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거주하는 샤갈은 한 보헤미안 동료는 샤갈을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 애칭은 어떤 관점에서 이 예술가가 후일 비평가나 미술사가들로부터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를 함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화가-시인으로서의 샤갈의 정체는 앙드레 브르동이 그를 현대 회화에 "변형"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조형 예술의 위대한 천재로 규정한 점에서 선명하게 드러 난다.
문화적이거나 종교적인 상지과 민속적인 이야기에 애정을 지닌 샤갈은 이러한 주제들
을
회화에 끌어들였는데 이는 전통적인 주제를 거부하는 가장 급진적인 전위 미술가
들에
의해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시적인 정신과 문화적인 해석이란 두 특징은 그 어느 것도 샤갈 작품의
완전한 의미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비평가들은 때때로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가벼운 감상이 깃들어 있고, 작품의 질이
고르지 않으며 모티프가 지나치게 되풀이 된다고 비판하지만, 특히 걸작들은 현대의
작품들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시각적 은유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 한다.
파블로 피카소 - 자화상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은 우수 어린 청색이 지배하고 있어 흔히 청색 시대라 불린다.
1901년부터 1905년의 시기이다. 그러나 그 시기의 청색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은 아직 없다.
1902년 가을을 파리에서 보낸 피카소는 고향인 바르셀로나로 다시 돌아가 1904년
봄까지 머물렀다. 그의 청색 작품은 그때 집중적으로 그렸다. 주제로는 불구자나
거지를 다룬 것이 많은데, 거리에 나앉은 불쌍한 늙은 기타리스트도 그 중하나이다.
고갱 - 자화상
고갱은 반 고흐와 세잔느 못지 않게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자화상은 다른 그림들에 비해 화가가 처해 있던 상황과 당시의 정신적 갈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896년 고갱은 서구 사회를 떠나 타이티섬에 정착한다.
그때는 파리에서 인정받지 못한 저절감과 모멸감으로 이미 몸과 마음에 병들었고,
가난에 시달려서 예술적 창조력마저 위협을 받고 있었다. 고갱의 "자화상"은 깊은
좌절에 빠진 우울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거인의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왼쪽으로 떨군 얼굴과 지그시 감긴 두 눈에서는 좌절과 분노가 동시에 전해져 오며,
배경의 황토색과 녹색옷은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고흐
고흐, 하면 자화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의 돈이 궁한 화가들은 모델을
구하기 힘들어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흐의 자화상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도구로 보인다.
자화상을 그리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고, 그때마다 자신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했을 듯하다. 정신적 발작이 심했던 만년의 자화상에서도 초췌한 외양과는
달리 눈빛만은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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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파리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파리는 그의 그림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대화를 나눌 상대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이 무렵 그는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적으로 혐오스러운 화가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남 프랑스의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
그리고 그는 결국 1년 6개월 만에 파리를 떠나 남부 프랑스의 아를로 향했다.
아를에 머무는 약 15개월 동안 그는 정열적으로 작품을 생산해 냈다.
이 기간 동안에만 그가 그려낸 작품이 무려 백구십 점에 이른다.
또한 이 무렵은 그의 독자적 양식이 확립된 시기로, 작품의 양뿐만 아니라 질적
변화에서도 중요한 시기였다. 이제 그의 작품에서 색채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된다.
편지를 통해서도 그는 자신의 작품의 특징을 분명히 밝혀보였다.
"나는 내 눈앞에 있는 것을 똑같이 재현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색채를 주관적으로 사용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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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 방송된 [고흐, 돈을 만나다] 수요기획에서 ...
요 스미트/아트 언리미티드
반고흐 이팩트는 있다. 살아서의 고흐는 전혀 돈을 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의 효과를 본다면 정말 엄청나다. 그 효과는 그야말로 수십억
유로(수조 원)에 이른다..굉장하다.
고흐 자신은 죽은뒤 그가 남긴 이모든것이 이토록 커다란 부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정작 고흐의 삶은 부유함과 아무 상관 없었다.
그의 인생은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을 가득한 것이었다.
강렬한 적색과 황색에서 무서운 광기가 느껴진다...
반고흐 자신의 귀를 자른 뒤 곧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2년 뒤인 1890년 7월 27일, 그는 들에 나가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
뭉크
강렬한 표현력을 지닌 화풍추구한 그의 대표작 [절규]는 공포의 이미지를 요괴의
도용없이 시각화함을 볼 수 있다. 하늘과 대기가 거대한 공포의 반향판으로 되어
절규의 메아리를 그림의 구석구석까지 실어가는 듯하다. 노르웨이 상징주의 화가인
뭉크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불안, 공포 등 정신적 동요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고호보다 심도있게 사물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탐구하였으며 불우하고 추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연민을 길게 파도치는 선과 강한 색면으로 표현하였다.
▶ 클림트는 사진으로 ...
Gustav Klimt"s Studio 클림트 사후에 촬영한 사진
클림트와 그의 연인
그의 일생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많은 여성들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의 몰락은 여자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성학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지위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그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도록 예술적인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은 여성
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머니와 누이의 만성적인 정신질환과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은 그에게 있어서 모성과
사랑 그리고 가족애에 대한 절실한 갈망을 낳게했다.
특히 가족의 죽음은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색채와 주제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가져
왔으며,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영원히 반복될 삶에 대해서 좀더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된다.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의 성숙하지 못한 애정관도
불우했던 어린시절과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다. 2명이나 되는 그의 아이를 낳았고
한때는 적극적인 구애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결코 결혼할 수 없었던 여인 미치
침머만과 사회적으로 폭넓은 경제활동을 하면서 그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사업적인
동반자로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 그의 여인이었던 에밀 플로게 그녀 역시 결혼
하지 않은 대상이었다.
말년에 그는 손가락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고 작품활동보다는 의상디자이너로서 활동
하가다 자신의 욕실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완성되지 않은 많은 작품과 그가
CIA에 의해서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그를 신봉하는 많은 사람들을 남겨둔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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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그릴 줄 안다. 난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다른 이들도
여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결코 자화상을
그린 적이 없다. 나 자신이 그림의 소재로는 그다지 흥미를 끌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내 관심을 끈다."
에곤쉴레
쉴레는 1912년 4월 13일 어린 소녀를 유혹하고 아이들에게 에로틱한 그림들을 보여
어린이를 도덕적으로 타락케 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혔다...
1918년, 정신적 후원자 클림트가 심장마비로 삶을 마감했다.
클림트의 나이 56세였다. 그해 빈은 매서운 혹한이 거리를 미친 듯이 점령했다.
살인적인 스페인 독감이 사람들을 늑대처럼 공격했다.
임신 6개월이던 쉴레의 아내가 독감으로 죽고, 사흘 뒤 쉴레 역시 독감의 공격에
희생된다. 그의 나이 고작 2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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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옥중에서 쉴레는 이렇게 썼다
내게 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생을 사랑한다. 모든 생명의 깊이에 참잠하는 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를 원수 다루듯 사슬로 묶어 나 자신의 것이 아닌 삶으로,
즉 하찮은 가치밖에는 지니지 않고 그저 실리적일 뿐인, 예술이 결여돼 있고
신이 부재하는 삶으로 나를 몰아넣고자 하는 강제를 혐오한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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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주변에서 모든 색이 사라지고 있다.
소름끼치는 일이다.
저주받은 장소란 이렇듯 아무 색깔도 없는 곳임에 틀림없다.
그에 비한다면 업화의 불길이 활활타오르는 지옥은
오히려 얼마나 아름다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