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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강해(26) 범사에 감사하라
본문 : 살전 5:16-18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살전 5:16-18>
16절 “항상 기뻐하라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요 기대라는 말씀입니다.
지난 시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이어.....
오늘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좋은 일과 나쁜 일 큰일과 작은 일 어떤 상황에도
다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이것이 가능할까요?
이것이 가능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요?
믿음만이 상황(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한 가지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데.....
이 뜻은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범사의 감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은혜를 아는 자(믿는 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엡5:20에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골2:6-7절에서도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골 3:17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 감사하라는 말 앞에 공통적인 조건 하나가 나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감사의 유일한 조건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엡2:4-5절에 있습니다.
<엡2:4-5>
4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5절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죄 사람을 받았고,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이 은혜가 예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에 한 무리의 환자들이 나타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이 지나가심을 알고
고쳐달라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바로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은 문둥병이 치유되었음을
확인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아직 몸이 치유되지 않았음에도
믿음으로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이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몸이 깨끗해 졌습니다.
제사장이 보니 병이 다 나은 것입니다.
제사장은 치유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것은 단순히 병이 고쳐졌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공동체,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들 가운데 단 한 명만이
(그것도 사마리아 사람)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7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정말 아홉 명이
감사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삶에 일어난 그 일을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단지 감사의 원인을 생각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기쁘고 감사했을 겁니다.
그래서 감사의 원인인 주님께 돌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감사한 일을 만났으나, 감사를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구원과 관련한 말씀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조건이나 상황을 전제로 한 말씀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전제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사는 “예수님”을 빼놓고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그로부터 받은
은혜를 아는 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범사의 감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은혜를 아는 자(믿는 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범사의 감사”는 “예수 안에 있은 우리를”
하나님이 선히 이끌어 주시리라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예수 믿는다고 어려운 일이 안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참 짧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 이런 어려움이 생겼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화가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것이 어떤 모습이 될지
가늠하지 못하고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모든 선과 점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칩니다.
좋을 때도 있고, 좋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좋지 못할 때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에도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분의 인도에 자기를 맡겨드린다는 것이
바로 감사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여름에 태풍이 불어오면 어느 때는 엄청난 피해를 입습니다.
각 나라에서 이름을 지을 때 제발 조용히 지나가라고
순한고 예쁜 이름을 짓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 등의
태풍 이름을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어디 이름대로만 됩니까?
어떤 경우에는 많은 생명과 재산피해를 남깁니다.
과학자들은 태풍을 가르쳐 '필요악'이라고 합니다.
태풍은 인명을 앗아가고 금전적 손실을 주는
'악'이기도 하지만 ...굳이 손 익을 따진다면...
손해 보다 몇 갑절 더 유익도 있다는 것입니다.
태풍은 지구상에서 매우 중요한 대기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 ......
....저위도 지방에서 축적된 대기 중 에너지를
고위도 지방으로 운반해 지구상의
남북 온도 균형을 유지시켜 주고....
해수를 뒤섞어 순환시켜 플랑크톤을 분해시킴으로서
바다와 강의 생태계를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강에는 녹조 현상, 바다에는 적조 현상이 심각할 때
이를 정화시킴으로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큰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삶속에서도 태풍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 태풍을 만난자의 입장에선 고통이요 절망일수밖에 없으나
그 폭풍으로 인해 더 높은 차원의 참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한 예로 구약의 욥의 경우입니다.
욥은 인생에 이해할 수 없는 큰 태풍을 만나
자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
그 의미조차 상실해 버릴 정도로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고통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바라며 그 입에 찬송과
그 입으로 죄를 범치 않고 끝까지 지혜롭게
잘 대처하므로 그는 오히려 더 큰 축복과
더 높은 차원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욥의 고백,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오늘의 사는 우리들에게도 예상치 않는 크고 작은
괴로운 폭풍우가 몰아치는 경우가 생겨 날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오히려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영적으로도
더 큰 성장의 기회가 되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범사의 감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은혜를 아는 자(믿는 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범사의 감사”는 “예수 안에 있은 우리를”
하나님이 선히 이끌어 주시리라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셋째, “범사의 감사”는 “예수 안에 있은 우리에게”
하늘의 상급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한 번은 세 친구에게 큰 시험이 왔습니다(단3장).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잡혀온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묻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제라도 ...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러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제 집에 돌아가서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감사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조서였는지 아시지요?
이번에는 다리오 왕 이외에 다른 신....
그러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집어넣는다고 하는 조서였습니다.
그 조서에 어인이 찍혔습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다니엘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기도뿐만 아니라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무슨 감사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그런 가운데 다니엘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사자 굴에 던져지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담대히 행동할 수 있었습니까?
예, 그것은 이 땅에서의 상급이 아니라
하늘에서의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팔복) 가운데 믿음 때문에
고난 받는 자에게 하늘의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5:11-12>
11절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바울도 늘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갈 길을 달렸습니다.
<고전9:24-25>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런 그였기에, 수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맡은 바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는 명령>
사랑하는 성도님들 !
주목할 것은 성경 안에서 ‘감사하라’는
말씀이 전부 ‘명령문’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왜 명령문으로 썼을까요? 예, 승리의 비결입니다.
‘감사’가 영적인 삶을 승리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속담에 “말이 입안에 있을 때는 네가 말을 지배하지만,
말이 입 밖에 나오면 말이 너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 잠언에도 이와 같은 의미에 말씀이 있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 6:2).
그렇습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물과 같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에 따라 그 그물에 붙잡혀 살게 됩니다.
불평과 불만의 말을 하면 늘 불평과 불만에
사로잡힌 삶을 살게 되고....
반대로 감사의 말을 하면
늘 감사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사탄의 정체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탄의 공격목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생명을 도적질하고(steal), 죽이고(kill),
멸망(destroy)시키는 일을 합니다(요10:10).
그리고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벧전5:8).
그 방법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불평과 불만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는 순간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떠난 자의 21가지 죄목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또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마지막 때의
19가지의 죄목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딤후3:1-2>
1절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그렇습니다. 감사를 잃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탄의 종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감사를 잃으면 영적 감흥을 잃게 되고
사탄의 노리개가 됩니다.
감사를 잃었다는 것은 믿음을 잃었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치 아니하고
원망과 불평을 일삼다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기에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명령입니다
. 억지로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탄은 감사하는 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감사는 성도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케 하는 무기와도 같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감사는
사탄의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과 같습니다.
백신 예방 접종이 병균의 침입을 막듯이
감사하는 사람에겐 영적 병균이 침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아예 사탄이 틈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어느 글에 보니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장미꽃이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왜 저에게 가시를 주셔서 제 인생을 어렵게 하십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가시를 준 적이 없다.
가시나무인 너에게 장미꽃을 선사했을 뿐이다.”
똑 같은 인생을 살지만 가시 때문에
불평하는 사람은 지옥을 사는 것이요,
자기처럼 가시 같은 인생에 장미꽃을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감사입니다.
천국은 다른 곳이 아니라
감사하는 자의 심령 가운데 임합니다.
주어진 현실이 어렵더라도 그것을
감사로 받는 순간 그 곳이 천국으로 바뀝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불평만 가득하다면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은혜가 많음으로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안에 있은 우리를” 하나님이
선히 이끌어 주시리라는 믿음에서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안에 있은 우리에게” 하늘의 상급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기에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삶으로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