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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잠3:27-35
찬송 : 218장(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455장(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449장(예수 따라가며)
[성경 읽기]
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29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30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31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32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구조 분석 및 주석]
잠언 3:27-35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단락입니다.
전체적으로는
금지 명령(하지 말라)
→ 그 이유
→ 하나님이 악인과 의인을 어떻게 대하시는가라는 논리적 흐름을 갖습니다.
특히 마지막(33-35절)은 앞선 명령들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결론 역할을 합니다.
Ⅰ. 이웃에게 선을 행하라 (27-30절)
A. 적극적인 선행을 미루지 말라 (27-28절)
① 선을 베풀 능력이 있을 때 거절하지 말라(27)
└ 주석: '선을 받을 자'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의미하며,
'네 손에 힘이 있거든'은 능력이 있음에도 외면하지 말라는 뜻이다.
② 도움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28)
└ 주석: 지혜는 즉각적인 선행으로 나타난다.
미루는 것은 결국 이웃 사랑을 거절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B. 이웃을 해하지 말라 (29-30절)
① 평안히 사는 이웃을 해칠 계획을 세우지 말라(29)
└ 주석: '꾀하지 말라'는 단순한 행동보다 악한 의도를 품는 것 자체를 금한다.
② 이유 없이 다투지 말라(30)
└ 주석: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는 분쟁을 경계한다.
상대가 먼저 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싸움을 만들지 말라는 의미이다.
27-30절: 지혜는 이웃을 대하는 삶으로 드러난다.
잠언은 지혜를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이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27-28절은 적극적인 사랑을 강조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지금 도울 수 있다면 즉시 도우라는 것입니다.
"내일 오라"는 말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29-30절은 소극적인 악행 금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단지 선을 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악을 계획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평안하게 자신을 신뢰하는 이웃을 해치는 것은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죄로 여겨집니다.
또한 이유 없는 다툼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의 표현입니다.
Ⅱ. 악인의 삶을 부러워하지 말라 (31-32절)
A. 포악한 사람을 시기하지 말라(31)
└ 주석: 폭력으로 성공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그의 삶을 모델로 삼지 말라는 경고이다.
B. 그 이유(32)
① 패역한 자는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다.
② 정직한 자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린다.
└ 주석: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참된 복의 기준임을 보여준다.
31-32절: 악인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말라.
현실에서는 폭력적이고 불의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잠언은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 이유는 성공의 기준이 재산이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패역한 자는 하나님께 미움을 받지만,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를 누립니다.
잠언은 외적인 성공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더 큰 복으로 제시합니다.
Ⅲ.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최종적으로 구별하신다 (33-35절)
A. 악인에게 임하는 결과 (33-35a)
① 악인의 집에는 저주가 있다(33a)
②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비웃으신다(34a)
③ 미련한 자는 수치를 받는다(35b)
└ 주석: 악인의 번영은 일시적이며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난다.
B. 의인에게 임하는 결과 (33-35b)
①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다(33b)
②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34b)
③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얻는다(35a)
└ 주석: 하나님은 결국 의인에게 복과 은혜와 영광을 주신다.
이것이 앞선 모든 명령을 순종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이다.
33-35절: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신다.
마지막 단락은 앞의 모든 명령의 신학적 결론입니다.
본문은 세 개의 대조를 사용합니다.
| 악인 | 의인 |
| 저주 | 복 |
| 교만 | 겸손(은혜) |
| 수치 | 영광 |
이러한 대조는 인간이 최종 심판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의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3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악인의 집에는 저주를 내리시고 의인의 집에는 복을 주십니다.
34절에서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구절은 후에 신약에서 야고보(약 4:6)와 베드로(벧전 5:5)가 인용하여,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사용합니다.
35절은 최종 결론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국 영광을 얻지만,
미련한 사람은 끝내 수치를 얻게 됩니다.
잠언은 현재의 일시적인 형편보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최종적인 평가를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선을 베풀 기회를 놓치지 말라
본문: 잠언 3:27-35
사람의 인생에는 수많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공부할 기회, 일할 기회,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습니다.
어떤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만, 어떤 기회는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할 기회이고, 섬길 기회이며, 사랑을 실천할 기회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귀한 기회는 복음을 전할 기회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한 사람의 삶만이 아니라 영원한 운명을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쉽게 미루곤 합니다.
"다음에 이야기해야지.", "조금 더 친해지면 전해야지.", "상황이 좋아지면 기회가 있겠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내일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도 내일이 보장되지 않고, 복음을 들어야 할 그 사람에게도 내일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인 잠언 3장 27절부터 35절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다투지 말고, 악을 행하지 말라는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중심에는 "선을 행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맡기신 가장 큰 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며, 세상의 성공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복음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선물을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전도를 미루지 말라고 하시는지,
그리고 전도하는 사람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며,
우리의 삶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결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선을 베풀 기회를 미루지 말라(27-28절)
본문 27절과 2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게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 손에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지체하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
이 말씀은 지혜로운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행할 능력이 있을 때 그것을 미루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일 하겠다"는 말은 때로는 게으름의 표현이고, 때로는 책임을 미루는 핑계가 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강조하실까요?
그 이유는 기회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난 사람이 내일도 내 앞에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나에게도 내일이 보장되지 않고, 그 사람에게도 내일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을 행할 수 있을 때 즉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원리는 전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큰 선은 무엇입니까?
물질입니까? 아닙니다.
재능입니까? 아닙니다.
세상의 지식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큰 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죽어가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값없이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 복음을 다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도를 너무 쉽게 미룹니다.
"조금 더 친해진 다음에 전해야지."
"상대방이 마음이 열리면 이야기해야지."
"지금은 바쁜 시기니까 다음에 해야지."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
왜냐하면 복음은 미룰수록 전하기 어려워지고, 기회는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은 언제나 "지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갈릴리를 다니시며 사람들을 만나실 때 한 사람도 "다음에 만나자"고 미루지 않으셨습니다.
세리 마태를 만나셨을 때도 "나를 따르라"고 즉시 부르셨고,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을 때도 그 자리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만나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곁에 두신 사람이 있습니다.
가족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내 삶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우리를 그 자리에 보내셨을지도 모릅니다.
전도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떠오르게 하시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 사람에게 한 번 교회 나오라고 말해 보아야 하는데…"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기도해 주어야 하는데…"
그 마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 감동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 전화 한 통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건네는 짧은 한마디가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에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지체하지 말라."
우리 손에 있는 가장 큰 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오늘이라는 기회를 붙들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이웃을 향한 사랑은 전도로 나타난다(29-31절)
29절부터 31절까지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이 말씀의 핵심은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예배당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무엇일까요?
물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귀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는 것도 귀합니다.
아픈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건강하게 살아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져도 영원히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8장 3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말씀은 영혼의 가치가 세상의 모든 것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의 영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을 감정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이다."
"잘 대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물론 그것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감정을 넘어 상대방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데 치료법을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불이 난 집을 보면서 위험을 알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에게 생명의 복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다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그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소망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를 우리만 간직하고 있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흘려보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동안 사람들의 육신의 필요만 채워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셨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을 먼저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웃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직장 동료를 볼 때 단순히 함께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친구를 볼 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니라 복음이 필요한 영혼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가족을 볼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인도해야 할 가장 소중한 영혼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도는 교회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관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로 초청하는 모든 행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네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느냐?"
그 질문에 대한 가장 분명한 대답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사랑한다면 기도하게 되고,
사랑한다면 복음을 전하게 되고,
사랑한다면 그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끝까지 섬기게 됩니다.
이웃 사랑의 완성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그 사랑의 통로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은 의인의 삶을 복되게 하신다(32-35절)
마지막으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지를 말씀합니다.
32절부터 35절까지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여기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과 친밀하게 교제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영광을 주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세상적인 성공을 약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장 복된 삶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동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분명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관심은 언제나 영혼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전도는 단순히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전도를 부담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말을 잘 못하는데…"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내 믿음도 부족한데…"
이런 생각 때문에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공적인 전도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충성된 순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자신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는 사람입니다.
싹을 틔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복음 한마디를 전하는 것도 순종이고,
한 사람의 이름을 놓고 기도하는 것도 순종이며,
교회에 한 번 초청하는 것도 순종입니다.
그 작은 순종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과 동행하십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된 간증을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믿음이 더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을 읽다 보면 말씀이 더 깊이 깨달아집니다.
상대방을 섬기다 보면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결국 전도는 다른 사람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도하는 사람 자신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전도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기쁨을 주십니다.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늘에서도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천사들이 기뻐한다고 하셨는데,
그 기쁨을 이 땅에서도 먼저 맛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사람,
자신의 유익보다 한 영혼의 구원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하는 사람과 하나님은 함께하십니다.
본문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 길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동행하는 길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가장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잠언 3장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선을 미루지 말라.
우리에게 있는 가장 큰 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마음에 떠오르게 하시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보내신 전도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전도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에 선을 행할 힘이 있거든 아끼지 말라."
복음을 가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미루지 말고,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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