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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추억
감격의 전율이 몸속에서 끊임없이 용솟음쳤다. 나는 격정으로 떨리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가까스로 다독이며 인도를 따라 광화문에서 보신각 방향으로 걸어갔다.
“동방의 빛! 코리아가 깨어났다!”
상의를 벗어 던지고 맨몸에 태극기를 미친듯이 흔들어 대는 이들, 인도 위에 삼삼오오 제집인 듯 퍼질러 앉아 캔맥주를 기울이는 이들, 경적을 울리며 차로를 위태롭게 질주하는 차량들. 거리 곳곳에 감격을 주체하지 못한 시민들의 열광이 넘치고 시가지 전체가 환희에 불타는 듯했다. 그것은 평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일탈행동이였지만 그들의 멋과 흥이 내 멋이요 내 흥이기에 같이 즐거울 뿐이었다.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주었으니... 나는 같은 기분으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딧는 친구에게 말했다.
“어이 조형! 술집마다 들러 한잔씩 하고 가자.”
우리는 “경축 한국 8강 진출!”이란 프랑카드가 벌써 내걸린 호프집을 발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홀에 가득 찬 손님들이 내뿜는 뜨거운 소음이 폭풍우처럼 온 몸을 휘감쌌다. 벽면에 매달린 TV 화면에서는 한국팀이 찬 공이 이태리 골문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계속해서 방영됐다. 그때마다 손님들은 일제히 환성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그들은 모두가 방금 전선에서 돌아온 개선장병들이었다. 나비넥타이를 단정히 맨 사람이 양 손에 여러 개의 빈 맥주잔을 한꺼번에 들고 나르다가 뒤늦게 문간에 서있는 우리를 보고 싱글거리며 다가와서 자리가 없다고 난처해했다.
“여기 같이 앉지요.”
입구 쪽 테이블에 앉은 생면부지의 노신사가 대뜸 의자를 끌며 말했다. 그들은 4인 테이블에 두 명만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목례를 하며 스스럼없이 그들 옆에 나란히 앉았다. 인도 쪽 넓은 유리벽에 우리 네 명이 테이블에 앉은 모습이 비처졌다.
“여러분! 우리 다 같이 구호 한번 합시다. 대~한민국 따단따 단따!”
“대~한민국 따단따 단따! 대~한민국 따단따 단따!.....”
흥분에 복받친 누군가 외치자 즉시 호응한 손님들의 숙달된 합창소리가 웅장히 실내에 울렸다. 더 떠오르지 못해 천장에 주렁주렁 붙은 축구공 모양의 장식용 풍선이 실내의 열기로 인해 가늘게 흔들렸다. 종업원이 우리 앞에다 생맥주 두 잔을 갖다 놓았다.
“이 잔은 한국 축구팀의 8강 진출을 축하해서 무료로 드리는 겁니다. 계산은 다음 잔부터 하겠습니다. 많이 드세요."
우리는 종업원에게 웃음으로 화답하고 즉시 한 모금 들이켜 타는 목을 적셨다. 실내의 흥겨운 장면을 지그시 바라보던 정장 차림의 노신사가 입을 열었다.
“축구는 참 위대한 마력을 가졌구만! 수백수십 만명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 집중하게 하고, 열광하게 하고, 어울리게 하고, 화합하게 하고, 이게 바로 조화와 평등이야. 어떤 정치사상이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정신도 이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19세기 영국에서는 축구가 노동계급의 불만을 완화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한국사회도 축구로서 사회통합이 있을 듯이 보입니다. 유럽에서는 현재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어요. 훌리건들이 날뛰어 사회불안을 재촉합니다. 축구가 거의 생활이 되어버린 데서 참 골치지요.”
노신사와 마주 앉은 이는 은발의 젊은 서양인이였다.
“그러니까 서양에는 진정한 의미의 유희는 없다고 봐. 올림픽 경기가 전쟁을 대신하는 전쟁놀음이였듯이 서양인은 쓸데없는 적개심을 분출하는 수단으로 경기를 고안했어. 그래서 경기하는 선수도 구경하는 사람도 모두 적이 되잖아? 그게 훌리건이 생긴 배경이야. 동양은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수단으로 유희를 만들고 즐기지. 저들의 즐김을 보라고! 하여튼 오늘 한국팀이 승리한 과정은 한민족의 전 역사를 압축해 보는 듯 했어.뭐랄까....하여튼 참 감격적이야.”
“이번 경기를 內外信 모두 한국팀이 절대로 진다고 전망했는데 한국은 이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인도 외국인도 한국팀을 과소평가한 셈이지요. 한국인은 제 능력을 좀 올려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티셔츠 차림의 그 외국인은 유창한 우리말로 제법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우리는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그런 한국팀 승리의 기초는 무엇이냐? 바로 단결력과 지도력인 것 같애. 히딩크 감독은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경기 상항에 따라 변응할 수 있는 선수 개인에 재량권을 주었어. 이에 선수들은 단결력으로 화답했고. 이게 큰 실력차를 단숨에 메꾸고 없던 실력까지 만들어낸 거야. 그건 허상이 아니야. 그래서 거스히딩크를 클巨 스승師 기쁠喜 끓을騰 공球로 불러도 좋겠어.”
노신사는 웃으며 천천히 생맥주를 마시며 말을 이엇다.
“한국인들은 잘못된 정치권력을 만나 과거 수십여년간 충성스러운 백성으로 길들여지고 한민족의 원형질을 변질당해 버렸어. 북한이나 남한이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이번에 한국인들은 경술국치이후 처음으로 자존심을 회복하고 잠들었던 민족의 열정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 듯도 해.”
내가 조심스레 참견했다.
“그로인해 우리민족이 잃어버린 정체성을 복원하고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데 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경기 때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공동체 질서와 문화가 만발한 것을 보면 그 단서는 엿보입디다. 좋은 현상이오. 그렇지만 월드컵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이번 월드컵 문화는 젊은이들이 주도했는데 그들은 기성세대와 같은 역사적 선입견이 없지.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달렸겠지요.”
“이벤트성이면 안되지요. 그렇게 안되려면 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잠자코 듣던 조상수가 記者답게 까다로운 물음을 던졌는데 외국인이 먼저 대답했다.
“한국에는 정부가 시민을 너무 통제하려 들어요. 한국인의 시민의식이 향상됐으니 국가는 시민에게 스스로의 자치능력을 고양시켜줘야 합니다. 최소한 이탈리아의 수준이상으로! 하하하”
서양인은 오늘 한국팀이 이태리를 이긴 사실을 즉시 빗대는 유머감각도 뛰어난 사람이였다.
“그럴려면 지도자를 잘 만나야 될 것 같소. 역사적으로 보면 한민족은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능력이 크게 달라졌어. 히딩크 같이 사심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의 일체감과 분발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되. 그런데 우리나라 정계풍토에서 그런 사람이 성장할 수 있을까?난 그게 좀 비관적이오.419때 불의에 항거해 일어난 학생들이 정계에 진출하더니 419정신을 어느 틈에 잊어버렸잖아? 유신반대니 518이니 그 후광을 업고 나온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고. 군인들이 들고 나올 빌미나 줬지.”
노신사는 미간에 깊은 주름이 만들며 몸을 뒤로 재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국민들이라도 깨어있어야지요.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요?“
아무래도 노신사와 서양인은 깊은 지식을 가진 인물인 듯해서 나는 그들의 고견을 더 듣고 싶었다.
“내 생각에 한국전쟁 때부터 한국사람들은 돈만 아는 천민물신주의에 오염되어 버렸어, 돈이란 사람을 분열시키지. 집단문화에는 독이야. 그래서 사회공동체를 유지하는 데는 물신주의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생각하오. 사람들은 아담스미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 그는 이기심만 찬양한 게 아니야. 이기심에 기초하되 이타심에 따라 자본주의를 운용해야한다고 했어. 요즘처럼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횡횡할수록 더 그렇소.”
노신사는 정색을 하며 나를 응시했다.
“한국인의 정신에서 어떻게 物神풍조를 씻어낼까?”
나는 좋은 대답할 자신은 없었지만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국민 개개인이 자정능력과 자치능력을 스스로 키우고 권력은 그런 국민의 자치공간을 허용하는 게 필요할 듯싶은데요. 권력과 국민 간에 그런 양해지역이 있으면 권력은 스스로 오만을 자제하고 국민은 주체적으로 이 사회를 공동체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지요. 좋은 날에 무료생맥주를 주는 이 집도 물신주의를 버리고 禮俗相交하는게 아니겠어요?”
나는 반쯤 남은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참 좋은 말씀을 듣습니다. 제가 한잔 사 올리겠습니다. 어이, 여기요! 여기 오백 4잔!”
붉은 색의 빌로드 천으로 장식된 벽면과 그 벽 한가운데 붙은 커다란 법원 마크, 그리고 장대한 탁자. 그것들의 조합이 내뿜는 가당찮은 위압감을 피고석에 앉은 나는 물끄러미 처다 보았다. 나의 시선을 압박하는 높은 탁자 위에 판사가 눈사람처럼 혼자 오도카니 않아있다. 그의 체구는 몹시 왜소해 보였으나 표정에는 권위가 잔뜩 배어있었다.
“에~지난 공판 때 피고인들의 요구되로 112센터와 승차거부의 결과를 조회해 보았습니다.”
나는 긴장했다. 택시기사가 112센타에 신고한 시간이 우리가 주장하는 시간대로 확인된다면 그 기사의 증언은 거짓이 되고 승차거부한 사실이 처벌되었다면 우리는 정상참작이 고려될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판사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112센타에 신고가 들어온 시간은 피고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당일 새벽 03시58분입니다.”
내 가슴에서 뭔가 쿵하고 떨어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그럴 리가 없는데...내 기억이 잘못됐나? 내가 그 택시를 마주친 시간은 그 시간보다는 이른 때였는데...경기가 끝난 시간이 밤9시경이고 그때부터 여러 술집을 순례한 시간은 길어야 3~4시간 정도될 테니까 늦어야 한 두시쯤인 걸로 기억했는데......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러갔단 말이야? 나는 열폐감에, 뉘를 향하는지 모를 짜증에 답답해졌다. 옆 피고인석에 앉은 조상수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꼿꼿히 처들고 굳은 표정으로 판사를 노려보고 있다. 이미 신고접수 시간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나는 강하게 그 사실을 부인하고 싶어졌다.그렇지 않을 것이다. 곰곰히 그때를 돌이켜 보자.내 머릿속으로 그 때의 일이 생생히 회상되며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우리는 노신사를 만난 그 호프집을 나와 한 잔씩의 술집순례를 몇번 더 계속했고 마지막 술잔은 속풀이를 겸해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나누었다. 이제는 취기도 많이 들었으니 집에 가야지 하고 붐비는 인파를 헤집으며 골목길을 통과하고 대로로 걸어나와 종로1가의 인도의 가장자리에 서서 택시를 기다렸다.술기운은 알맞게 돌고 한국팀 8강 진출의 기쁨은 여전히 가슴에 들끓었다.길 건너편에 온몸에서 찬란한 조명 빛을 반사하며 보신각이 조용히 서있었다. 그 날이 와서 그날이 와서 삼각산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고 나는 밤하늘을 나르는 까마귀가 되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 택시를 타려는 사람은 많아서 좀처럼 내 차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겨우 붙잡은 택시들은 나의 행선지를 듣고서는 그대로 다라나 버리는 것이다. 합승으로 돈이 되는 방향의 손님만 골라 태우겠다는 택시기사들의 심보였다. 이런 세계적인 축제에서 한국팀이 이긴 쾌거가 있는데도 같이 기쁨을 나누지는 못할망정 이를 악용해 푼돈을 더 벌려해? 그런 천민주의가 한민족의 순수함을 오염시키고 공동체의 연대를 깨뜨릴 것이라던 노신사의 말을 기억하며 택시기사들의 가증스런 잔꾀에 공분이 울컥 솟았다. 그때 한 택시가 종로2가 방향에서 빨간 빈차 등을 킨 체 차로에 서있는 사람들 숲을 헤치며 내게 다가왔다.택시는 다른 승객의 승차를 거부하고 내 앞까지 온 것이다. 내 앞에 멎는 택시의 반쯤 열린 앞 창문으로 고개를 숙이며 응암동! 하고 외치자 역시 그 택시도 내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을 미리 준비했던 나는 차 앞문을 확 열어 재껴버렸다. 택시는 저만치 가다가 섰고 땅땅한 체구의 기사가 내려와 대뜸 내게 달려들었다.
“야 이 자식아, 왜 차 문을 열어?”
“넌 왜 승차거부 하냐? 개자식아!”
그가 대뜸 내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안중에 제 손해만 보일뿐 제 잘못은 전혀 모르는 완전히 개념이 없는 놈이였다. 그러나 취기가 있던 나는 별 대항도 못하고 그의 헤딩 한방을 맞고 길바닥에 내동댕이처 졌다. 나를 먼저 배웅하려고 옆에 서있던 조상수가 나의 불행을 볼 수만은 없어서 택시의 뒷부분을 한번 발길질하고 괴성을 지르며 맹수같이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때 대로위에서 어께동무로 원무를 추던 붉은 악마 복장의 대학생 티가 나는 여러 명이 나를 일으켜 세우며 까닭을 묻고 오히려 그들이 더 분개했다.
“기사 아저씨! 당신은 한국사람이 아니요? 이런 좋은 날에 승차거부하고 승객을 치면 어떻게 해요? 여기에 외국사람들도 보고 있소.”
그들에 의해 기사와 분리된 조상수가 잠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를 찾으려 인파를 살피는데 나의 거동을 감시하던 기사가 다가와 내 허리띠를 붙잡았다.
“어디를 도망가려 하냐!”
그는 내가 도망가려는 줄로 안 모양이였다. 내가 도망가는 비겁한 짓을 왜해? 이 자식아! 아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데 대한 보복으로 나는 그의 멱살을 쥐고 팔을 뻗어 완강하게 밀어부쳤다. 그와 밀고 땡기는 실랑이가 잠시 벌어지고 분리된후 길모퉁이에 비켜서 멍하니 서있는 조상수를 발견했다.그런데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순경들이 무슨 비상출동 명령을 갑지기 받은듯 우르르 몰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몹쓸 현행범을 저리 급히 잡으러 가나? 술이 덜 깬 황망 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들은 곧장 내게로 오더니 바로 우리 둘을 체포하는 것이였다. 우리가 도망칠지 불안하여 기사가 112센타에 신고했던 것이다. 오히려 잘 됐다. 이놈의 승차거부를 고발하자. 그런데 파출소로 연행된 후의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계급이 높이 뵈는 한 순경이 삐딱하게 나를 째려보면서 힐난했다.
“오늘 같은 날 기분좋게 술을 마시지 왜 남의 차를 부셔요?”
“먼 차를 부셨다고 그래요? 저 기사가 먼저 승차거부 했다고요!”
나는 당당히 반발했지만 그 순경이 더 역정을 냈다.
“승차거부하면 경찰에 신고하면 될 꺼 아뇨? 좋은 날에는 꼭 분위기 깨는 저런 사람이 있다니까!”
“순사 나으리! 나는 위법한 원인에 정당하게 맛선 것뿐이요.”
도데체 누구와 먼 합의교섭을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합의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순경들에 의해 순찰차 뒷좌석에 거칠게 꾸겨 넣어졌다. 이거 기분이 이상하게 돌아가네.... 운전수쪽 순찰차 뒷좌석에는 안에서 문을 여는 손잡이가 없었다.도망을 방지하려고 일부러 망가뜨린 모양이었다.순찰차는 흥겹게 명멸하는 네온싸인의 불빛을 환호로 받으며 좁은 골목길에 붐비는 인파의 전송(戰頌)을 들으며 어떤 큰 건물의 입구를 통과해 들어갔다. 거기는 경찰서였다.그래! 여기서 다시 시시비비를 가리자. 本署의 경찰들은 파출소근무자들보다 법리에 밝을 테니 기사와 옥신각신한 과정을 판별하여 원인인 승차거부를 응징하리라.나는 여전히 당당한 자세였다. 그러나 한 건 잡은 듯 앞서서 활보하는 순경의 뒤를 따라 들어가 건물내 긴 복도 끝 벽에 붙은 조사과라는 팻말을 보자 이때부터 기분이 좀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조사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널브러져 한가하던 형사들은 심야의 산고양이처럼 두 눈에 섬광을 반짝이며 갑자기 부산해졌다. 형사는 우리를 조사실안의 유치장에 가두는 것이었다.
“두 분은 술을 드셨으니 우선 여기에 들어가 계시오.”
깨름찍한 쇠창살 방안에 들어앉고서야 우리는 완전히 죄인이 되었음을 깨달아야 했다. 일제 식민기 때 독립군을 잡아들이는데 이골이 난 **경찰서에 우리는 조선독립운동이 아니라 동족상잔의 폭행죄로 수감된 것이다. 이미 내 복장은 기사와 힘겨루기를 할 때 응원용으로 둘렀던 두건이니 망토니 깃대봉이니 모두 없어져 버렸다. 승리에 감격하여 광화문을 포효하던 동의족의 전사는 초라한 미결수 꼴이 되어버렸다. 택시기사는 자신이 우리 두 사람에게 한꺼번에 공격당해 맞을 수밖에 없었으며 내가 국기봉으로 마구 찔렀다고 목덜미 주위를 까뒤집어 보이며 형사에게 하소연하였다. 그가 조사받고 나서 조상수가 불려 나갔다.
판사는 건조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승차거부에 관해서는...마포구청 운수행정과에서 승차거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회신을 보내왔습니다.”
우리의 두번째 주장도 모두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우리는 이제 선량한 기사를 폭행하고 영업운행을 방해한 무뢰배가 되어 버렸다. 판사는 더 할 말이 있느냐는 눈초리로 망연자실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의 눈길을 피하지는 않았으나 긴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판사를 쏘아보던 조상수도 몹시 실망스러운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나를 힐끗 훔쳐보았다. 멀리 법정건물 밖에서 수많은 매미들이 한꺼번에 울어재끼는 아우성소리가 아련히 들렸다.나는 갑자기 먼 세상에서 순간이동하여 이 자리에 서있는듯 한 이질감에 떨었다. 그런데 승차거부를 고소한 사건을 왜 수사기관이 아닌 마포구청이 처리했지? 혹시 그날 나타난 택시회사 사고 상무라는 자가 무슨 농간을 부린 거 아닌가? 사건이 일어난 이후 이상하게도 우리의 의사에 반해서 사건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것도 분명히 그들의 검은 농간과 거래일 것이다.
나는 보았다. 그때 그들의 비루한 웃음을. 내가 조사과 쇠창살 속에 갇혀 참담한 심정에 빠졌을 때 택시회사 사고 상무라는 자가 한 형사와 오랜 친분이 쌓인 사이인듯 씽끗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조사과 문을 들어오는 장면이 얼핏 내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들의 웃음은 남들의 눈을 피한 건물 밖에서 모종의 제안과 역제안이 교환되고 이제 막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당사자간의 만족감을 나타내는 불결한 웃음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길쭉한 얼굴로 첫 인상부터가 불쾌했던 상무라는 자는 우리가 애초 파출소로 연행되었을 때 자신의 직함을 밝히면서 우리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그의 얼굴에 간사한 미소가 흘렸고 역한 술기를 풀풀 풍겼다.
“손해배상? 우리가 당신들한테 무슨 손해를 입혔단 말이요?”
“운행하지 못한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당신들이 승차거부해서 발생된 거 아니요? 나도 집에 못가고 있소. 내 손해는 어떻게 할 꺼요?”
“정 그러시면 우리 생각되로 하겠습니다.”
그의 조용한 경고를 엄포로 생각하고 무시했다. 그가 경찰서까지 따라와서 사단을 벌렸을 터이다. 상무와 눈웃음을 치던 그 형사는 조상수를 정중한 태도로 제 책상 앞에 불러 앉히고 최대한의 경어를 써가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것은 경찰의 친절한 대민자세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범행을 자백하게 하려는 함정이였다. 생쥐처럼 생긴 형사의 계산된 질문에 맹물같은 답변하였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때가 지나버렸고 조상수가 뒤늦게 깨닫고 길길이 뛰었으나 분위기는 전혀 그의 편이 아니였다
“난 **일보 편집위원이야! 서장 나오라고 해!”
“알았슴다. 잠시 진정하시면 서장 녀석을 불러 올리겠슴다.”
조상수가 씩씩거리며 유치장으로 들어오고 내가 불려나갔다. 형사의 질문은 아주 능숙했다. 내 답변을 유도하고 유도된 답변을 전제로 다음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를 범법자로 몰고 가는 것이였다. 나도 내말이 그의 페이스로 말려간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남은 취기와 급히 변해버린 상항 때문이었는지 혼란스러워 어떻게 항변할지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겨우 생각해낸 공격수단은 저 택시기사를 승차거부로 고소한다는 말 뿐이었다.
“알았슴다. 구두고소도 성립하니까 고소장을 작성해 드리겠슴다. 그러니 여기다 얼른 지장을 찍으세요”
그 형사의 입에서 술과 안주가 뒤썩여 부패한 입 냄새가 마구 풍겨 코를 찔렀다.
“다 됐습니다. 두 분 수고하셨습니다. 이젠 댁에 가셔도 좋습니다.”
형사는 우리를 유치장에서 꺼내고는 우리를 향해 고급호텔의 도어맨처럼 허리를 굽히고 손바닥으로 정중히 출구를 가리켰다. 그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철철 넘치고 흘렀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를 혼탁한 기분으로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벌써 날은 훤하게 밝았다. 어제 밤 승리의 축제가 벌어지던 길거리는 이국의 풍경처럼 낯설게 보였다. 환경미화원들이 간밤의 축제가 배설하고 토해낸 너절한 잔해를 긴 빗으로 무심히 쓸어내고 있었다. 그의 빗끝으로 걸거리가 말끔하게 청소했지만 우리의 가슴에는 토함을 제지당한 지꺼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어떤 미화원이 그 지꺼기를 청소할 수 있을까?암담했다.일본 순사에게 저격을 받고 민가의 골목으로 숨어드는 패잔병처럼 우리는 비틀거리며 말없이 경찰서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저격당한 패잔병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듯 이른 새벽 골목안 가게들의 문은 굳게 다쳤다. ‘아침식사 됩니다.’라는 서투른 글씨가 쓰인 입간판을 겨우 발견하고 좁은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 누추한 한옥 밥집에 앉았다. 기다리던 여명의 손님이 제대로 찾아온 감격을 억지로 억누르는듯 주인 할머니는 이상하게 처연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맞았다. 할미의 꺼칠한 손이 무쇠솥 뚜껑을 열자 솥에서 수증기가 분노처럼 불끈 솟아올랐다. 우리는 뚝배기속의 뜨거운 선지를 우걱우걱 씹으며 소주 몇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선지국이 들어가자 피곤했던 뱃속이 곧 긴장을 풀었다. 우리는 서로 行狀을 물끄러미 건너보았다. 턱수염이 까칠하고 눈알이 움푹 들어간 최최한 몰골. 그 모습은 간밤의 의외의 소란으로 난데없이 폭행범이 되버린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있었다. 승차 거부한 놈이 피해자가 되고 맞은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세상. 불결한 거래로 사실을 전도시키는 치안력. 월드컵 맞아 조직적으로 국민에게 축제의 분위기를 띄우더니 곧장 흔들어 떨어뜨려 버리는 국가권력.
나는 진저리치며 처절히 저항하고픈 마음이 맹렬히 일었다.
“판사님. 택시의 승차거부를 왜 수사기관이 아닌 구청에서 조사합니까?”
판사는 의외의 질문에 잠시 당황한 기색이더니 이내 표정을 회복했다.
“피고인! 여기는 법원입니다. 그건 수사기관에 질문하시오.”
나는 내친걸음이다 싶어 우리를 응징하러 나와 앉은 검사석의 두 명의 공판검사를 보며 거듭 질문했다.
“검사님. 고소사건은 수사기관에서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주 앳되게 보이는 젊은 검사가 곧장 대답했다.
“그건 **경찰서에 물어보세요.”
“나는 그때 경찰에게 기사의 승차거부를 분명히 고소하였습니다. 고소사건을 왜 일반 행정관청에서 처리하느냐구요? 이거 잘못된 거 아닙니까?“
“나는 그런 사건을 송치받지 않았습니다. 경찰서에 물어보시라니까요!”
검사의 짜증이 썪인 목소리가 법정을 울렸다. 조상수가 내 옆꾸리를 툭치며 만류했다. 시민의 눈에는 국가 권력이 통일적 일체로 보인다. 수사권이 경찰과 검찰로 분립되었어도 그 작용은 통일되게 행사되야 하는 게 아니냐? 판검사 당신들은 국민이 준 권력을 사고 상무의 농간에 봉사하는 중이다! 판사는 검사와 나의 논쟁에 관심이 없는 듯 문서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논쟁이 멎자 심드렁하게 말했다.
“검사! 논고와 구형을 하시오.”
“예. 논고는 기소장대로고 형량도 벌금150만원으로 같습니다.”
“피고인! 최후진술할 거 있습니까?”
그들의 거동을 노려보던 조상수가 대뜸 있습니다하면서 잔뜩 볼멘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훌리건이 아닙니다. 한국이 축구에 이겨서 그걸 즐겼을 뿐입니다. 잘못은 승차거부한 저쪽에 있는데 우리를 왜 훌리건 취급을 합니까? 벌금150만원이 뭡니까? 한 달 생활비예요. 그걸 물으면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이건 나라가 잘못하는 겁니다. 이상입니다. 원 참!..”
판사는 듣는 둥 마는 둥 딴전을 피웠다. 그는 잔뜩 귀찮음이 베인 얼굴로 벽에 붙은 달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럼 다음 공판에 선고하겠습니다. 선고일은...”
“아닙니다. 판사님,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내가 급히 소리쳤다. 판사는 뜨악한 표정을 짓더니 허락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판사님! 지난 월드컵 때 시청 광장에 빽빽이 들어 찬 시민들을 보셨지요?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스스로 광장에 모여 응원공동체를 만들고 전 세계에 한민족의 열정과 긍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들 속에 앉아 처음으로 공동체의 결속감을 느꼈습니다. 그 느낌은 고향에 돌아온 듯이 편안했습니다. 한국팀이 서양팀을 차례로 격파해가면서 거리마다 동네마다 주민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서 서로 한 마을의 정을 넓혀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까맣게 잊었던 시민의 동질성을 확인하며 전 국민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다시 변해가는 과정으로 보였습니다.”
심드렁하던 판사도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내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공동체가 회생되어 가는데 개인이익에 눈이 먼 물신분자 한사람이 방해했습니다. 승차를 거부한 기사가 그 사람입니다. 그의 승차거부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공동체 질서를 거부하고 민족의 정체성 회복에 찬물을 끼얹졌습니다. 저의 눈에는 그가 공동체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公敵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검은 법복을 입고 검사석에 단정히 앉은 검사를 쏘아보았다.
“검사님! 시민의 눈에는 경찰이나 검찰은 같은 수사기관으로 보입니다. 사건을 송치받지 않았다는 말은 범죄를 인지하고 수사를 지휘해야하는 검찰이 할 말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검사님의 말은 검찰의 職務不實을 형사소추제도 탓으로 돌리는 변명같습니다. 수사기관이 그러할 때 범법한 자가 공격하면 시민은 당연히 대응할 수밖에요. 그건 자력구제가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때 저 기사로부터 맞았기에 의사진단을 받아 폭행죄로 고소할 수 있었겠지만 대수롭지 않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내가 민족공동체의 일원임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안광을 피하는 젊은 검사의 눈길을 짓누르며 다시 판사를 향했다.
“사회가 분화할수록 공동체라는 연대의식은 필요합니다. 저는 월드컵을 통해 우리 국민이 공동체라는 의식에 눈을 뜬 것으로 이해합니다. 공동체 정신이 싹을 틔워 막 소생하려는데 한 불순분자가 이를 짓밟으면 시민은 어떻게 할까요? 그에 맞서는 행위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게 과실상규이며 시민의식입니다. 저는 私人으로서 공법상의 행위를 했습니다. 그 행위에 실정법상 權原이 없다고 해도 처벌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무능한 국가가 할일을 대신했고 그런 행위는 사회상규가 용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제발 국민들의 신명을 짓밟지 않기를, 국민을 파편화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히 선행을 한 것입니다.”
내 말이 좀 열변조였는지 법정 내는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곧 판사가 냉냉한 목소리로 말했다.
“6월13일 10시.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들은 그 날 이리로 나오시오.”
한국팀이 그 근원이 이해되지 않는 괴력을 발휘하여 축구강국인 유럽 팀을 차례로 깨뜨리고 준결승까지 오르는 2002년 6월 한 달을 정신없이 보냈다. 월드컵이 끝나자 내 정신은 갑자기 공황생태에 빠져버렸다. 흡사 우주선을 타고 외계를 여행하고 돌아 온 듯 지상에서 벌어진 6월의 축제는 까마득히 사라진 신화처럼 여겨졌다. 팽창한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속은 텅 비어 공허했고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세상사는 재미가 없었고 매일매일을 쓸쓸히 두문불출하며 보냈다. 서울 상암구장에서 열린 첫 경기... 아프리카의 빈국 세네갈이 프랑스를 0:1으로 이겼지. 월드컵에 첫 출전한 옛 식민국 팀에 져서 16강에도 들지 못한 전회 우승팀 프랑스의 굴욕! 이로서 전 세계의 이목은 일거에 서울로 집중됐어. 한국팀이 첫 번째로 맞붙은 폴란드도 쉽지 않은 상대였는데. 홍명보의 전광석화같은 첫 골! 한국팀이 월드컵 본선 전에 가졌던 평가전에서 미덥지 않은 플레이를 보여 내심 불안했는데... 폴란드를 이긴 이때부터 국민들은 축제의 분위기에 후끈 달아올랐어. 서울시청앞 광장을 빽빽이 덮은 인파를 봐라. 그 장면이 전 세계로 타전되어 한민족 열정의 상징이 되었지! 혼연일체가 된 응원! 집단질서를 깨지 않는 시민의식! 전 세계도 깜짝 놀랐을 꺼야. 그게 한민족이 자존심을 회복하는 순간이야. 나도 서서히 들뜨기 시작했어. 두 번째 경기 미국전은 아예 경기장에 들어가서 관전했어. 푸른 잔디가 곱게 깔린 수원 경기장. 외국의 유명한 축구장인 줄 알았다니까, 그때 어리벙벙하게 첫 골을 먹고 한국팀이 지고 말았는데. 내 앞자리에서 술에 반쯤 취해 알랑거리며 “쏼라쏼라 USA!”를 외치던 덩치 큰 미국 녀석...속이 뒤틀려 앉으라고 소리쳤지. 내 일갈에 찍소리도 못하고 잠잠해 지데.
“아빠. 점심 어떻게 해. 차릴까?”
딸애의 생기발랄한 목소리가 몽롱한 내 귀에 들렸다.
“.....먹고 싶지 않아. 차리지 마.”
그때 중국어를 쓰는 관광객이 딸애에게 오더니 수원경기장을 배경으로 같이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싶다고 청하는 거야. 한국여성의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기록하겠다고. 우리 딸애가 거기서 가장 예뻐 보였나봐.크크... 한국팀의 세 번째 상대 포르투칼과 경기할 때 우리 동네 세탁소 주인이 제 돈으로 큰 TV를 가게 앞에 설치했어. 온 동네주민들이 그 앞에 모여앉아 함께 관전했지. 누가 마련한지도 모르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후반전을 앞두고는 음식이 떨어져 내가 얼른 순대를 사와서 돌렸잖아? 그런 동네잔치가 또 있을까? 그때 나는 잊어버린 두레문화를 도시에서 새로 만난 듯 했다니까. 게임이 거듭될수록 공동체의 결속을 보여준 시민들! 8강을 노리고 이태리팀과 대전 때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조상수를 만나 그의 마누라가 만들어준 도시락을 소풍 나온 듯 길가에 앉아 먹었어. 그건 옛날 여름밤에 모깃불을 피운 시골 정자나무 아래서나 보던 이웃간의 정겨운 모습이 아니냐? 응원에 배고플까봐 휑하던 남편을 챙기니 월드컵이 부부애도 증진시켰구만. 그리고 우리는 광화문의 응원군중속에 들어가 앉았지. 숨막히던 긴장.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 기가 찾지! 8강전에서 만난 스페인과의 승부차기는 또 어땠는데? 실축에 망연자실하던 스페인 선수들. 다섯 번째 공을 차 넣은 후 환호하는 한국선수들... 관중들... 전 대한민국 국민들....그래서 우리는 상상 조차도 못하던 세계4강에 올랐어! 세계에 한민족의 기상이 한껏 뻗어가는중이었어....
“이게 뭐야? 이런 게 다 왔지?”
모든 게 귀찮아 식음을 전패하고 한국팀이 이긴 경기를 재방하는 TV를 물끄럼히 처다보고 있던 8월15일 한낮. 처가 외출하면서 무심히 툭 던진 편지봉투 하나. 주섬주섬 펴보니 벌금 150만원을 물으라는 검찰청의 고지서였다. 그동안 까맣게 잊었던 그 승차거부로 인한 사건. 폭행 및 재산손괴의 죄! 한가하게 꿈속을 유영하던 내 정신은 급전직하 현실로 추락했다.
“최형! 검찰청에서 온 편지 받았어?이거 무슨 괴변이야!”
조상수도 같은 편지를 받았다고 씩씩거리며 전화로 알려왔다. 내가 들떠 지내던 기간에도, 의기소침한 기간에도 우리를 응징하려는 음모는 차근차근 진행됐구나. 경찰서 형사의 음흉한 친절, 사고 상무의 불결한 웃음이 오버랩되면서 참을 수 없는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무고한 백성을 범인으로 조작하던 일제순사들의 악습이 민주경찰을 표방하는 지금 아직도 이어지는구나...그들의 버릇을 인권의 최후보루인 법원에서 백일하에 들어내자.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이면 잠자코 참을 수는 없다.경찰과 검찰에서 거듭 수사해도 같은 결론인 그 사건에 대해 나는 즉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검찰의 기소장을 복사해 보니 사건 상항이 완전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피고인들은 서로 친구사이인바, 공동하여, ①2002.6.20.03:30경 서울 종로구 종로1가 농협앞길에서 피해자 문동호(남,43세)가 운행하는 서울33자8833호 영업용택시의 차량 앞을 가로막아 정차시킨 후 피해자가 교대시간이 되어 손님을 태우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화가나서 피고인1 조상수는 위 차량의 트렁크 부분을 발로 1회 차 찌그러지게 하고 피고인2 최인호도 가지고 있던 국기봉으로 위 차량의 조수석 문을 쳐 찌그러지게 하여 수리비 금 506,770원 상당을 손괴하여 그 효용을 해하고, ②위 일시 장소에서 피해자가 차량에서 내려 차량을 확인하고 왜 차량을 발로 차냐고 항의하자 피고인들은 피해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피해자에게 경부 찰과상 및 좌상으로 약2주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가한 것이다. 2002.7.10. 서울중앙지방 검찰청. 검사 정직한.”
기사가 승차거부하고 먼저 내 멱살을 잡고 흔들고 쓰러뜨렸다는 사실은 기재되지 않았다. 형사가 내 진술을 듣고도 기재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조서 말미에는 나의 술 취한 서명이 버젓히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그 조서는 지나가는 택시를 우리가 먼저 세워 공연히 시비를 걸었다고 증거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에겐 반증할 자료가 전혀 없었다. 목격자는 그날 현장에서 싸움을 말린 몇몇 붉은 악마들인데 이름도 모르는 그들을 일년이나 지난 지금 어떻게 찾겠는가?
공판이 계속되면서 우리는 택시기사의 부당한 승차거부가 원인이였고 그의 先攻에 소극적으로 저항했지만 결코 가해나 손괴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피해자 쪽에서 차량보수 영수증과 상해진단서를 제출했습니다.”
판사의 말에 조상수가 즉시 반문했다.
“택시 뒷밤바를 한번 찼습니다. 그걸로 완충용인 밤바가 우그러지기나 하나요?”
“검찰에서는 이 증거서면의 진위여부를 확인했습니까?”
판사가 검사에게 물었다.
“확인은 안했지만...보수했으니까 비용을 지불했겠지요.”
검사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검사는 다음 공판에서 그 택시기사를 증인으로 불러 택시 밤바가 우그러졌다는 거짓증언을 확실히 유도시켰다. 긴 질문에 예!예!라는 짧은 대답으로만 이루어진 그들의 문답은 검사와 기사가 서로 짜고 우리를 징벌하려는 음모로 보였다. 검사의 심문 후에 내가 반대 심문을 했다.
“먼저 이것부터 물읍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묻는 것이니 국민으로서 대답해 보시오. 그날 한국팀이 경기에 이겨 전 국민이 축제의 분위기였는데. 그런 때 꼭 승차거부를 해야 했습니까?”
“그건 내가 알 바 아닙니다. 처자식들 데리고 먹고 살려면 사납금 채우는 게 더 급합니다.”
내가 알바가 아니라는 말은 승차거부를 시인한 것이나 같으므로 나는 의미를 전달하는 눈짓으로 판사를 힐끗 올려다보고 계속했다.
“증인은 03시30분에 우리를 만났다고 하면서 03시30분에 진술을 마쳤다고 조서 끝에 썼습니다. 만난 시간과 진술을 끝낸 시간이 같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만난 시간을 쓴 것입니다”
“보통 진술한 시간은 쓸 필요가 없는데, 당신은 승차거부를 감추고 교대시간이라고 꾸밀려고 만난 시간을 일부러 뒤로 미룬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증인은 근무교대 때문에 안간다고 했다는데, 그런데 차고지가 마포구 성산동이고 내가 갈 곳이 응암동인데 교대를 한다 해도 종로1가에서는 같은 방향이 아닙니까?”
“......그때 차고지로 가는 게 아니였습니다.”
“근무교대 하려면 차고지로 가야지 어디로 간단 말이오?”
“...... 교대자 집으로 가는 중이였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허위를 숨기려는 잔꽤다. 나는 필살의 어퍼컷을 날리듯 더욱 다그쳤다.
“근무교대 시간이 임박한 때라면 교대자 집으로 곧바로 갈일이지 내 앞에 차를 왜 세워요?”
“......”
굵은 목덜미 위에 얹힌 그의 굵은 뒷머리 통에서 곤혹스러움이 빤히 보였다.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처음 경찰서에서는 빨간 등을 않켰다고 했다가 여기서는 켰다고 달리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억이 나지 않아 그랬습니다.”
“사건이 난 직후에는 기억이 잘 않나고 1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기억이 생생하다는 말입니까?”
“........”
“검사 질문에는 붉은 악마가 몇 사람 안된다고 하고 판사 질문에는 많았다고 달리 말하는데 어느 쪽이 진실인가요?”
증인석에 앉아 앞만 바라보며 대답하던 그는 나의 추궁에 답이 궁해지자 머리를 획 돌려 잡아먹을 듯이 나를 쏘아 보았다.그의 눈에는 증오가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내가 말실수하기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아니오! 진실을 말하기를 기다리는 거요!.... 당일 사고 상무가 경찰서로 왔지요?”
사고 상무가 경찰서로 온 것은 사실이니까 그의 시인을 전제로 상무와 형사간의 악의에 찬 사건조작을 본격적으로 파해 칠 참이였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내 의도를 빗나갔다.
“안 왔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나! 내가 분명히 보았는데 안 왔다니요?”
“안 왔습니다!”
그는 언성을 높혀가며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결코 시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出廷전에 사고 상무로부터 응답요령을 교육받았을 텐데. 사건조작의 의심을 털끝만치라도 내보였다가는 상무로부터 즉시 보복을 받겠지. 사고 상무가 심각함을 가장하여 실눈을 뜨고 얄팍한 입술로 기사를 나무라는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말로 하는 것도 받쳐주지 못하고 다 된 일을 그르치니 이거 같이 일할 수 있겠나? 안됐지만 회사를 그만 두시오.”
처자식 부양하는 일이 더 급하다는 그에게 나는 갑자기 약간의 연민이 느껴졌다. 당신의 눈에 이글거리는 증오는 나를 향할 일이 아닌데...결국 그의 입을 통해 역공을 취하려했던 내 의도는 될법한 일이 아니였다. 다만 이런 맥없는 질문으로 현행 형사 소추제도의 맹점과 그의 양심불량을 우회적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리가 먼저 112에 신고했다면 우리와 당신은 자릴 바꿔 앉았을 꺼 아닐까요?”
그는 대답을 못했다. 반대심문에 증인이 대답을 못하면 반대논리에 수긍한다는 뜻 아닌가? 조서의 말미에 써있는 3시30분은 거짓진술 때문에 불안심리에 빠진 그가 무심히 조서를 끝낸 시간을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사와 멱살을 잡고 옥신각신한 시간을 역산하면 그와 내가 처음 만난 시간은 03시정도는 될 것이였다. 그 시간은 운행을 교대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므로 그가 교대시간이어서 승차를 거부했다는 말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추리에 기세가 등등했다.
“판사님. 증인이 112센타에 신고한 시간을 확인해 주십시오. 저 기억에는 제가 저 사람을 만난 시간은 분명히 세시는 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경찰서에서 저 사람의 승차거부를 고소했는데 그 결과가 어떤지도 조사해주십시오.”
머리를 돌려 내내 나를 째려보던 기사의 눈매가 순간 흔들렸다.
“승차거부는 승차거부 데로 이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공연히 이 사건 판결에 혼란을 주려합니다.”
검사는 투견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너까짓 게 공익의 수호자냐? 나는 달겨들듯 일어서며 곧장 내쏘았다.
“왜 별갭니까? 저 사람이 처벌되면 우리 행위가 정당해집니다. 그러니 수사 결과를 얻는 일은 당연한 항변입니다.”
선고공판 날, 법원 복도에는 재판시간을 기다리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서성이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꾀죄죄해 보였다. 저들이 나를 볼 때도 그렇게 보이겠지.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조상수는 복도 끝에 우두커니 서서 유리창 밖 녹음이 우거진 숲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힐끗 나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우리는 빈 의자를 가까스로 찾아 위태롭게 엉덩이를 걸쳤다.엉덩이를 다 집어 넣어 넉넉히 앉을 마음이 아니였다. 조상수는 한참 푸념을 늘어놓다가 풀죽은 소리로 말했다.
“지난 재판 때 말이야. 최후진술할 때 판사 표정이 어케 보였어? 좀 봐줄 듯 하지 않아?”
“봐준다면 뭘?”
“벌금을 좀 깎아준다던가...”
내가 대뜸 역정을 냈다.
“당신은 억울하지 않아? 대한민국의 사회질서를 망친 놈은 놔두고 우리가 벌 받아야 해?”
조상수가 머쓱해 했다. 범죄에 대한 선고를 바로 코앞에 두고도 나는 1년전의 열기와 신명이 여전히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데...
2002년 6월13일 월드컵 축구 8강 진출을 노리고 한국팀과 이태리팀이 자웅을 가리는 날. 광화문 네거리는 인도와 차로 구별없이 붉은 시민들로 빽빽히 들어차 퍼질러 앉았다. 석양이 건물에 가려 그늘이 졌지만 한낮 태양이 달군 아스팔트에서 지열이 후끈 솟아 엉덩이가 뜨거웠다. 그러나 지열보다 더욱 뜨겁게 뿜어져 나오는 용광로 같은 집단열기는 그 속에 앉은 내 정신을 철광석처럼 녹여 흡수해 버렸다.
“대~한민국! 따단따~딴따! 대~한민국! 따단따~딴따”
젊은이는 물론이고 나이 든 사람들도 이미 응원에 숙달된 듯 내밷는 목소리는 한결같이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붉은 티셔츠를 유니폼처럼 차려입었지만 나는 거기다 한 술을 더 떴다. 붉은 삼각건을 이마에 질끈 동여메고 커다란 월드컵 휘장기를 뒤 어깨에 날리며 손에는 태극기를 단 깃대봉을 창처럼 거머쥐었다. 나는 여차하면 그대로 이태리팀에 뛰어들 기세였다. 간간히 서있는 청년들이 흔드는 큼지막한 깃발에서 동이족 영웅 치우천왕의 얼굴이 바람에 나부꼈다.
“오! 필승 코리아~ 오~필승코리아! 오오레오에! 아이 아이 아이!....”
멀리 높다란 건물의 외벽에 붙은 전광화면에서 8강 진출전이 중계될 것이다. 화면은 멀리서 관중석을 천천히 비추더니 붉은 악마의 카드섹션을 부각시켰다. ‘Again1966!’ 1966년 영국 월드컵때 이탈리아를 깨고 8강에 오른 북한팀의 승리를 재현하자는 각오였다. 그것은 월드컵사상 축구 변방국이 기록한 최고의 성적이였다. 과연 한민족은 우승후보 이태리팀을 깨뜨리는 영광을 재현할 것인가?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시작되자마자 한국팀은 의외로 페날티킥을 얻어냈다. 이 무슨 좋은 징조인가! 열화같은 환호가 물결쳤다. 그러나 한국팀은 페날티킥을 실축하더니 잠시 후는 코너킥에서 헤딩으로 연결된 공을 막지 못해 실점하고 말았다. 실축과 실점! 먹을 꼴을 못 먹고 안 줄 꼴을 줬으니...꼴이 사납게 되어가네... 원래 월등한 기량을 가진데다가 득점으로 인해 기고만장해진 이태리 선수들은 한국선수를 데리고 노는 듯 계속 압도했다. 그들은 로마군단 병사처럼 한국팀의 문전에 까맣게 쇄도하곤 했다. 그때마다 한골을 더 먹을까봐 내 등골에 전율이 몰려왔다가 몰려가곤 했다. 나는 그 전율을 떨쳐버리려고 더 소리를 높여 목이 터져라고 응원하였다. 모든 군중이 같은 마음이였다.
“대~한민국... 따다따 딴다. 대~한민국... 따다따 딴다.”
한국팀은 무기력하게 전반전을 끝낸 후 후반전에서 활력을 약간 회복한 듯했으나 여전히 고전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안타까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모든 축구전문가들의 전망은 한국팀의 패배였다. 한국팀의 연승행진은 여기서 멈추는 것인가. 군중은 발악하듯 함성을 내질렀으나 공허했다.답답하던 후반 막바지에 한국팀의 선수교체가 있었다. 그런데 추가실점을 막아야할 수비수까지 빼고 공격수를 대폭 투입하는 것이였다. 내 머리털을 내주고 적의 머리를 빼앗자는 다걸기 전략일 것이다. 그것은 무모했지만 기발하기도 했다. 내 몸속에서 흥분이 새롭게 솟았으나 이미 전광판 시계는 종료2분전을 가리켰다. 이태리를 이길려면 실점없이 두골을 넣어야 하는데.... 공격하는 한국선수를 쌘드위치처럼 에워싸는 이태리 팀의 빗장수비를 보며 절망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센터링된 공이 이태리 문전에 떨어져 수비수 옆을 흐르는가 싶더니 한국선수가 날쌔게 파고들며 가볍게 차자 그대로 골문 모서리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골인!골인!골인!골인!"
나는 정신없이 환호를 토했다. 어떤 이들은 팔딱팔딱 뛰고 또 어떤 이들은 서로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대~한민국 따단따 단따! 대~한민국 따단따 단따!”
광화문 네거리에는 하나가 된 시민의 감격들이 장엄하게 물결쳤다. 1대1.숨을 돌릴 새도 없이 연장전에 돌입했다. 아마 시민들의 염원이 전심되었을 것이다. 아까보다 몰라보게 변한 한국선수들은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어느틈에 적진을 파고들고 힘이 소진된 이태리 선수들 수비에 급급할 뿐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잘하면 골을 넣을 수도 있을 듯했다. 한 꼴만 더! 그러나 연장전의 시간도 불과 3분밖에 남지 않았다. 골을 넣을 시간이 모자란다! 끊임없이 응원구호를 외쳐대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미 핏기가 없는 공허한 비명으로 들릴 뿐이었다.한 꼴을 더 넣어야 하는데... 절망과 아쉬움이 뒤썪인 긴장이 숨을 끊을 듯 했다.
조상수가 내 어께를 툭치며 엄지 손까락으로 법정문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법정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판사는 과연 어떤 판결을 할 것인가? 우리의 결백함을 증거하려고 우리가 주장했던 112센타신고시간, 승차거부에 대한 처벌여부등등 모두 우리의 주장에 빗나갔다.그러나 물적 인적 증거가 없어도 우리는 결백하다!공판진행과정에서 검사의 억지논리, 검사측에 꿰맞춘 증인의 답변, 우리들의 안타까운 반대심문.... 판사라면 표면에 나타난 사건 겉모습만 볼 게 아니라 문답의 행간과 이면에 숨겨진 부분도 다 꿰뜷어 실 사건을 재구성하고 자유롭게 심증을굳혀 판단해야 하지 않느냐?그를 향한 신뢰와 불신이 뒤엉킨 묘한 흥분이 심중에 맴돌았다. 법정 안은 사람들로 붐비었으므로 우리는 사람들 맨 뒤에 끼어 섰다. 판사가 나타나자 法廷 안에 자욱히 깔린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끊겼다. 법정경위가 기립,착석하는 구령에 따라 앉은 사람들이 일어섰다가 앉았다. 판사에게 그런 예의를 강요받는 게 싫었다. 판사가 판사다워야 예의를 갖추지... 그러나 고급스러운 의자에 꺼질듯 앉으며 법복을 여미는 판사는 온몸을 권위로 무장시키는 듯이 보였다.
“2003년 6월 13일. 오늘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사건번호 2002고단 2368
05호 피고인 김철수!”
판사의 호명이 법정을 울리자 이름이 불린 사람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피고인 자리에 엉거주춤 섰다가 판사의 형량을 듣고 혹은 가벼운 혹은 더 무거운 표정으로 물러 나왔다. 드디어 우리 이름이 불려지고 우리는 복잡한 흥분상태로 걸어 나갔다. 근엄한 표정으로 판사는 힐끗 우리 얼굴을 한번 내려다보더니 무표정하게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약10개월을 끌어온 사건. 대한민국의 사법 의식은 살았냐 죽었냐?
“에~ 이 사건에 관하여 증인 문동호의 증언과 112센타의 조회를 본 결과 피고인들은 사건 당일 주취로 사실관계를 잘못 기억한 것으로 보여 범행이 확인되고 다른 반증은 없습니다."
이태리 지역 중간쯤 양 팀 선수들은 서로 엉켜 공을 뺏으려고 혼전중이다. 한국선수 하나가 공을 뺏자마자 재빨리 길게 센터링했다. 푸른색 상의를 입은 이태리 수비수 여러 명과 그들 틈에 빨간색 옷의 한국 공격수 한 명이 썪어 선 이태리 문전. 공은 그곳을 향해 곧바로 날아갔다. 공중에서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며 헤딩위치를 옮기는 선수들. 공은 나란히 선 양 팀 선수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그들의 머리가 거의 동시에 솟구쳐 올랐다. 그 순간 숨을 끊은 나는, 붉은 악마들은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섰다.
“골인! 골인! 골인!~”
나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시민들이 울부짓는 소리. 미쳐버린 듯 날뛰는 북소리. 자지러지는 꽹과리 소리. 내겐 먼 함성처럼 웅웅거리며 귓가에서 맴돌 뿐이었다.
“오! 필승 코리아~ 오~필승코리아! 오오레오에! 아이 아이 아이!....”
한국팀이 이겼다! 어디에서 사람들이 나오는지 인파는 폭발한 듯 늘어나 급기야 차도까지 팽창했다. 시민들은 누구와든 어깨동무하고 데모하듯 소리치며 행진했다. 너와나 구별없이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원무를 추었다.
“꿈만은 아냐..이 세상 최강이 된다는 것은...언제까지나 기억해줘.. We all will be there for you!”
광화문 거리거리는 거대한 합창이 메아리쳤다. 춤추는 시민들의 머리위로 치우천왕의 얼굴이 깃발 속에서 날아다녔다. 그의 후예 한민족이 오늘의 영광을 일궈내자 치우천왕은 시공을 날아와 그 영광을 만족하며 같이 즐기는듯 보였다.둥그런 달이 푸른 밤하늘 한가운데로 불쑥 떠올라 시민들의 축제를 밝혔다. 그날이 와서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지거든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 차량들은 곡예하듯 도로를 질주하며 경적을 울려댔다. 차창 밖으로 맨몸을 내민 이들은 연체동물처럼 몸을 비틀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외쳐댔다.
“대한민국은 위대하다! 한민족은 영원하다!"
도로위의 시민들이 춤추며 화답했다.
"우리는 하나다!”
광화문 거리는 시민들의 군무와 열광이 바로 통행질서였다. 정복의 교통경찰관들도 차량들의 곡예운전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예 시민들 속에 뛰어들어 손을 마주잡고 강강수월래를 추었다. 드디어 민관이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경사스런 날에 관민이 함께 춤과 노래를 즐겼던 동이족의 정체성이 복원되는 순간이였다. 오로지 맑고 고운 시민들의 순정이 동이족의 정신으로 응집되어 백로의 날개처럼 한 밤 도심에 활짝 펼쳐진 것이다. 내가 태어난 이래 이런 감격과 신명은 보지 못했다. 이것은 차라리 우리들의 신앙이다.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지거든 커다란 북을 들쳐 메고는 동포의 행렬에 앞장 서오리다. 우렁찬 이 함성을 들으니 이 자리에 꺼꾸러져도 좋으리....
판사는 우리를 다시 힐끗 내려보고나서 담담히 말을 이어 갔다.
"그러나 그날 월드컵축구에서 한국팀의 승리에 전 국민이 축제 분위기였다는 점. 피고인들이 사회적인 지식층인 점을 감안하여 형량을 참작하였습니다. 불복한다면 7일내 항소할 수 있습니다. 피고인들을 각각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2항, 형법 제366조, 제257조1항에 의거 벌금 70만원에 처한다. 벌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형법 제37조, 제69조 2항에 의거 하루 4만원씩 환산하여 노역장에 유치한다.”
나는 씁쓰레한 기분으로 판사를 노려보았다. 시민은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권리를 국가에게 양도했지만 양도의 범위는 공동체의 본질을 유지하는 한계 內이다. 그런데 너희는 공동체 질서를 깨뜨리는 자를 두둔하고 유지하려는 자를 징벌하는가? 이로서 스스로 회복되어가던 시민적인 자존은 짓밟히고 소생하던 공동체 정신은 枯死에 던져졌다. 이게 온전한 국가의 판단이란 말이냐? 너희들 손엔 칼만 들렸지 저울은 없구나! 내 속에서 울분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선고가 된 이상 항소도 쓸데없고 이젠 다만 이 짓거리가 창피할 뿐이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법정 문을 밀고 나와 버렸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조상수는 감격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우와. 한 50만원 예상했는데 80만원이나 깍아주네. 이거 까먹을러 가자.”
그는 벌금이 예상보다 적으니 웬 현찰이 주머니에 새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었다. 무죄는 아니었으나 벌금이 적어졌으니 줄어든 만큼 우리의 범행은 정당성을 인정받은 셈일 터이다. 그런데 우리 벌금의 합이 택시기사 그 놈의 손해보다 많을 텐데. 그러면 우리의 행위가 더 반사회적이라는 뜻이 아닐까? 결코 아니다! 그 초과 부분은 현행 형사절차의 맹점 때문에 국가가 무단히 더 빼앗아 간 금액이다. 나는 그렇게 분풀이를 했지만 속은 메스꺼웠다. 6월의 푸르름이 한껏 무성한 가로수 밑에서 조상수는 호기롭게 택시를 잡았다.
“기사양반! 안국동으로 갑시다.”
“안국동은 왜?”
내가 차갑게 물었다.
“그 할머니집에 가서 술 한 잔 하자고! 그러면서 **경찰서를 비웃자고!”
“비웃을 놈이 경찰뿐인가?“
“검찰말이지? 검찰청 바로 앞에 내가 잘 아는 술집이 있어. 거기서 한잔하고 몰래 그쪽에다 대고 오줌이나 싸자고!하하하...”
한강다리를 건너는 먼 거리를 타고와 **경찰서의 뒷골목 그날 이른 새벽 선지국을 퍼주던 할머니의 한옥 밥집을 다시 찾아갔다. 자리에 앉아서도 내 심중에는 미숙한 주심 때문에 축구경기를 지고 돌아온 선수인듯 피곤함과 찜찜함이 황망히 교차되었다. 조상수는 생기발랄하게 외쳤다.
“자. 한 잔 부딪치자.”
그는 단숨에 마시고 술잔을 내려놓으며 소리 질렀다.
“대~한민국! 따단따~딴따!”
누추한 부엌에서 조리에 몰두한 젊은 새댁모습이 신선했다. 어디선가 들어오는 한줄기 강한 햇빛이 우중충한 실내공간을 통과해 그녀의 작은 동작을 따라가며 비쳤다.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펑퍼짐한 임신복을 입었다.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그때 처연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하던 할머니에 묘한 인상이 남았던 내가 한가하게 묻자 새댁이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울 엄니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그녀는 음식을 들고 나와 공손히 탁자위에 놓으며 해맑은 눈빛을 반짝였다.
“울 엄니 단골손님이셨죠? 엄니는 당신을 찾는 귀한 손님이 오실테니 잘 대접하라고 당부하셨죠. 엄니 손님이 여전히 찾아오시니....모두 귀한 손님 같아요.”
새댁은 몸이 무거운 듯 한손을 허리에 대고 몸을 죽 폈다. 조상수가 또 단숨에 술 한 잔을 즉결처분하고는 없던 말을 짓굳게 소리쳤다.
“할머니가 엄청 손자를 기다리시더만! 출산 날 연락 주세요. 그때 우리가 동방박사처럼 경배를 드리러 오겠습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부엌으로 숨었다. 태고이래 열린 적이 별로 없는 듯 먼지가 두껍게 쌓인 체 단정히 닿친 장지문에 내 눈길이 갔다. 나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빼그드득 소리를 내며 문이 처음으로 열리자 툰트라 벌판의 눈보라떼처럼 매미들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쏟아져 들어 왔다.묶은 먼지가 조용히 번지는 공간을 너머 한옥 안채와 작은 안마당이 보였다.한옥의 낡은 벽에 엷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청포도 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다. 돌아가신 할미가 가꾼듯한 포도나무는 쇄락한 기와지붕의 처마 밑으로 좁은 햇빛을 찾아서 끈질기게 넝쿨을 뻗어 올랐다가 소년 키 높이쯤에서 수평으로 퍼졌다. 이제 막 크기 시작하는 작은 포도알갱이가 조랑조랑 매달려 있다. 비록 밑둥에서 줄기가 괴상하게 비틀렸지만 그 비틀림이 더 당당히 보였다. 비로서 충분한 양광을 받는듯 연초록빛 넓은 포도 잎은 광합성작용에 쓰고 남았는지 눈을 찌르는 강한 햇빛을 난반사로 세상으로 되쏘고 있다.척박한 환경에서도 싱싱하게 핀 잎에 문득 哀傷이 느껴졌다.
“동방의 빛! 코리아가 깨어났다!”
이태리팀에 승전한 1년전 그날 광화문 육조 앞길에서 동방의 빛으로 다시 깨어나 한민족의 얼을 활짝 펼쳤던 그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호프집에서 만난 노신사가 근심했지만 그들이 올곧은 성장을 하지못하고 시정잡배로 잡몰했을 리 없다. 그옛날 대륙을 포효하던중 시공을 초월해 그때 잠시 이 땅에 왔다가 축제만 참여하고 과거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경찰서를 나온 날 새벽 무언으로 온 말을 다하며 우리를 맞았다 홀연히 사라진 할미도 그들의 일행이였나 보다.그들을 다시 찾을 수 없고 만날 수 없음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외로움이 엄습했다. 황량한 도시에서 홀로 떨어져 길을 잃은 고아가 된 듯 내 가슴은 소리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그들이 보고 싶다.그들 속에 살고 싶다.
2007.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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