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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찾는 사람들 스크랩 허진권 한국화가의 구조주의와 창조적 카타르시스
노루궁뎅이 추천 0 조회 63 09.12.08 08: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나인 소설가

자동차가 제 속력을 내며 부여군 구룡면을 지나고 있다. 10월 중순, 차창 밖으로 좀처럼 시선을 떼어낼 수 없었다. 말그대로 드넓은 구룡평야가 황금물결로 파도치고 있다. 너무나도 감상적일 수밖에 없는, 한 편으로는 농투성이가 아니기 때문에 너무나도 풍경에 도취한 감성적인 내 자신을 탓하기도 하며, 자동차는 목적지 까지 제 속력을 잃지 않기 바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문득 떠오른다. ‘도토리나 상수리가 가문 그해에는 쌀·보리이삭이 풍년이고, 쌀·보리이삭이 가물면 상수리나 도토리가 풍년이다.’라고 한 노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먹을것이 없던 보릿고개 시절을 말하는 것이다. 논농사가 흉년이면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논농사가 흉년일 때 상수리와 도토리가 풍년이었고, 그 덕에 쌀·보리대신 도토리나 상수리로 묵을 만들어 배고픔을 달랜 보릿고개 시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룡평야의 황금물결, 풍년이다. 도토리와 상수리도 풍년이다. 모든 것이 풍족해 보이는 가운데 이상민 예총사무국장이 서천과 논산에 놓인 새로 뚫린 국도로 달리던 차안에서 필자에게 한 말이 문뜩 떠오른다.

그는 차창 밖의 구불구불한 구 도로에 마음이 빼앗긴 듯 보였다. 새로난 길로 달리는 자동차, 외면당하는 구도로의 길에 뭔가 애착이 가는 눈빛이다. 그는 내게 ‘시간이 지나면 구불구불한 저 길에 애착이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듯한 길을 추구하는 현 시대는 속력을 지향하고 정감어린 관계들을 차단하고 있다. 비록 구불텅하고 좁은 길, 많은 신호등과 커브길, 그곳을 지나며 작은 구멍가게에서 간식을 먹고, 식사를 하고, 길을 묻고 가리켜 주던 사람들과는 이제 이별인 것이다. 어느덧 자동차의 성능에도 못 미쳤던 그 길을 버려두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자동차는 달린다.

그러고 보면 나는 구룡평야에서부터 서천·논산간 국도에서 線을 보았다. 色彩도 보았다. 싯누런 곡식과 이제막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 듯 피어오르는 산들의 단풍, 땀이 차갑게 식어 내리도록 싸늘한 바람과 따사로운 가을 햇볕. 그것은 조화이다.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자연, 그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아름다운 가치이다.

그런 서정성을 뒤로하고 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가 되어서 이다. 때마침 기독교연합봉사회관 입구에서 허진권 선생님과 맞닥트린 우리로서는 지체할 겨를도 없이 허진권 선생님의 뒤를 밟아 전시중인 2층 갤러리로 향했다. 우리 일행은 약속시간 보다 30여분 앞당겨진 시간에 허진권 선생님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繪畵는 『사랑의 파장-샤론의 꽃 그리고 부활』의 제목인 추상화가 걸려있었다. 나비모양에 크기가 다른 무수한 핑크색 점과 백합모양의 무수한 점들이 크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향과 다른 크기들로 어떠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들에 핀 백합화는 자연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마 6:28)백합화가 핑크빛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줄기에서 나온 이파리가 좌우로 뻗어있고 뱁합화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방긋 웃고 있다. 구슬로 장식한 보석화처럼 그림에는 똘망똘망한 구슬이 꿰어져 있다. 이슬을 먹고 자라는 아름다운 백합화처럼 인간은 하늘의 곳간에서 내려주는 은총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2008년 밀알미술관 개인전 서문중 서성록(안동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나는 나름대로 파장에 대한 개념을 허진권 선생님께 물었다. 이를테면 허진권 선생님의 파장은 ‘점’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점’은 개별적인 존재이며 그 존재에도 파장이 있지만 조화롭지는 못하죠. ‘점’과 ‘점’이 하나 되고 연속적이며 반복적인 무수한 점들이 개별적인 파장을 잃어버리고 전체(혹은 우주적)결합, 융합에 의한 조화를 표현하는 것. 또한 그러한 조화는 파장의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찾는, 그러면서도 끊을 수 없는 파장의 연속성에 균형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허진권 선생님은 나의 질문에, 특히 전시하고 있는 작품의 나비 모양에 대해 설명하였다. 즉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나비의 꿈'(胡蝶之夢)과 나비효과, 카오스이론 등 일반적으로는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로, 그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작품에 일념하고 있다.

그것은 변화이다. 무수한 점들의 운동을 통해 하나의 커다란 힘을 얻는, 인과 관계의 법칙을 깨고 새로운 법칙을 갖추는 작가의 욕구이다. 그러한 이면에는 위에서 말했듯 작가 자신의 철학이 스티븐 호킹『시간의 역사』와 물리학적 우주관(노자,장자), 기독교의 창조론을 바탕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진권 선생님의 회화는 ‘점’의 존재를 나타내며 그 파장과 파장의 연결고리와 관계, 조화, 그리고 융화의 세계를 작품을 통해 열어가고 있다.

점은 물결처럼 퍼져간다. 조형적인 설정으로만 그치는 줄 알았는데 작가는 그것을 뜻밖에도 인간관계로 설명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베풀면 그 관심이 파도쳐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운동 에너지는 다른 지점에서도 나올 수 있다. 화면의 다른 중심축이 그 점을 암시해주고 있다. 서로의 파장이 부딪혀 새로운 에너지가 나온다. 이 경우 제3의 에너지가 생성된다. 처음에는 미미하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눈사태처럼 걷잡을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된다는 얘기다.

서성록(안동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이처럼 허진권 한국화가는 파생에 대한 ‘점’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파생의 진원지는 무엇일까?

“이 시대, 국경도 없는 지구촌, 다문화, 남녀 성별도 바꾸며 살아가는 발랄한 세대 등. 이때 새삼 고향 운운하는 것이 구시대적인 회상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누군가 만나면 정서상 동질성을 찾고자 합니다. 우선 통성명을 하고, 전공이나 직업을 이야기하고, 출신학교나 고향 등. 특히 제게는 제 삶과 작품에 있어서 파장의 진원지이기에…….

아무튼 우리는 꿈을 가지고 지구라는 현실 시공간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또 만남을 연속하며 살고 있습니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이들도 있습니다. 자연과 하나 되기 위하여 은둔하며 살아가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매일 보고 또 보는 사람과 그 사람사이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들어가며 현실의 장에서 서로 호흡하며 뒤엉켜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온 삶의 한 걸음 걸음들이 오랜 시간 속에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소중한 역사가 됩니다.

한 사람이 살아갑니다. 또 한사람을 만납니다. 이렇게 만난 이들의 파장은 서로 간섭합니다. 서로 가지고 있는 파장의 성향에 따라 그 간섭은 소멸되기도 하고 증폭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파장의 소멸과 증폭에 관계없이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고 호흡하기에, 영혼이 있기에…….

한 사람이 남긴 삶의 자국들은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의 점이 됩니다. 같은 것이 아니어도 같아 보이고 같아보여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크고 작은 점, 점, 점. 우주를 향하여 끝없이 반복되는 점, 점, 점.“

우주야 놀자(모란미술관초대전, 2007.11~22008.2.28)의 작품을 보면 추상성에도 모양과 질서적인 구조주의를 형성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처럼 <우주+야+놀자>처럼 하나의 친구와 같은 대상으로 불려지는 우주와 함께 놀자는 친근감 있는 어감의 <어울림>적인 관계일 것이다. 이미 소통이 된 세계일 수도 있고 허진권 선생님의 우주관은 결국 한정된 인간의 삶과 인생에서의 대상은 항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친구의 관계일 것이다.

허진권 선생님의 작품은 한국화뿐만 아니라 목판화, 수묵채색화 등 다양한 시도와 기법의 실험정신으로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십자가,2005. 200*145㎝한지/수묵담채>,5병2어,2005. 200*145㎝한지/혼합재료><십자가,2005. 200*145㎝, 한지/수묵담채>의 종교적 언어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의 그로테스크하지 않은 그러한 언어와 이야기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거쳐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언어와 이야기 구조를 만들고 있다. <제3공간, 240*990㎝, 한지/수묵채색,2003>의 작품처럼 실험정신이 강하며 추상성을 최대로 확장한 작품이다.

또 하나의 실험정신이 깃든 작품으로는 <제5공간-천사와 5병2어,140,5*211㎝>이다. 모래사장에 한 인물이 누워있고 쇠스랑 같은 것으로 무늬를 만들었다. 그 사진에 회화를 덮음으로 해서 사진과 회화의 두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되었다. <제5공간-5병2어, 178*134㎝ 한지/인터미디어, 2006>의 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시도된 작품이면서 독자로 하여금 상실과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이처럼 허진권 선생님의 새로운 도전과 창조는 인본주의와 우주적인 질서의 완충작용 사상을 밑바탕으로 깔아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특정한 사조에 천착하기 보다는 하나의 표현양식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두터운 내면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유롭고 다양한 정신세계로 우주관을 형성하는 작가정신이 배어 있다. 특히 강요의 역사에 대해 혹은 전통에 대한 보편적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았다.

“강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강요는 획일적으로 만들기 때문이죠. 예술에서의 획일적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작가 자신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찾아가며 또 다른 세상의 제시어를 던져주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생각으로 대상과의 소통과 관계가 필요합니다. 대상끼리의 간섭과 강요는 필요악일 수 있습니다.”

필자는 프래그머티즘에 빠져있다. 한 편으로는 그러한 생각이 필자를 규범적인 틀에 가둬두고 그 이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해 본다.

허진권 선생님은 충남 보령의 원산도리가 고향이다. 원산도에서 수직이라고는 미루나무와 굴뚝뿐이었고, 대부분 수평적인 세계이었다. 그러한 정서가 허진권 선생님의 깊은 내면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인터뷰 중에서 기독교의 창세기에서 공간과 삼차원 현실의 공간을 가져오는 작품들, 그리고 넓히는 작업, 복잡성 보다는 단순성, 시각적 미술 추구 등 이러한 것들이 수직이기 보다는 수평적인 세계의 안정감에서 나오는 회상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인터뷰가 끝나고 자동차는 다시 부여 구룡평야의 직선적인 국도를 내달리고 있다. 繪畵에 대한 가벼운 질문에 정중히 石濤畵論의 일획에 대해 설명해준 허진권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필차는 구룡평야의 황금으로 일렁이는 들을 바라본다. 線과 線이 경계를 만들고 그 線들은 다시 線으로 이어진다. 싯누런 色彩가 필자의 마음을 앗아간다. 色彩속에 내 色彩가 융화되어 녹아내린다.

보령에 도착하려면 40여분을 더 달려야 한다. 직선의 도로 보다는 구불구불한 도로로 내달리고 싶다.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는 풍경, 나는 점, 점, 점 더 그들의 배경이 되며 대전을 뒤로하고 있다.

김나인 프로필

충남 보령 출생.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경기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 석사과정 중. 2004년 ≪순수문학≫에 「배꼽아래」 소설 당선, 2006년 계간 ≪문단≫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 『배꼽아래』, 『파리지옥』,『개미지옥』, 시집 『술 취한 밤은 모슬포로 향하고 있다.』. 『그 잔인한 사랑, 그 속성에 대하여 나는 죽도록 사랑한다』가 있다. 제36회 경기학술문예소설부문수상. 2007년 아시아 작가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작가와문학》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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