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완묵 시조집, 『하슬라에 부는 바람』, 도서출판 일문, 2018.
□ 호(號) : 원당(元堂) /임진(壬辰)년(1953년) 강릉 출생/2006년 6월 《현대시조》 등단
시조집 『산다는 게 알고보니』, 『하슬라에 부는 바람』
저서 『천부경(天符經)과 우주의 원리』 『1의 비밀』
강릉시 담산동 모산봉 아래 『휴운당(休雲堂)』에 살고 있음.
<시인의 말>
남은 할 일을 유추해보니 천부경(天符經) 사상을 어우르는 동양학의 원리를 나름대로 정립하여 앞으로 한 번 더 밝혀 놓을 예정이다.
부가하여 좀 더 농익은 시조 작품을 써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서문>
문학의 도반, 신완묵 시인/ 남진원
신완묵 시인은 나와 함께 명리학을 공부했고 문학의 길도 같이 걷고 있다. 나와는 친구이지만 늘 배울 점이 많이 있다. 단군의 경전인 천부경에도 조예가 깊어 두 권의 천부경 해설서를 내었다. 또 주역을 터득하여 세상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에 대해 깊이 궁구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바다와 육지
배에서 본 육지는 바다가 띄우는 배
산 등에 올라서면 바다는 호수 수면
뱃전에 기대고 보면 떠 있는 게 뭍이다
서로가 굳건하나 상대를 의지하니
흔들고 흔들리며 존재하는 것이려니
한쪽만 바라본다면 다른 쪽은 못 보네
바다를 짚은 육지, 육지를 기댄 바다
서로에 의탁하는 모습이 하도 좋아
오늘도 언덕 위에서 해안선을 넘본다.
삶이 뭔가 하니
들판의 풀씨처럼 바람에 날려 와서
인연 진 마을에다 남 몰래 뿌리박은
피어 날 나름대로의 향기인지 모른다
공간의 배에 실려 시간을 항해하다
여행이 피로하여 쉬어 갈 터를 찾는
피안(彼岸)의 더듬거리는 꿈일 수도 있겠지
흐름에 동조 한 채 일상을 안주하여
하루의 잔에 가득 허공을 술 따르는
한 가닥 의문에 기댄 미지속의 꿈이다.
침묵의 노래
청정이 환희인 줄 마침내 알고 나서
어둠의 장막에선 혼돈이 춤을 추고
적막은 힘을 보태어 줄 없는 현(絃)을 탄다
뜬 구름 그림자여, 너 또한 말이 없고
초승달 갈퀴에는 밤하늘이 걸렸구나
상마저 벗어 던지고 침묵에나 잠기자
빗장이 잠겼거든 구태여 열지마라
삶이란 집 한 채의 공간일 뿐이라네
차라리 소리 없으면 황홀하지 않은가
도(道)의 실체
젊어서 주워들은 하 많은 지식 중에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더니만
속도가 도(道)란 사실을 육십 넘어 알았네
자세히 살펴보면 자는 척 능청떨다
한 순간 피고 지는 들꽃의 움직임이
이름 해, 도(道)란 사실을 눈치 채게 되었네
도(道)란 성금하게 서둘지 아니하고
한사코 꾸물대며 늑장도 안 피우며
모든 게 당연하듯이 그저 그런 거라네
‘1의 비밀(秘密)’을 풀고 나서
경전(輕典)이 있다기에 사리를 찾겠다고
서녘을 다 뒤져도 별말씀 안들리네
별 짧은 해가 기울어 묘(妙)한 일(一)만 바쁘다
하늘이 버린 몸을 어쩌나 싶다가도
이왕에 나왔으니 한바탕 해보자고
일(一)자를 지렛대 삼아 천지간을 벌렸다
지는 해 바라보며 뒤돌아 서렸더니
일(一)자에 뚫린 하늘 줄 타고 흘러내려
‘내 모습 여기에 있다’ 듣고 싶던 말 하네
<한마디 서> ‘1의 비밀’은 2016년.5.10에 발간 한 천부경(天符經) 해설서이다. 탈고를 마치며 이렇게 말 할 수밖에 없는 느낌이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
겨울을 파헤치고 새싹이 눈을 뜬 후
꽃 순을 내밀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해님이 떠오르기에 그냥 그리 했단다
꽃들이 오고 감은 바람이 일 듯 한다
화들짝 피어나려 온 힘을 쏟다가도
다 피면 별게 아니다 눈을 감아 버린다
꽃이란 시들기에 그처럼 아름답다
단 한번 크게 웃고 제 표정을 보인 후에
스스로 사라져 가서 더욱 예쁜 거란다.
<심은섭 시조집 해설에서> 전자의 예를 들어 보면 ‘꽃이란 시들기에 그처럼 아름답다’는 반어법, 즉 아이러니이다. 이 아이러니는 존재와 당위 간의 차이에 대한 고도화된 인식으로부터 일어나며, 감정이 절제된 페이소스(pathos)로 나타낸다. 첨언하면 반어법은 공공연한 칭찬이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사용되는 간접적인 표현형식이다. 따라서 신완묵 시인은 일상적인 언어로부터 이탈의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장렬한 죽음이 아름다움’을 ‘꽃이 시들기에 아름답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아름다운 죽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수행과 농사
마음도 밭이라서 크기를 계산하니
한 평도 못 되는 게 일이란 끝이 없다
호미를 일만 하면서 풀매는 줄 모르고
농사와 닦는 것의 구분도 못 하면서
촌가로 이사 와서 부산을 떨고 있다
무엇이 씨앗인지는 더더구나 모르며
심(心)궁부 하는 것은 비우는 작업인데
농사에 매달려서 수행은 한다하니
죽도록 땀만 흘리는 농부 밖에 못 되네
착각
백년쯤 산다하면 명 길다 하겠지만
억겁의 세월 중에 한 점도 못 되는데
하루도 견디지 않고 지루하다 말한다
삶이란 거문고 속 한 소절 고저장단
음률에 힘이 실려 생명이 솟아나고
상념의 안개 속에서 뭇생각이 움 튼다
의식의 틀에 갇힌 순간의 놀이구나
현실에 달려있는 고통은 형체 없고
생이란 영혼이 두른 허울 같은 연기다
벌판의 소
들판 한 가운데에
한가한 소 한 마리
허공을 질겅질겅
새김질을 하고 있다
곱씹는 이빨 사이엔 해와 달고 끼었어라
천지가 진동하는
무심한 되새김에
매달린 유성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저 소는 누가 매어서 잠든 별을 깨우나
존재의 의미
어릴 적 내가 자라 이러한 모습될지
내 어찌 알았으며 상상인들 했겠는가
미래란 형체도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먼 후일 언제까지 자신이 살아갈지
가늠도 못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다
삶이란 어떠하기에 순간에만 있는가
유년의 그 내 몸은 지금의 나 아니며
인식이 사라지면 존재도 일없으니
현재로 살아 있는 게 으뜸 중의 최고다
행복
한곳을 향하다가 우연히 만났다고
바램이 같았기에 꾸는 꿈이 닮았다고
불꽃은 튀지 않아도 속마음은 같았지
촛불을 바라보며 불타는 염원의 정
그대와 함께일 땐 이렇게 말하리라
당신이 곁에 있어서 진실로 좋다고
우리가 같이 온 건 억겁의 인연 때문
따스한 마음으로 둥글게 모여앉아
못다 한 인연이야기 밤을 새워 보리라
황혼의 벗
승패과 부귀의 때를 조심해 벗어나면
늘그막 해 그늘에 노을이 아름답다
나이와 성별 같은 건 빛바랜지 오래고
취미와 입맛에 따라 서서히 익어가는
시간을 초월하여 다져지는 오랜 우정
세월의 바람에 몰린 친구라서 더 좋다
질투와 시기의 옷 벗어서 팽개치고
보폭이 짧은 때의 해질녘에 만났기에
이해(理解)가 공통분모로 우뚝 서서 버틴다
꽃이 말하길
눈 속에 눈 뜬 매화 부럽단 말은 말게
추위를 녹인다고 색조차 붉었지만
제 생각 다 못 펼치고 분흥으로 되었네
퍼들어진 꽃이거든 가슴에 품지 말게
아무리 요염해도 비 오면 져야하니
예쁘다 말은 하지만 봄바람엔 수 없네
열흘도 못 넘기고 꽃잎은 힘을 잃고
나중에 피는 것이 최고의 꽃이 되니
때 마다 그대로 보면 아름답지 않는가
길‧1
굽은 길 돌아가면 곧은 길 나오려니
숱한 날 속으면서 평생을 걸었어라
목적이 어디이기에 속으면서 가는가
이상(理想)은 아니면서 가식도 아닌 걸음
현실에 부대끼며 매 순간 돌아보니
삶이란 끊이지 않는 뉘우침의 바다다
한번 간 길은 다시 되 올수 없다기에
지치고 쓰러져도 여력을 다 하리리
차라리 늦게 가리라, 후회돼도 일없다
착각
반백(半白)이 되고 나서 서리가 부대껴도
서럽다 한다거나 늙었다는 말은 말게
빛깔과 숫자란 것은 그림자일 뿐이네
까만 밤 지새고서 하얗게 새웠다고
각자가 표현들은 멋대로 하겠지만
빛깔엔 형상이 없고 나이 또한 없다네
꽃처럼 피어나서 펼친 채 살고프면
마음을 내려놓고 그대로 살면 되네
순백을 무슨 이유로 늙었다고 하겠나
물의 길
아무리 급하여도 앞뒤를 안 가리고
열심히 길을 가는 검푸른 강을 보면
수심은 속 깊은 곳의 생각까지 숨겼다
세상의 갈증들을 모두 다 챙기면서
흐름을 가슬러서 반항도 않더니만
남몰래 날아올라서 온 대지를 적신다
미세한 틈이라도 속속들이 더듬어서
모든 걸 키워주며 다스려 주다가도
때로는 활활 불타는 정열마저 죽인다
<시 해설>
「진부함의 경계선을 넘는 생의 좌표 설정」에서
심은섭(시인‧문학평론가/ 가톨릭관공대학 교수)
시조는 시절단가음조(時節短歌音調)라는 명칭에서 시작되었다.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절을 노래한다’는 듯이다. 고려 후기에 이르러 새로 등장한 신흥 사대부들이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기존의 문학 양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유교적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표현 양식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창안된 양식이다.
『하슬라에 부는 바람』
그의 그 많은 시편들을 분석함에 있어 자칫 풍류나 즐기는 문학 활동으로 오해를 불러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가 알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품고 있다. 그는 시조 특유의 간결한 형식으로 검소하고 담백한 정서를 표현하고, 한민족의 진속한 정서를 표현하는데 앞장 서고 있다.
<에필로그>
신완묵 시인은 언어가 주는 즐거움을 크게 하려고 진술보다는 묘사의 방법으로 창작에 더 기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신완묵 시인은 미적 서정성으로 유유자적한 삶의 모습을 작품 속으로 면면히 흐르게 하면서, 동시에 교시나 쾌락의 문학적 두 가지 기능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중략) 그런데 신완묵 시인의 시 쓰는 목적이 분명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그 작품 속에 삶이 반영되어 있어 작품이 늘 깨어 있다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늘 깨어 있어 작품이 젊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한 마디 더 보태어 말하자면 그의 시조작품에는 해학과 위트, 유머와 재치, 빼어난 사상과 예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멋과 풍류가 깃들여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