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와 창씨개명
창씨개명의 앙갚음인가, 꽃은 건성이다.
이제 개나리가 피어오른다. 봄이 너무 고팠기에 맨 먼저 봄맞이를 하는 꽃, 그런데 하필이면 개나리냐? ‘개’자가 들어서 별로인데…. 꽃 모양이 커다란 백합과 같은데 백합만 못하대서 개나리라고 했나, 아니면 개처럼 흔하고 친숙해서 개자를 붙였나? 영춘화, 신리화, 만리화, 연요, 연교, 어리자와 같은 이름이 있는데도 일제 강점기 식물학자가 창씨개명해준 이름인가? 우리나라 개나리는 모여서 피고 샛노랗거나 노란색인데 중국이나 일본의 개나리는 듬성듬성 있고 한국처럼 노랗지도 않다. 한자에서 ‘노랗다’를 검색하면 누를 황자 黄로 나온다. 이건 노란색이 아니라 누런색이다. 개나리 색깔은 황금색(黃金色, 黄生生)이다.
개나리는 중국어로 连翘(Lián qiáo), 迎春花(Yíngchūn huā), 일본어는 チョウセンレンギョウ(朝鮮連翹), 영어는 golden-bell(forsythia, wild lily)이고 학명은 Forsythia koreana 이다. 학명에서 보듯이 한국이 원산지이다. 일본인에 의한 창씨개명한것도 ‘朝鮮連翹’이어서 ‘조선’이란 이름이 들어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일본학자들이 창씨해준 이름에는 대개 ‘개’자나 쌍말을 많이 붙였으므로 우리말로 고칠 때 ‘개’자를 넣어서 ‘개나리’로 되었을 거라는 짐작이다. 아니면 조선이란 단어를 ‘개’로 바꾸었지만, 연교는 아예 번역조차 안 되었으므로 ‘개나리’가 원래 순수 이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선련교(朝鮮連翹)를 우리말로 바꾸면서 우리가 스스로 이미지가 안 좋거나 흔하다는 뜻에서 개나리로 작명했다는 것은 오해일 수 있다.
좌우간 개나리는 우리에게 봄을 알리는 것과 더불어 엄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개나리꽃은 암술이 낮고 수술이 높은 단주화(短柱花)와 그 반대로 암술이 높은 장주화(長柱花) 개체가 있다. 수정되어 열매가 열리려면 수술의 수분이 암술에 잘 섞여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단주화와 장주화가 섞인 개나리 떨기는 많지 않다. 우리 주위에서 개자리 울타리라던가 군락지에서 보더라도 장주화는 잘 안 보이고 단주화가 많다. 따라서 대개가 단주화 개체가 많으므로 열매가 잘 안 맺힌다. 사실은 개나리 꽃이 단주화와 장주화가 한 가지에서도 같이 있더라도 꽃피는 순서가 한꺼번에 피지 않고 시차를 두어 피므로 수분이 잘 안된다.
이런 현상은 우리 주위에 많다. 예를 들면, 소나무, 개암나무, 참나무, 도토리나무, 오리나무 등의 애기초롱처럼 축축 늘어진 수술이 먼저 펴서 송화가루 같은 가루를 다른 개체의 암꽃으로 날리는 것은 바로 동종교배를 피하고 이종교배를 위한 것으로, 바로 유전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설령 한 개체에서 암수꽃이 동시에 피어 수분이 될 수 있더라도 수분이 거의 안 된다. 그래서 개나리 울타리에서 개나리 열매를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열매가 잘 열리지 않아도 번식에는 문제가 없다. 번거롭게 씨를 받아 심을 필요 없이 가지를 꺾어다 휘묻이를 하든가 가지를 꺾꽂이만 해도 쉽게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나리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것 외에도 엄청난 교훈을 주고 있다. '개'자를 붙여준 이름에 대한 앙갚음인지 꽃은 무성하고 아름답지만 열매가 귀하다. 꽃은 건성으로 피어서 열매를 못 맺고 휘묻이 팔자가 되었나 보다. 바로 잡종강세 순종열세라는 엄중한 유전법칙을 가르쳐 주려고 회초리를 들고 있는 것 같다.(뒤에 계속)
[더보기: ‘개나리에서 주걱턱, 확증편향까지’, 심의섭, 곰곰이 생각하는 수상록 3, 우민화의 떡밥, 노답의 타령, 한국문학방송, 2021.10.5.: 308~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