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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길 13코스 제1부
솔너머등-테마파크진입광장-준공조형물-
연천군맑은물관리사업소-산능선전망대-
여울길-원형전망대-개안마루-그리팅맨
20250326
1.코스 소개 : 두루누비
1)코스개요
- 군남홍수조절지(두루미테마파크)에서 대광리역으로 향하는 길이다.
- 남북평화의 의미를 담은 ‘그리팅맨’과 멋진 전망으로 유명한 옥녀봉을 지난다.
- 연천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DMZ에 더욱더 가까워지는 코스다.
2)관광포인트
- 남북 평화와 소통, 존중의 의미를 담아 설치한 조형 작품 옥녀봉 그리팅맨
- 임진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이는 개안마루
- 근현대 철도 역사를 대변하는 듯이 서있는 연천역 급수팁
3)여행정보(주의사항)
- 옥녀봉 그리팅맨으로 접근하는 구간에 군 사격장이 있어 여행객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 주요경로 : 군남홍수조절지 3.0Km 그리팅맨 옥녀봉 8.8Km 신망리역 8.0Km 대광리역
- 길이 19.8km, 소요시간 7시간 30분, 난도 어려움
- 시점 :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솔너머길 65-2
대중교통) 연천역에서 ‘55-6번 버스’ 이용, 선곡리회관 하차
- 종점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연신로 1154-8
대중교통) 연천역에서 ‘39-2번 버스’ 이용, 대광리역 하차
2.웅연계람과 개안마루, 옥녀봉의 그리팅맨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선곡리 솔너머등에 다시 왔다. 2주 전 DMZ 평화의 길 12코스 탐방을 이곳에서 마쳤다. 이번에는 이곳 솔너머등에서 DMZ 평화의 길 13코스 탐방을 출발한다. 13코스는 솔너머등에서 출발하여 대광리역까지 이어지는 탐방길이다. 주요 경로는 군남홍수조절지&두루미테마파크, 산능선전망대, 여울길, 원형전망대, 개안마루, 옥녀봉의 그리팅맨, 로하스파크, 옥계마을&옥계천, 인성골(仁聖洞), 청화산 능선, 상리약수터, 신망리역, 차탄천, 경원선 철교, 보맥이(보메기), 보막교, 대광리역까지 이어지는 탐방길이다. 통과하는 지역은 군남면 선곡리와 옥계리, 연천읍 현가리와 상리, 와초리, 신서면 도신리 지역이다. 연천군 지역의 1개읍(연천읍), 2개면(군남면, 신서면), 6개 리(선곡리, 옥계리, 현가리, 상리, 와초리, 도신리) 지역을 통과한다. 탐방 체험을 솔너머등~그리팅맨~신망리역~대광리역 구간으로 나누어 3부로 소개한다.
제1부(솔너머등~그리팅맨) : 솔너머등에서 평화누리길은 산길로 진입하지만 평화의 길은 솔너머길을 따라 군남홍수조절지&두루미테마파크 방향으로 이어간다. 두루미테마파크는 12코스 탐방길에서 탐방하였기에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진입광장의 준공조형물을 살펴본다. 준공조형물 '사랑과 만남'은 민족의 화합과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작품으로 나무 모양의 조각상 7그루와그 위를 두루미 7마리가 날아가는 형상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준공조형물은 그 뒤쪽 군남홍수조절지 전망대 앞의 조형물 '평화의 북을 울려라'와 잘 어울리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평화의 북을 울려라' 조형물은 사라졌다. 이 조형물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평화의 북을 울려라, (중략) 평화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현재의 마음이고 미래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과 염원을 담아 분단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이곳에서 평화와 자유의 북소리를 높이 울립니다. 전쟁과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자유롭게 휴전선을 넘나드는 두루미의 날갯짓처럼 평화의 북소리가 북녘 하늘과 전 세계로 멀리멀리 퍼져나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작가의 새김글이 가슴에 큰 울림을 준다. 평화의 상징 두루미와 평화의 의지 북소리가 임진강 북쪽으로 날아가는 감각에 젖는다.
평화의 길은 연강나룻길과 동행하여 연천군맑은물 관리사업소 오른쪽 울타리길을 따라 산 능선으로 올라간다. 아래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오는 임진강이 흐르고, 남쪽에는 군남홍수조절댐과 12구간 탐방 때 걸어온 북삼교가 보인다. 이번 탐방에서 첫 오름길을 올라 산능선전망대에 이른다. 산능선전망대 직전에서는 임진강 남쪽 조망이 좋고, 전망대에서는 북동쪽의 조망이 좋다. 걸어가야 할 여울길과 원형전망대, 옥녀봉의 대형 조각상 '인사하는 사람(Greeting Man)'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번 탐방길의 가장 아름다운 '여울길'을 걷는다. '여울길'이라 명명된 율무밭 사잇길은 5월부터 9월까지 드넓은 산비탈 율무밭에서 뿜어내는 초록빛이 이랑이랑 물결친다고 한다. 그래서 율무밭 사잇길을 임진강 여울과 어울리는 '여울길'이라 명명한 것 같다. 바로 아래에서는 임진강 여울물 소리가 들려오고 산비탈 율무밭에서는 푸른 빛이 넘실거리는 '여울길' 풍경을 3월 이즈음에는 마주할 수 없지만 감각으로 환상하는 것만으로도 감격하였으며, 현재의 풍경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 사잇길에 '나 홀로 나무'와 무지개다리는 드넓은 들녘인 듯 깊은 산골인 듯 그윽한 풍치를 더해 준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 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가곡 ‘보리밭’이 절로 입가에 맴돈다. 가곡 '보리밭'은 시인 박화목(朴和穆, 1924~2005)의 시 ‘옛 생각’에 작곡가 윤용하(尹龍河, 1922~1965)가 곡을 붙여 ‘보리밭’이라 곡명을 붙여 1951년에 만들어진 곡이다. 전쟁 중의 어려운 시절 고향 황해도의 보리밭을 그리며 만든 '보리밭'은 국민가곡이 되어 오늘날 한국인의 가슴에 사무친다. 지금 율무밭 사잇길에는 탐방객들의 흥겨운 소리가 넘쳐나고 아침의 햇빛이 미세먼지를 뚫고 찬란히 빛난다. 그 흥겨움 속에서 아득한 시절 먼 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귓가에 맴도는 그리운 소리들을 감각하며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원형전망대에 올라서 지금까지 걸어온 남쪽 산능선전망대와 여울길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감격한다. 산비탈 율무밭의 푸른 빛이 넘실거리는 풍경을 상상하니 그 시기에 여울길을 탐방해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북쪽을 조망하면, 아래쪽 임진강 강변 언덕에 개안마루 전망대가 보인다. 임진강은 북쪽에서 동쪽으로 굽이쳐 흘러와 개안마루 앞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흘러간다. 굽이지는 곳의 깊은 소를 웅연(熊淵곰소 또는 괴미소)이라고 이르는데 겸재 정선의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 중 '웅연계람(熊淵繫纜)' 그림의 배경지라고 추정하는 곳이다.
개안마루 전망대로 내려갔다. 강화와 서해안에서 새우젖배와 소금배가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 지역의 농특산물과 물물교환하던 시장이 서던 고미포(古美浦)가 위쪽 연천군 중면 삼곶리에 있고, 그 아래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에 푸른 용이 굽이치는 임진강의 웅연이 있으며 그 언덕에 개안마루가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눈이 탁 트인다'는 뜻을 지닌 개안마루라 부른다고 한다. 개안마루 전망대에는 정선의 '웅연계람(熊淵繫纜)' 확대복사 그림판과 '조선 풍류의 결정체, 겸재 정선의 웅연 뱃놀이' 안내글판이 세워져 있다.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웅연과 임진강의 물줄기를 조망한다. 그리고 정선의 그림 '웅연계람(熊淵繫纜)'을 살핀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이 그림은 임진강 웅연 북쪽에서 그린 것 같다. 그래서 웅연 북쪽에서 개안마루 방향을 볼 때 실감날 것 같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에 대하여 전시회의 설명안내판 글을 소개한다.
"겸재 정선의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은 임술년 연천강(임진강)에서의 뱃놀이를 그린 화첩으로 그림 두 폭과 표지와 발문(跋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은 임진강 우화정에서 배를 타고 가는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에서 닻을 내리는 '웅연계람(熊淵繫纜)'이며 발문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경위를 겸재가 직접 쓴 것이다. 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是歲十月之望, 同漣倅申周伯, 陪觀察洪公, 游於羽化亭下, 盖用雪堂故事也. 周伯以觀察公命作賦記之, 余又畵以繼之, 各藏一本于家, 是爲漣江壬戌帖云. 陽川縣令鄭敾書. 이해 10월 보름, 연천군수 신주백과 함께 관찰사 홍(경보)공을 모시고 우화정 아래에서 노닐었으니, 이는 소동파의 설당고사(雪堂故事)를 따른 것이다. 신주백은 관찰사의 명을 받아 부를 짓고 나는 또 그림으로 이어서 각각 집에 한 본씩 소장했다. 이를 〈연강임술첩〉이라 일컫는다. 양천현령 정선이 쓰다.
이를 풀어서 자세히 설명하면 경기도관찰사 홍경보(洪景輔)가 경기 북부 삭녕 지역을 순시하고 연천으로 내려가는데 임진강에는 적벽(赤璧)이 있고, 또 때는 임술년(1742년) 10월 15일이었다. 이는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후적벽부(後赤壁賦)』의 첫머리가 ‘이해 10월 15일(是歲十月之望)’로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홍경보는 소동파가 벗들과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며 이 글을 지었듯이 경기도 관내에 있는 연천군수이자 시인인 신유한(申維翰)과 양천현령이자 화가인 겸재 정선을 임진강 적벽으로 불러 함께 뱃놀이를 한 다음 이를 기념하여 신유한은 시를 짓고, 겸재는 그림을 세 벌 그려 각기 나누어 가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연강임술첩〉은 홍경보 소장본이 알려져 오다가 근래에 발견된 것이 여기에 출품된 겸재 소장본이다. 신유한 소장본은 아직 행방을 알 수 없다.
겸재는 이를 그리면서 임진강 우화정에서 배를 타는 〈우화등선〉과 웅연에서 내리는 〈웅연계람〉을 파노라마식 화면 전개로 그려내 임진강변의 풍광을 웅장한 진경산수화로 그렸다. 강변의 정자와 마을, 그리고 나룻배를 기다리는 사람, 횃불을 밝혀 든 사람, 강변에 정박한 배, 강변의 정자와 마을의 집 등을 세세히 묘사해 하나의 풍속화적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강렬하고 듬직한 필묵의 무게감이 감돌아 박진감 있는 진경산수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홍경보 소장본과 겸재 소장본은 거의 같은 구도이지만 홍경보 소장본은 상대적으로 필치가 얌전한 반면에 겸재 소장본은 필세가 굳세고 먹의 농담 변화가 강하다. 아마도 겸재 소장본이 셋 중 맨 먼저 그린 그림이고 관찰사 소장본은 나중에 필치를 다듬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이 작품이 2011년 동산방화랑의 《조선후기 산수화-옛 그림에 담긴 봄 여름 가을 겨울》전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 명지대학교 이태호교수는 "기존에 알려진 작품보다 부드럽고 세련된 멋이 풍겨 회화적가치가 높다"고 평하였다." - '필(筆)과 묵(墨)의 세계' 전시회(2025.02.04.~03.22) 설명안내판
경기도 연천군 삭녕(朔寧) 우화정에서 배를 타고 임진강 웅연을 거쳐 임진강을 내려가는 임진강 뱃놀이를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상상한다. 연천군 군남면 선곡리와 왕징면 강내리 사이의 임진강을 막은 군남홍수조절댐이 사라져야 조국의 평화가 올 것이며, 임진강 뱃놀이는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황포돛배는 연천군 임진절벽 주상절리를 거쳐 한탄강을 합수하는 도감포로 내려가 숭의전 잠두봉, 파주 두지나루와 연천 고랑포를 거쳐 파주 오두산 아래 한강으로 내려간다. 황포돛배는 다시 한강을 올라 양화진과 마포나루로 올라가야 한다. 임진강 뱃놀이가 한강 뱃놀이와 강화 뱃놀이로 이어질 때 조국의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겸재 정선은 이곳 웅연에서 1742년 음력 10월 15일 닻을 내리고 어느 곳에서 잠을 잤을까? 그리고 웅연에서 임진강을 내려가 한강 양화진까지 올라갔을까?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잠시 상상에 잠겨 임진강 뱃놀이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했다.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산중턱길로 오르면 이곳에도 '나 홀로 나무' 쉼터가 있으며 이곳에서 내려보는 임진강 풍경 또한 아름답다. 율무밭 사잇길의 '나 홀로 나무' 쉼터에 비해 임진강 풍경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장점이다. 해발 205m 옥녀봉으로 올라갔다. 옥녀봉에는 조각가 유영호(1965~)의 작품 '인사하는 사람(Greeting Man)'이 서 있다. 임진강 연강나룻길을 조성하며 2013년 4월에 조성된 높이 10.8m 조각상 '그리팅맨'은 북녘을 향하여 15도 각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그리팅맨'은 2012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처음 세워진 이후 연천 옥녀봉에 5번째로 세워졌다고 한다. 작가 유영호는 작품 설명안내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연천은 삼국시대 각축의 중심지로서, 현대 한민족의 비극이자 아픔이이라 할 수 있는 한국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조국의 분단된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습니다. 남북의 화해는 서로가 진심으로 인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인사하는 마음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마음이자 세계인에게 전하는 인류 평화를 위한 강렬한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렇다. "안녕하세요" 함께 인사를 나누는 것은 서로의 존중과 배려, 친화의 자세다. 임진강 건너편 북녘땅, 황해북도 장풍 마량산에 '인사하는 사람(그리팅맨)'이 언제 건립될까? 그리하여 남북의 두 조각상 그리팅맨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한겨레의 자존, 상대 존중과 배려, 평화를 조성하여 통일을 이루는 바탕이 될 것이다. 옥녀봉에서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을 조망하며 조국산하의 장쾌함을 감상한다. 옥녀봉에는 태풍 부대를 나타내는 '태' 글자와 '풍' 글자 표석이 각각 세워져 있고, '태' 표석 뒷면에는 '통일', '풍' 표석 뒷면에는 '태풍' 글자가 적혀 있다. 그렇다. 통일이 태풍처럼 조국산하에 불어와 순간에 분단조국은 통일되어 평화통일의 대한민국으로 세계만방에 울려퍼질 것이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1.6km
전체 소요 시간 : 6시간 13분
(휴식&점심 시간 53분 포함)
소나무가 많았다는 솔너머등에 평화누리길 문주와 DMZ 평화의 길 안내판, 평화누리길 안내도와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평화누리길은 평화누리길 안내도 오른쪽 출입구를 통해 산길로 올라간다.
솔너머등에 평화누리길 연천구간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고, 안내도 오른쪽에 평화의 길 13코스 방문인증 QR코드가 있다.
평화누리길 연천구간 안내도 오른쪽에 평화누리길 12코스 안내판과 경기둘레길 연천구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평화누리길 12코스 통일이음길(28km, 17시간 30분 소요) : 호젓한 오솔길을 만날 수 있는 길로 특산물인 율무밭 사이를 지나는 푸르고 상쾌한 청정지역 연천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신망리역, 방아다리, 신탄리역에 이르는 구간은 차탄천변 방축을 이용한다. 평화누리길의 종점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지점이며 여기서는 미군의 폭격을 받고 생긴 터널의 천정 틈 사이로 물이 떨어지며 겨울철에는 신비로운 역고드름을 볼수 있다. - 안내판
평화의 길은 군남홍수조절지~대광리역 19.8km 구간이다. 옥녀봉의 '그리팅맨(Greeting Man)'을 만나고 가야 한다.
경기둘레길 연천구간 '군남홍수조절지 ~ 신탄리역 24.6km' 강이 오고 강이 가고, 언덕 오고 언덕 가고 연천 11코스 : 금강산 가는 길목에 우뚝하게 솟아있는 고대산(832m) 줄기를 누비는 노선이다. 걸음을 시작하는 곳은 신탄리역이다. 2012년 11월 백마고지역이 개통되기 전까지 경원선 철도중단점이있다. 고대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임도로 접어든다. 임도는 해발 300m에서 500m 사이로 유순하게 이어진다. 널찍한 흙길과 울창한 숲길이 계속된다. 시야가 터지는 곳에서 만나는 시원시원한 풍광은 고대산이 보내는 선물이다. 세상일 잠시 내려놓고 구름에 달 가듯 걸을 수 있다.
1.옥녀봉 : 옥녀가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옥녀봉은 높이가 약 200m밖에 되지 않는 봉우리이지만 주변이 탁 트여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삼국시대 때 신라는 이곳 옥녀봉에 산성을 쌓고 임진강 수로를 따라 남하하는 고구려군을 통제하는 등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했다. 고려시대에 연천읍성의 배후산성으로 이용됐을 것으로 여겨진다.
2.군남홍수조절지 : 휴전선에서 불과 6km 떨어진 접경지역에 위치한 군남홍수조절지는 댐 유역의 97%가 북한 땅이다. 이 지역은 남북한 접경지역이라는 지리적 여건과 임진강 자연환경이 만들어 낸 특수성으로 인해 천연기념물 두루미, 재두루미, 호사비오리, 어름치 등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는 천혜의 자연생태지역이다.
3.그리팅맨(Greeting Man) : 유영호 작가가 만든 15도 각도로 고개와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서로에 대한 배려, 존중,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팅맨이 위치하고 있는 옥녀봉의 높이는 해발 200m로 정상에서 임진강 줄기와 연천군 전 지역은 물로 북녘 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쾌해지는 명소이다. - 안내판
솔너머길의 솔너머등에 평화누리길 12코스 통일이음길 문주와 스탬프함, DMZ 평화의 길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솔너머등에 설치된 DMZ 평화의 길 안내판에서 평화의 길은 두루미 테마파크 방향으로 솔너머길을 따라간다.
DMZ 평화의 길은 남북평화 촉진과 접경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DMZ 인근 뛰어난 생태, 문화, 역사자원을 기반으로 인천시 강화군에서 강원도 고성군까지 총 526km 구간에 이르는 세계적인 명품 도보여행길이다. 강화 평화 전망대를 시작으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의 총 36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코스구성은 상시 주노선, 예약 주노선, 테마 노선으로 구분되어 운영되고 있다.
●철원군과 함께 민북 구간이 많이 포함된 연천군은 주노선 5개 코스와 지역 테마 노선 2개 코스가 반영됨
●주노선은 대부분 지역 내 기조성된 걷기 여행길인 평화누리길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상시 이용이 가능한 구간임
●지역 테마 노선은 25사단 관할구역인 리비교-승전전망대~고랑포구역사공원~호로고루 일원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선곡리 군남홍수조절지&두루미테마파크 입구에서 평화의 길은 연천맑은물관리사업소 방향으로 솔너머길을 따라간다. 두루미테마파크와 군남홍수조절지 전망대는 12코스 탐방 때 탐방하였기에 그냥 통과한다.
군남홍수조절지&두루미테마파크 : 휴전선에서 불과 6㎞ 떨어진 접경 지역에 위치한 군남홍수조절지는 댐 유역의 97%가 북한 땅으로, 임진강 본류의 홍수조절 능력 확보 및 북측 황강댐에 의한 불규칙한 물 흐름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겨울철새인 두루미(천연기념물), 재두루미(천연기념물), 흑두루미(천연기념물)가 매년 겨울 최대 200마리 이상 월동하는 대표적인 곳으로, 남북한 접경 지역이라는 지리적 여건과 임진강 자연환경이 만들어 낸 특수성으로 인해 수달, 고라니, 두루미, 어름치 등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는 천혜의 자연 생태지역이다. 2011년 10월 준공한 군남홍수조절지 테마파크는 “두루미가 들려주는 평화와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스토리텔링을 하였으며, 평화의 북, 소원나무, 두루미 조형물 등 다양한 이야기 시설물과 두루미 대체서식지, 어도 생태원, 생태습지 등의 우수한 환경영향 저감시설들이 조성되어 있다. - 두루누비
두루미 테마파크 진입광장에 두루미 한 쌍이 사랑을 나누고 있으며, 그 왼쪽에 나무 모양의 조각상 7그루가 서 있고, 그 위를 두루미 7마리가 날아가는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군남홍수조절댐 준공을 기념하는 조형물로 조각가 임승오의 작품 '사랑과 만남'이라고 한다. 뒤에는 군남홍수조절지 건설사업碑가 서 있다.
준공조형물 '사랑과 만남' 옆에 군남댐 준공을 기념하여 김황식 국무총리가 쓴 '생명과 평화의 물길' 표석이 세워져 있다.
왼쪽에 군남홍수조절댐 관리동, 앞쪽에는 연천군맑은물 관리사업소가 있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연천포천권지사에서 관리하는 군남홍수조절댐 관리동 앞을 지나간다.
연천군맑은물 관리사업소 앞에 연강나룻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으며, 오른쪽 언덕길로 이어간다.
연강나룻길 이정목 기둥에 연강나룻길 안내도가 붙어 있다. C코스 7.4km는 중면사무소1.3km→삼곶리전망대2.3km→옥녀봉그리팅맨0.9km→개안마루0.8km→현무암지대0.5km→가람애마을1.6km→중면사무소로 이어지는 탐방길이다.
두루미테마파크 진입광장에서 솔너머길을 따라와 연천군맑은물 관리사업소 앞에서 언덕길로 올라왔다.
연천군맑은물 관리사업소 울타리 옆 임도를 따라간다. 관리사업소 옆에 건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연천군맑은물 관리사업소 옆에 건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 건물은 관공서일까? 위락시설일까?
연천군 군남면 선곡리 언덕길에서 임진강 건너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지역과 그 너머 남방한계선과 휴전선을 어림한다.
산중턱길을 따라 왼쪽 위 언덕에 있는 '산능선전망대'로 올라간다.
군남홍수조절댐은 연천군 군남면 선곡리와 왕징면 강내리 사이의 임진강을 막아 임진강 물 흐름을 조절한다.
임진강 건너 맨 뒤쪽에 보이는 산봉우리 이름이 무엇일까? 저 너머가 휴전선 북쪽 북녘 땅일 것이다.
이곳은 군남면 선곡리, 오른쪽 위는 군남면 옥계리, 중앙 위쪽은 중면 삼곶리, 임진강 건너편은 왕징면 강내리 지역이다.
임진강 군남홍수조절댐이 중앙에 있고, 그 아래쪽에 왕징면 북삼리와 군남면 삼거리를 잇는 북삼교가 보인다.
산중턱길을 따라 능선마루에 올라선다. 산능선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산능선전망대에 연강나룻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산능선전망대 앞의 연강나룻길 이정목 앞에서 동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평화누리길을 올려본다.
산능선전망대 앞쪽의 평화누리길 이정목 앞에서 바로 아래의 평화의 길과 능선의 평화누리길을 살핀다.
DMZ 평화의 길은 연강나룻길과 동행하여 능선을 내려가 오른쪽 아래로 돌아간다.
DMZ 평화의 길은 바로 아래 골짜기길을 오른쪽으로 올라가 산중턱길을 따라 정중앙의 무지개다리를 건너 중앙에 솟은 옥녀봉에 조성되어 있는 조각상 '그리팅맨'으로 올라간다.
산능선전망대에서 내려와 산중턱길을 오른쪽으로 돌아서 산등성이를 넘어 골짜기길을 올라간다.
산골짜기길을 따라 '여울길' 갈림목으로 올라간다.
산비탈에 율무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오른쪽의 '나 홀로 나무' 쉼터를 지나 왼쪽 아래의 무지개다리(구름다리)를 건너 왼쪽 위 원형전망대에 오른 뒤 능선을 넘어 중앙 뒤 옥녀봉의 조각상 '그리팅맨'에게로 올라간다.
골짜기길을 따라 올라와 갈림목에서 능선으로 올라가지 않고 왼쪽 '여울길'을 따라 내려간다.
갈림목에서 비탈에 일군 율무밭 사잇길을 따라 '나 홀로 나무' 쉼터로 내려간다. 이 길은 여울길이라 명명되어 있다.
'나 홀로 나무' 쉼터 앞에 여울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여울길 아래에 무지개다리, 능선에 원형전망대가 보인다.
골짜기길을 따라 올라와 위쪽 갈림목에서 쉼터로 내려왔다. 안내판의 '임진강 여울, 한반도 최초의 인류를 품다'를 옮긴다.
아득한 옛날 러시아에서 대륙을 타고 내려왔거나 알래스카에서 해안을 따라 내려온 선사 시대 사람들은 거대한 용암대지의 끝자락에서 길고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들의 발걸음을 붙들어 세운 가장 강력한 매력 중 하나는 임진강 여울이었을 것이다. 전체 254킬로미터에 달하는 임진강 물길은 울창한 숲이 우거진 함경남도 마식령의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해, 강원도 북부를 흘러 고미탄천과 평안천에 합류한 뒤 무려 144킬로 미터를 더 달려온 뒤에야 휴전선을 넘어 경기도 연천에서 처음 남한 땅과 만난다. 이후 임진강은 한탄강과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꾼 다음, 파주 교하에서 한강을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원래 물길은 그 위치와 흐름에 따라 시내, 폭포, 샛강, 큰강, 여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큰강은 하구로 오면서 강폭이 넓어져 유속이 느려진다. 강줄기의 흐름이 변하면서 유속이 느려지면 쓸려 내려온 흙이 쌓이면서 강바닥이 얕아진다. 혹은 강폭이 좁아지기도 하는데 이 경우 상대적으로 유속이 빨라지면서 물소리도 크다. 임진강 역시 연천 지역에 들어서면, 편편한 용암대지 위를 흐르면서 때론 강줄기가 휘거나 폭이 좁아지면서 유속이 빠른 여울이 많이 나타난다. 이 여울들이 한탄강을 만나면서 수량이 풍부해지고 땅속에 스며든 크고 작은 물길이 곳곳에서 형성되어 연천이란 지명을 낳게 되었다.
여울 주변은 강바닥이 얕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지점이다. 또한 강안이 굽어지는 곳이 많아 고기잡이의 최적지이기도 하다. 낚싯대를 드리워도 좋고, 정치망을 들고 들어가 작은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으며, 한여름의 더위를 잊기 위해 멱을 감아도 좋다. 체통 때문에 함부로 여울에 몸을 던질 수 없었던 조선 선비들은 작은 나룻배를 띄우고 천천히 강물을 오가며 정취를 즐겼다. - 안내판
초록빛 율무밭 너머 두루미가 사는 숲 : 선사시대 사람들의 체취가 배어 있는 연천 땅은 지금 국내 최대 율무밭으로 변했다. 국내 율무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데, 5월 무렵부터 9월 말까지 이 길은 거대한 유무밭이 뿜어내는 초록빛 향연으로 가득하다. 4월 하순경에 파종된 율무는 섬유질이 촘촘한 싹을 틔우기 시작해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7~8월에 하얀 꽃을 띄운다. 꽃이 지면 가지마다 맺힌 작은 씨를 삼복더위 뙤약볕이 알곡으로 키운다. 사람 허리춤까지 자라는 9월 무렵이면 가지마다 열매가 빼곡하게 영글고,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10월이 되면 산 너머 사는 농부들이 추수를 위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낸다. 그때까지 이 길은 하늘 아래 오롯이 율무와 사람만의 공간이다.
농부의 낫에 베일 때까지 허리에 힘주고 곧게 서서 변함없이 제 빛을 발산하는 한해살이풀 율무, 그 사이를 걸어가노라면 비록 한 해밖에 살지 못하지만 그 꿋꿋한 자세와 시들지 않는 푸름이 경이롭게 다가온다. 소나무 언덕을 지나면 이내 가파른 내리막길 건너 다시 율무밭이 드러나고, 그 뒤로 강과 언덕을 병풍처럼 두른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그런데 나지막한 산등성이는 한두 개가 아니다. 동북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봉우리는 눈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수십개에 이른다. 바로 그곳에 천연기념물 제202호인 두루미를 비롯하여 고라니, 수달 등 멸종 위기에 몰린 진귀한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어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일대가 오랜 세월 동안 인적이 끊긴 청정 생태계 안에서 동식물이 서식하기에 안전한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접한 임진강이 내주는 풍성한 먹잇감은 이들의 종족보존에 절대적인 보루다. - 안내판
여울길이라 명명된 율무밭 사잇길을 따라 무지개다리(구름다리)로 향한다.능선에 원형전망대가 보인다.
골짜기의 무지개다리(구름다리)를 건너 산비탈을 지그재그로 돌아 원형전망대로 오른다.
산비탈을 오르다 뒤돌아서 율무밭 사잇길을 따라 걸어온 쉼터와 무지개다리(구름다리)를 돌아본다.
오른쪽 위 산능선전망대에서 능선을 따라 산골짜기길을 따라 중앙의 산등성이를 넘어 왼쪽 위 갈림길에서 여울길이라 명명된 율무밭 사잇길을 따라 쉼터와 무지개다리를 거쳐 산비탈길을 오르다 뒤돌아본다.
오른쪽 원형전망대로 올라가 조망한 뒤 되돌아와 왼쪽으로 이어간다.
중앙 뒤 원형전망대 출입로를 통해 원형전망대로 올라간다.
원형전망대를 한 바퀴 돌며 풍경을 조망한다.
임진강이 굽이돌아 흐른다. 오른쪽 아래에 개안마루 전망대가 있으며, 중앙 뒤쪽은 중면 삼곶리 지역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을 비롯한 세 선비가 1742년 10월 보름날, 경기도 삭녕현의 임진강 우화정(羽化亭)에서 배를 타고 이곳 웅연(熊淵곰소)으로 내려오는 임진강 풍류를 즐기고 이곳에 정박하였다. 정선은 임진강의 이 뱃놀이 풍류를 ‘우화등선(羽化登船, 우화정에서 배를 타다)’과 ‘웅연계람(熊淵繫纜, 웅연에서 닻을 내리다)’ 그림으로 그렸다.
임술년인 1742년(영조18년) 10월 보름날, 경기도관찰사 홍경보가 경기 동부지역을 순시하다 삭녕(연천)에 있던 우화정(羽化亭)으로 관내 연천현감 신유한과 양천현령 정선을 불러 연강(임진강)에서 뱃놀이를 즐겼다. 1082년(임술년) 중국 문인 소동파가 즐겼던 뱃놀이를 흉내 낸 이날 모임을 정선이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 두 점의 그림으로 기록했다. 홍경보의 서문과 신유한의 글 ‘의적벽부(擬赤壁賦)’ 일부, 정선의 발문을 더해 엮은 서화첩이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이다. 조선후기 진경산수의 대가로 평가받는 겸재 정선(1676∼1759)이 67세 때 그린 두 작품은 관찰사의 요구에 따라 완성한 기록화이지만 좌우로 긴 풍경에 행사장면과 그 주변 등장인물이나 경물들을 소홀히 다루지 않고 적절히 살려놓은 명작이다. - 국민일보 2011.11.27.
군남홍수조절댐은 연천군 군남면 삼거리와 왕징면 강내리 사이의 임진강을 막아 임진강 물의 흐름을 조절하고 있다.
여울길이라 명명된 율무밭 사잇길과 '나 홀로 나무' 쉼터와 무지개다리가 보인다. 왼쪽 뒤 살짝 보이는 산봉이 군자산이다.
바로 아래에 율무밭 사잇길이 꼬불꼬불 산비탈로 이어지고, 뒤쪽에 연천군의 산봉들이 산줄기로 이어진다. 오른쪽 뒤에 종자산과 왼쪽 뒤에 지장봉이 머리를 보인다.
원형전망대에서 내려와 산중턱길을 따라간다. 오른쪽 뒤 옥녀봉에 그리팅맨이 보이고, 왼쪽에 개안마루 전망대가 있다.
바로 위에 개안마루 전망대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개안마루 전망대로 내려간다.
임진강이 동쪽으로 굽이돌아 깊은 웅연(熊淵곰소)을 이룬다. 정선의 그림 ‘웅연계람(熊淵繫纜)’의 배경지라고 한다.
개안마루 전망대 갈림길에 평화의 길 이정목이 서 있다. 개안마루 전망대로 내려가 풍경을 조망한 뒤 되돌아온다. 중앙 뒤 언덕은 옥녀봉의 조각상 '그리팅맨'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옥녀봉 정상, 왼쪽은 평화의 길 진행 방향이다.
갈림길에서 개안마루 전망대로 내려가 풍경을 감상하고 올라온다.
정선의 '웅연계람(熊淵繫纜)' 확대복사 그림판과 '조선 풍류의 결정체, 겸재 정선의 웅연 뱃놀이' 안내글판이 세워져 있다.
정선, '웅연계람(熊淵繫纜)', <연강임술첩>, 1742년, 비단에 담채, 33.5x74.4cm
안내판의 글 '조선 풍류의 결정체, 겸재 정선의 웅연 뱃놀이'를 옮긴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고려 말부터 손꼽히는 절경으로 알려져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1742년 10월 보름날, 임진강 뱃놀이에 끌려 나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조선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이다. 당시 양천 현령으로 있던 그는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의 청으로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에 배를 탔는데, 마침 연천 현감이던 시인 청천(淸泉) 신유한(中維翰, 1681-1752)이 있었다. 오늘날 도지사 격인 관찰사가 당대 최고의 시인과 화가를 한자리에 불러 임진강 풍류에 나선 것이다. 이들의 풍류가 당시 세간에 얼마나 큰 화제였던지, 늦은 밤인데도 나루터에는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달빛 아래 강변의 전경이 꿈을 꾸는 듯 신비로워 사람들은 연이어 탄성을 올렸다. 홍경보는 얼큰한 취기에 의지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신유한은 시 한 수를, 겸재 정선은 이날 두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이 바로 <우화등선 (羽化登船)>(우화정에서 배를 타다)과 <웅연계람(熊淵繫纜)>(용연나루에 배를 대다)이다.
"임술년(1742) 10월 보름, 연천 현감 신주백(申周伯, 신유한)과 함께 관찰사 홍 상공(洪相公, 홍경보)을 모시고 우화정(羽化亭) 아래에서 유람하니, 소동파의 적벽 고사를 따른 것이다. 신주백이 관찰사의 명으로 글을 짓고, 내가 또 그림으로 그려 각자 한 본씩 집에 소장했다. 이것이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화첩인 《연강임술첩)에 실린 글의 일부다. 여기에 등장하는 연강이란 바로 연천군 지역을 흐르는 임진강의 별칭이다. 연천의 '연(漣)' 자는 '물결이 일다'라는 정취 넘치는 뜻을 지녔다. 아름다운 물의 고장 연천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매우 상징적인 글자다. 이런 뜻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특별히 연천 지역에 흐르는 임진강을 연강이라 달리 이름 붙여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그 별칭만큼이나 임진강은 연천 지역에 이르러서는 사뭇 다른 강인 양 물줄기의 모양이 달라진다. 북에서 남으로 흘러오던 임진강은 연천군에 들어서면서 서쪽으로 그 흐름을 바꾼다. 그리고 유장했던 강물은 때론 급하게 구비를 돌고 때론 완만하게 평지를 흐르며 사람과 산과 평야를 아우른다. 그런 연강의 모습이 풍류의 대가였던 조선 선비들의 눈에도 달라 보였던 것 아닐까. 걸음을 멈추고 웅연을 바라보노라면, 270여 년 전 정선을 태웠던 배가 지금이라도 지나칠 것만 같다. 조선 선비들이 사랑한 웅연은 지금도 고즈넉한 기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풍류란 한가로운 이들이 즐기는 놀이가 아니었다. 보름달빛 아래 임진강의 정취를 누린 풍류의 주인공들은 당대의 현직 관료이자 화공이요 시인으로,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살았다. 그런 그들이 보름달이 훤히 밝은 가을 밤, 임진강에 배를 띄우고 노래와 시와 그림으로 자연을 예찬하며 하나가 되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치열한 삶의 경영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서책만큼이나 여흥을, 좋은 사람만큼이나 아름다운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이 진정한 절제요, 균형의 한 삶이라 여겼고, 이를 실천할 줄 아는 이가 참 선비라 생각했던 것이다.
웅연을 내려다보며 옥녀봉으로 향해 가면, 문득 임진강과 군남댐이 한눈에 들어오는 널찍한 마루에 닿는다. 시원스러운 전망 때문인지, 근처에 '장님이 눈을 떴다'는 개맹고개가 있어서인지, 여기 사람들은 이곳을 '눈이 탁 트인다'는 뜻을 지닌 개안마루라고 부른다. 개안마루에 서서 발밑을 보면 강줄기가 거대한 푸른 용의 몸짓으로 서쪽을 향해 휘돌아 움직인다. 오른편에 길게 누워 있는 작은 섬이 유장한 강물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이렇게 물길이 돌아 나가는 하회(河回) 지형은 귀한 인물이 나고 만사가 형통하다 하여 명당으로 꼽힌다. 그중 많은 수량이 휘돌다 보면 강바닥이 우묵하게 파여 물길이 머무는 소(沼)를 이루게 되는데, 바로 이 지점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웅연' 또는 '괴미소'라고 부른다. - 안내판
임진강이 동쪽으로 굽이돌며 깊은 못을 이룬다. 그래서 이곳을 웅연(熊淵곰소) 또는 괴미소라 이른다고 한다. 중앙 위쪽 임진강에 고미포(古美浦)가 있었던 듯. "괴미소(熊淵)는 고미포(古美浦) 아래, 임진강에 있는 깊고 큰 소. ‘신성하고 높음', ‘거룩하고 으뜸이 됨‘ 또는 ‘큰'의 뜻을 지닌 고어 '검'이 ‘곰'으로 음이 변하면서 한자 지명인 ‘곰(熊)'으로 옮겨진 예이다." - 연천군청
이곳이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그림 ‘웅연계람(熊淵繫纜)’의 배경지라고 추정하는 웅연(熊淵곰소)이다.
임진강이 동쪽으로 굽이돌아 웅연(熊淵곰소)을 이루고 서쪽으로 흘러간다. 아래쪽에 군남홍수조절댐이 있다.
임진강 웅연(熊淵곰소) 동쪽 벼랑 위에는 원형전망대가 조성되어 있고 산중턱길이 나 있다.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풍경을 조망한 뒤 갈림길로 되돌아가 중앙 왼쪽 뒤 능선 마루로 올라간다.
능선의 마루로 올라가는 산중턱길 옆에 '나홀로 나무'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나홀로 나무' 쉼터로 올라와서 개안마루 전망대와 웅연(熊淵곰소)을 내려본다. 왼쪽 뒤의 산 이름이 무엇일까? 웅연 위쪽에 고미포(古美浦)가 있었다고 한다. "고미포는 임진강 괴미소 옆에 있던 포구 마을.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연천군 중면 일대와 철원 지방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과 강화와 서해안 등지에서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온 새우젓과 소금배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장이 섰던 곳이다. 1925년 을축(乙丑) 대홍수 때 강물이 크게 범람하면서 이 일대가 모두 유실되었다고 한다." - 연천군청
능선마루로 올라간다. 저곳에서 전망하는 풍경이 시원하다. 실제로 저곳을 개안마루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개안마루 전망대 안내판에 개안마루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시원스러운 전망 때문인지, 근처에 '장님이 눈을 떴다'는 개맹고개가 있어서인지, 여기 사람들은 이곳을 '눈이 탁 트인다'는 뜻을 지닌 개안마루라고 부른다. 개안마루에 서서 발밑을 보면 강줄기가 거대한 푸른 용의 몸짓으로 서쪽을 향해 휘돌아 움직인다." 이 글을 읽으면 이곳이 개안마루인 듯. 능선마루에서 왼쪽 아래의 개안마루와 전망대 그리고 웅연을 내려본다.
능선마루에서 원형전망대와 산중턱길 그리고 '나 홀로 나무' 쉼터를 조망한다.
오른쪽 원형전망대에서 올라오는 시멘트임도는 능선마룻길을 따라 왼쪽 옥녀봉 방향으로 이어진다.
능선마루에서 내려오면 옥녀봉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평화의 길 방향, 오른쪽 포장도로는 옥녀봉 방향이다.
중앙 뒤 옥녀봉 정상에 조각상 '인사하는 사람(그리팅맨)'이 보인다.
해발 205m 옥녀봉(玉女峰)은 배꼽봉, 성산(城山)이라고도 불리며, 군남면 옥계리와 중면 삼곶리의 경계가 된다. 삭녕에서 연천 북쪽으로 내려오던 산맥이 연천읍 상리에 있는 솟을봉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는데, 좌측으로 내려온 산맥은 남자의 정기라 하여 가장 높은 봉우리를 군자산이라 하였고, 우측 산맥의 최고봉인 이 봉우리를 여자로 의인화하여 옥녀봉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또한 이곳의 빼어난 경치 때문에 선녀가 놀았다 하여 ‘옥녀봉'이 되었다고도 하며, 산의 모양이 배꼽과 닮았다 하여 ‘배꼽봉'으로도 불린다. 이 산은 고려시대 연주현의 진산이 되었고, 지정학적인 중요성으로 인하여 삼국 초기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이다. 현재 산 정상에는 산성의 유지와 우물이 남아 있다. - 연천군청
왼쪽 평화의 길은 현무암지대라고 한다. 평화의 길을 이탈하여 오른쪽 옥녀봉 방향으로 이어간다. 평일 군부대 사격훈련 때 옥녀봉 방향 출입이 통제된다고 알림판에 적혀 있다.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옥녀봉으로 오르며 옥녀봉의 대형 조각상 '그리팅맨'을 올려본다.
왼쪽 뒤 능선전망대에서 그 아래 율무밭을 지나 중앙 뒤 원형전망대를 거쳐 중앙의 능선마루에서 그 아래 나무들이 빽빽한 갈림길로 내려와 옥녀봉 방향으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올라왔다.
군 창고 시설물 옥상으로 올라가 풍경을 조망하고 내려오기로 한다.
연천군 중면(中面) 삼곶리(三串里) 마을이 자리한다. 중면 지역은 1945년 8·15광복 이후 지역이 3·8선 북쪽이었다. "연천군 중면 삼곶리(三串里)는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의 동쪽에 위치하며, 임진강을 끼고 맞은편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본래 연천현 북면 지역으로, 임진강 쪽으로 세 개의 큰 산부리가 뻗어나와 있어서 삼고지 또는 삼꾸지라 한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두산백과)
임진강이 북쪽에서 흘러오고, 임진강 중앙에 중면 삼곶리를 흘러온 합수천 하구 위쪽에 임진강댑싸리공원이 가늠된다. 임진강 왼쪽은 왕징면 강내리, 중앙 뒤 임진강 북쪽은 연천군 중면 횡산리 지역이다.
임진강이 북쪽에서 동쪽으로 휘감아 돌아 흘러내린다. 휘감아도는 남쪽은 왕징면, 임진강 북쪽은 중면 지역이다.
걸어온 산능선조망대와 율무밭, 원형전망대가 확인되며, 임진강의 군남댐과 그 아래에 북삼교가 보인다.
동남쪽에 군남면 옥계리와 선곡리, 삼거리 지역이 펼쳐져 있고, 중앙에 군자산이 솟아 있으며, 그 뒤는 연천읍 지역이다.
해발 328m 군자산은 연천군 연천읍과 군남면의 경계를 이룬다. 조선시대에 웅섬산(雄閃山)·당산·성황산 등의 이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웅섬산은 삼국시대 연천의 옛 지명이고, 당산이었다는 기록도 확인하기 어렵다. 성황산(城隍山)은 『팔도군현지도』에 연천읍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위치가 현재의 군자산 위치와 거의 일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서는 성황사가 연천현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성황산의 위치 파악이 가능하다. 『여지도서』에서도 성황사(城隍祠)가 연천현의 서쪽 3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하였다.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군 창고 시설 옥상에 올라가서 사방을 조망하고 내려와 옥녀봉으로 곧바로 올라가면 '그리팅맨'이 탐방객을 맞이한다.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 그리팅맨은 임진강 연강나룻길이 조성되며 북한과 4km 떨어진 해발 205m의 옥녀봉에 설치된 인공 조형물이다. 연천 그리팅맨은 10m 높이로 북녘을 바라보고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거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향후 임진강 건너편인 북녘땅, 황해북도 장풍 마량산에 그리팅맨이 건립되면 남북에 서로 마주 보고 인사하는 조형물로 한반도 평화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될 것이다. 그리팅맨이 15도 각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주변에 연천삼곶리 돌무지무덤과 임진강 댑싸리공원, 군남홍수조절지 두루미테마파크 등이 있다. - 두루누비
10.8m 높이, 15도각도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함께 인사를 나누는 것은 서로의 존중과 배려, 친화의 자세다.
28사단 태풍부대가 주둔한 옥녀봉에 '태' 표석과 '풍' 표석이 세워져 있으며 그 아래에 헬기장이 있다. 오른쪽에 군남면 선곡리·삼거리·연천읍 차탄리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327.8m 군자산(君子山)이 솟아 있고, 왼쪽 뒤에 보이는 산은 종자산인 듯.
높이 642.8m 종자산(種子山)은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와 연천군 연천읍에 걸쳐 있는 산. 종자산 남동쪽 산 중턱에 바위굴이 있는데, 옛날에 이곳에서 3대 독자 부부가 아이를 갖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후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종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같은 이유로 씨앗산이라고도 불린다. 또 한편으로는 이 산의 정상이 마치 종지를 뒤집어 놓은 형상처럼 생겼다고 하여 종지산으로도 불려오다가 한자로 표기될 때 종자산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 중앙에 산능선조망대와 율무밭, 그 오른쪽 임진강의 군남홍수조절댐, 그 아래쪽 북삼교가 보인다.
맨 오른쪽에 642.8m 종자산(種子山), 왼쪽에 877.2m 지장봉(地藏峰), 맨 왼쪽 뒤에 947.3m 금학산(金鶴山)이 가늠된다.
"지장봉(地藏峰)은 환희봉(歡喜峰), 석대봉(石臺峰)이라고도 불리며,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와 포천군 관인면 중리의 경계에 있으며, 연천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현재는 ‘지장봉'으로 불리고 있다."(연천군청)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 947.3m 금학산(金鶴山)은 학이 막 내려앉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901년 궁예가 태봉을 건국하고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도선이 이 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300년을 통치할 것이며, 고암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국운이 25년밖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아 18년 통치 끝에 멸망하고 말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두산백과)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 지역이 펼쳐져 있고, 중앙의 산줄기 산봉은 청화산인 듯. 그 뒤쪽은 연천읍 연가리와 상리 지역이다. 산봉들을 확인한다. 맨 왼쪽에 고대산(高臺山), 그 오른쪽 뒤에 금학산, 그 오른쪽 앞에 지장봉이 확인된다. "높이 832.1m 고대산(高臺山)은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와 대광리, 철원군 철원읍 율리리와 경계에 있는 높은 산. 신탄리 지역에서는 이 산을 '큰고래'라 부르고 있으나 유래는 자세하지 않다."(연천군청)
높이 832m 고대산(高臺山)은 경원선 철도가 휴전선에 막혀 멈춘 곳에 솟아 있다. 경기도 최북단인 연천군 신서면과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사이에 있는 정상에서는 북녘의 철원평야와 6·25 때 격전지인 백마고지(白馬高地), 금학산(金鶴山:947m)과 지장봉(地藏峰:877m)·북대산(北大山)·향로봉(香爐峰)은 물론 한탄강(漢灘江) 기슭의 종자산(種子山)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광주산맥(廣州山脈)의 지맥으로 동부산지를 이루며, 화강편마암계 산답게 암반과 암릉이 발달되어 있다. 북동쪽 골짜기의 표범폭포에서 흐르는 물이 동막골계곡과 유원지를 지나 동서방향으로 흘러 남북주향의 산지를 돌아 차탄천(車灘川)과 합류, 북에서 남으로 전곡을 거쳐 한탄강으로 흐르다가 임진강(臨津江)으로 들어간다. - 두산백과
능선 오른쪽은 군남면 옥계리, 왼쪽은 중면 삼곶리와 합수리, 맨 뒤쪽에 철원평야와 백마고지가 있을 것이다.
중면 삼곶리(三串里)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 중면 합수리(合水里)에서 흘러오는 합수천이 삼곶리 들녘을 가른다.
중면(中面)은 본래 연천현의 지역으로 연천 읍내에서 북쪽에 위치하므로 북면(北面)이라 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의 중앙에 위치한다 하여 북면을 중면으로 개칭하여 삼곶·횡산·중사·적거·마거·합수의 6개 리로 개편 관할하여 오다 1945년 8·15광복 이후 전지역이 3·8선 북쪽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6·25가 끝난 후인 1954년 11월 17일 행정권이 수복되었으나 6개 리 전지역이 민통선 북쪽에 위치하여 입주하지 못하고 연천읍에 면사무소를 신설하여 법정 6개 리에 대한 호적업무만 취급하여 오다 1963년 1월 1일 과거 삭녕면(朔寧面) 지역이었던 도연(陶淵)·적음(笛音)·진곡(辰谷)·어적산(漁積山)·적동산(積洞山)·삭녕(朔寧)·대사(大寺)·여척(餘尺)·고마(古馬)·상마산(上馬山) 등 10개 리가 중면으로 편입되어 16개의 법정리가 되었다. 그후 1980년 1월 1일 삼곶리와 1985년 9월 20일에는 횡산리가 차례로 행정리로 승인되어 민간인이 입주하였고, 1992년 7월에는 연천읍에 있던 면사무소가 삼곶리에 새로 이전 준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연천군청
임진강 중앙의 합수천 하구 위쪽 임진강변 삼곶리에 댑싸리공원이 확인된다. 임진강 건너 왼쪽은 왕징면 강내리 지역이다.
10.8m 높이, 15도 각도. 임진강 건너편인 북녘땅, 황해북도 장풍 마량산에 그리팅맨이 언제 건립될까? 남북의 조각상 그리팅맨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한겨레의 자존, 상대 존중과 배려, 평화를 조성하여 통일을 이루는 바탕이 된다.
TITLE 인사하는 사람(그리팅맨)/ ARTIST 유영호/ SIZE 7X7X10.8(h)m/ MATERIAL 알루미늄 주물, 우레탄 컬러
"안녕하세요!" 나는 그리팅맨(인사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사를 할 때 행하는 자세입니다. 인사는 모든 관계의 시작입니다. 만일 우리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 인사 없이 지나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면 관계가 만들어지고 친구가 됩니다. 인사는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 서로 다른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 국가와 인종의 벽을 넘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작점이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행위입니다. 나아가 자연, 우주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과의 관계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리고 생각합니다.
나는 2012년 한국으로부터 지구의 정반대편에 있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처음 세워져 우루과이 사람들에게 인사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고 있으며, 한국의 양구 해안 마을과 제주도의 서귀포에도 서있습니다. 2016년 1월 태평양과 대서양과 북미와 남미를 이어주는 세계의 다리라 일컫는 파나마 운하로 유명한 파나마시티에서 문명교류의 역사를 기념하며 세계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멕시코와 페루, 브라질 등 북, 중남미는 물론 실크로드와 아프리카, 유럽 대륙에도 세워져 한국의 역사가 가진 겸손과 존중,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입니다.
이제 나는 한반도의 중심이자 선사시대로부터 우리 역사의 중요한 무대였던 연천에 왔습니다. 특히 제가 서있는 옥녀봉은 예로부터 신성시되던 장소로서 옥녀봉을 차지한 자기 한반도를 지배한다는 역사적인 요충지이지 50만 년 전 한반도에 사람이 살게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의 역사를 기억하는 땅입니다. 삼국시대 각축의 중심지로서, 현대 한민족의 비극이자 아픔이이라 할 수 있는 한국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조국의 분단된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습니다. 남북의 화해는 서로가 진심으로 인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인사하는 마음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마음이자 세계인에게 전하는 인류 평화를 위한 강렬한 희망의 노래입니다.
옥녀봉에 서면 남과 북으로 조국의 산하가 파도처럼 펼쳐지고 사방으로 열려 거침없이 뻗어가는 장쾌한 기상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로 열린 명당 옥녀봉에서 나는 앞으로 지구상의 여러 장소에 세워지게 될 그리팅맨의 중심으로서 세계를 연결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겸허한 자세로 인류와 우주를 향해 깊은 감사의 마음과 평화의 인사를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2016년 4월 23일 작가 유영호
그리팅맨 앞쪽에 '옥녀봉 그리팅맨' 안내판, 옥녀봉 표지판, '평화와 통일 염원'글과 미수 허목의 글을 적은 안내판이 있다.
풍류의 대가 미수 허목이 남긴 연강나룻길 예찬 : 첫째는 봄날 산에 꽃이 피고, 바위 곁에 새가 우는 것을 보는 것이죠. 둘째는 우거진 숲에 해가 저물면 그늘진 벼랑에 짙은 안개가 끼는 것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새벽 해가 뜰 무렵 첩첩산중에 노을이 어리는 것을 보는 것이며, 넷째는 비 오는 날 숲 너머에서 들려오는 개울물 소리를 즐기는 것이며, 다섯째는 비 그친 후 물이 불어난 앞개울에서 낚시를 드리우는 것이며, 여섯째는 시냇가 바람이 비를 몰아올 때 낙조가 산에 어리는 것을 보는 것이며, 일곱째는 저녁 무렵 산기운이 아름다울 때 숲 너머 아스라한 안개를 보는 것이다. 여덟째는 한밤 모든 동물이 잠들었을 때 성긴 숲 그림자를 즐기는 것이며, 아홉째는 가을날 협곡에 안개가 어리고 단풍이 천 겹으로 퍼지는 것을 보는 것이며, 열째는 눈이 산 가득 쌓인 산속의 푸른 소나무를 보는 것이다. <숲 속에 살면서 흥을 풀다〉, 《미수기언眉叟記言》
강은 나뉘어도 하늘은 하나, 평화를 향한 휴전선 아래 처음길 : 예전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던 곳이라는 범바위를 지나, 군남면 옥계리와 삼곶리 경계에 위치한 해발 205미터의 옥녀봉에 오르민, 연천군 전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산맥들이 휴전선을 향해 곧장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연천평야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와 태풍전망대와 필승교를 지나 미수 허목이 잠든 무덤 앞을 흘러 삼곶리로 남하하는 임진강물이 푸르게 흐른다. 그 강을 따라 민통선이 시작되고, 더 옛날에는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이 땅을 빼앗기 위해 고구려 군이 남하하던 길목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옥녀가 노닐었다는 전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멀리 우뚝 솟은 산성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북쪽 삭녕(朔寧)에서 뻗은 산맥이 상리 솟을봉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으로 내려온 산줄기에는 남자의 정기가 흐른다고 하여 군자산이라 하고, 오른쪽으로 내려와 끝에서 봉긋 솟아오른 봉우리에는 여자의 정기가 흐른다고 하여 옥녀봉이라 불렀다. 옛날에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질만큼 지역 주민들이 신성시했던 이 옥녀봉은 삼국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치열한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옥녀봉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옥녀봉 정상에는 테뫼(머리띠)식 석축 성이 있었는데, 이것을 옥녀봉산성 혹은 옥계리산성이라 부른다. 6세기 이후 신라가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에는 주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읍성(邑城)과 비상시 도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 높지 않지만 사방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망루의 필수 요건을 갖추고 있어 1차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 후방을 지키는 2차 방어선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50만 년 전 이 땅에 인간이 처음 살기 시작한 이래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어렵게 성취한 평화는 이내 탐욕과 정복욕으로 깨지고 침략당했다. 하지만 끝까지 이 땅을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진정한 한반도의 패자(覇者)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영웅의 역사는 언제나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삼국 간의 치열한 접전도,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지리한 줄다리기도,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분단의 비극도 모두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이 땅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다. 발 아래 강줄기는 나뉘었어도 고개를 들어 보면 하늘은 여전히 하나다. 휴전선을 넘어 남으로 유유히 달려 내려온 임진강 물길처럼, 서부 휴전선 아래 첫 '평화누리길'인 이곳에서, 통일과 평화와 미래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자.
그리팅맨은 유영호 작가가 만든 조각상으로 2016년 4월 23일 이곳 옥녀봉에 설치하였다. 조각상은 15도 각도로 고개와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서로에 대한 배려, 존중,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옥녀봉은 해발 205m로 정상에서 연천군 전 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명소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리팅맨 인근에 태풍전망대, 미라클타운, 개안마루 평화누리길 12코스 등은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 안내판
옥녀봉 정상에 세워져 있는 태풍부대의 '태' 표석 뒷면에는 '통일'이 적혀 있다.
옥녀봉 정상에 세워져 있는 태풍부대의 '풍' 표석 뒷면에 '태풍'이 적혀 있다. 옥녀봉 정상에서 오른쪽 뒤 출입구로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