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첩 작전과 산불
사단에서 대간첩작전 명령이 내려 우리대대는 포항에서 경주 뒷산으로 이동하여 진을 치게 되었다. 매일 매일 떨어지는 작전 명령에 따라 중대장인 나는 5만분의 1 지도를 들고 좌표대로 이산 봉우리 저산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간첩을 색출하고 있었다. 간첩 흔적도 못 찾고 몸은 피곤한 봄날이다. 새로 떨어진 작명대로 새로운 좌표에 중대원들을 산골짜기 마다 분대대로 배치하고 있는 도중에 분대장이 나보고 소리친다. ‘중대장님 중대본부 자리에서 연기가 납니다. 이게 부대에서 첫 번째 산불이다.
청명 한식에는 예로부터 산에 불이 많이 났다. 한식은 개자추가 불에 타 죽었기 때문에 이날은 산에서도 찬밥을 먹으라는 데도 산에 불이 제일 많이 나는 날이다. 금년에는 식목일 까지 겹쳐 나무를 심으라는데 산에서는 불길이 솟으니 아이러니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에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많아 송진이 불에 붙으면 장작불 같이 잘 타오른다. 지난 10년 통계를 보면 4월에 산불이 평균 150건씩 나는데 일년 전체 산불의 30%를 상회하고 그 피해 면적은 일 년의 90%에 육박한다니 4월이 얼마나 건조한 달인지 알만하다.
나는 중대원을 배치하다 말고 중대원들과 같이 임시 중대본부자리로 산자락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통신병 등 몇 명 안 되는 중대본부 요원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불길은 바람을 타고 산등성이로 치솟아 올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중대본부요원 한명이 따뜻한 봄볕에 마른 풀 위에 드러누워 담배를 피우다 꽁초를 버린 것이 원인이다. 이들 생각은 중대장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신경 쓸 것 없고, 몸은 피곤하고 봄볕은 따듯하겠다, 춘곤이 몰려와 본부요원 모두 누어 잠들어 버린 것이다. 잠들은 바람에 불길에 비고 자던 철모의 철모카바까지 태웠으니 아주 곯아 떨어진 모양이다.
산에 불이나면 여러 사람이 청솔까지로 끄면 되는 정도로 알고 있는 내 상식으로는 이런 산불을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가늠이 서지 않는다. 공연히 소리 지르며 중대원들보고 빨리 불을 끄라고 목청만 돋을 뿐이다.
이 산불이 산봉우리로 계속 타서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옆 산 등허리로 날아가 또 산불이 일어난다. 봉우리로 치솟는 불은 바람에 육상 선부보다 빠르게 바람을 타고 봉우리로 치닫는다. 산에서 바람이 불면 바다에서 같이 한쪽으로 부는 줄만 알았더니 산바람은 골짜기를 타고 휘몰아쳐 바람이 지그재그로 계곡을 타고 부는데 이 바람이 불똥을 날라 여기저기 불똥이 튄다. 회오리바람까지 생겨 이 산불에 가치면 사람뿐 아니라 산짐승도 여지없이 불고기가 된다. 산불이 맹렬할 땐 불을 끄는 것은 둘째고 열기가 뜨거워 10m 앞에도 못 간다.
산 정상을 보니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 수십 미터나 되어 활화산 같다. 거대한 불꽃더미가 지나가고 나서 연기만 나는 등성이를 보니 커다란 소나무 가지가 잘렸는데 광솔에 불이 붙듯 서 있는 소나무 가지에서 불이 붙어 타고 있다. 허공의 나뭇가지에서 불이 붙어 타고 있는 것은 보니 예술 사진인 것 같다.
일말의 광풍이 지나갔는데 산 아랫마을에서 종소리가 나더니 동네사람들이 몰려서 올라오는데 불을 끈다고 빗자루를 든 것이 아니라 삽 괭이 낫 등 불 끄는 것과는 생소한 도구들을 들고 온다. 그 시절 소방헬기는 있다는 개념도 없는 시기라 산불진화는 산불이 더 번지지 않게 옆의 산으로 가서 나무를 베고 길을 넓혀 불이 더 진행하지 않게 방재 도로를 내는 것이다. 삽으로 흙을 덮어 불을 끄고 불길을 다 잡았나 하고 이동하면 불을 끈 곳에서 불씨가 살아나 다시 불꽃이 오를 땐 미칠 노릇이다.
간첩작전은 둘째고 불 끄다 하루가 갔다. 다음날이 되어 정신을 차리고 대대에서 주어진 좌표대로 써치를 하는데 ‘중대장님 저기 보세요! 하여 보니 멀리 봉우리에서 연기가 난다. 어떤 놈이 또 실수를 했구나 하고 우리부대와는 멀리 떨어져 안심하고 부대를 진행시켰다. 조금 이동하니 이산 저산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 자라보고 놀란 놈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어제 하도 혼이 난지라 작전 좌표대로 가지 않고 옆으로 우회해서 부대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작전 좌표하고 우리하고는 별개로 놀기 시작했다.
50년대 60년대 우리나라는 하도 배가 고파 보릿고개가 국민의 목을 조리는 시기 였다. 6.25사변 후에는 땔감도 없어 산에 가서 낙엽을 긁어 밥해 먹었기 때문에 산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 경주 뒷산은 골자기에 낙엽이 무릎까지 찬다. 그러니 마른 낙엽에 불이 붙어 바람을 타니 얼마나 신이 나서 불이 타겠는가. 작전 좌표대로 하루 종일 부대를 끌고 다닌 구역이 삼성 이병철 산이란다. 산에서 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 국민학교 같은 건물이 있다. 지도상에 아무리 살펴도 학교가 없어 의아해 했는데 내려가 보니 대형 묘목장이다. 이 묘목을 키워 용인 자연농원에다 심어 대 농장을 만들은 것이 지금의 에버랜드 전신이다.
부대를 끌고 앞으로 가다보면 또 연기가 나서 산불구이가 되지 않으려고 부대를 계곡 개천으로 이동시켰다. 통신병이 대대에서 연락 왔다고 현 위치 보고하라고 하면 작명 좌표 비슷한 곳을 찍어 주고 보고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니 숙영지로 귀영을 할 시간이다. 현재 좌표와 숙영지 좌표를 보니 중간에 대대본부가 있다. 나 잘못했소, 하고 대대본부 앞을 지나 갈수 없지 않은가. 대대본부 숙영지를 보며 옆에 있는 산길로 우회하는데 옆 중대장인 안대위가 있다. 내가 ‘너 왜 여기 있어? 하니 ’넌 여기 왜 왔어? 하고 반문한다. 동기생인 안대위도 부대를 끌고 허위보고 하며 하루 종일 쏘다닌 것이 분명하다.
대간첩작전에 효과 없이 전 부대가 철군하려는 마지막 날 같은 대대 동기생인 김 대위가 독립가옥 앞 짚더미에 숨어 있는 두 명의 무장 간첩을 사살하여 부대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