다는 사실이다(느헤 12,44-45). 이것은 레위지파에서 사제 직분을 우대하던 종전의 관습에서 버리고 레위지파 전체가 평등하게 대접받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 시대에도 바리사이들은 십일조를 지켰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 18,12) 그들은 채소밭에 심은 푸성귀도 10분의 1을 바쳤다(루카 11,42).
십일조 종류>
십일조는 일차적으로 밭과 과일나무에서 나는 농산물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러나 레위기 27,32-33의 규정에서는 가축의 십일조도 포함시키고 있다(2역대 31,6도 참조). 후대에는 농산물 가축물과 함께 돈으로 대체되었다. 십일조의 영역도 확대되어 모든 노동의 댓가(수입)가 십일조에 포함되기에 이른다.
십일조 정신과 목적>
중요한 것은 십일조의 정신이다. 십일조의 정신과 목적은 명백하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민족들은 땅은 임금의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땅을 비롯한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자기들이 하느님께 빌려 받은 그 땅에서 난 것들의 십분의 일을 바쳐, 그것으로 땅을 갖지 못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소출을 나누고 공존공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즉 십일조 규정은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있는 것이. 이러한 십일조의 정신과 가르침이 신명기 14,23에 언급되어 있다. “그러면 너희가 언제나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것이다.” 즉 십일조는 땅을 포함한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그 하느님의 뜻과 가르침을 실천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은 십일조 규정은 하느님 백성은 잘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그래서 말라키 예언자는 백성이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약탈”하는 것이라고 꾸짖는다(말라키 3,8). 삯을 내지 않고 하느님)남의 땅을 경작하여 밭 주인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성서시대의 십일조에 관해서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 면들이 있다. 아무튼 십일조는 유다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에서도 오랫동안 지켜졌다. (임승필 신부,경향잡지, 2001년 10월호)
유대교는 십일조 제도를 폐지했다. 성전에 봉사하는 레위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도 십일조 헌금을 채택하지 않았다. 박해 시대에도 십일조에 관한 논의는 없었다. 동방교회는 처음부터 십일조를 반대했고 로마교회는 중세기를 거치면서 매우 성행했지만 지금은 폐지되었다(신은근 신부,2012년 2월 5일 가톨릭 마산 14면). 일부 개신교에서는 지금도 실행하고 있다.
현대의 모든 국가는 여러 많은 종류의 세금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모든 상품의 구매시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강제 징수하여 국가를 운영한다. 전통적 종교 차원의 십일조를 해석할 때 함께 고려해 볼 일이다.
<참고: 임승필 신부,경향잡지, 2001년 10월호
신은근 신부, 20120205일 연중 제5주일 가톨릭 마산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