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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 30일간의 아름다운 추억
D-9 : 티티카카 호수의 우로스 섬 탐방
오늘은 남미 페루에서 9일째인 2017. 3. 21(화)입니다.
소중한 분들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 그리고 소중한 이야기를 잊어 버리지 않고 오래 오래 간직하고자, 여기 일기장으로 기술해 봅니다. 저의 일기장 내용은 개인적인 감정과 주관적인 느낌을 기술하였기에 아마 여러분들과 견해가 다른 점도 많기 때문에 분명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함께 했던 분들께 저의 이 소감문이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3월 21일 農心居士 올림
어제의 견학내용 요약
♣ 어제(2017. 3. 20)는 오얀타이탐보의 새벽 시장 구경도 하고 아침식사를 마치곤 잉카 제국의 마지막 항전지인 오얀타이탐보 유적지를 견학한 후, 곧바로 지난 사흘전인 3월 17일(금) 페루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던 옛 잉카시대의 수도였던 그 쿠스코에 다시금 재입성하고자 이번에는 대절한 전용 관광버스로 달려갔습니다.
♣ 오얀타이에서 쿠스코로 향하는 동안 계곡의 절벽에 설치된 세계유일의 ‘허니문 호텔’의 진기한 모습도 볼 수 있었고 또 쿠스코가 가까워 질수록 점차 해발 고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산 언덕 사그라도의 대평원에 조성된 야생화 꽃밭의 전경은 정말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이동 중에 들린 알파카와 양털 등을 천연염색하여 옷감을 짜는 가내공장을 견학할 수 있었던 것도 여행에 큰 소득이었습니다.
♣ 오오엔타이탐보에서 쿠수코까지이 거리는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우리 일해은 전세낸 관광버스로 자유롭게 여행을 하였기에 머물고 싶은 곳에는 수차례나 정차를 거듭했기에 무려 3시간이 소요된 오후 2시쯤에 쿠스코에 도착하였습니다. 사흘전 이곳 쿠스코에 도착했을시 고소증에 적응하려고 가볍게 아르마스 광장 일대만 둘러 보았었는데, 오후 3시 늦은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여행짐을 모두 차량으로 숙소로 보낸후 편안한 차림으로 잉카의 태양신전 코리칸차를 허물고 그 위에 세운 산토 도밍고 성당을 비롯하여 잉카인들이 의식을 올렸던 비라코차 신전 위에 설립한 대성당 그리고 또 잉카 11대와 우아이나 카팍이 살았던 궁전에 세운 라콤 파니아 헤수스 성당도 둘러 보았습니다.
♣ 스페인 침략자들은 남미를 식민지화 하면서 어쩌면 일제가 우리를 식민지화 할 때와 똑 같은 그런 문화 말살정책을 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정복자들은 태양의 신을 믿는 잉카인들의 무지를 일깨우기 우해 성전 건립하고 하느님을 믿으라는 뜻이었지만, 정작 하느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떻든 그 외에도 아르마스 광장 중앙에 우뚝 세워진 잉카제국의 9대 파차쿠티(Pachacuti / ?~1471년)왕의 동상을 비롯한 인근 시내중심지인 로레토 알리(Loreto Alley)에 있는 12각의 돌담 등 잉카제국 시대의 유물들의 흔적을 둘러 보곤 야심한 밤 숙소로 귀가했지요.
♣ 지난 3월 17일(금). 오전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곳 쿠스코에 온이래 고소증에 적응하면서 그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숙소를 나와 잉카시대의 유적지인 ‘삭사이와만, 피삭, 우르밤바, 살리나스 염점, 모라이 농업연구소,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마추픽추, 오얀타이탐보 등 쿠스코 인근 도시의 잉카유적지를 사흘간 동안 둘러보고 쿠스코로 재입성한 했던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려고 강행군을 했기에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D-9 : 티티카카 호수의 우로스 섬 탐방
오늘의 주요 일정표
푸노를 가기 위해 시내의 크루즈 관광 버스 정유장으로 이동
♣ 연일 계속된 강행군의 여행으로 몸이 많이 피곤했지만, 행여 차량을 놓칠세라 긴장을 한 탓인지? 아님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했던 탓인지? 아침 6시에 기상해도 충분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덧 습관이 되어서 바보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5시에 기상을 했습니다. 특히 오늘은 장장 7~8시간 걸리는 원거리인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볼리비아와 접경지대인 푸노로 向하는 크루즈 침대버스를 Am 8시에 타야만 하기에 평소보다 더 서둘렀습니다.
♣ Am 7시 40분, 숙소인 Hosteria de Antu를 나섰습니다. 언덕에 위치한 숙소 돌계단 아래에 대기시켜 놓은 승합차에 짐을 싣고 우리일행은 2대의 승합차에 각기 분승해 Am 7시 40분, 푸노행 크루즈 침대차 버스가 있는 쿠스코 시내의 버스 정유장으로 이동했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승차할 승합차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멋진 여자 교통순경이 러시아워 시간대의 출근 차량들을 교통 정리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늘신한 몸매를 지닌 그녀의 제복도 아주 멋졌습니다. 아마도 지급된 제복을 자신의 몸매에 맞게 다시 재단을 했나봅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대다수의 남녀 교통순경의 복장이 그저 펑퍼짐하고 또 풍성했는데 비해 그녀의 제복은 몸매를 의식한 탓인지? 몸에 착 달라 붙었습니다. 검은 말장화에 하얀 헬멧, 검은색 상의 자켓 그리고 몸에 찰싹 붙어 몸매가 그대로 나타난 갈색바지로 인해 그녀의 몸매는 정말 정말 섹시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유럽형 얼굴인데, 완전히 남미 최고의 미녀였습니다. 우리는 버스에 승차해서도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창 밖을 계속 응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페루 쿠스코를 여행한 모든 관광객들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과 똑 같았을 것입니다. 그 여자 교통순경은 메스티소(토착민과 유럽인 혼열)인 것이 분명했습니다.
♣ 페루의 인종구성은 토착민 45%, 메스티소(토착민과 유럽인 혼혈) 37%, 백인 15%, 나머지 3%는 흑인,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등이 있는데 이중 일본계 페루인은 약 8만 명 정도이고 한국계 페루인도 약 920명 정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남미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토착민이 적은데 비해 페루와 볼리비아는 원주민 토착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지요.
♣ 그런데 아뿔싸~! 우리 숙소에서 푸노로 가는 ‘크루즈 델 수르 버스 정류장까지는 차량으로 1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우리를 태운 승합차 운전수가 그만 실수로 일반 시외버스 터미널에 우릴 안내하고 만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각기 분승한 2대의 승합차 끼리도 서로 길이 엇깔린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거대한 ‘파차쿠티의 동상’이 서있는 Ovalo de Pachacutuc(오발로 데 빠차꾸떽) 주변을 수바퀴나 뺑글 뺑글 돌다가 겨우 ‘크루즈 델 스르 버스 정유장’을 찾았습니다. 푸노로 출발하는 버스는 Am8시였는데, 정작 우리는 20분이 늦은 8시 20분에 크루즈 버스 정유장에 도착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버스나 비행기가 출발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손님이 있건 없건 간에 그냥 출발하는데… 다행히 중도에 우리 인솔팀장이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었기에 버스는 대기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크루즈 침대버스의 주 고객이 우리 일행이므로 버스는 절대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카~아~! 다행이었습니다.
남미 최고의 바다 같은 호수인 티티카카가 있는 푸노를 향하여…
♣ 우여곡절 끝에 하여간 우리는 2층 형의 크루즈 침대버스 탑승했고 Am 8시 35분 쿠스코 시내의 복잡한 출근길을 벗어나 남으로 남으로 향했습니다. 날씨도 화창했고 창밖에 펼쳐진 주변 경관은 오얀타이탐보에서 쿠스코로 이동할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 창밖의 풍경은 특히 페루 리마 등 해안지대의 모래사막 벌판과는 전혀 딴판으로 주변에는 비교적 높은 산도 많았고 계곡에 물이 흘러 넘쳤으며 우거진 숲도 있었고, 광활한 평야에는 농작물도 많이 재배하는 등 페루의 곡창지대라고 느껴졌습니다. 간간히 리마와 양떼 또 알파카를 기르는 목장지대도 눈에 띄었습니다. 구릉지에는 야생의 리마가 뛰어다니는 전경은 한폭의 그림 같았지요.
♣ 그런데 우리 일행의 대부분은 푹신한 침대버스에 누어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3월 13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약 30여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한 이래 시차적응도 채 하기전에 그 다음날부터 320km의 거리의 와카치나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사막 투어를 했고, 이어 장거리의 나스카 라인의 경비행기 탐방 그리고 다시 야심한 밤 와카치나로 되돌아와 파라가스의 해상공원을 방문했고 이어 페루의 수도 리마로 돌아왔고 다음날 리마 공항에서 쿠스코행 비행기로 이동 후, 사흘간 쿠스코 일대의 잉카시대의 임카벨리 유적지인 삭사이와만 등 주변일대를 견학하고 연이어 피삭, 천연 염전 살리나스, 잉카의 계단식 밭 모라이를 견학 후, 야간 열차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이동했으며, 익일 새벽부터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 6시간 산행 후, 또다시 오얀타이로 이동하였고 그곳에서 오얀타이탐보 유적지를 탐방 한 다음 또 대절버스로 쿠스코에 재입성하는 등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지요. 특히 쿠스코의 고산지대에서의 산소 부족에 따른 고산병 증세로 인하여 대다수 동료들이 육체적으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푸노行 크루즈 2층 침대버스는 자연히 누적된 피로를 푸는 침실역할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그러나 상기 농심거사는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차창 밖에 펼쳐진 그 아름다운 전경을 절대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초가을의 맑고 드높은 하늘과 주변경관에 현혹된 탓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남미 페루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늘어났기에 쿠스코에서 푸노를 향하는 고속도로로 잘 발달된 탓인지 관광객이 탄 2층 침대버스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길가에는 관광객을 위한 장터가 열리는 곳도 있어 우리 버스도 중도에서 몇차례 머물기도 했지요.
♣ 쿠스코에서 푸노로 향하는 고속도로 주변에는 간간히 농촌마을이 자주보였습니다. Am 10시 도로 이정표에 표시된 ‘NOCOLA마을’을 지났고 곧 ‘CCOLCCA의 이정표’가 있는 마을도 통과했습니다. 고속도로는 마치 우리가 전세를 얻은 것 처럼 한가했습니다. 차창을 통해 바라본 비록 허름한 농가주택이었지만 담벼락에 그려진 글씨와 그림들은 예술품이었습니다. 여러번 태항산과 황산, 장가계와 원가계 등 중국여행을 할 때 보았던 그곳의 큰 건물과 담벼락에 붉은색으로 획일적으로 쓰여진 선전선동 구호 글씨와는 전혀 다른 것을 느꼈습니다. 페루 농가주택 담벼락의 글씨는 하나의 예술 그 자체였으니깐요.
♣ 드넓은 벌판은 방목하는 양떼와 소떼 그리고 리마와 알파가 풀을 뜯는풍경이 자주 띄었고,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페루의 수도 리마 근처의 모래벌판과는 전혀 다른 초지가 있고 물이 흐르는 작은 강과 저수지가 많은 것이 비교가 되었습니다. 지형적인 특성에 따라 축산을 많이 하는 탓으로 목축업 전용의 마을이 형성된 것 같았는데, 제법 규모가 큰 학교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역시 남미는 아무래도 농구나 배구 같은 종목보다는 넓은 들판이 많아서인지 축구를 하기 딱 좋은 자연환경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Am 12시, ‘리마 그림이 그려진 대형 농장의 간판’이 보였습니다. 간판의 그림 때문에 리마 농장임을 알 수 있었지요. 그리고 이어 도로변에는 넓은 공터에 돌로 쌓은 아주 멋진 휴게소가 보였습니다만 그곳에 머무르는 관광객도 없고 또 시설이 훌륭했는데도 불구하고 장사꾼도 전혀 없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아마도 이곳은 한 여름철 피서객들을 위한 특별한 휴게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잉카시대의 유적지와 같은 모습이었는데… 분명 넓은 공터와 주차장도 있고 건물들이 상점형태였기에 휴게소로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혹시 그냥 더위를 피하고자 만든 막사였을까요? 그건 그렇고 쿠스코에서 푸노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한가했는데도 고속도로순찰차가 교통위반 차량을 검문하는 것이 보여 신기했지요. 그리고 고속도로 옆에는 잘 발달된 철도가 있었는데 이 철도는 푸노주의 JULIACA(줄리아카)에서 발착하여 쿠스코까지 이동하는 열차의 철로입니다.
♣ 끝없이 펼쳐진 광할한 농경지에는 소와 양떼들이 많았는데, 양을 치는 목동은 주로 중년의 페루전통 복장에 등짐을 지고 있는 아낙네들인 것이 이상했습니다. 멀리 종합실내체육관 같은 건물이 보였고 그 앞에는 거대한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었지요. 헌데 그 공동묘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마을의 유명한 집안에 초상이 생긴 것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상가집 문상객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리고 마을 근처에 큰 저수지와 초지가 많은 것으로 보아 목축업이 발달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지닌 그런 마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Pm 13시쯔음 작은 강가의 멋진 철교를 보았고 이어 고속도로 간이 톨게이트를 나왔습니다. 톨게이트 앞에는 이곳 톨게이트를 담당하는 직원의 숙소가 있었는데, 아마도 고정의 직원이 이곳에서 먹고 자고하며 말뚝근무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곧 또다시 큰 마을이 보였습니다. 도로변에는 큰 소(牛)의 동상이 서있는 것으로 보아 이 마을은 소의 사육장이 많은가 봅니다. 그런데 소(牛)의 동상 색깔을 하얀색으로 했을까? 궁금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소는 갈색인데…? 아마도 눈에 잘 띄라고 흰색 동상을 세웠을 것 같았습니다. 한편 도로변의 드넓은 광야에는 농지도 많았지만, 그냥 내버려둔 땅에 핀 각양각색으로 자태를 뽐내는 야생화들과 초가을의 파란 하늘에 흰구름도 함께 조화를 이루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조금 지루함을 느끼는 찰라 곧 멀리 마을이 보였습니다. 휴~ 좀 쉬었으면 하는데…
♣ 장시간 논스톱으로 달렸기에 좀 쉬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을 알기나 하듯. Pm 13시 25분, 우리가 탄 버스는 제법 큰 마을의 정류장에 잠시 정차했습니다. 이 정류장의 휴게소 앞에는 마을 촌노 몇분이 햇볕이 따사로운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여행객은 대형 버스 몇대에서 내린 승객들이 전부여서 비교적 한가했습니다.
♣ 정류소 휴게소에서 약 15분간 정차하는 등안 우리는 한적한 휴게소 안에서 쇼핑을 했는데, 진열된 상품은 대다수가 의류였습니다. 알파카털로 만든 옷과 모자가 대부분이었으나 아주 현대화 시킨 폼나는 그리고 예술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아마도 이곳 버스 정류소의 휴게소는 관광객뿐만이 아니라 이곳 마을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동 상점일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관광객들에게 필요한 상품도 있었지만 대부분 여러 잡화류와 생필품들도 많은 것으로 보아 마을 주민들을 위한 공동편의점이란 느낌이 들었으니깐요. 비록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시골 농촌에 이런 현대화된 깨끗한 상점이 있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 마을은 도로변에 상점들이 있었으나 한적했습니다만, 큰 성당도 있고 또 마을 어귀에는 공동묘지도 있는 것으로 아주 오랜 전통을 지닌 잉카시대부터 있었던 마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의 뒷편에 큰 암석 지대에는 분명 잉카 유적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 마을을 지나 Juliaca(푸노로 가는 길목의 큰 도시)로 가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는데 그 이정표 근처엔 ‘GRACLAS POR SU VISITA’라는 큰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방문을 환영하는 프랭카드인 것 같았는데, 이를 통해 이 마을 이름이 ‘Graclas’인 것 같았습니다.
♣ Pm 2시 10분, 이번에도 큰 마을에 들어서기 직전 커다란 공동묘지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곳의 공동묘지는 마치 작은 모형건축물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매장이라기 보다는 납골당 같은데, 그러나 잉카인들 후손인 이곳의 장례문화는 납골이 아닐 것 같은데… 처음 페루의 리마에 도착해 프란체스코 성당을 견학했을 때 그 성당의 지하에 있는 수천명의 시신들의 해골과 뼈들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라 매장 문화를 선호하는 국민의식이 높은 나라라고 생각했었지요. 특히 인구의 90%정도가 가톨릭신자이므로 부활신앙을 믿는 이들이기에 화장보다는 매장을 하는 풍습이 많을 것 같다고 나름대로 판단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페루의 장례행사는 우리가 배울 점이 참 많았습니다. 온 가족은 물론 망자와 교분이 있는 사람들도 평소에 자주 자주 망자의 묘지를 찾는 다고 합니다. 장례식 행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에 참석하는 것은 그만큼 믿음과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다만 장례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복장이 마치 소풍나온 사람들처럼 알록달록한 자유복장인 것은 이곳의 환경 탓으로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어떻든 달리는 버스 차창을 통해 또한번 그들의 장례행사인지? 추모 1주년 행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망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참 착한 사마리아인 같은 페루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차창 밖에서 고속도로와 평행선으로 길게 뻗은 철로만 보았는데, 드디어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열차를 발견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인 푸노 인근의 줄리아카(Juliaca)시에서 출발하여 쿠스코로 向하는 해발 3,700m 이상의 고산지대를 달리는 세계 유일의 화물열차였습니다.
♣ 2층 침대버스에 탄 우리 일행은 깊은 단잠에 빠졌지만, 상기인은 고속도로 차창 밖에 펼쳐진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떼를 비롯한 들판에 전개된 형형색색의 야생화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출국시 딸아이가 빌려준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가 한계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수없이 셔터를 눌렀습니다. 도로변에는 위 사진에서 보듯 십자가가 달린 강아지 집만한 크기의 모형물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이것은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당해 숨진 분들의 영혼을 추모하는 표식이었습니다. 우나라 같으면 ‘교통사고 사망지점’이라고 하는 팻말이 고작인데, 이곳에는 천주교 신자가 대다수인 나라답게 사고지점에 이런 추모모형을 세워서 애도하면서 경각심을 심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도 차창 밖에서나마 잠시 묵상기도를 드리도록 하기 위한 것 같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또다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
♣ 넓은 들판에는 의외로 작은 호수와 강이 흐르는 것이 많았는데, 멀리 설산의 눈들이 녹아 이곳 평야로 흐르고 있기에 목축업을 하는 목장들이 많아졌고 또 농사를 짓는 농지도 조성된 것 같았습니다. 이에 따라 자연히 마을이 형성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불과 100m~200m도 안되는 전봇대 설치정도의 거리 간격인데도 불구하고 웬넘의 주유소가 그렇게도 많은지? 그저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는 지금은 한가로운 계절이지만 한여름 관광시즌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이 도로를 달리고 있고 또 인구 수십만명이 거주하는 산업기지인 JULIACA를 비롯한 거대한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을 운송하는 주 도로이기에 주유소가 쫌쫌하게 많은 것 같았습니다. 또한 볼리비아와의 국경지역으로 무역하는 통로이기도 한 탓이겠지요.
♣ 오늘 아침 8시 30분경 쿠스코를 떠난지 6시간만인 오후 Pm 2시 30분쯔음 지금까지 거친 농촌마을과 게임이 안되는 아주 큰 도시를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곳은 줄리아카(Juliaca)市였습니다. 그동안 푸노로 향하는 고속도로 차창 밖으로 농촌마을의 단층건물만 보아왔는데, 제법 큰 빌딩과 상점도 보였고, 길거리를 이동하는 많은 사람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줄리아카(스페인어 : Juliaca)는 페루 남부 푸노 지방에 있는 산로만의 주도입니다. 안데스 산맥 동쪽, 티티카카 호수 근처의 해발 3,825m에 위치하며 모직물 및 양모 거래의 중심지이지요. 시내는 잉카 만코 카팩 국제공항과 고지대를 달리는 페루 남부철도가 발착하는 역이 있어 교통 거점이 되고 있으며, 수도 리마와 주도 푸노 및 린주의 주청 소재지인 쿠스코와 이웃 나라 볼리비아와 연결되어 있는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 바람이 잦은 코야오 고원에 위치했기 때문에, ‘바람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바람이 잦다고 합니다. ‘양말도시’ 또는 ‘자수도시’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이것은 줄리아카가 양말, 스웨터 등의 수공예품의 생산 및 유통을 많이하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도로에는 리어커 상인,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도 엄청 많은 것으로 보아 관광지도 많을 것 같았습니다. 어떻든 푸노주에서 이루어진 교역량의 41%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등 금융과 물류와 서비스 교역의 중심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를 태운 2층 크루즈 침대버스는 그냥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목적지인 푸노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줄리아카 시내를 돌아서 외곽의 도로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시내를 관통은 인터체인지 역할을 하는가 봅니다. 그 덕분에 줄리아카 시내의 상업현장의 전경과 더불어 무질서한 재개발중인 낡은 건물, 철도 종착지 역전주변의 쓰레기를 쌓아 놓은 지저분한 풍경과 그런가운데도 도심에 설치된 녹지공원조성이 참 특이했습니다.
♣ 그렇지만 남루한 복장으로 일하는 노동현장 모습을 보노라니 이곳은 마치 우리나라 70년대의 영등포와 구로공단 주변의 전경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철로변에는 짐수레꾼들이 빈수례를 끌고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비록 도심환경이 열악하였지만, 그런 산업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노무자들의 생동감 있는 얼굴의 모습에서 장차 더 큰 산업도시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도시가 될 것이란 감이 들었습니다. 도심을 막 벗어나자 마자 끝없는 넓은 벌판을 노란 유채꽃이 펼쳐진 전경을 보았는데,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 그리고 시내 가까운 곳에 흐르는 큰 강에서는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는 모습이 보였습니다.지금까지 쿠수코에서 이곳 까지 달려오면서 넓은 벌판에는 강과 호수가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강물은 아마존의 발원지 ‘빌까노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해발 4,335m에 위치한 곳에서 시작된 물은 불리비아로도 흐르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접견지인 ‘이과수’와 그리고 아마존 밀림지대까지도 흘러가는 물줄기 일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우리가 향하고 있는 푸노의 티티카카호수로도 흘러 가는 물일 것입니다.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곳은 해발 고도가 4,000여 m에 가까운 곳이니깐 말입니다.
♣ 시간상으로도 그렇지만 이제 줄리아카 시내를 벗어난 것으로 보아 우리 목적지인 푸노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버스는 잘 발달된 도로를 타고 벌판과 구릉지를 지나 힘차게 달렸습니다. 차창 밖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이름모를 들꽃들과 노란 유채꽃밭의 전경은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Pm 3시 15분, 도로변 이정표에는 PUNO를 가리키는 표식이 보였습니다. 언덕은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아주 길었습니다. 아마도 이 언덕이 바로 말로만 들었던 해발 4,300m의 그 유명한 ‘라라고개’인가 봅니다. 그리고 언덕길에는 자동차운전교습소와 멋진 성당 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 Pm 3시 35분, 푸노 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통과 했고, 푸른 바다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바다 같은 넓디 넓은 물결이 넘실대는 그곳은 바다가 아니라 바로 티티카카 호수라는 것이었습니다. 산 언덕에서 내리막 길을 달리면서 티티카카 호수와 푸노 시가지를 내려다 보았는데 그 전경은 정말 환상적이 었습니다.
버스로 360Km를 달렸고 7시간만에 오늘의 목적지 푸노에 도착
♣ 아침 8시 30분경 쿠스코를 터난지 무려 7시간만인 Pm 3시 50분, 우리가 탑승했던 버스가 360km를 주파한 끝에 드디어 푸노시내 입구에 세워진 아주 큰 “푸마 동상’ 앞을 지나서 티티카카 호수 앞 광장에 위치한 푸마시의 정류장에 도착한 것입니다.
♣ 푸노(PUNO)시는 페루 남부 푸노 주, 티티카카 호 서쪽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서 면적은 460.63㎢, 인구 141,064명(2015 추계) 의 해발 3,850m 지점에 있습니다. 이 도시는 1688년 페드로 안토니오 페르난데스 데 카스트로 부왕에 의해 파우카콜라 지방의 주도로 세워졌으며, 당시의 이름은 ‘산 후안 바우티스타 데 푸노’였습니다. 이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2세를 기념하기 위해 ‘산 카를로스 푸노’로 변경되었지요. 푸노에는 당시에 세워진 여러 개의 교회가 지금도 존재하는데, 스페인들의 예배와 현지 토착민들을 개종하기 위해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많은 페루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중심부에는 이곳에도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을 가지고 있지요.
♣ 도심에 인접한 언덕에는 도시를 내려다 보듯이 잉카의 성스러운 세 동물인 콘도르, 퓨마, 뱀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그리고 푸노는 1668년 스페인의 정복 후에 건설된 도시이긴 하지만. 티티카카 호수 주변에는 잉카 시대부터 문명의 번창한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이 호수에는 잉카 제국 창건에 얽힌 전설도 남아 있는데, 우리는 내일쯔음 그 전설이 담겨있는 티티카카호수 내의 태양의 섬을 가게 되므로 이에 대한 것은 내일 이야기에 자세히 기술하고자 합니다.
티티카카 호수의 우로스 섬 탐방
♣ Pm 4시에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는 승합차에 탑승하여 오늘의 목표인 티티카키호의 우로스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이동시간은 불과 5분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안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Lago Titicaca)는 해발 3,850m라고 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호수입니다. 티티카카 호는 안데스 북부 알티플라노 고원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면적 약 57,344㎢의 거대한 분지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있습니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지대에 접하고 있는데, 볼리비아와 접하고 있는 북동부 연안에는 눈 덮인 레알산맥이 있습니다. 이 산맥의 몇몇 봉우리는 높이가 약 6,300m를 넘으며, 안데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속합니다. 이 호수의 면적은 8,300㎢로 우리나라의 충청도 면적과 같은 실로 엄청난 바다 같은 큰 호수입니다. 호수의 너비는 80㎞이며, 북서에서 남동방향으로 192㎞ 뻗어 있습니다. 그리고 호수의 평균 수심은 138~180m이지만, 불리비아 연안 쪽으론 바닥이 급경사를 이루면서 호수 북동부에 있는 소토 섬 근처의 최대 수심은 무려 276m로서 깊은 수심입니다.
♣ 어떻든 티티카카 호수는 남아메리카에서 마라카이보호 다음으로 큰 호수로서 25개 이상의 江이 티티카카 호로 흘러들어 온다고 합니다. Pm 4시 15분, 우리는 약 20여명이 승선할 수 있는 규모의 보트에 승선하여 약 4km에 위치한 우로스 섬으로 향했습니다.
♣ 티티카카 호수 선착장에서 보트에 승선하여 갈대숲을 지나면서 우로스 섬으로 향했습니다. 우로스 섬은 선착장에서 약 4km의 거리였는데 보트로 약 40여분이 소요되었습니다. 관광안내원인 페루 원주민 아저씨는 관광가이드로 오랜 경험 탓으로 깊은 내공이 쌓여 마치 숙달된 훈련소의 조교처럼 마이크를 잡고 영어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도데체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으면 우린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더 깊이 감상할 수 있었는데…
♣ 호수가의 긴 갈대밭을 지나자 마침내 하나의 군락을 이루고 있는 우로스 섬이 나타났습니다. 우로스 섬은 토토라(totora)라는 갈대를 엮어 인위적으로 떠있는 섬을 만든 곳입니다.우로스는 40여개 정도의 떠다니는 인공섬인데,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잉카 원주민인 아르족으로 아마도 조상대대로 이곳에 살았다고 합니다. 토토라라는 갈대숲을 깔아서 만든 섬은 원래 목적이 방어용으로 위험이 닥치면 움직일 수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여러 섬들이 대부분 큰 망루(우리나라 시골 과수원의 원두막 형태 비슷함)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적의 접근이나 침략을 미리 탐지하기 위한 관측소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로스 섬은 페루의 유명한 관광자원이 되어 소득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 호수 주변의 얕은 곳에서 자라고 있는 토토라(totora)라는 갈대를 바닥에 깔아 만든 인공섬이라 발을 디디고 보니 푹신 푹신한 느낌과 함께 오래 서있으면 물기가 발바닥에 스며드는 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갈대가 물에 뜨긴 하지만 많은 갈대를 깔아 인공섬을 만드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 것입니다. 물에 오래 잠기어서 썩은 것은 계속 새로운 갈대로 교체를 시켜야 하기에 번거로울 것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면 무게 때문에 가라앉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들은 그 위에 집을 짓고 돼지도 기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몇마리의 돼지와 오리 등의 가축을 기르고 있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인 Show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떻든 우리 일행은 갈대로 만든 섬 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원주민들의 환영을 받았고, 가이드의 요청에 따른 원주민들이 생활상의 시범 전경을 삥~ 둘러 앉아서 구경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자는 하나도 없고 여자들만 나온 것이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칠순이 넘었다는 할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딸인듯 한 아낙들이었지요.
♣ 현지 원주민들은 이곳을 방문한 우리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섬을 만들고 섬이 떠내려 가지 않도록 지지하며 지속적인 유지보수 작업을 하는지를 작은 모형을 통해 직접 시범을 보여 주어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곳 갈대의 섬은 너덧 채의 집 정도만 들어 설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수백명이 생활할 수 있는 큰 것 까지 다양한 크기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섬 중에는 어린이 유치원과 또 작은 초등학교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갈대로 만든 수십개가 모여서 우로스 섬을 이룬 것입니다. 또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배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티티카카호수에서 자라고 있는 골풀을 이용해서 만든 배인대 이 배의 이름은 ‘발사’ 라고 합니다. 작은 카누에서 30m가 넘는 큰배도 있는데 이들 배는 단단 하기도 하지만 특히 물이 새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우리 일행은 커다란 ‘발사’를 타고 인근의 유치원으로 추정되는 토토라를 쌓아 만든 작은 섬으로 갔습니다.
♣ 이 섬은 아주 작았지만 뜰에는 그네와 미끄럼틀도 만들어 놓았는데, 아이들의 놀이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유치원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어느덧 해가 저믄 오후 5시가 되었던 탓으로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왠지 이것은 그냥 관광객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배를 타면 30여분 이내에 가까운 푸노시에 갈 수 있는데, 궂이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아이들을 맡긴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관광객의 방문이 주 수입원이므로 잠깐 잠깐 탁아소 개념으로 맡길 수는 있을 것으로 추정되긴 했지만…
♣ 우로스 섬의 원주민들의 주 수입원은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판매하고 또 섬에 오를 때마다 이용하는 기본 방문비와 뱃삯으로 생계를 유지 하는 것이 오늘의 실정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자체적으로 물고기도 잡고 엽총으로 호수가로 날아오는 철새을 잡기도 한다지만, 현대식 보트를 타고 육지인 푸노까지 금방 달려가 생필품을 얼마든지 구입해 올 수 있으니깐요. 위 요도는 우로스 섬에서 관광가이드가 프랭카드 형태로 만든 것을 펼쳐 놓고 설명하던 우로수 섬의 브리핑 차트입니다. 이곳 우로스 원주민들은 호수에서 잡히는 송어과의 트루차(Trucha)라는 물고기와 ‘까라치’라는 물고기를 잡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물고기 외에 이 호수에는 아주 큰 황소개구리가 서식한다고 합니다. 그외 관광가이드가 영어와 몸짓으로 열을 내어 설명하는데 도저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우로스 섬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는 페루 남자 외에는 남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아녀자들만 있어서 무척 의아했기에 가이드를 통해 아낙네들의 ‘허스번드(남편)’는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었더니만, 한 아낙네 왈(曰) ‘고기 잡으러 갔다와 피곤해서 지금 골방에서 자고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외 아낙네는 일터에서 안돌아 왔다고 하는데, 왠지 의아스럽기만 했습니다. 우리 일행이 우로스 섬의 몇군데 마을만 둘러 보는데도 시간이 맣이 흘러 어느덧 일몰 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어섬의 어느 아낙은 자신이 딸아이를 보트에 태워 섬을 빠져 나가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녀의 거주지는 뭍가인 푸노일 것만 같았습니다.
♣ Pm 5시 30분, 서서히 일몰이 지면서 호수가는 금방 어두워지기 시작했기에 우리는 우로스 섬을 떠나는 보트에 승선했습니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푸노의 야경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 없었습니다. 티티카카 호수는 그냥 망망대해인 바다와 같았습니다. 우리가 탄 배는 전속력으로 물을 가드며 달렸기에 약 30분 후에 Pm 6시에 우리는 푸노의 선착장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 선착장에 대기중인 승합차에 승차했고 우리의 숙소인 푸노 시내의 Sol Plaza Hotel에 저녁 6시 20분에 도착했으나 Room으로 들어가지 않고 곧 바로 식당으로 직행했습니다. 우로수 섬 탐방을 끝내고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허기를 느꼈기에 때문이지요. 우리가 묵는 푸노의 Sol Plaza Hotel은 지금까지 숙박했던 호텔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깨꼿했습니다. 호텔의 실내도 아주 고급스러웠지요. 그러고 보니 그간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대다수가 호텔보다 한수 아래인 ‘Hostal’이 었기에 더 비교가 되었나 봅니다. 호텔의 식사도 좀더 고급스러웠고 특히 나비넥타이를 맨 점잖은 지배인이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모습도 맘달랐습니다
♣ 저녁 만찬을 즐긴 후 우리 일행은 야심한 밤인 Pm 8시경, 피로한 줄도 모르고 잠시 시내 관광을 나왔습니다. 인구 14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큰 관광도시라서 기념품과 옷가게 등도 비교적 많았습니다. 추운 코야오 고원지대, 티티아카 호 서쪽 호숫가 해발 3,850m 지점에 위치한 푸노는 1668년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에게 경의를 표해 ‘산 카를로스 데 푸노’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으며, 지금도 교회와 대성당(1754) 등에서 식민지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 페루 안데스 산맥 남부의 상업 및 통신 중심지이고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티티카카 호를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증기선으로 볼리비아의 과키와 연결되었고 또 육로로는 볼리비아의 라파스까지 연결 되어 있습니다. 한편 쿠스코와 아레키파에서 시작하여 줄리아카에서 합쳐지는 철도의 종점지인 이곳은 도로와 항공편도 이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편리한 교통으로 인해 최근 세계각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남미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으로 인해 어느덧 노년이 된 우리 일행들 까지도 미지의 세계가 궁금해 이곳을 방문하기에 이르렀지요. 이곳 푸노시내에도 페루의 다른 도시처럼 ‘아르마스 광장’이 있었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대성당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간이라서 아르마스 광장 앞에서 청춘 남녀 젊은이들이 춤을 추는 모습만을 관람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오늘 아침 쿠스코를 출발하여 해발 4,000여 m의 고산지대를 버스로 장장 7시간을 달려 이곳 푸노까지 달려왔고 또 약 2시간 동안 우로스 섬을 탐방했기에 피로가 누적된 탓으로 숙소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 몹시 아쉬웠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불리비아의 코파카바나로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티티카카 호수의 잉카제국의 신화 탄생지인 태양의 섬 등을 탐방 하기에 체력을 아껴야만 했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 –
내일의 일정표
첫댓글 8월에 이처럼 많은 비가 내린 적이 있었는지 헤아려 보지만 덕분에 폭염이 사라져 좋습니다.
지나갔던 남미의 추억이 여행기에 적혀 있기에 다시 그때의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라라의 언덕을 넘으며 지나쳤던 광활한 페루의 정경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버스 맨 앞에 앉아 그 풍경에 취했던 기분이 다시 살아나구요.
종군 기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여행기에서 기록의 면밀함과 함께 거사님의 품위가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